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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권마-280화 (28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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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0화 2장. 인연은 예측할 수가 없다(2)

약왕당(藥王堂)은 화산파에서 가장 최근에 지어진 전각 중 하나였다. 그리고 가장 경계가 삼엄한 곳 중 하나이기도 했다.

약왕당은 바로 종리연의 거처였다. 그녀의 거처에는 매일 십여 명의 화산파 무인들이 번을 선다. 숫자가 넉넉지 않은 화산파의 사정상 그 정도로 많은 무인들이 번을 서는 것은 무척이나 무리였다. 그런데도 화산파의 제자들은 자의로 번을 선다. 그만큼 종리연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뜻이었다.

약왕당 안에는 수많은 약초들이 가득했다. 방진보가 캐 온 약초도 있었고, 종리연이 직접 캐 온 약초도 상당수였다. 그리고 외부에서 들여온 약초도 많았다.

이 안에 있는 약초를 돈으로 환산한다면 아마 시중의 대저택을 하나를 사고도 남을 것이다. 그만큼 이곳에 있는 약초의 가치는 엄청났다.

약왕당 안에는 비단 종리연과 방진보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한쪽에는 운경과 삼십육매화검수들이 앉아 있었다.

그들은 긴장된 시선으로 종리연과 방진보를 바라봤다.

“어디 보자.”

종리연은 방진보가 들고 있던 망태기를 거꾸로 들었다. 그러자 수많은 약초들이 바닥에 수북이 쌓였다.

종리연은 섬섬옥수로 약초들을 하나하나 구별했다. 종류별로 약초가 분류되었고, 마지막으로 칠흑 빛 이끼만이 남았다.

종리연은 칠흑빛 이끼를 조심스럽게 들어 자세히 살폈다. 육안으로 확인하고 코로 냄새를 맡았다.

“흑암선태(黑暗仙苔) 맞네.”

“정말요?”

종리연의 말에 방진보가 반색을 했다.

“고생 많았어. 이건 정말 찾기 어려운 건데.”

“아휴! 말도 마요. 그렇게 으슥한 곳에 있을 줄은 정말 몰랐다니까요.”

“그랬을 거야. 흑암선태는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 햇볕이 전혀 들지 않는 오지에서만 자라니까. 그래서 산에 익숙한 약초꾼들도 평생 한 번을 보기 힘들어. 정말 큰일 했어.”

“그럼 이제 매화신단을 만들 수 있는 건가요?”

“시도해 봐야지.”

종리연의 말에 이제까지 조용히 있던 운경이 입을 열었다.

“종리 소저의 손에 화산파의 운명이 걸려 있습니다. 부디 성공했으면 좋겠습니다.”

운경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경직되어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지금 종리연이 제조하려는 것은 바로 매화신단(梅花神丹)이었다.

소림사의 대환단, 무당파의 태청단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뛰어난 효능의 영약이었다. 매화신단 한 알을 복용하면 엄청난 양의 내공을 얻을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오래전 제조법이 사라져 더 이상 전해지지 않고 있었다.

화산파에 정착한 후 종리연은 틈틈이 매화신단을 제조할 방법을 연구했다.

현소 진인은 학도사 출신답게 화산파 내에 전해지는 의경(醫經) 다수를 기억하고 있었다. 종리연은 현소 진인에게서 구술받은 의경을 책으로 만들어 연구했다.

수없이 도전하고 실패했다. 만일 그녀가 끈기가 없었다면 벌써 포기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정말 끈질기게 한 걸음씩 전진했다.

만일 종리연의 풍부한 의학 지식이 없었다면 의경에서 매화신단을 제조하는 단초를 찾아내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수많은 연구와 시험을 통해 그녀는 결국 매화신단을 제조하는 방법을 찾아낼 수 있었다. 약왕당을 가득 채운 약초는 바로 매화신단을 제조하기 위해 구한 것들이었다.

“흑암선태를 구했으니 이번엔 성공할 거예요.”

매화신단엔 수많은 약초가 들어간다. 개중에는 독성이 있는 것도 상당수였고, 제조하는 과정에서 자연히 독성이 증가하는 약초도 있었다.

결국 독성을 중화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그렇다고 아무 약초나 사용해서는 안 됐다. 다른 약초들의 약성을 헤치지 않는 중화제가 필요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흑암선태였다.

흑암선태는 오직 화산에서만 자랐다. 하지만 워낙 오지에서 자랐기에 화산에서 평생을 생활한 도사들도 그런 약초가 있는지 몰랐다.

다행히 삼 년 동안이나 화산을 제집 안마당처럼 뒤지고 다녔던 방진보가 흑암선태를 구해 왔다.

종리연이 운경을 바라봤다.

“시작해 볼까요?”

“합시다.”

운경이 허락을 하자 종리연이 작업을 시작했다.

특별하게 제작한 커다란 단로에 정확한 비율로 배합한 약초를 집어넣었다. 배합에 한 치의 오차라도 있으면 모든 것이 허사가 되기에 종리연도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흑암선태까지 넣은 후에야 종리연은 단로의 뚜껑을 닫았다.

뒤에 대기하고 있던 삼십육매화검수들이 긴장 어린 표정을 지었다.

신단(神丹)이라는 단어가 붙은 영약이었다. 제조 방법이 평범할 리 없었다.

일반적인 불길로는 매화신단을 제조할 수 없었다. 매화신단을 제조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불길이 필요했다.

“제 지시에 따라 열양지기(熱陽之氣)를 운용해야 해요. 명심해요. 한 치의 오차도 있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겠습니다.”

삼십육매화검수들이 힘차게 대답했다.

종리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화로에 불을 붙였다. 그러자 강력한 불길이 일어났다. 거기에 삼십육매화검수들의 열양지기까지 더해졌다. 네 명의 삼십육매화검수가 각자 단로에 손바닥을 붙인 채 내공을 쏟아 냈다.

시퍼렇게 일어나던 불길이 백색으로 바뀌었다.

엄청난 열기가 약왕당을 뜨겁게 달궜다.

종리연의 얼굴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하지만 종리연은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고 단로와 불길에 집중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몰랐다. 삼십육매화검수들의 열양지기가 조금씩 줄어들었다. 아무래도 내공이 달리는 것이다.

“불길이 약해지면 안 돼요. 다음 사람으로 바꿔요.”

“예!”

대답과 함께 대기하고 있던 삼십육매화검수 네 명이 교대했다. 그들 역시 단로에 열양지기를 투입했다. 잠시 약해지는가 싶던 불길이 다시 강렬하게 일어났다.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시간은 흘러갔다. 다시 불길이 약해지자 이번엔 다른 삼십육매화검수가 교대했다. 그렇게 몇 번의 교대 후에 마지막으로 운경이 나섰다.

“이번에 내 차롈세.”

그는 홀로 열양지기를 투입했다. 화산파의 장문인답게 그는 혼자서 네 명의 몫을 감당했다.

단로가 시뻘겋게 달아올랐고, 향기로운 약향이 흘러나왔다. 약향이 어찌나 강렬한지 약왕당 안에 있던 사람들은 머릿속이 환하게 개는 느낌을 받았다.

종리연의 얼굴에 긴장의 빛이 떠올랐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중요한 고비임을 깨달았다.

“진보야.”

“예!”

“네 차례야.”

“알았어요.”

대답과 함께 방진보가 운경과 교대했다.

운경이 얼굴에 비 오듯 흐르는 땀방울을 소매로 닦으며 말했다.

“마무리를 잘 부탁한다.”

“걱정하지 마세요.”

방진보는 대답과 함께 단로에 손을 붙이고 오행군자공을 운용했다.

종리연이 말했다.

“화기를 수기로 서서히 제압해야 해. 명심해! 절대 서두르면 안 돼.”

“네!”

방진보가 익힌 오행군자공은 오행의 원리를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무공이었다. 뜨겁게 달아오른 단로의 열기를 수기를 이용해 서서히 식히는 것, 그래서 약성을 최대한 보존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방진보는 종리연의 가르침에 따라 내공을 운기하면서 뜨겁게 달아오른 단로를 서서히 식혔다.

운경을 비롯한 제자들이 긴장 어린 시선으로 그 모든 과정을 지켜봤다.

‘제발!’

‘조금만 더 힘내.’

모두의 간절한 염원 속에 시간이 지나갔다.

“휴!”

마침내 방진보가 한숨과 함께 손바닥을 단로에서 뗐다.

종리연이 그의 어깨를 토닥거렸다.

“수고했어.”

“아니에요.”

방진보가 괜찮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지만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은 듯하지만 그들은 꼬박 사흘이나 약왕당에 처박혀 운공을 했다. 당연히 탈진할 수밖에 없었다.

종리연은 조심스럽게 단로의 뚜껑을 열었다. 그러자 이제까지와 비교할 수 없는 향긋한 향기가 강렬하게 풍겨 나왔다.

“오오!”

“매화향이다.”

삼십육매화검수들이 먼저 탄성을 터트렸다.

종리연이 단로 안을 들여다보자 걸쭉한 액체가 굳어 가는 모습이 보였다. 단로 안에 가득했던 약초가 겨우 밥사발 한 그릇 정도의 양밖에 남지 않았다.

종리연은 굳어 가는 액체를 조금 떠서 둥그렇게 빚기 시작했다. 금세 그녀의 손에서 단환 하나가 만들어졌다. 그녀는 연이어 단환을 빚었다. 그렇게 해서 모두 다섯 알이 만들어졌다.

매화향을 간직한 다섯 알의 단환.

무려 사흘이나 걸려 만들어 낸 결과물치고는 초라했지만 이 안에 있는 누구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매화신단이다.”

“저것이 진짜 매화신단?”

그들은 본능적으로 눈앞에 있는 단환이 매화신단임을 알아차렸다. 그들의 얼굴에 감격의 빛이 떠올랐지만, 그 누구도 운경만큼 감격스럽지는 않았다.

화산파에 남아 있던 매화신단은 모두 두 알. 그중 하나는 명경이 복용했고, 나머지 하나는 얼마 전 운경이 복용했다. 화산파의 장문인이 내공이 약하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매화신단을 복용한 이후 운경은 엄청난 내공의 증진을 보았다. 내공이 증진하자 이제까지 막고 있던 벽마저 뛰어넘을 수 있었다.

그는 다른 제자들도 자신과 같은 혜택을 얻길 간절히 원했다. 그래야 화산파가 더욱 강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매화신단을 복용했기에 눈앞에 있는 결과물이 진짜 매화신단과 똑같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

자신도 모르게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의 뺨 위로 굵은 눈물방울이 흘러내렸다.

“장문인.”

“드디어! 흐윽!”

삼십육매화검수들이 덩달아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그들 역시 화산파의 염원을 가슴에 안고 있는 무인들이었다.

“모두 수고하셨어요.”

종리연이 벅찬 가슴을 안고 모두에게 고개를 숙여 감사의 뜻을 표했다. 그러자 운경이 포권을 취하며 말했다.

“이 모두가 종리 소저 덕분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제자들이 덩달아 목소리를 높였다.

사흘을 꼬박 지새웠지만 그들의 목소리에 피곤함 따윈 남아 있지 않았다.

종리연은 다섯 알의 매화신단을 미리 준비한 한지에 싸서 운경에게 내밀었다.

“장문인께서 알아서 사용해 주세요.”

“감사합니다.”

“피곤하실 텐데 오늘은 이만 쉬시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아닙니다.”

“하지만…….”

“아직 약초가 많이 남아 있다는 것 알고 있습니다. 그 정도라면 매화신단을 더 많이 만들 수 있을 겁니다.”

운경의 눈이 열정으로 빛났다.

그것은 다른 삼십육매화검수들도 마찬가지였다.

매화신단을 더 만들수 있다면, 더 많은 제자들에게 복용시킬 수 있었다. 그렇게만 된다면 제자들의 무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할 수 있었다.

“이미 한번 만들어 봤으니 다음은 어렵지 않을 겁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종리 소저.”

“부탁드리겠습니다.”

운경과 삼십육매화검수들이 복창을 했다.

종리연은 그들의 염원을 뿌리칠 수 없었다.

“좋아요. 소뿔도 단숨에 뺀다고 바로 시작하죠.”

“고맙습니다.”

그들은 다시 매화신단을 제조하기 시작했다.

식었던 공기가 다시 뜨겁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후!”

명경의 입에서 안도 어린 한숨이 터져 나왔다.

그는 약왕당의 지붕 위에 앉아 있었다. 전각 안에서 종리연 등이 매화신단을 제조하고 있을 때 그는 이곳에 앉아서 호법을 서고 있었다.

매화신단을 복용해 봤기에 그 효능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고 있는 명경이었다.

‘매화신단이 모두 완성된다면 본파의 전력이 더욱 크게 상승할 것이다.’

모두가 화산파가 몰락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어떤 이들은 진심으로 화산파를 걱정했지만, 많은 이들은 화산파의 몰락을 자파의 비상을 위한 큰 기회로 생각했다. 그런 그들에게 아직 화산파가 죽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 주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매화신단이 필요했다.

안에서 다시 매화신단을 제조한다는 소리가 들렸다. 그에 명경이 잠시 풀어졌던 마음을 다잡으며 긴장할 때였다.

“…….”

갑자기 명경의 낯빛이 딱딱하게 굳었다.

탓!

그가 지붕을 박차고 인근의 숲을 향해 몸을 날렸다.

소리도 없이 검이 뽑혀 나왔다.

쉬가악!

수풀이 일자로 베어져 나갔다.

“크흡!”

수풀 속에서 답답한 신음성이 흘러나왔다.

명경의 차가운 목소리가 숲 속에 울려 퍼졌다.

“웬 놈이냐?”

순간 바람이 불어왔다.

사방에서 불어온 바람이 명경 앞에서 뭉치며 희미한 사람의 형태를 만들어 냈다.

“사술(邪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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