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2
272화 8장. 악연일수록 더욱 질긴 법이다(1)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담호의 눈빛은 정말 무서웠다. 눈을 마주 보는 것만으로도 심혼이 날아갈 것 같았다.
운정은 이를 악물었다. 그래야 겨우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사천성에 뭐가 있는 거죠?”
“궁금한가?”
“솔직히 그래요.”
“궁금하면 기예화보고 직접 찾아오라고 해.”
“하지만 루주님은…….”
“내가 두말하게 하지 마.”
“…….”
운정이 입술을 꾹 다물었다. 그런 그녀의 눈엔 공포의 빛이 가득했다. 그녀는 담호가 피도 눈물도 없는 권마란 사실을 다시 한 번 상기했다.
그녀가 감당하기에 담호는 너무나 벅찬 존재였다. 그나마 기예화 정도가 되어야 담호의 입에서 원하는 대답을 어느 정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생각을 정리한 운정이 간신히 대답했다.
“루주님에게 연통을 넣을게요.”
“그 전에…….”
“예?”
“쥐새끼부터 잡아야겠지.”
“쥐새끼?”
운정의 얼굴에 의혹의 빛이 떠오르는 순간 담호가 주먹을 들어 벽면을 후려쳤다.
쾅!
“커흑!”
굉음과 함께 벽면이 터져 나갔다. 동시에 누군가의 답답한 신음성이 들려왔다.
그제야 운정은 누군가 벽 뒤에 숨어 그들의 이야기를 엿듣고 있었단 사실을 깨달았다.
“감히!”
운정이 분노해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벽 뒤에 숨어 있던 이의 인기척이 사라진 후였다.
“무슨 일이십니까?”
“괜찮으십니까?”
굉음을 들은 설천루의 총관과 무인들이 방으로 우르르 달려왔다. 혹시나 담호가 운정에게 해를 끼칠지 몰라 대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운정이 그들에게 말했다.
“어떻게 된 거죠? 간자가 숨어들었어요.”
“네?”
“간자라니?”
총관과 무인들의 얼굴에 곤혹스러운 빛이 떠올랐다.
설천루는 하오문의 지부답게 물 샐 틈 하나 없는 경계망을 구축하고 있었다. 그런 경계망이 뚫렸다니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총관과 무인들이 무너진 벽을 바라봤다.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숨어서 듣던 간자도, 방금 전까지 운정과 대화를 하던 담호도.
“도대체?”
***
“헉헉!”
고급스러운 의복을 갖춰 입은 중년 남자가 한중의 밤거리를 달리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노곽, 소속은 암운 이 조였다.
암운 이 조는 모두 스무 명으로 이뤄져 있었다. 개개인이 모두 은신술과 추적술에 능할 뿐 아니라 무공 역시 상당한 수준까지 익히고 있어 때에 따라서는 암살 같은 특수한 임무도 수행할 수 있었다.
남궁창은 일찍이 정보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그래서 무림맹의 군사가 된 이후 암운을 키우는 데 주력했다. 그가 그토록 하오문을 합병하려고 했던 것도 정보망을 더 촘촘하게 만들기 위해서였다.
암운은 어떤 이로도 변할 수 있다. 길가를 지나가는 아낙이 될 수도 있고, 평범한 시장 상인이 될 수도 있었다. 그만큼 그들의 변장술은 뛰어났다.
노곽은 변장술이 특기였다. 그는 세상 어떤 사람이라도 될 수 있었다. 담호가 설천루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단골손님으로 변장했다. 자연스럽게 설천루로 입장해서 감청을 하려 한 것이다. 하지만 그의 시도는 담호에 의해 바로 들통나고 말았다.
그는 혼신의 내공을 다해 경공을 펼치며 생각했다.
‘그는 절름발이야. 내가 전력을 다하면 절대 쫓아올 수 없어.’
다행히 담호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노곽은 어느 정도 안심할 수 있었다.
그때였다.
“무슨 일인가?”
근처를 지나던 허름한 옷차림의 나무꾼이 갑자기 말을 걸어왔다. 그 역시 암운 이 조 소속의 무인이었다.
노곽이 급히 말했다.
“권마에게 들켰어.”
“그런…….”
“시간이 없어. 흔적을 지우고 다른 이들에게도 철수하라고 전하게.”
“알겠네.”
나무꾼이 급히 대답했다.
그 역시 정보 세계에서 오랫동안 일해 온 자답게 노곽의 몇 마디 말만으로 전체적인 사정을 꿰뚫어 봤다.
‘권마는 포기를 모르는 자.’
그는 그 어떤 경우에도 자신의 눈을 거스른 자를 살려 두는 법이 없었다. 아마 지금쯤이면 노곽의 흔적을 추적해 오고 있을 것이다.
노곽도 그런 사실을 알고 있었다.
“먼저 가게. 나는 흔적을 지우고 합류하겠네.”
“부디 조심하게.”
“그럼…….”
두 사람이 서로를 스쳐 지나갔다.
그들의 대화는 순식간에 이뤄져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그저 우연히 스쳐 지나가는 사람으로 보였을 것이다.
밤이 되었지만 한중 거리에는 수많은 이들이 오가고 있었다. 나무꾼은 그런 사람들 사이로 섞여 들었다. 그러면서도 경계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는 추적이 붙지 않은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 몇 번이나 저잣거리를 빙빙 돌았다. 그렇게 꼬리가 잡히지 않은 것을 확인한 후에야 그는 마침내 저잣거리 한쪽에 있는 조그만 저택의 문을 열었다.
끼이익!
낡은 경첩의 비명과 함께 나무로 만든 문이 열렸다.
“커흡!”
그 순간 강렬한 혈향이 그의 코를 덮쳐 왔다.
나무꾼이 자신도 모르게 코를 막으면서 눈을 부릅떴다.
저택의 안마당에 목불인견의 참상이 펼쳐져 있었다. 다섯 명의 사내들이 피투성이가 된 채 널브러져 있었다.
머리가 터져 나가고, 가슴이 함몰되고, 그야말로 두 눈 뜨고 볼 수 없을 만큼 처참한 광경이었다.
“무슨?”
나무꾼의 눈동자가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흔들렸다.
그때였다.
털썩!
어디선가 커다란 물체가 날아와 그의 발치에 나뒹굴었다.
“노……곽?”
나무꾼의 목소리가 절로 떨려 나왔다.
혈구가 되다시피 한 물체는 방금 전 헤어졌던 노곽이었다. 노곽은 혀를 길게 내민 채 숨이 끊어져 있었다.
비록 숨은 끊어졌지만 그의 얼굴엔 공포의 빛이 가득했다. 감지 못한 눈에는 생전에 그가 느꼈던 공포와 두려움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나무꾼과 노곽이 헤어진 것은 불과 일각 전이었다.
그 짧은 시간 노곽이 목숨을 잃고, 저택에 대기하고 있던 암운의 무인들이 목숨을 잃었다.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믿어야 했다. 그의 눈앞에서 일어난 현실이었으니까.
“누구냐?”
그가 발작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저택의 기다란 처마 아래 그늘진 곳에서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모습을 확인하는 순간 나무꾼의 눈이 찢어질듯 부릅떠졌다.
“궈, 권마?”
그늘진 곳에서 걸어 나온 이는 바로 담호였다. 그의 모습을 확인하는 순간 나무꾼은 최악의 상황이 닥쳤음을 직감했다.
‘제길!’
문득 의문이 들었다.
그가 아는 노곽은 경공의 달인이었다. 그 어떤 위험 속에서도 제 한 몸 하나는 빼낼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인 것이다. 그런 그가 절름발이에 불과한 담호에게 잡혀 목숨을 잃다니. 그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무공으로는 그를 당할 수 없어.’
판단을 내리자마자 나무꾼은 그대로 뒤로 몸을 날렸다.
담호는 제자리에 서서 나무꾼이 도주하는 모습을 무심히 바라봤다.
뚝뚝!
그의 손등을 타고 핏물이 흘러내렸다.
노곽과 저택에 숨어 있던 자들의 핏물이었다.
도주하는 노곽을 잡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의 입에서 감시자들이 숨어 있는 저택을 실토하게 하는 것도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담호는 그들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들은 단지 담호의 겉모습만 보고 경공을 제대로 펼치지 못할 거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담호의 경공은 절대 약하지 않았다. 장거리가 아닌 단거리라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경공술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무작정 경공을 펼쳐 도주하면 담호를 떨쳐 낼 수 있을 거라고 지례 판단했다.
노곽은 그 대가를 자신의 목숨으로 치렀다. 그리고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사실을 털어놨다. 나무꾼이 딴에는 담호의 추적을 따돌린다고 같은 자리를 뱅뱅 돌 때 말이다.
담호는 걸음을 옮겼다.
밤은 길고 시간은 아직 많이 남았다. 담호는 그 긴 시간을 충분히 활용할 생각이었다.
“어, 어떻게?”
문수결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지난밤은 그에게 악몽이었다. 그가 한중에 뿌려 놓은 암운 이 조에게서 연락이 끊기기 시작한 것은 초저녁이었다.
그가 어떻게 대응할 사이도 없이 빠르게 암운 이 조에게서 연락이 끊겼다.
누군가 암운 이 조를 죽이고 있다. 마치 연어가 강을 거슬러 오듯 하부의 인물들을 죽이며 역으로 추적해 오고 있었다.
“권마다. 그가 역추적해 오고 있다.”
“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조원명이 겁에 질린 얼굴로 물었다.
그의 얼굴에선 평소에 내비치던 패기와 자신만만한 표정 따윈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런 조카의 모습이 한심했지만 탓할 여유가 없었다.
“너는 어서 이곳을 빠져나가거라. 권마가 사천성으로 들어가려 한다는 사실을 무림맹에 알려야 한다.”
“숙부님은요?”
“나는 시간을 끌 것이다.”
문수결이 단호히 대답했다.
“하지만…….”
“시간이 없다. 너마저 죽는다면 무림맹에 이 사실을 전할 기회는 영영 잃게 되고 만다.”
“알……겠습니다.”
조원명이 힘겹게 대답했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는 묘한 안도감이 떠올라 있었다.
문수결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그는 정말 살고 싶었다. 숙부의 목숨을 담보로 잡혀서라도 말이다.
‘그게 잘못된 것은 아니잖아. 아직 나는 어려. 더 살고 싶은 게 잘못된 것은 아니잖아.’
그는 그렇게 스스로를 위안하며 몸을 날렸다.
등 뒤에서 문수결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애써 무시했다. 그가 자신을 위해 목숨을 걸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 사실이 못내 마음에 걸렸지만, 지금 이 순간 그의 가슴을 잠식한 두려움이 너무 컸다.
‘어차피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사이잖아.’
조원명은 그렇게 독하게 마음먹었다.
그는 앞을 가로막은 담장을 뛰어넘자마자 바로 한중을 뜰 생각이었다.
그때였다.
덜컥!
담장을 뛰어넘던 조원명의 몸이 마치 그물에라도 걸린 것처럼 허공에 멈춰 섰다. 그 모습을 본 문수결이 소리쳤다.
“원명아!”
“끄으!”
조원명은 대답하지 못했다. 아니, 할 수가 없었다. 솥뚜껑처럼 커다란 손이 그의 얼굴 전체를 압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담호였다. 그가 경공을 펼쳐 도주하던 조원명을 중간에서 낚아챈 것이다. 담호의 손에 걸린 조원명은 낚싯바늘에 걸린 물고기처럼 퍼득거리고 있었다.
“놈! 그 손 놓지 못하겠느냐?”
분노한 문수결이 담호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 순간 담호가 들고 있던 조원명의 몸을 그에게 던졌다.
콰직!
“컥!”
“크헉!”
허공에서 두 사람이 부딪쳐 한데 뒤엉켜 떨어졌다. 그들은 팔다리가 어지럽게 얽혀 바닥을 나뒹굴었다. 하지만 문수결도 고수였다. 그는 급히 조원명의 몸을 밀쳐 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그보다 담호의 반응이 더 빨랐다.
쾅!
어느새 지척까지 다가온 담호의 주먹이 조원명의 가슴에 격중 했다. 문수결의 눈앞에서 조원명의 가슴이 터져 나갔다.
조원명이 뻥 뚫린 자신의 가슴을 보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수, 숙부?”
“안 돼!”
“나는…….”
조원명이 몸을 부들부들 떨더니 그대로 쓰러졌다. 그것이 그의 허무한 최후였다.
문수결이 발작적으로 담호를 보며 소리쳤다.
“이 악귀 같은 놈! 사람을 이리 무참히 죽……. 커흑!”
콱!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끝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어느새 담호가 그의 목 줄기를 움켜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끄으으!”
문수결이 바둥거리는 그 순간 담호가 그의 목을 잡은 손을 높이 치켜들었다가 그대로 바닥에 내리꽂았다.
콰아앙!
굉음과 함께 문수결이 그대로 바닥에 처박혔다. 그의 몸 형태로 바닥에 구덩이가 푹 패여 있었고, 문수결의 팔다리가 기형적으로 꺾여 있었다. 그의 몸에서 흘러나온 피가 구덩이를 붉게 채워 갔다.
“끄으으!”
그 상태로도 문수결은 숨이 끊어지지 않았다. 그나마 고강한 내공이 그의 숨 줄기를 붙잡고 있는 것이다.
담호가 고개를 숙여 그의 눈동자를 들여다보았다.
“누가 보냈나?”
“끄으!”
“남궁창인가?”
문수결이 눈을 부릅떴다. 그의 혼탁한 망막 가득 담호의 얼굴이 확대되어 숨을 쉴 수 없었다.
“남궁창에게 전해. 머지않았다고.”
“무, 무슨?”
“내가 찾아갈 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