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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권마-282화 (28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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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2화 3장. 떨쳐 버릴 수 없는 악연도 있다(1)

객잔의 일 층에 있는 식당은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아무래도 도강언에서 큰 축에 속하는 객잔이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찾는 것이다.

식당에서는 담호와 음유경이 묵묵히 식사를 하고 있었다. 두 사람 모두 말을 즐겨하는 편이 아니기에 식사 시간도 조용할 수밖에 없었다.

두 사람이 조용히 젓가락을 놀리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객잔의 문을 열고 세 사람이 들어왔다.

헐렁한 피풍의에 커다란 방갓을 뒤집어쓴 세 사람의 행색은 많은 이들의 시선을 끌기 충분했다.

“저기 자리가 있네요.”

세 사람 중 한 명이 빈자리를 가리키며 앳된 목소리로 말했다.

무척이나 맑고 깨끗한 목소리에 자연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됐다.

“그래! 저기에 앉자.”

“휴우! 이제 좀 쉴 수 있겠네.”

나머지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며 빈자리에 앉았다.

그들은 자리에 앉자마자 머리에 쓰고 있던 방갓을 벗었다. 하나같이 수려한 미모를 자랑하는 여인들이었다.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는 여인은 특이하게 머리를 모두 민 여승이었고, 나머지 두 여인은 삼단 같은 검은 머릿결을 자랑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이는 검은 머리카락과 어울리지 않게 은은한 푸른색 눈동자를 지닌 여인이었다. 유난히 하얀 피부와 선명한 이목구비는 너무나 아름다웠다. 그녀의 허리에는 미모만큼이나 눈에 띄는 패검이 걸려 있었다.

누가 봐도 서역인의 핏줄이 섞인 듯한 그녀의 모습에 몇몇 남자들이 절로 탄성을 터트렸다.

“아!”

“정말 아름답구나.”

금세 객잔 안의 분위기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러자 막내로 보이는 어린 소녀가 입술을 삐죽거렸다.

“하여간 보는 눈은 있어서.”

말은 그렇게 했지만 어린 소녀의 얼굴엔 자부심이 가득했다.

그때 누군가 소리쳤다.

“벽안(碧眼)에 패검? 그녀는 아미파의 아미일검 정소천 소저다.”

“아미파라니?”

그렇지 않아도 들떠 있던 객잔의 분위기에 시끄러움이 더해졌다.

사천 무림 제일의 기재는 누가 뭐라 해도 바로 사천일성(四川一星) 청운이었다. 당문은 물론이고, 아미파까지도 인정한 청성제일의 기재.

천하에서 가장 뛰어난 후기지수 중 하나인 구무룡의 일원인 청운은 사천 무림의 자랑이었다. 그만큼 그의 존재감은 사천성에서 독보적이었다. 하지만 사천 무림에 기재가 그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비록 청운에 가려져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당문과 아미파에도 각자 유명한 기재들이 있었다.

대표적인 이가 당문의 천수공자(千手公子) 당하성과 아미파의 아미일검 정소천이었다.

당문의 암기술을 극고의 경지까지 익혀 손이 천 개처럼 보인다는 당하성은 공포의 대상이었고, 서역인의 핏줄이 섞여 신비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정소천은 선망의 대상이었다.

사람들이 자신의 정체를 알아보고 수군거리는데도 정소천은 전혀 개의치 않는 표정이었다. 그녀에겐 이런 일이 일상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사제를 보며 여승이 살짝 고개를 저었다.

“참 너도 고달픈 인생이구나.”

여승의 법호는 은엽, 아미파의 대제자였다. 그리고 가장 어린 여인은 막내인 소율희였다.

복식에서 보다시피 정소천과 소율희는 속가제자였다. 하지만 워낙 재능이 뛰어나다 보니 본산의 진신무공을 전수받고, 대제자인 은엽 사태와 동행하는 영광을 누렸다.

객잔 주인은 극진한 태도로 세 사람을 대했다. 아미파의 제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그들은 대접받을 자격이 충분했다.

은엽 사태는 객잔 주인에게 간단하게 몇 가지 음식을 주문했다. 그사이 막내 소율희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객잔 안을 둘러봤다.

샛별처럼 빛나던 그녀의 눈이 멈춘 곳은 바로 반대쪽 자리였다. 바로 담호와 음유경이 앉아 있는 곳이었다.

“저 사람들 보세요, 사저.”

자연스럽게 두 사람의 시선이 담호와 음유경 등을 향했다. 그러자 소율희가 속삭이듯 말했다.

“남자는 정말 차가워 보이지 않아요? 반대로 저쪽 언니는 굉장히 예쁜 것같이 보이구요. 어떤 사이일까요? 연인이라고 보기엔 거리감이 있는 것 같은데.”

“쓸데없는 소리를 하는구나.”

“어디서 온 사람들일까요? 사천성 사람들 같지는 않은데.”

은엽 사태의 타박에도 소율희는 꿋꿋했다. 은엽 사태가 그런 소율희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어느 문파에도 분위기를 띄우는 사람은 있기 마련이었다. 아미파의 경우 소율희가 그랬다. 소율희는 호기심이 무척이나 많았고, 궁금한 것이 있으면 절대 참지 못했다. 그 때문에 문제도 많이 일으켰지만, 아미파의 활력소가 되기도 했다.

정소천의 눈이 빛났다. 소율희의 말처럼 확실히 특이한 조합이었다. 같은 자리에 앉아 있지만, 두 사람은 확실히 서로에게 거리를 두고 있었다.

그때였다.

문득 담호가 고개를 들어 그녀들을 바라보았다. 담호의 시선을 정면으로 보게 된 정소천의 몸이 갑자기 부르르 떨렸다.

‘무슨 눈이?’

아무런 감정이 없는 깊고 차가운 눈동자를 보는 순간 절로 몸이 떨려 왔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왜 그래? 정 사매.”

그런 정소천의 반응에 은엽 사태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녀는 소율희와 이야기하느라 방금 전 담호의 눈빛을 보지 못했다.

“아, 아니에요.”

정소천이 급히 얼버무렸다.

‘사천성에 저런 무인이 있던가? 사천제일의 기재라는 청운 공자도 저 정도는 아니었는데.’

청운은 그녀가 알고 있는 가장 강한 젊은 무인이었다. 언젠가 한번 청성파와 아미파의 교류 대회가 있을 때 직접 목도한 청운의 강함은 실로 대단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이 그에게 많이 밀린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만큼 정소천은 스스로의 무공에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방금 전 눈빛이 마주친 담호를 상대로는 감히 승부를 자신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그의 눈빛은 무서웠다.

‘주목해야 할 자.’

정소천은 그렇게 담호를 정의했다.

담호를 주목하게 되자 자연 그 앞에 앉아 있는 음유경에게 시선이 갔다.

면사로 얼굴을 반쯤 가렸지만, 타고난 아름다움과 기품을 완전히 숨길 수는 없었다. 실제로 많은 이들이 곁눈질로 그녀를 훔쳐보고 있었다.

그때 소율희가 엉뚱한 소리를 했다.

“누가 더 예쁠까요?”

“무슨 소리야?”

“사저와 저 언니 말이에요. 저 언니도 보통 미모가 아닌 것 같은데.”

“쓰읍!”

“헤헤!”

정소천이 살짝 인상을 쓰자 소율희가 귀여운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샛별 같은 눈이 반짝이고 있었다. 그에 정소천이 불길한 기분을 느꼈다.

“너?”

“아무래도 안 되겠어요.”

소율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곤 은엽 사태와 정소천이 말릴 사이도 없이 담호와 음유경이 앉아 있는 자리로 터벅터벅 걸어갔다.

너무나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이라 은엽 사태와 정소천은 그 모습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안녕하세요.”

담호와 음유경의 자리에 온 소율희가 싹싹하게 말을 건넸다. 담호와 음유경이 고개를 들어 바라보자 그녀가 포권을 취했다.

“전 아미파의 소율희라고 해요. 실례인 것을 알지만 두 분의 모습이 워낙 눈에 띄어 이렇게 교분이라도 나누고 싶어 찾아왔어요.”

워낙 싹싹한 그녀의 모습에 음유경이 잠시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내 표정을 수습하고 입을 열었다.

“난 음유경이라고 해요.”

“아! 음 언니군요. 그럼 저분은?”

소율희의 시선이 담호를 향했다.

“…….”

담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수치심을 느낄 만도 하건만 소율희는 오히려 해맑게 웃으며 사과했다.

“제가 너무 성급하게 물어봤나요? 죄송해요. 하지만 악의는 없으니 용서해 주세요. 헤헤!”

아름다운 소녀가 이렇게 말한다면 누구라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음유경이 담호 대신 말했다.

“괜찮아요. 이분은 그렇게 말이 많은 분이 아니에요. 그리고 자신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는 것을 싫어해요. 그러니 소 소저가 이해해 줘요.”

“아니에요. 그럴 수도 있죠.”

음유경의 사과에 소율희가 싹싹하게 말했다.

구김살 하나 없이 해맑은 그녀의 모습에 음유경은 호감을 느꼈다.

“아미파라고 했나요?”

“네! 사저들과 함께 왔어요.”

“아미산은 이곳에서 꽤 멀리 떨어져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쩐 일로?”

“죄송해요. 저희도 사문의 명을 받고 와서 그것까지 말씀드릴 수는 없어요.”

“이해해요. 우리도 마찬가지니까요.”

음유경의 말은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너처럼 우리 역시 사문의 명을 받고 왔으니 더 이상 물어보지 말라는.

소율희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음유경의 말속에 담긴 뜻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내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저희는 당분간 도강언에 머물 생각인데, 언니는요?”

“우리도 그래요.”

“그럼 자주 마주치겠네요?”

“어쩌면!”

“혹시라도 만나게 되면 알은척해요. 우리!”

“그래!”

음유경이 허락하자 소율희의 얼굴에 다시 환한 미소가 어렸다.

“제가 너무 시간을 빼앗은 것 같네요. 그럼 편히 식사하세요.”

“그래! 소 매도 식사 맛있게 해.”

“예!”

소율희가 대답과 함께 정소천 등이 기다리고 있는 자리로 돌아갔다. 정소천과 은엽 사태에게 타박을 받는 모습이 보였다. 그런데도 여전히 기죽은 모습 없이 해맑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단지 존재하는 것만으로 주위를 밝게 만드는 재주가 있는 소녀였다. 그런 소율희의 모습에 음유경도 미소를 지우지 못했다.

“정말 맑은 소녀네요.”

담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소율희의 등장으로 칙칙하게 가라앉아 있던 공기가 상쾌해진 기분이었다.

한참 동안 소율희를 바라보던 음유경이 담호를 보며 말했다.

“그런데 아미파가 이곳엔 웬일일까요? 이곳 도강언과 아미산은 적잖은 거리가 있는데. 굳이 영역을 따지자면 이곳은 오히려 청성파의 관할에 가까운데요.”

당문과 청성파, 아미파는 같이 사천성에 적을 두고 있었지만 서로의 영역만큼은 확실히 존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각자의 영역을 존중해 줬기에 이제까지 별다른 문제없이 세 문파는 공존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서로의 영역에 될 수 있으면 자파의 무인들을 보내지 않았다. 그것이 그들의 관례였다.

음유경의 얼굴에 어려 있던 미소는 어느새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당문이 황룡보를 습격한 것도 그렇고 여러모로 많은 것이 그녀의 마음에 걸렸다.

‘대체 도강언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절로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때 담호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어떻게 할 건가?”

“찾을 곳이 있어요.”

음유경이 젓가락을 놓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담호도 그 뒤를 따랐다.

두 사람은 객잔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문을 나서기 직전 소율희가 알은척을 했다.

“안녕히 가세요.”

그런 소율희의 모습에 은엽 사태가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그녀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녀의 시선이 문을 나서는 담호의 뒷모습에 꽂혀 있었다. 정확히는 그의 다리에 꽂혀 있었다.

살짝 절고 있는 다리가 시야에 들어왔다.

그녀는 당금 강호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을 떠올렸다. 그도 눈앞에 있는 남자처럼 다리를 절었다.

‘아니겠지?’

그녀가 고개를 저었다.

그가 있는 곳은 이곳에서 수천 리 떨어진 화산. 더구나 화산은 봉문 상태였다. 그가 이곳에 있을 이유가 없었다.

객잔을 나온 담호와 음유경은 거리를 걸었다.

거리로 나온 음유경은 유심히 담벼락과 나무 등을 살폈다. 그 모습이 자못 의아하긴 했지만 담호는 별다른 말없이 그녀의 뒤를 따랐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찾았다.”

음유경의 눈이 반짝였다.

그녀의 시선이 향한 곳은 시장통 한쪽에 있는 커다란 담벼락 아래였다. 그곳에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조그만 표식이 있었다. 날이 어두워 거의 보이지 않았지만, 음유경은 용케도 찾아냈다.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흠집으로 보이겠지만, 아는 사람이 본다면 검으로 보이는 표식이었다.

오직 음유경과 뜻을 함께 하는 사람들만이 알고 있는 표식이었다. 음유경은 표식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한참을 가자 또 표식이 나타났다. 이번엔 방향이 바뀌었다.

표식을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도강언에서 가장 후미진 곳에 위치한 거리에 들어왔다. 인기척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으슥한 곳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예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문을 걸어 잠근 채 외부를 주시하고 있는 사람들의 눈길이 느껴졌다. 낯선 외지인의 등장에 경계를 하는 것이다.

담호와 음유경은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해서 도착한 곳은 거리 가장 깊은 곳에 위치한 조그만 저택이었다.

‘이곳인가?’

음유경이 저택의 문에 손을 갖다 댔다. 그러자 문이 소리도 없이 스르륵 열리며 안의 풍경이 보였다.

그곳엔 죽음이 내려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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