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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7화 4장. 초록은 동색이나, 따로 놀기도 한다(3)
연화루(蓮花樓)는 도강언에서 가장 큰 기루였다.
규모가 큰 데다가 기녀들의 미모 또한 뛰어나서 많은 풍류객들이 이곳을 찾았다.
연화루는 총 사 층으로 되어 있었는데, 손님의 등급에 따라 올라갈 수 있는 층이 정해져 있었다.
일반적인 손님은 이 층까지 올라가는 것이 한계였고, 이름 높은 고수나 명망이 있는 귀족들은 삼 층이 한계였다.
사 층은 최소 한 문파의 주인 정도가 되어야만 오를 수 있었다. 당연히 모시는 기녀 또한 미모와 학식이 뛰어난 절세가화였다.
연화루의 사 층에 오를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자는 극히 드물었다. 이곳 도강언 인근에서 연화루의 사 층에 들 자격이 있는 자를 모조리 꼽아 봐도 십여 명에 불과했다.
그만큼 자격을 갖춘 자가 드물다 보니 연화루의 사 층에 드는 자들의 자부심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오늘도 연화루는 손님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일, 이, 삼 층은 물론이고 사 층에도 손님이 가득 찼다. 그 때문에 연화루에도 비상이 걸렸다.
평소 대기 상태로 있던 기녀들까지 모조리 동원됐고, 악공이 모자라 다른 기루에서 빌려 와야 했다.
주방에서는 쉴 새 없이 안주를 만들었고, 방에서는 기녀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분위기는 고조되었고, 악공들이 연주하는 음악 소리가 연화루 곳곳에서 울려 퍼졌다.
“오늘도 손님으로 가득 찼습니다.”
기예화는 자신의 거처에서 중년의 기녀에게 보고를 받고 있었다.
중년 기녀의 얼굴엔 주름살이 거의 없었다. 지금이야 노류장화 취급을 받고 있지만, 젊었을 적에 도강언에서 그녀를 모르는 남자는 존재하지 않을 정도로 유명했었다.
나이가 든 지금은 일선에서 물러나 연화루를 관리했다.
단순히 나이가 들었기에 연화루를 관리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만큼 심기가 깊고 눈치도 빠른 데다 뭇 기녀들의 신망도 두터웠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기예화가 물었다.
“이상한 점은 없나요? 근래 손님이 갑자기 는 것 같은데?”
“확실히 그런 면은 없지 않지만, 그래도 특별히 이상한 점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다행이긴 한데…….”
기예화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마음에 걸리는 것이라도 있습니까?”
“그게…….”
기예화가 말끝을 흐리며 장부를 봤다.
장부에는 연화루에서 한 달 사이 일어난 매출이 적혀 있었다. 기예화가 주목한 것은 최근 닷새 사이에 일어난 매출이었다.
닷새 사이 일어난 매출이 한 달 평균 매출을 월등히 웃돌고 있었다. 이런 경우는 결코 흔한 일이 아니었다.
“최근에 도강언에 호재가 있던가요?”
“없습니다.”
“그럼 손님들이 도강언에 들어올 만한 일은요?”
“글쎄요!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닷새간 매출이 배로 늘었단 말인가요?”
“본래 장사라는 것이 의외가 많은 법 아닙니까? 웃음 장사를 하다 보면 가끔 이런 일들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그럼 다행이긴 한데…….”
“별일이야 있겠습니까?”
중년의 기녀 매월이 곱게 미소를 지었다.
넉넉한 그녀의 미소에도 기예화는 굳은 표정을 풀지 않았다.
“아무래도 안 되겠어요. 지금 당장 삼 층과 사 층에 있는 동기(童妓)들을 불러오세요.”
“그들을 왜? 알겠습니다.”
매월이 반문하려다 말고 급히 대답했다.
기예화는 하오문의 부문주였다. 일개 루주에 불과한 매월과는 엄청난 격차가 있었다.
매월은 급히 삼 층과 사 층에 대기하고 있던 동기들을 불러왔다.
동기들은 어린 기녀를 뜻했다. 아직 머리를 올리지 않아 정식으로 손님을 모시는지는 못하지만, 대신 각방에 드나들면서 눈치껏 분위기를 띄우고 빠지는 일을 맡았다.
기예화가 물었다.
“각 방에 이상한 점은 없느냐?”
“글쎄요!”
동기들이 영문을 몰라 서로의 얼굴을 바라봤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그들이 입을 모아 말했다.
“별 이상한 점은 없습니다.”
“저…….”
그때 제일 조그만 동기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기예화의 시선이 그녀를 향했다.
“왜 그러느냐?”
“저는 사 층을 담당하고 있는데…….”
“그런데?”
“사 층의 손님들이 조금 이상합니다.”
“무엇이 이상하더냐?”
“그게…… 손님들이 말이 별로 없습니다. 보통 기루에 오는 분들이라면 어딘지 모르게 풀어지기 마련인데, 그분들은 별로 말이 없습니다.”
동기가 조심스럽게 자신의 느낌을 말했다.
“자세히 말해 보거라.”
“보통 사 층에 오른 손님들이라면 이야기가 많기 마련입니다. 아무래도 자랑할 것이 많고, 자신이 이룬 성공 때문에 과시하고 싶은 욕구가 강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 사 층에 든 손님들은 그런 것이 전혀 없고, 술도 거의 입에 대지 않고 있습니다.”
“정말이냐?”
“그렇습니다. 제가 확인한 사실입니다.”
동기의 말에 다른 동기들이 그제야 깨달았다는 듯이 하나 둘 손을 들고 말했다.
“제가 맡고 있는 삼 층에도 그런 손님이 있사옵니다.”
“어, 저도 봤어요.”
그제야 매월의 표정이 굳었다. 그녀 역시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감을 느낀 것이다.
매월의 시선이 기예화를 향했다.
“부문주님 이건?”
하지만 기예화는 그녀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고 동기에게 물었다.
“그들의 복장이나 모습이 어떤지 설명해 보거라. 구별하기 쉬운 특징이라도 있느냐?”
“그게 이상합니다. 이곳, 특히 사 층에 오실 손님이라면 응당 의복이 화려해야 하건만 그런 것이 전혀 없습니다. 평범한 복장에 얼굴 또한 평범합니다. 전혀 특색이 없는 것이 특징이라고 해야 할 게…….”
“어, 삼 층에 모신 손님들도 마찬가집니다. 그분들도 워낙 특징이 없이 무미건조합니다.”
기예화와 매월이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가장 거칠고 험한 화류계에서 평생을 보낸 두 사람이었다. 이쯤 되었는데도 이상함을 눈치채지 못하는 것이 더 이상했다.
“부문주님?”
“본문과 연관된 자료들을 모조리 소각하세요. 하나라도 증거가 남아 있으면 안 돼요.”
“알겠습니다.”
매월이 대답과 함께 급히 물러났다. 동기들이 그녀의 뒤를 따라나갔다.
혼자 남은 매월의 표정이 더할 수 없이 경직되었다.
단순히 동기의 말 때문이 아니었다. 그녀의 육감이 경고를 하고 있었다.
‘어느 곳이지? 무림맹? 마교?’
정보를 다루는 하오문의 특성상 노리고 있는 적은 수없이 많았다. 가장 최근에 하오문의 정보력을 탐한 곳은 바로 남궁창이 이끄는 무림맹의 암운이었다.
협상이 결렬된 이후에도 남궁창은 끝없이 하오문을 탐했고, 그 때문에 한동안 하오문은 활동을 멈추고 음지에 숨어 있어야 했다.
‘무림맹? 아니야. 그들은 사천성에 그 어떤 접점도 없어. 그렇다면 마교?’
기예화의 미간에 깊은 골이 패였다.
그렇게 용의 선상을 줄였지만 무언가 석연치 않았다.
‘마교가 굳이 하오문을 경계할 이유가 있나?’
기예화가 그렇게 한참 고심하고 있을 때였다.
“부……문주님.”
갑자기 밖에서 동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불안하게 떨리는 동기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기예화는 전신의 피가 싸늘히 식는 것을 느꼈다.
“무슨 일이냐?”
“사 층의 손님 중 한 분이 부문주님을 뵙길 원합니다.”
“손님이?”
“예! 어……떻게 할까요?”
동기의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에 기예화가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말했다.
“안으로 모시거라.”
“예!”
동기의 대답과 함께 문이 열렸다. 그러자 문밖에 서 있던 동기와 그 곁에 서 있는 문사의 모습이 보였다.
별다른 특색이 없는 평범한 모습의 문사였다. 그는 거리를 하루 정도 걷다 보면 몇 번이고 만날 법한 밋밋하면서도 특징 없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문이 열리자 문사가 동기와 함께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왔다. 마치 제집 안방을 들어오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
기예화가 잠시 어이없다는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아무리 그가 사 층 손님이라고 하더라도 이렇게 행동하는 것은 무례한 일이었다.
“누구신가요?”
“일단 자리에 앉지.”
“…….”
“그렇게 보면 고개가 아프지 않은가? 일단 앉게나.”
툭툭!
문사가 동기의 어깨를 살짝 두들겼다. 마치 친딸의 용기를 북돋아 주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의 손바닥이 닿을 때마다 동기는 무척이나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결국 기예화가 그에게 말했다.
“앉으세요.”
“고맙네!”
두 사람이 서로를 마주 본 채 자리에 앉았다.
기예화가 동기에게 말했다.
“너는 나가서 루주님에게 이 방으로 주안상을 올리라 이르거라. 귀한 손님이 오셨으니 특별히 신경을 쓰라 전하고.”
“예! 그리 전하겠습니다.”
동기가 대답과 함께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둘만 남게 되자 문사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미소를 싹 지었다. 미소가 지워지자 남은 것은 서릿발처럼 차가운 표정의 얼굴이었다.
그가 뜬금없이 말했다.
“어떻게 알았나?”
“무얼 말인가요?”
“흠! 그렇게 나올 텐가?”
“저는 대협께서 무슨 말씀을 하는지 모르겠군요.”
“지난 며칠 동안 조용히 감시한 수고가 물거품이 되었군. 이래서 똑똑한 아이들은 상대하기가 쉽지 않다니까. 차라리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게 숨을 확실하게 끊어 놓는 것이 나은데. 쯧!”
문사가 무심히 중얼거리며 혀를 찼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내용까지 허투루 넘길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의 목소리가 한층 더 낮아졌다.
“하오문 부문주 기예화.”
“그걸 어떻게?”
“역시 맞나 보군.”
기예화의 날선 반응에 문사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제야 기예화는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스스로 인정한 꼴이 되었기 때문이다.
“대협은 누군가요?”
“내가 누군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네. 자네가 하오문의 부문주라는 것이 더 중요하지.”
“그게 왜 중요하죠?”
“우리에겐 하오문의 눈과 귀가 필요하거든.”
순간 기예화는 강한 위기감을 느꼈다.
문사의 평범한 말투 속에 강한 자신감과 힘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나는 자네가 부디 현명한 선택을 했으면 좋겠네. 이 아름다운 기루가 자네의 잘못된 판단 때문에 없어진다면 도강언 사람들이 많이 슬퍼할 것이네.”
지금 문사는 연화루 전체를 걸고 기예화를 협박하고 있었다. 평소라면 기예화는 이런 협박 따위에 코웃음도 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정도의 협박은 무림맹의 남궁창에게서도 당해 봤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연화루 곳곳에 문사의 수하로 추정되는 자들이 포진되어 있었다. 그들의 손에서 아무런 피해도 없이 하오문도들을 구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기예화의 생각을 읽었는지 문사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는 부디 자네가 현명한 선택을 했으면 좋겠네. 자네도 잘 알다시피 사람의 목숨은 소중한 것이니까.”
“마교에서 나오셨나요?”
“그렇게 생각하나?”
“아닌가요?”
“마음대로 생각하게나.”
태연한 문사의 대답에 기예화의 표정이 더욱 굳었다.
‘마교는 아니야. 무림맹도 아니고. 그렇다면 제삼의 세력?’
비록 세상에는 마교라 불리지만 그들은 스스로를 신교라 칭한다. 때문에 마교라는 단어에 유독 민감하고, 불쾌하게 반응한다. 그것이 정상적인 반응이었다.
때문에 기예화는 눈앞의 문사가 마교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고 확신했다. 그리고 마찬가지 이유로 무림맹 소속도 아니라고 판단했다.
무림맹 무인들에겐 특유의 자부심이 엿보이는데, 문사에게서는 그 어떤 감흥도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때 문사의 귀에 시끄러운 소음이 들려왔다. 그것은 무척이나 미세한 소리였지만 문사의 귀에는 무척이나 선명하게 들렸다.
“쯧! 어리석은 판단을 했군. 대화도 하기 전에 도주라니.”
문사가 혀를 찼다.
그에 기예화의 얼굴이 더욱 굳게 경직됐다.
그녀가 동기에게 말한 ‘귀한 손님’과 ‘특별한 주안상’은 위험인물이 찾아왔으니 모두 대피하라는 암호였다. 그런데 문사는 상상을 초월하는 감각으로 연화루의 기녀들이 비상 통로를 통해 빠져나가는 소리를 감지한 것이다.
따악!
순간 문사가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그와 함께 연화루로 들어왔던 무인들이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아!”
“피해!
밖에서 기녀들의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문사가 기예화를 보며 말했다.
“순순히 따라오거라, 아이야. 그럼 다치지 않을 게다.”
“흥!”
순간 기예화가 코웃음을 치며 탁자 아래 있던 단추를 눌렀다. 그러자 천장에서 은색 가루가 떨어져 문사를 덮쳤다.
“독?”
문사의 안색이 싹 변했다.
순간 그의 몸 주위에 강렬한 열기가 일어나더니 독을 모조리 불태웠다.
독을 모조리 불태운 뒤 고개를 드니 기예화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그 잠깐 사이에 감쪽같이 모습을 감춘 것이다.
문사가 혀를 차며 몸을 일으켰다.
“이런 깜찍한 년 같으니라구. 감히 도주할 수 있을 것 같으냐?”
그는 곧 기예화의 흔적을 추적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