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권마-290화 (290/500)

 290

290화 5장. 기연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찾아온다(3)

음유경과 기예화는 실로 오랜 시간에 걸쳐 수많은 정보를 교류했다.

한쪽은 마교의 성녀였고, 다른 한쪽은 중원에서 가장 방대한 정보를 소유하고 있는 하오문의 부문주였다.

음유경은 정보에 목말라 했고, 기예화에겐 마교 내의 정보가 절실했다. 그런 두 사람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기에 대화는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두 여인의 대화는 중원의 정세와 마교의 동향에 이어 천사교까지 이어졌다.

천사교는 여러모로 신비한 종교단체였다.

이름은 여러 가지 문헌을 통해 언급되지만 그 실체에 대해 아는 사람은 거의 전무하다시피 했다.

검율천을 비롯한 극히 소수의 무인들이 그들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었지만, 아직까지 무엇 하나 제대로 알아낸 것이 없을 정도였다.

“천사교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그들은 온갖 사술과 환술에 능해요. 심력이 약한 사람이라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들의 환술에 넘어갈 수 있으니 각별히 조심해야 해요. 기 소저도 저들의 표적이 된 것 같으니 방비를 단단히 해야 할 거예요.”

음유경의 신신당부에 기예화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목리(木里)는 무척 아름다운 곳이에요. 아마도 무릉도원이라는 곳이 정말 존재한다면 목리일 가능성이 가장 커요. 하지만 그곳까지 가는 길이 결코 쉽지는 않을 거예요.”

기예화에게서 목리가 실제 존재하는 지명이란 것을 알아낸 음유경은 담호와 함께 도강언을 떠났다.

길을 가는 내내 그녀의 표정은 어둡기 그지없었다.

‘그간 은밀히 활동하던 천사교가 대놓고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내부에서 변화가 있던 것인가? 그도 아니면 모습을 드러내도 될 만큼 충분한 힘을 쌓았다고 판단한 것인가?’

그 어느 쪽이든 그녀와 검율천에겐 그리 좋은 일은 아니었다.

“휴!”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던 음유경이 한숨을 내쉬었다.

머리가 터질 것처럼 아팠다.

결국 그녀는 생각하는 것을 멈추고 담호를 바라봤다.

담호는 도강언을 떠난 후 단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 흑귀에 몸을 맡긴 채 그 역시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음유경이 고민을 하듯 그 역시 많은 것을 생각하는 것이 분명했다.

‘그래도 다행인가? 그가 적대적이지 않아서.’

담호의 무력이 얼마나 가공한지는 그녀가 제일 잘 알고 있었다.

삼 년 전에도 엄청난 무력을 자랑했던 담호였다. 그런 그가 삼 년 동안 얼마나 발전했을지 쉽게 상상이 가지 않았다.

‘어쩌면 율천을 넘어섰을지도…….’

음유경이 급히 고개를 저었다. 말도 안 되는 상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 상상을 했다는 사실 자체가 검율천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다.

아침에 도강언을 떠났는데 어느새 저녁이 되었다. 해가 서산으로 넘어가고 있었기에 노숙을 할 수밖에 없었다.

두 사람이 능숙하게 노숙 준비를 하는 사이 해가 완전히 떨어지고 사위에 짙은 어둠이 찾아왔다.

삐이이!

그때 갑자기 밤하늘에 명적 소리가 날카롭게 울려 퍼졌다.

담호와 음유경의 시선이 동시에 하늘을 향했다.

퍼엉!

명적을 끼운 화살이 하늘 높은 곳에서 갑자기 폭발하며 화려한 불꽃을 피워냈다.

“저건?”

음유경이 급히 몸을 일으켰다.

불꽃은 금세 사라졌지만, 그녀의 망막에는 아직도 남아 있는 듯했다.

담호가 물었다.

“뭐지?”

“본교의 비상 신호예요.”

음유경의 안색이 돌덩이처럼 딱딱하게 굳었다.

***

“후욱! 후욱!”

신무월이 거친 숨을 토해 냈다.

옆구리를 잡고 있는 손에서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뜨겁게 달궈진 단검으로 지졌던 상처가 다시 터지고 만 것이다.

“제기랄!”

신무월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상처는 옆구리뿐만이 아니었다. 전신 곳곳에 자잘한 상처들이 수도 없이 생겨 있었다.

조무양이 이끄는 혈무대는 실로 지독했다.

그들도 인간일진대 목숨을 아끼지 않고 덤벼들었다. 마치 하루살이처럼 끝도 없이 덤벼드는 그들의 파상공세에 신무월은 수많은 상처를 입었다. 그 결과 이젠 체력이 다해 한 걸음도 옮기기 힘이 들었다.

혈무대는 숙련된 사냥꾼이었다. 그들은 어떻게 하면 절대고수를 효율적으로 사냥할 수 있을지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신무월을 끝없이 궁지에 몰아넣었다.

“이대로는 안 돼.”

신무월이 이를 악물었다.

이미 한계 이상으로 피를 흘려서 정신이 다 어질어질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제대로 싸워 보지도 못하고 쓰러질 공산이 컸다.

“죽든 살든 이곳에서 결판을 낸다.”

신무월이 주위를 둘러봤다.

마치 호리병처럼 매끄러운 절벽으로 둘러싸인 막다른 계곡이었다. 뒤는 거대한 폭포로 막혀 있었고, 절벽을 타고 올라가기도 여의치 않은 그런 지형이었다.

신무월은 폭포를 뒤로 하고 두 자루의 검을 꺼내들었다. 양손에 검을 나눠진 그의 모습은 비장하기 그지없었다.

삐이익!

그 순간 야공에 다시 날카로운 명적소리가 울려 퍼졌다. 뒤이어 터진 폭죽에 일순 주위가 대낮처럼 환하게 밝아졌다.

빛은 순식간에 사그라지고 이내 어둠이 찾아왔지만, 한 가지만은 분명했다.

‘코앞까지 쫓아왔다.’

혈무대와 추격전을 벌인 것이 벌써 여러 날이었다.

죽이기도 많이 죽였다. 그 정도면 두려움을 느껴야 할 법도 하건만 혈무대는 마치 감정이 없는 자들처럼 끝없이 신무월을 추적해 왔다.

피잉!

순간 어둠 속에서 파공음이 울려 퍼졌다.

“큿!”

신무월은 거의 본능적으로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그의 머리카락을 화살이 스치고 지나갔다.

피피피핑!

어둠 속에서 화살이 연이어 쏘아졌다. 신무월이 피할 방위까지 계산하고 쏘아진 화살이었다. 피할수록 오히려 궁지에 몰릴 수밖에 없게 되어 있었다.

‘당할쏘냐?’

신무월은 더 이상 피하지 않았다. 대신 양손에 들고 있는 검을 휘둘러 모든 공격을 막아 냈다.

불똥과 함께 날아오던 화살들이 검에 막혀 떨어졌다. 뒤이어 어둠 속에서 그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타오르는 불꽃처럼 시뻘건 붉은 무복을 입은 남자들은 바로 혈무대였다.

“후!”

신무월이 그들을 보며 나직이 한숨을 토해 냈다.

대충 보이는 것만 수십 명이 넘는다. 어둠 속에 얼마나 더 많은 혈무대가 숨어 있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그때 어둠 속에서 장년인이 걸어 나왔다. 눈이 찢어진 장년인의 눈은 어둠 속에서도 섬뜩한 빛을 발했다.

“드디어 만났군.”

“조무양!”

“쥐새끼 같은 놈!”

장년인은 혈무대주 조무양이었다.

신무월을 바라보는 조무양의 눈에는 살기가 그득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신무월에게 죽은 혈무대의 수가 거의 칠십 명이 넘었다. 그 대가로 신무월 역시 중상을 입었지만, 그렇다고 조무양의 화가 풀리는 것은 아니었다.

“네놈! 절대 쉽게 죽을 거라고 생각하지 말거라. 최대한 고통을 느끼게 해 주마.”

“웃기고 있네. 카악! 퉤!”

신무월이 바닥에 침을 뱉었다. 그의 침엔 붉은 피가 섞여 있었다. 그가 중상을 입었다는 증거였다.

조무양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언제까지 그렇게 기고만장할 수 있는지 두고 보마.”

“흥!”

“공격해!”

혈무대가 움직였다.

쉬아악!

그들의 검이 어둠을 가르고 날아왔다. 신무월이 이를 악물며 검을 휘둘렀다.

카카캉!

검과 검이 격돌하며 불꽃이 튀었다.

“챠앗!”

신무월이 기합과 함께 손에 들고 있던 검을 던졌다. 예의 비검술이었다.

두 자루의 검이 무서운 속도로 회전을 하며 혈무대를 덮쳐 갔다. 잠시나마 혈무대의 시선이 두 자루 검에 빼앗겼다.

신무월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혈무대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의 손엔 어느새 다시 두 자루의 검이 들려 있었다. 공작검갑에서 빼 든 것이다.

쉬가악!

“컥!”

“케엑!”

어둠이 갈라지고 피가 튀었다.

신무월의 검은 혈무대 무인들의 가슴과 목을 꿰뚫었다. 혈무대가 죽어 가면서 신무월의 검을 양손으로 움켜잡았다.

“흐흐!”

“잡았다.”

죽어 가는 이들이 놀라운 힘으로 신무월의 검을 잡았다. 숨이 끊어지는 그 순간까지도 신무월의 검을 봉인하는 것이 그들의 임무였고, 훌륭히 수행했다.

무기를 잃은 신무월이 무얼 할 수 있을까? 그들은 그렇게 조롱하고 있었다.

“흥!”

그 순간 신무월이 콧방귀를 끼며 검을 놓고 뒤로 물러섰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다른 혈무대가 달려왔다. 마치 아귀처럼 앞뒤 가리지 않고 달려드는 그들의 모습은 충분히 공포스러웠다.

“놈은 무기가 없다.”

“기회다.”

무인에게 무기가 없다는 것은 치명적인 약점이었다.

그렇게 그들이 마치 먹이를 노리는 들개처럼 달려들 때였다.

착!

갑자기 신무월의 양손에 마법처럼 두 자루의 검이 나타났다. 달려들던 혈무대 무인들의 얼굴에 혼란스러운 표정이 그대로 나타났다. 그들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신무월의 얼굴에 차가운 빛이 떠올랐다. 그의 손에 들린 검은 조금 전에 비검술로 날렸던 검이었다. 허공을 크게 돈 검이 그의 손으로 다시 돌아온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철저히 그의 계산 하에 이뤄진 일이었다.

쉬가악!

신무월이 양손의 검을 연이어 휘둘렀다.

순식간에 달려들던 혈무대 무인들을 처단한 그가 다시 두 자루의 검을 공작검갑에 꽂았다. 그런 후 방금 전 죽은 이들의 가슴과 목에 꽂혀 있던 검을 뽑아 들었다. 숨이 끊어졌기에 이번에는 어떤 저항도 없이 회수됐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단번에 십여 명이 넘는 무인들이 죽었으면 기가 질릴 만도 하건만 혈무대는 그런 기색 하나 없이 미친개처럼 달려들었다. 그런 그들의 광기는 오히려 신무월을 질리게 만들기 충분했다.

거칠게 호흡을 하던 신무월의 안색이 갑자기 시커멓게 변했다.

“흡!”

그의 눈동자가 부릅떠지고, 검을 잡은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온몸에 굵은 힘줄이 돋아나고, 근육이 경직되었다.

“커헉!”

신무월이 갑자기 검붉은 피를 토해 냈다.

조무양이 그런 신무월을 보며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잡았다.”

“어떻게?”

신무월의 얼굴에 불신의 빛이 떠올랐다.

순식간에 기도가 부풀어 오르고, 전신의 피가 통하지 않는다. 두 눈이 충혈되어 잘 보이지 않고, 귀에 이명이 일어 정신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전형적인 중독 증상이었다.

신무월로서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혹시 몰라 호흡을 멈추고 내공으로 코와 귀 등을 보호했다. 독에 중독될 여지를 완전히 차단했던 것이다. 그런데도 중독이 되었으니 그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조무양이 미소를 지으며 턱으로 쓰러져 있는 혈무대의 무인들을 가리켰다.

“그들의 피엔 독이 함유되어 있다. 지독한 극독이. 이를테면 그들은 독인인 셈이지.”

“말도 안 되는…….”

신무월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비록 독공을 익힌 것은 아니지만 그는 수많은 독에 면역력을 가지고 있었다. 천독불침(千毒不侵)은 되지 않지만 그래도 백여 가지 독 정도는 내공을 한 번 운용하는 것만으로 태워 버릴 수 있는 것이다. 그런 그가 이렇게 손쉽게 중독이 되다니. 그의 상식으로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크으!”

신무월이 비칠거리면서 물러났다. 그는 필사적으로 내공을 운용해 독을 몰아내려 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독은 오히려 지독하게 전신에 퍼져나갔다.

챙그랑!

결국 신무월은 검을 놓친 채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스릉!

조무양이 검을 꺼내 신무월을 겨냥했다. 그런 그의 얼굴에 처음으로 득의양양한 표정이 떠올랐다.

“본교의 골칫덩이를 이렇게 내손으로 잡다니 영광이군.”

“크윽!”

신무월이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핏속에서 지독한 독향이 느껴졌다.

무공으로 천하를 오시하던 그였지만 이름 모를 독에 중독된지라 전혀 힘을 발휘할 수 없었다.

‘어쩔 수 없나?’

그토록 원치 않던 최악의 순간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그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한 가지뿐이었다.

자결.

독기 때문에 내공 대부분이 흩어졌지만, 그래도 역으로 운용하는 것은 가능하다. 그럴 경우 심맥이 터지거나 끊어져 즉사를 한다.

‘제길!’

죽음은 두렵지 않았다. 하지만 그로 인해 곤경에 처한 검율천을 구할 수 없다는 사실이 그를 절망케 했다.

신무월이 그렇게 자결을 하려는 순간이었다.

“안 돼!”

뾰족한 교성이 밤하늘에 울려 퍼졌다.

쉬가악!

뒤이어 날카로운 소성이 공기를 가르더니 혈무대의 무인들이 쓰러졌다.

“뭐냐?”

조무양이 놀라 뒤를 돌아봤다.

눈부시게 하얀 그림자가 어둠 속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서, 성녀?”

조무양의 눈이 크게 떠졌다.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