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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권마-271화 (27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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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1화 7장. 친구이기에 냉정하게 대한다(3)

다음 날 새벽 담호와 음유경은 소화산을 떠났다.

문득 음유경이 뒤를 돌아봤다. 단화란이 배웅하는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어디서도 초연운의 모습은 보이진 않았다.

어젯밤 충격을 받은 초연운은 다시 숲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소화산은 밤새도록 몸살을 앓았다. 초연운이라는 폭군으로 인해.

음유경이 물었다.

“괜찮겠어요?”

“뭐가?”

“분명 큰 상처를 입었을 거예요.”

“괜찮아!”

“…….”

“그 정도로 무너질 남자가 아니야. 그는…….”

담호의 대답에 음유경의 눈이 빛났다.

‘그 정도로 그는 그 남자를 믿는 건가?’

그제야 음유경은 자신이 무엇을 잘못 생각하고 있었는지 깨달았다.

그녀는 담호가 독불장군이라고 생각했었다. 누구와도 협력할 줄 모르고, 그 어떤 이에게도 마음을 주지 않는 냉혈한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강해도 혼자서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혼자서 할 수 있는 일과 여럿이서 할 수 있는 일에는 분명 큰 격차가 있었으니까.

그 때문에 한 지역의 패자가 될 수는 있을지언정 천하를 도모하기엔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담호가 독불장군인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렇다고 그의 주위에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담호의 주위에도 사람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분명 성장을 하고 있었다.

‘그는 결코 혼자가 아니야. 그에게도 사람이 모이고 있어.’

음유경의 심경이 복잡해졌다.

지금 당장이야 담호의 도움을 받고 있지만, 그녀는 기본적으로 마교의 성녀였다. 담호가 강해지는 것은 곧 마교의 위협이 그만큼 커지는 셈이다.

“휴!”

그녀가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다가 깜짝 놀랐다. 스스로도 너무 염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음유경은 고개를 저어 상념을 날렸다.

그때 담호가 물었다.

“사천성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은?”

“섬서성 한중(漢中)에서 사천성 광원(廣元)으로 넘어가는 길을 이용할 거예요.”

“촉도인가?”

“맞아요. 현재로서는 그보다 빠른 길은 없어요.”

사천성은 하늘을 찌르는 고원으로 둘러싸인 분지 지형이었다. 고원 지형이 워낙 험해서 사천성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길은 몇 되지 않았다.

그중 가장 유명한 곳이 바로 촉도였다. 거칠고 험하기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곳.

촉도가 나 있는 산의 이름은 용문산(龍門山)이다. 용문산의 다른 이름은 검문산(劍門山)이었다. 칼날을 연상시키는 험준한 산맥이라는 뜻이었다.

오죽하면 검문촉도(劍門蜀道)라 부를까? 그만큼 촉도는 험난했다.

“가지.”

“예!”

두 사람은 나란히 말을 달렸다. 섬서성의 성도인 서안을 지나자 인적이 드문 관도에 접어들었다.

하루 종일 말을 달려도 민가 하나 보이지 않는 풍경이 나타났다. 다행히도 두 사람은 모두 노숙에 익숙한 사람들이었다.

민가나 객잔이 없으면 그대로 길가에서 노숙을 했다. 그렇게 꼬박 칠 주야를 달려 한중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한중은 역사가 오래된 고도(古都)로 입구에서부터 예스러운 느낌이 물씬 풍겼다.

음유경이 말했다.

“오늘은 객잔에서 머물고, 내일 촉도를 넘죠.”

담호는 고개를 끄덕여 그녀의 의견에 동의했다.

잠시 주위를 둘러보던 두 사람은 등명객잔(燈明客棧)에 짐을 풀었다. 등명객잔은 한중의 중심가에 자리 잡은 객잔으로 제법 규모가 커서 많은 사람들이 머물고 있었다.

두 사람이 객잔 안에 들어서자 단번에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음유경은 면사로 얼굴을 반쯤 가렸지만 타고난 아름다움을 완전히 숨길 수 없었다. 음유경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에 절로 감탄의 빛이 떠올랐다.

그녀와 반대로 냉기를 풀풀 풍기는 담호의 모습 또한 사람들의 시선을 끌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의 눈빛을 보는 순간 대부분의 사람들이 놀라서 급히 시선을 돌렸다.

‘무, 무슨 놈의 눈빛이…….’

단지 눈빛을 마주 보았을 뿐인데 심장이 쿵 하고 떨어질 것 같고, 오금이 저렸다. 그만큼 담호의 눈빛은 무시무시했다.

“어, 어서 오세요.”

점소이도 담호의 눈빛에 기가 질렸는지 쉽게 다가오지 못하고 멀찍이서 인사를 했다. 그러자 음유경이 앞으로 나섰다.

“방 있느냐?”

“예! 있습니다. 한 개 드릴까요?”

“두 개 다오.”

“두 개요?”

점소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담호와 음유경을 번갈아 바라봤다.

“왜, 무슨 문제 있느냐?”

“아, 아닙니다. 각자 방이 떨어져 있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괜찮다.”

“알겠습니다. 저를 따라오십시오.”

점소이는 두 사람을 방으로 안내했다. 그의 말처럼 두 사람이 배정받은 방은 멀찍이 떨어져 있었다.

음유경이 방에 들어가기 앞서 담호에게 말했다.

“저는 오늘은 저녁 생각이 없으니 식사는 담 대협 혼자 하세요.”

“그러지.”

“그럼 내일 아침에 식당에서 봐요. 푹 쉬세요.”

음유경이 자신의 방으로 들어간 뒤 담호도 배정받은 방으로 들어왔다. 점소이가 안내해 준 방은 무척이나 허름했다. 하지만 창이 제법 널찍해서 한중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담호는 창가에 기대앉아 해가 지는 풍경을 바라봤다. 어둠이 내려앉자 한중 거리에 등불이 하나둘씩 불을 밝혔다. 마치 반딧불이가 무리지어 야공을 떠다니는 듯 몽혼적인 풍경이었다.

잠시 후 담호는 객잔을 나와 거리를 걸었다.

“호호호!”

“거기 나으리, 이리 들어오세요.”

얼마 걷지 않았는데 홍등가가 나타났다. 기녀들이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길을 지나가는 취객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그녀들은 담호를 보며 손짓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담호는 그들에게 눈길 하나 주지 않고 걸음을 옮겼다.

그때였다.

“아!”

갑자기 나직한 탄성이 울려 퍼졌다. 그 소리는 너무나 작아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듣지 못했다. 하지만 담호의 예민한 귀는 그 미약한 소리를 놓치지 않았다.

담호가 고개를 들어 인근 기루의 창가를 바라봤다. 그러자 창 너머로 누군가 급히 고개를 숙이는 모습이 보였다.

담호의 눈빛이 순간 일렁거렸다. 그는 바로 기루로 들어갔다.

기루에 들어가자마자 총관이 그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말했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운정은?”

“예?”

순간 총관의 얼굴에 강한 경계의 빛이 떠올랐다. 그러자 담호가 차갑게 말했다.

“그러지 마.”

“무슨?”

총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담호가 그런 총관을 보며 말했다.

“덤비면 너뿐만 아니라 이곳에 있는 모든 자가 죽을 거야.”

“크으!”

담호는 담담히 말했지만 총관의 얼굴은 마치 종잇장처럼 구겨졌다. 그런 그의 몸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총관이 곁눈질로 기루 일 층을 둘러보았다. 커다란 기둥 뒤에 그의 수하들이 무기를 들고 숨어 있었다. 지금이라도 명령을 내리면 그들이 달려 나와 담호를 공격할 것이다. 하지만 총관은 그러지 못했다. 아니, 할 수가 없었다.

‘이 남자는 권마다.’

그는 한눈에 담호의 정체를 알아봤다.

일말의 감정도 드러나지 않는 무감각한 얼굴에 검은 일색의 복장, 그리고 살짝 저는 왼쪽 다리. 이 세 가지를 보고도 담호의 정체를 알아차리지 못한다면 강호에서 정보업에 종사해선 안 된다.

평범한 기루 같았지만 이곳은 하오문의 지부 중 하나였다. 그렇기에 담호를 보자마자 총관이 경계의 눈빛을 한 것이다.

문제는 권마가 왜 이곳에 들어왔느냐는 것이다. 순간적으로 그의 머릿속에 수많은 생각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꽉 쥔 주먹 사이로 땀방울이 흘러내리고 등골이 경직되어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그만큼 총관은 담호의 눈빛에 압도되어 있었다.

“저, 저는…….”

“총관께서는 무리하실 필요 없어요.”

그때 총관을 구원해 주는 목소리가 기루 일 층에 울려 퍼졌다. 그제야 총관의 긴장이 탁 풀렸다.

이제 십칠팔 세 정도로 보이는 기녀가 계단을 걸어 내려오고 있었다. 동그란 눈에 은은한 미소가 인상적인 아름다운 기녀였다. 하지만 그녀의 표정은 총관과 마찬가지로 은은하게 경직되어 있었다.

담호가 기녀를 바라보았다.

“오랜만이군.”

“저를…… 기억하고 계신가요?”

기녀의 말에 담호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기녀가 나직히 한숨을 내쉬었다.

“설마 탄성 한 번으로 정체를 들킬 줄은 몰랐어요.”

기녀의 이름은 운정이었다. 삼 년 전 악양 천상루에서 동기(童妓)로 있으면서 기예화의 수족 노릇을 했었다. 그때 처음으로 담호를 만났었다.

삼 년이란 시간은 동기에 불과했던 운정을 성숙한 여인으로 만들기 충분했다. 그녀는 이제 단순한 기녀가 아닌 설천루 최고의 기녀로 만들었다. 그녀를 만나기 위해 밤마다 찾아오는 고관대작이 줄을 설 정도였다.

오늘도 운정은 손님을 맞기 위해 곱게 단장하고 있었다. 그러다 잠깐 여유가 나서 창밖을 바라봤다. 그런 그녀의 눈에 홀로 거리를 걷고 있는 담호의 모습이 보였다.

너무나 놀란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내뱉었고, 그런 그녀의 모습이 담호에게 포착되었던 것이다.

운정이 아직도 얼이 빠져 있는 총관에게 말했다.

“총관께선 오늘 저를 찾아오기로 한 손님 모두 물리쳐 주세요.”

“알겠습니다.”

총관이 급히 대답했다. 그는 남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담호와 부딪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그를 안도하게 만든 것이다.

운정이 담호에게 말했다.

“제 거처로 모실게요.”

“음!”

담호는 운정을 따라 기루의 삼 층으로 올라갔다. 설천루에서도 극히 일부분의 귀빈만이 들어올 수 있는 곳이었다.

운정이 담호에게 상석을 양보하고 한쪽에 다소곳이 앉았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선 성숙한 여인의 향기가 물씬 풍기고 있었다.

운정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한중엔 어쩐 일이신가요?”

“지나가는 길이었어.”

“하! 말도 안 돼요. 그냥 지나가다 만났다구요? 우연이라면 정말 대단한 것이고, 악연이라면 말도 안 되게 질기군요.”

“기예화는?”

“그분은…….”

운정이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잠시 망설이던 그녀가 힘겹게 말을 이었다.

“총단에 들어가셨어요.”

“총단?”

“하아! 이런 이야기까지 해야 하나……. 좋아요, 모두 말씀드릴게요. 루주님이 부문주님이 되셨어요. 그래서 일선에서 손을 떼고 총단으로 들어가셨어요. 휴우!”

운정이 한숨과 함께 고개를 내저었다.

삼 년 전에는 이보다 편하게 담호를 대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수가 없었다. 그녀는 나이를 먹었고, 이제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담호가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지도.

담호가 마음먹는다면 하오문의 지부 하나쯤은 하루아침에 흔적도 없이 사라질 터였다.

‘루주님께서 이곳에 계셨어도 나와 똑같이 행동하셨을 거야.’

운정은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했다.

아직 어린 운정이 감당하기엔 담호의 존재감이 너무 컸다. 그녀는 담호의 존재감에 압도되어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곳 설천루는 미력하나마 제가 맡고 있어요.”

“언제 이곳에 왔지?”

“이제 일 년 되었어요.”

“일 년?”

“네! 총단에서는 무림맹과 완전히 연을 끊기로 작정하고 외부에 노출된 이들을 모조리 새로운 얼굴로 바꿨어요. 저 역시 그래서 이곳에 배치된 것이구요.”

“그런가?”

“네! 설마 이곳에서 담 대협을 뵙게 될 줄은 몰랐지만요.”

운정이 다시 한 번 한숨을 내쉬었다.

담호를 만난 것은 정말 우연에 불과했다. 그래서 더 가슴이 막막했다. 그녀는 아직 담호의 눈빛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목소리가 기어 들어갔다.

“하오문의 총단은?”

“그건 말해 드릴 수 없어요. 아무리 담 대협이라고 해도요.”

“그럼 기예화와의 만남은?”

“솔직히 힘들어요. 저도 루주님을 못 뵌 지 이 년이 넘었어요.”

운정이 도발적으로 고개를 쳐들어 담호를 바라봤다.

이대로 담호에게 끌려갔다가는 죽도 밥도 되지 않는단 사실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를 악물고 버텼다.

“난 사천성으로 갈 거야.”

“사천성엔 왜?”

운정이 자신도 모르게 불쑥 물었다.

담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에 운정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사천성에 무언가 있군요?”

“…….”

“맞죠?”

그녀는 속내를 감추지 못했다. 아무리 예전보다 성숙했다고 하지만 그녀의 나이는 겨우 십팔 세에 불과했다. 담호처럼 산전수전 다 겪은 무인을 상대하기엔 많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알고 싶나?”

“예!”

담호의 물음에 운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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