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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권마-291화 (29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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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1화 6장. 만날 사람은 만나게 되어 있다(1)

음유경의 검이 허공을 가를 때마다 혈무대의 무인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그 순간 신무월이 소리쳤다.

“놈들의 피를 조심해요. 극독으로 이뤄져 있으니까.”

그의 외침에 음유경이 경각심을 갖고 표정을 굳혔다.

명적 소리가 그녀를 이곳까지 인도했다.

신무월의 처참한 모습이 그녀의 살심을 북돋았다. 평소 실없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신무월은 그녀가 믿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음유경은 내공을 끌어 올려 반탄강기를 펼쳤다. 적들이 뿌리는 피가 그녀의 반탄강기에 부딪쳤다가 소멸됐다.

“크윽!”

조무양의 얼굴이 보기 싫게 일그러졌다.

성녀 음유경.

척살령이 내려진 대상이었다. 하지만 쉽게 볼 수 없는 존재이기도 했다. 성녀답게 그녀의 무공은 무척이나 고강했다.

제아무리 조무양이라 할지라도 승부를 예측하기 힘든 상대였다.

‘어쩔 수 없군.’

조무양은 지금이 물러설 때라고 생각했다.

“그 전에…….”

그의 시선이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신무월을 향했다. 완전 무방비 상태였다.

쐐애액!

조무양의 검이 신무월을 향해 날아왔다.

신무월은 힘없이 앉아서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봤다. 지금 그는 손가락 하나 까닥할 힘이 없었다.

‘최후인가?’

이상하게 검이 날아오는 모습이 생생하게 보였다.

콰쾅!

그 순간 사람의 형상을 한 검은 그림자가 내리꽂혔다.

신무월은 사람이 수수깡처럼 부서져 나갈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검을 내지르던 조무양의 팔이 기형적으로 꺾이고, 허리가 새우처럼 꺾였다. 뒤이어 벽력탄이라도 터진 것처럼 등이 터져 나가고, 두 다리가 부러져 뼈가 툭 튀어나왔다.

“크아악!”

쾅!

비명을 내지르던 조무양의 얼굴에 커다란 주먹이 작렬했다.

조무양의 비명이 툭 끊겼다. 머리가 터져 나간 사람이 비명을 지를 수는 없는 법이니까.

“당신은?”

신무월이 멍하니 검은 그림자를 바라봤다.

보는 것만으로 사람의 심신을 얼어붙게 만드는 남자, 담호였다.

조무양이 마치 썩은 통나무처럼 담호의 발치에 무너져 내렸다.

“하……하!”

너무 허탈해서 오히려 어색한 웃음이 터져 나올 정도였다.

담호의 무심한 시선이 신무월을 향했다. 그는 엉망이 된 신무월을 보면서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모습에 오히려 더 안도감이 들었다.

“당신이 어떻게?”

“운공이나 해.”

“알겠습니다.”

담호의 싸늘한 대답에 신무월이 고개를 끄덕이며 운공에 들어갔다.

걱정은 하지 않았다. 담호도 무서운 고수였지만, 음유경의 실력도 만만치 않았다. 지금도 음유경은 무서운 기세로 혈무대의 무인들을 도륙하고 있었다.

신무월은 더 이상 걱정하지 않았다. 대신 몸에 침투한 독을 태워 버리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운공 했다.

그의 이마에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담호는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이내 음유경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어둠 속에서 음유경은 표표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녀가 검을 휘두를 때마다 어김없이 혈무대의 누군가 목숨을 잃었다. 그야말로 가공하다고 볼 수밖에 없는 검술이었다.

신무월의 처참한 모습에 음유경은 살기가 크게 동한 모습이었다. 평소라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손속이 잔혹했다.

“컥!”

“도, 도망가!”

마침내 몇 남지 않은 혈무대의 무인들이 도주를 택했지만, 음유경은 마지막 한 명까지 추적해 모조리 죽였다.

싸우는 내내 반탄강기를 펼치느라 엄청난 공력을 소모했기에 그녀의 안색은 창백했다. 그리고 회한의 빛이 가득했다.

혈무대 역시 그녀와 같은 마교도였다. 비록 처지가 달라 크게 살계를 열었지만 마음이 편할 리 없었다.

잠시 혈무대의 시신을 바라보던 음유경이 신무월이 운공을 하고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신무월이 운공을 하는 모습이 보였다. 이마에서 피어오르는 김은 더 진해져 있었고, 모공에서 악취가 가득한 액체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음유경이 자신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신무월의 모공에서 흘러나오는 액체에서 가공할 독기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백독불침인 사제가 중독되다니. 도대체 얼마나 지독한 극독이기에.”

물론 백독불침이라고 해서 모든 독에 면역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정도 경지에 오르면 어지간한 독 정도는 어느 정도 버틸 수 있기 마련이다. 그런 신무월이 중독될 정도라면 실로 지독한 독일 수밖에 없었다.

음유경은 멀찍이 떨어져서 신무월이 운공을 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이미 운공에 들어간 이상 그녀가 도울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저 무사히 운공을 끝내고 독기를 모조리 몰아내는 것을 기대하는 수밖에.

운공이 최고조에 달했는지 신무월의 몸이 덜덜 떨렸다. 아울러 그의 몸 전체가 자욱한 운무에 휩싸였다.

그의 몸에서 흘러나온 독기가 공기 중으로 퍼져 나가면서 일대의 나무와 풀이 누렇게 말라붙었다.

“아!”

그 모습에 음유경이 퍼득 생각난 것이 있어 혈무대의 시신을 바라봤다. 혈무대의 시신에서 흘러나온 피가 닿은 모든 것들이 누렇게 말라붙어 죽어 가고 있었다.

“독인? 도대체 무슨 독으로 이들을 키운 거지?”

마교의 역사가 벌써 수백 년이 넘었다. 그동안 수많은 무공과 술법, 괴공들이 생겨났다. 당연히 독을 이용해 힘을 키우는 독공도 만들어졌다.

독공을 이용해 내공을 키우는 법은 간단했다. 독을 복용하거나 흡수한 뒤 특수한 심법으로 자신의 것으로 소화하면 된다.

문제는 양자 간의 균형이 맞아야 한다는 것이다. 독기가 생각보다 강하거나, 심법이 독기를 소화할 정도로 훌륭하지 못하면 오히려 독공을 익힌 자가 죽거나 다친다.

때문에 마교 내에서도 독공을 익히는 자는 극소수에 불과했다. 이렇게 한 개 조직 전체가 독공을 익히는 경우는 없었다. 무엇보다 이렇게 많은 이들이 독공을 익힐 수 있는 독이 존재하지 않았다.

“도대체…….”

음유경은 피가 날 정도로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그녀가 마교 내에 있을 때만 하더라도 이런 일은 존재하지 않았기에 의혹은 더욱 커져만 갔다.

그때였다.

담호가 갑자기 한쪽 무릎을 꿇더니 바닥에 흐르는 혈무대의 피를 손가락으로 찍어 혀로 가져갔다.

“위험해요.”

뒤늦게 음유경이 그 사실을 알고 말렸지만 이미 담호는 피를 맛본 후였다.

피에 닿자마자 순식간에 혀가 얼얼해지며 독기가 몸으로 침투했다. 독기가 침투하자 암혼심공이 움직였다. 암혼심공으로 일어난 강력한 내기는 담호의 몸 안에 침투한 독기를 순식간에 태워 버렸다.

음유경이 물었다.

“도대체 왜 그러는 거예요?”

그녀는 담호의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담호는 굳이 대답해 줄 생각이 없는지 눈을 감은 채 가만히 있었다. 그 모습이 꼭 독의 맛을 음미하는 것 같아보였다.

잠시 후 그가 입을 열었다.

“똑같아!”

“뭐가 말인가요?”

“실혼인들이 썼던 독과.”

“그럼?”

설마 했던 가정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당문과 마교가 손을 잡았다.

어떤 이유에선지 모르지만 그들은 서로의 비전을 공유하며 암약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이었다.

음유경은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아직 운공 중인 신무월을 바라봤다.

그간 겪은 고초를 증명이라도 하듯이 그는 그야말로 엉망진창으로 망가져 있었다. 채 아물지 않은 상처에서는 고름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운공을 하는 신무월의 안색은 그리 좋지 않았다. 보통 이 정도 운공 했으면 독기를 어느 정도 몰아냈어야 했다. 하지만 그의 몸 안에 침투한 독기는 실로 가공해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신무월의 이마에는 굵은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고, 몸은 부들부들 떨렸다. 전신엔 실핏줄이 툭툭 불거져 나왔고, 얼굴은 새까맣게 변해 있었다.

“끄으!”

이쯤 되자 신무월도 필사적으로 운공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이를 악물고 독기와 싸웠다.

담호와 음유경은 그 모습을 말없이 바라봤다.

신무월의 싸움이었다. 두 사람이 그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휴우!”

음유경이 한숨을 내쉬면서도 주위를 경계했다. 혹시 있을지 모르는 기습에 대비하는 것이다.

분명 검율천과 함께 움직였던 신무월이었다. 그런 그가 목리에서 멀리 떨어진 이곳에서 혈무대에게 사냥을 당하고 있었다.

무언가 단단히 잘못된 것이 틀림없었다.

궁금한 것이 산더미처럼 많았지만, 지금으로서는 신무월이 깨어나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율천.’

그녀는 검율천을 떠올리며 경계를 했다.

신무월의 운공은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야 끝났다. 운공을 끝낸 신무월의 전신에서는 지독한 악취가 났다. 모공을 통해 몸 밖으로 배출된 독기가 풍기는 냄새였다.

“괜찮아?”

“아니요.”

음유경의 물음에 신무월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대답했다. 그런 그의 안색은 무척이나 초췌했다.

어쩔 수가 없었다. 그는 지금 독기를 완전히 몸 밖으로 배출한 것이 아니었다. 일부는 내공으로 감싼 채 체내 한쪽에 밀어둔 상태였다. 독을 완전히 몰아낼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음유경이 급히 물었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율천과 함께 있는 것이 아니었어?”

“그랬죠.”

“그런데 왜?”

“어쩔 수가 없어요. 대형에게 집중된 전력을 분산시키기 위해서는.”

“자세히 말해 봐.”

“단운향이 움직였어요.”

“설마…….”

“맞아요.”

“정말 그녀가 직접 움직였단 말이야?”

음유경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그런 음유경의 반응에도 신무월은 놀라지 않았다. 단운향라는 이름을 언급하는 순간부터 이미 그럴 거라 예상했기 때문이다.

담호는 말없이 음유경을 바라봤다. 평소 이성을 잃는 법이 없는 음유경이 이 정도로 격한 반응을 보이는 것 자체가 무척이나 이례적인 일이었다.

“괜찮아요? 사저.”

“그녀가 혼자 움직이지는 않았을 텐데.”

“…….”

“설마?”

무언가를 떠올린 음유경이 눈을 크게 떴다. 그러자 신무월이 착 가라앉은 음성으로 말했다.

“그 설마가 맞아요. 십병(十兵)이 동원됐어요.”

“아!”

음유경이 탄식을 터트렸다. 그런 그녀의 눈동자는 어느새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신무월이 그런 그녀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듯이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대형이 궁지에 몰린 거예요. 그들이 아니었다면 대형이 목리로 몸을 피할 이유가 없었죠.”

“하아!”

“괜찮아요? 사저.”

“괜……찮아.”

음유경이 힘겹게 대답했다. 하지만 대답만큼 편한 표정은 아니었다. 그녀의 손끝이 미묘하게 떨렸다.

신무월은 더 이상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음유경이 받았을 심적 충격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 역시 십병이 동원됐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마찬가지 반응을 보였으니까.

담호는 말없이 그런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의 감정은 마치 바닥이 없는 늪지에 빠진 것처럼 최악이었다. 기분과 함께 몸까지 나락으로 떨어지는 듯한 기분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두 사람이 감정을 수습한 것은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였다.

음유경이 담호를 보며 사과했다.

“죄송해요. 저희끼리만 떠들어서.”

“단운향이 누구지?”

담호의 물음에 음유경이 잠시 눈을 감았다.

마치 입안에 가시가 돋친 것 같아서 혀를 움직이는 것조차 힘이 들었다. 그런 그녀를 대신해 입을 연 이는 바로 신무월이었다.

“그녀는 신교의 전대 성……녀입니다.”

“성녀?”

“예! 그리고 한때 사저를 가르친 사부이기도 했어요.”

신무월의 설명에 음유경의 어깨가 파르르 떨렸다.

마교에서 성녀의 역할은 그야말로 절대적이었다.

교주가 무력을 담당한다면 성녀는 종교적인 측면을 담당한다. 마교의 많은 이들이 성녀를 믿고 의지하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교주와 성녀가 다스리는 영역은 확연히 달라서 서로를 존중해 주는 풍토가 강했다. 그렇게 수백 년을 내려오던 풍토가 깨진 것이 바로 전대 성녀인 단운향 때였다.

“사부…… 아니, 전대 성녀는 세속적인 욕망이 매우 강했어요. 그리고 한 남자를 사모했어요.”

“그가 교주라는 건가?”

“원래 교주와 성녀는 부부가 될 수 없어요. 그랬다가는 교의 규율이 무너지니까. 그래서 그녀는 성녀에서 물러났어요. 교주와 함께하기 위해. 그리고 스스로를 마모(魔母)라고 칭했어요.”

숨겨진 비사였다. 마교 내에서도 이 사실을 아는 자는 수뇌부의 몇 명뿐이었다. 대부분의 교인들은 단운향이 죽었기 때문에 음유경이 성녀가 된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원래 성녀를 교육시키는 것은 전대의 성녀다. 단운향은 음유경의 사부였고, 어미 같던 존재였다. 그런 단운향의 변절은 음유경에게도 큰 상처가 됐다.

평생 믿고 의지하던 어미가 다른 남자와 사랑에 빠져 자식을 버린 것이나 다름없었으니까.

그제야 음유경의 반응이 이해가 됐다. 하지만 아직 이해가 가지 않는 것도 있었다.

“십병은?”

“십……병은 우리의 친구예요. 아니, 친구였던 자들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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