269
269화 7장. 친구이기에 냉정하게 대한다(1)
담호와 종리연이 화산의 산문 아래서 서로를 바라보았다.
“다녀오지.”
“멋없어.”
종리연이 입술을 삐죽거렸다.
그녀가 화산에 머무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바로 이곳에 담호가 있었기 때문이다.
세상 모두가 두려워하는 남자였다.
포악하기가 하늘을 찌르고, 무정하기론 천하에서 첫 손가락에 꼽힌다고 사람들은 말했다. 그것이 세상 사람들이 알고 있는 담호였다. 하지만 종리연은 알고 있었다.
담호도 피가 흐르는 사람이고, 그의 냉혹한 마음 한편에 따스함이 존재한다는 것을. 단지 그런 자신의 속내를 보여 주지 않을 뿐이라는 것을.
종리연이 담호에게 목함을 내밀었다.
“뭐지?”
“구전활독단(求轉活毒丹)이에요. 위급할 때 써요.”
“고맙다.”
담호가 목함을 받아 품에 넣었다.
구전활독단의 효능은 이미 경험한 바 있었다. 덕분에 초연운을 살리고, 자신도 크게 도움이 되었으니까.
“그래도 조심해야 해요.”
“그러지.”
“꼭 돌아와요. 이곳에서 기다릴 테니까.”
“그러지.”
“멋없어.”
툭!
종리연이 담호의 가슴에 머리를 가볍게 박았다. 그 상태 그대로 한참을 있었다.
종리연의 눈가엔 눈물방울이 맺혀 있었다. 그녀는 가만히 서서 눈물이 사라지기를 기다렸다.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 종리연이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그녀는 웃고 있었다.
“잘 다녀와요. 나는 이만 올라갈게요.”
“…….”
“진보가 특식을 준비하고 있대요. 늦으면 다른 사람들이 다 먹을 거예요.”
종리연의 엉뚱한 말에 담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종리연은 그런 담호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다가 그대로 산을 올라갔다.
담호는 잠시 제자리에 서서 멀어지는 종리연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망부석처럼 우두커니 서 있던 그가 움직인 것은 종리연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였다.
산문을 나서자 그를 기다리고 있는 음유경의 모습이 보였다. 음유경은 화산파에서 내준 말을 타고 있었다.
음유경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말은요? 걸어갈 건가요?”
담호가 고개를 저으며 휘파람을 불었다.
나직하면서도 웅혼한 휘파람 소리가 화산에 울려 퍼졌다. 그러자 잠시 후 맹렬한 기세로 무언가 수풀 속에서 튀어나왔다.
잡털 하나 섞이지 않은 검은 말, 바로 흑귀였다.
흑귀가 반갑다고 담호의 가슴에 커다란 얼굴을 문지르며 푸르륵거렸다.
지난 삼 년 동안 담호는 흑귀를 화산에 방목했다. 흑귀는 자유롭게 화산과 인근 벌판을 내달리며 자유를 만끽했다. 그러다가 담호가 휘파람을 불면 이렇게 달려와 만남을 나누곤 했다.
담호가 흑귀의 귀에 속사였다.
“가자, 강호로.”
푸르르!
흑귀가 알아들었다는 듯이 힘차게 투레질을 했다. 담호는 흑귀의 흥분이 가라앉길 기다려 안장을 올렸다.
마지막으로 안장의 끈을 동여매고 담호가 올라타자 흑귀가 기다렸다는 듯이 앞으로 튀어나갔다. 그 광경에 음유경이 깜짝 놀라 말을 달렸다.
두 사람이 사라지고 난 직후였다. 수풀을 헤치며 두 사람이 나왔다. 문수결과 조원명이었다.
그들은 지난 며칠 동안 이곳에 머물면서 화산의 동향을 예의 주시했다. 동향을 감시한다고 하지만 화산에 올라갈 엄두를 내지 못했기에 그저 이곳에 숨은 채 산문만 바라보고 있던 것이 전부였다.
“권마…… 맞지?”
“예! 분명합니다.”
“으음!”
“어떻게 할까요?”
조원명이 물었지만 문수결은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문수결의 얼굴엔 고뇌의 빛이 가득했다.
‘어떻게 해야 하지?’
평소 누구보다 냉철하다고 자부하는 문수결이었지만 상대가 워낙 거물이다 보니 어찌 대응해야 할지 영 감이 잡히지 않았다.
한참을 생각하던 그가 마침내 결정을 내렸다.
“삼 조에게 이곳의 감시를 맡기고, 우리는 조원들과 함께 권마를 추격한다.”
“그래도 되겠습니까?”
“인정하기 싫어도 권마는 천하의 중심축 중에 하나다. 이제까지 잠잠하던 그가 삼 년 만에 움직였다. 결코 평범한 이유 때문은 아닐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권마의 행적을 감시한다.”
“알겠습니다.”
조원명이 두말하지 않고 수긍했다. 문수결의 말이 타당하게 들렸기 때문이다.
권마라는 거물을 추적해야 한다고 하니 벌써부터 입술이 바싹바싹 마르고 속이 탔다. 그만큼 담호의 존재감은 엄청났다.
“가자.”
“예!”
문수결과 조원명이 움직였다. 그 뒤를 암운 이 조가 따랐다.
***
화산을 떠난 담호와 음유경은 북상을 했다.
첫날 그들이 도착한 곳은 화음현 북쪽에 위치한 포성(蒲城)이라는 곳이었다.
그들은 포성의 조그만 객잔에 짐을 풀었다. 방 두 개를 빌리고 식당에 모였다.
두 사람이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
음유경이 화산에 꽤 오래 있었지만, 이렇게 단둘이서 직접 얼굴을 마주 볼 일은 거의 없었다.
담호는 말이 거의 없는 편이었다. 그것은 음유경도 마찬가지였다. 이곳에 오는 동안에도 두 사람은 거의 대화를 하지 않았다. 때문에 실질적으로 대화를 하는 것은 지금이 처음이었다.
먼저 말문을 연 것은 담호였다.
“강호의 운명이 걸려 있다고?”
“율천이 그랬어요.”
“…….”
“율천은 결코 허튼소리를 할 사람이 아니에요. 섣불리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는 사람도 아니구요.”
“검율천은 어디에 있지?”
“도강언(都江堰)에서 마지막 서신을 보냈어요. 서신에 당신과 함께 오라는 글이 적혀 있었구요.”
“도강언이라면 역시 사천성인가?”
“맞아요.”
뜻밖의 대답에 담호가 미간을 찌푸렸다.
사천성은 여러모로 특이한 곳이었다. 그곳엔 구대문파에 속하는 청성파와 아미파가 있고, 오대세가의 하나인 사천당문이 존재했다.
천하에서 손꼽히는 문파가 한둘도 아닌 무려 세 곳이나 존재하지만, 사실 사천성 내부의 상황은 외부에 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 그것은 사천성만의 독특한 지형 때문이었다.
흔히들 사천분지라고 이야기할 만큼 사천성 내부는 드넓은 평야로 이뤄져 있었다. 기름진 평야에서는 매년 엄청난 양의 곡물이 쏟아졌다.
매년 추수하는 엄청난 양의 곡물을 바탕으로 청성파, 아미파, 당문은 완벽한 재정 자립을 했다. 그 덕에 천하에서 손에 꼽히는 문파들이 되었지만, 반대로 사천성 외의 문파들과는 교류가 극히 드물었다.
그것은 바로 분지를 둘러싸고 있는 험준한 산맥 때문이었다. 마치 항아리처럼 사천분지를 둘러싼 산맥은 너무나 험해서 외부의 성들과 왕래를 힘들게 했다.
안심하고 사천성에 드나들 수 있는 관도는 무척이나 비좁고 험해서 외부와 단절하게 만들었다. 그 때문에 사천성은 다른 성과 달리 그들만의 독특한 세계를 구축하고 발전시켰다.
사천무림(四川武林)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었다. 사천성만의 무림 체계는 무척이나 폐쇄적이어서 외부에 있는 사람들은 그 체계를 정확히 알지 못했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사천성 내부의 사정에 정통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가 사천성으로 간 것은 확실한가?”
“맞을 거예요. 서신의 글씨는 그의 필적이 분명하니까요.”
“신무월과 명천은?”
“그들의 소식 역시 완전히 끊겼어요. 자세한 것은 율천을 만나야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
“일단 율천을 만나는 것이 급선무예요.”
“혹시 마교의 총단이 사천성에 있나?”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어요.”
“자세히 말해 봐.”
“신교의 총단은 한곳에 있지 않아요. 일차 정마대전 때 총단을 습격당한 기억 때문에 신교는 주기적으로 총단을 옮기고 있어요. 제가 알고 있는 것은 아주 예전의 위치일 뿐, 지금 총단이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해요.”
“그게 가능한가?”
담호가 처음으로 의혹어린 표정을 지었다.
한 문파의 총단이라는 것은 결코 쉽게 옮길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화산파만 하더라도 상궁이라는 상징적인 건물이 마교의 총단 역할을 하고 있었다.
총단은 한 문파의 상징이었다. 그런 총단을 주기적으로 옮긴다는 것은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다.
음유경이 대답했다.
“쉽지 않은 일이에요. 하지만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요. 당시에 신교는 강호의 추적을 피해야 하는 입장이었으니까요.”
온 세상이 적이었다.
중원의 모든 문파들이 눈을 시퍼렇게 뜬 채 마교를 추적했다. 살아남기 위해 마교는 변화할 수밖에 없었다. 총단을 수시로 옮기는 것이 그들에겐 일상이었다.
총단을 수시로 옮기는 것이 사실이라면 지금으로서는 알아낼 방법이 요원했다. 마교의 성녀였던 음유경도 알지 못한다면, 천하의 그 누구도 알아낼 방법이 없을 것이다.
담호는 잠시 침묵을 지켰다. 음유경도 덩달아 말문을 닫았다. 그렇게 한참 동안이나 대화가 없이 시간이 흘러갔다.
담호는 담호대로, 음유경은 그녀대로 각자만의 상념에 빠져 있었다.
한참 동안이나 이어지던 정적을 깬 것은 바로 담호였다.
“지난 삼 년 동안 마교가 잠잠했던 이유는 뭐지?”
“신교 내부에 변고가 생겼어요.”
“변고?”
“저도 자세히는 알지 못해요. 워낙 쉬쉬해서. 하지만 그 일이 신교가 일시적으로 강호상의 활동을 멈춰야 할 만큼 큰 충격이었던 것은 분명해요.”
“결국 확실히 아는 것은 하나도 없군.”
“미안해요.”
“당신을 탓하는 것이 아냐.”
“알아요. 그래도 미안해요.”
음유경이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그녀는 신교의 성녀였다. 비록 작금에 이르러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오히려 추적을 받는다지만, 그래도 성녀로서의 자존심이 있었다. 그 모든 자존심을 꺾고 담호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검율천에 관계된 일이 아니었다면 그녀는 절대로 담호를 찾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도 사랑 앞에서는 연약한 여인이었다.
그때 음유경이 담호에게 감사의 인사를 했다.
“고마워요.”
“…….”
“저를 믿고 도와주셔서요.”
“당신 때문이 아니야.”
“그럼?”
“때가 되었기 때문이지.”
“때?”
음유경의 얼굴의 의혹의 빛이 떠올랐다.
담호는 잠시 음유경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시선을 밖으로 돌렸다. 어느새 사위가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담호는 현 천하가 어둠이 내린 풍경 같다고 생각했다.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어둠이 잠식해서 피아를 구별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믿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자신의 육감과 무력뿐이었다.
그가 상대해야 할 적은 비단 마교뿐만이 아니었다.
천사교(天邪敎).
모든 것이 장막에 가려진 미지의 사교 집단. 그들도 담호의 적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전력은 결코 마교에 뒤지지 않았다. 어쩌면 더 강할지도 몰랐다. 그런 적들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담호도 더 강해져야 했다.
화산에서의 삼 년은 단순히 현소 진인과 화산파 제자들을 위한 시간만은 아니었다. 그 시간 동안 담호는 자신을 더 정묘하게 갈고닦았다.
담호도 스스로의 경지가 어느 정도 되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그저 막연히 예전보다 더 강해졌을 거라고 생각할 뿐이었다.
음유경이 찾아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더 이상 화산에 있을 필요를 느끼지 못할 때 음유경은 찾아왔고, 그것이 담호가 밖으로 나올 이유가 되었다.
음유경은 담호의 생각을 알지 못했다. 담호는 마치 석상을 깎아 놓은 것처럼 표정이 거의 없어 속내를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이 하나 있었다.
‘같은 편이라면 천하에서 가장 든든한 남자.’
검율천을 제외하고 이와 같은 안도감을 들게 하는 남자는 담호가 처음이었다. 만일 검율천이 아니라 담호를 먼저 만났다면…… 그랬다면 어쩌면 담호에게 빠졌을지도 몰랐다.
음유경이 물었다.
“바로 도강언으로 갈 건가요?”
“그 전에 들를 곳이 있어.”
“어디를?”
“소화산(小華山).”
담호의 시선이 어둠 너머를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