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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권마-294화 (29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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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4화 7장. 십병(十兵). 망가진 병기……(1)

신무월이 이를 악물었다.

“미친 새끼!”

어렸을 때도 느낀 거지만 동화운은 미쳤다. 그것도 확실하게.

신무월이 어린 시절을 보낸 그곳은 지옥이나 마찬가지였다. 몰락한 마교의 부활을 위해서는 이제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키워진 강력한 무력이 필요했다.

마교는 거의 천여 명에 이르는 어린아이들을 천금마옥을 비롯한 몇몇 비밀 시설에 몰아넣고, 혹독한 담금질을 했다.

그들의 담금질은 세인의 상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가혹했다. 아직 증명되지 않은 각종 대법과 약물이 총동원됐다. 당연히 부작용이 속출했지만 마교에서는 개의치 않았다.

그들은 어린아이들을 극한으로 몰아붙였다. 매일같이 많은 아이들이 죽어 나갔다. 그래도 그들은 멈추지 않았다.

마교의 부흥이라는 명목 아래 아이들의 인권은 철저하게 유린되었고, 오직 강한 자만이 살아남아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다는 잘못된 가치관이 심어졌다.

신무월과 동화운도 그렇게 키워진 아이들 중 하나였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신무월이 검율천의 도움을 받아 심지를 굳건히 유지할 수 있었던 데 반해 동화운에겐 그런 행운이 주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강호 무림은 적이다.

신교에 반항하는 자들은 죽어 마땅하다.

어려서부터 그런 식의 세뇌를 받아 온 아이들의 인성은 점차 마모되어 갔다.

그 나이 또래의 아이들이라면 당연히 가져야 할 인간적인 감성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파괴 욕구가 자리 잡았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동화운이었다. 동화운은 방화를 통해서 자신의 욕망을 해소했다.

신무월은 솔직히 동화운이 오래 살아남지 못할 줄 알았다. 하지만 미친놈이 더 독한 것인지 동화운은 끝까지 살아남았고, 결국 십병의 일원이 되었다.

십병은 동화운처럼 어딘가 하나씩 고장 난 자들이었다.

신무월이 물었다.

“우리가 이곳으로 올 줄은 어떻게 안 거지?”

“바보 같군. 모르는 게 더 이상한 거 아냐? 사천성 전체에 우리 이목이 깔렸는데.”

동화운이 이죽거리며 품에 손을 넣었다. 잠시 후 다시 나온 그의 손 안에는 검은 쇠구슬이 들려 있었다.

작은 사탕만 한 크기의 쇠구슬은 검은색으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신무월은 한눈에 쇠구슬이 구천화혼탄임을 알아봤다.

동화운이 구천화혼탄을 허공에 던졌다가 받았다를 반복하며 담호를 바라봤다.

“당신이 권마군.”

“…….”

“이렇게 직접 보니 인상적이군. 그런데 당신 절름발이라며? 제대로 걸을 수는 있나?”

동화운이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오리처럼 뒤뚱거렸다. 담호를 놀리기 위해 과장된 표정과 행동을 하는 것이다.

그런 동화운의 도발에도 담호는 표정의 변화 하나 없었다. 그러자 동화운이 코끝을 찡그렸다.

“뭐야? 말도 못 하는 거야? 발 병신에 주둥아리 병신인가? 재미없게…….”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용건이나 말해라.”

보다 못한 신무월이 크게 소리쳤다.

“씨발! 깜짝이야. 놀랬잖아.”

“동화운!”

“하여간 재미없다니까. 뭐, 좋아! 용건을 말하지. 천악이 전하랬어. 뒈지기 싫으면 물러나라고. 그럼 가장 마지막에 죽여 준다고.”

“천……악이 살아 있었나?”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짓던 신무월의 얼굴이 무너졌다. 그것은 음유경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녀의 안색이 순식간에 창백하게 질려 갔다.

“정말 정천악이 살아 있나요?”

“왜, 죽은 줄 알았어? 그럴 리가 없잖아. 천악이 어떤 존재인데.”

“율천이 분명 죽였을 텐데. 내 눈으로 똑똑히 봤는데.”

“그럴 뻔했지. 하지만 결국 살아남았어. 흐흐! 그리고 십병의 수장이 되었지.”

“그럴 수가…….”

음유경의 눈동자가 격렬히 흔들렸다. 그 모습을 보면서 동화운이 웃었다.

“하하! 그 표정 좋네. 아주 좋아. 나는 예전부터 네년이 성녀라고 고고한 표정을 짓는 것이 정말 꼴 보기 싫었거든. 성녀는 무슨? 발정이 난 암캐 주제에 말이야.”

동화운이 독설을 내뱉었지만 음유경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그만큼 그녀가 받은 충격이 컸기 때문이다.

그녀와 신무월은 십병의 구성원을 정확히 알지 못했다. 자신들과 함께 키워졌던 아이들 중에서 살아남은 자들이 십병이 되었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그중에 정천악이 있을 줄은 정말 몰랐다.

정천악에 비하면 동화운의 광기는 어린아이 수준에 불과했다.

‘괴물.’

음유경이 생각하는 정천악의 모습이었다. 담호처럼 괴물 같은 것이 아니라 괴물 그 자체였다.

경직된 음유경의 얼굴을 본 동화운이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하하하! 볼만하군. 볼만해!”

그러다가 손가락을 한 번 튕겼다. 단순히 손가락을 튕긴 것 같지만 그 안에는 음공이 담겨 있었다.

퍼엉!

음공에 구천화혼탄이 반응하며 터졌다.

“으아악!”

동화운 근처에 서 있던 마을 주민 한 명이 순식간에 불길에 휩싸여 비명을 질렀다. 동화운은 그 모습을 보고 더욱 즐겁게 웃었다.

“으으!”

동화운의 주위에 있는 마을 사람들은 감히 움직이지 않았다. 그가 마을에 들어온 것은 불과 한 시진 전이었다.

그는 평화롭던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순식간에 서너 명의 장정들을 불태워 숯으로 만들었고, 그들의 가족을 인질로 잡았다. 그리고 구천화혼탄을 강제로 먹였다.

“너희들이 도망가면 나는 이 마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불태울 거야. 대신 너희들만 죽으면 가족들은 순순히 살려 주지. 어때?”

그들은 가족들을 지키기 위해 동화운의 곁에 설 수밖에 없었다. 지인들이 한 명씩 불에 타 죽을 때마다 끔찍한 심적 고통을 느끼면서도 도망갈 수 없었다.

그들의 가족은 마을에서 가장 큰 집 창고에 갇혀 있었다. 가족이 인질로 잡혀 있기에 도주할 수도 없었다.

동화운은 질식할 것만 같은 장내의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그런 그의 눈이 광기로 붉게 번들거리고 있었다.

신무월이 소리쳤다.

“미친 새끼! 네가 그러고도 사람이냐?”

“흐흐! 그게 뭐 대수야? 사람이면 어떻고, 아니면 또 어때?”

“뭐?”

“어차피 인간으로 키워지지도 않았잖아. 안 그래?”

“그렇다고 무고한 사람들을 네 멋대로 죽인단 말이야?”

“뭘 그렇게 열을 내? 너도 그랬었잖아. 이제 와서 아닌 척을 해?”

동화운이 피식 웃었다.

그에 신무월은 전신의 피가 싸늘히 식는 것을 느꼈다.

동화운은 흔들리는 신무월의 눈동자를 자세히 들여다보며 더욱 광기 어린 표정을 지었다.

“그거 알아? 너희들이 그 난장판을 만들고 나간 덕분에 남은 우리는 더 지독한 지옥을 겪어야 했다는 걸.”

“…….”

“매일같이 상상했어. 너희들의 뼈를 씹어 먹고, 생살을 뜯어먹는 것을. 흐흐!”

“철저하게 미쳤구나!”

“미치지 않고서 그 지옥에서 견딜 수 있었을까? 미쳐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데.”

광기 가득한 동화운의 모습에 신무월조차 기가 질리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 이 순간 동화운은 광기의 화신이었다.

신무월이 그를 향해 다가가려 하자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그러자 구천화혼탄을 복용한 마을 사람들이 병풍처럼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에 신무월은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었다.

“어떻게?”

음유경이 피가 날 정도로 입술을 깨물었다. 하지만 그녀는 고통조차 느끼지 못했다.

동화운이 음유경을 바라봤다.

“성녀라고? 발정난 암캐 같은 년.”

“화운.”

“네년의 사부가 우리에게 어떤 짓을 했는지 네년은 상상도 하지 못할 것이다. 물론 그 대가로 지금과 같은 힘을 얻었지만.”

“역시 사……부도 왔나 보군요.”

“똥 있는 곳에 개가 안 꼬일까?”

“아!”

음유경은 그만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그 모습을 보며 동화운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폭력이란 것이 꼭 주먹을 휘두르고, 무기로 상처를 입히는 것만은 아니다.

이렇게 세 치 혀로써 얼마든지 상대의 상처를 후벼 파고 고통을 줄 수 있었다. 그리고 동화운은 이런 방식도 꽤 좋아했다. 상대에게 고통을 주는 그 자체를 즐기는 것이다.

동화운의 광기에 그를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마을 사람들이 공포에 질려 눈물을 흘렸다.

그들은 동화운이 무서웠다. 하지만 도망갈 수 없었다. 그들의 배 속엔 구천화혼탄이라는 벽력탄이 들어 있었으니까.

그들이 도주하면 창고에 갇힌 그들의 식구가 모조리 죽는다. 동화운이 얼마나 잔인한지 알기에 그들은 그저 눈물만 흘릴 뿐이었다.

그들이 흘리는 눈물에서 죽음의 향기가 느껴졌다.

“후아!”

동화운은 공포의 냄새를 맡으며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그의 시선이 담호를 향했다.

“어이, 병신.”

“…….”

“듣자 하니 좀 싸운다며? 제법이야. 그 다리를 가지고 그 정도로 싸우다니. 성격이 지랄 같다던데 차라리 이쪽으로 오는 게 어때? 너 정도라면 우리 쪽에서도 제법 대우해 줄 수 있는데 말이야. 킥킥!”

담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쿵!

이제까지 침묵을 지키고 있던 담호가 동화운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담호의 두 눈은 지옥의 무저갱보다 더 깊이 가라앉아 있었다. 그 눈빛을 보는 순간 신무월과 음유경이 움찔했다.

달랐다.

지금까지도 담호는 무서웠지만, 지금의 담호는 정말 무서웠다. 그래서 감히 숨조차 쉴 수 없었다.

동화운도 그런 담호의 모습에 잠시 움찔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파안대소를 터트렸다.

“하하하! 뭐야? 덤비려고?”

“아니!”

“그럼 뭐 하자는 짓이지?”

“너를 죽이려고.”

“나를 죽인다고?”

“그래!”

“그 전에 이들이 먼저 죽을 텐데.”

동화운이 어깨를 으쓱하며 자신을 병풍처럼 둘러싼 마을 사람들을 바라봤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이 더욱 공포에 질려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담호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죽여!”

“뭐라고?”

“어차피 죽일 거잖아. 그러니까 죽이라고.”

“너?”

처음으로 동화운의 얼굴에 당황스러운 표정이 떠올랐다. 설마 담호가 이렇게 막무가내로 나올 줄 몰랐기 때문이다.

담호는 더 이상 동화운을 보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동화운의 인질이 된 마을 사람들을 바라봤다.

“내 능력으로는 당신들을 구해 줄 수 없어.”

“흐흑!”

“하지만 한 가지는 약속하지.”

마을 사람들이 눈물로 얼룩진 얼굴로 담호를 바라봤다.

“놈은 오늘 이곳에서 반드시 죽을 거야.”

“…….”

마을 사람들은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 순간에도 담호는 동화운에게 가까워지고 있었다.

여전히 다리를 절고 있는 모습이다. 하지만 동화운은 더 이상 담호를 비웃을 수 없었다.

담호의 시선은 여전히 마을 사람들을 향해 있었다. 마을 사람 중 한 명이 용기 내어 입을 열었다.

“그럼 놈이 우리 가족들을 불태워 죽이지 못하게 해 줄 수 있습니까?”

“약속하지.”

“정말입니까?”

“나는 단 한 번도 내가 한 말을 지키지 않은 적이 없어. 놈은 죽을 거야. 반드시! 오늘 이 자리에서.”

모두가 홀린 듯 담호를 바라봤다.

담호의 목소리엔 반드시 그렇게 될 거라는 힘과 믿음이 담겨 있었다.

그들은 죽음이 두려웠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동화운을 증오했다. 그 한 명 때문에 평화롭던 마을이 쑥대밭이 되었다.

“당신을 믿겠습니다.”

용기를 내서 말했던 남자가 입술을 힘껏 깨물었다. 그런 그의 눈에 결연한 빛이 떠올랐다.

그의 배 속에는 동화운이 강제로 먹인 구천화혼탄이 들어 있었다. 구천화혼탄을 복용한 순간부터 그는 삶을 포기했다. 문제는 어떻게 가치 있게 죽느냐였다.

덥썩!

남자가 갑자기 동화운을 껴안았다. 동화운이 당황해 소리쳤다.

“뭐야? 죽고 싶어?”

“그래! 죽고 싶다. 그래도 혼자는 죽지 않겠다.”

남자가 동화운을 껴안은 양손에 힘을 주었다. 그 모습을 본 마을 사람들이 용기를 내서 동화운을 덮쳤다.

“나도 네놈과 죽겠다. 원수!”

“네가 죽인 저 아이는 내 동생이다. 개새끼야!”

인질이 되었던 마을 사람들이 동화운을 덮쳤다.

“이 찌끄러기들이 감히!”

분노한 동화운이 손가락을 튕겼다.

화르르!

순간 그를 덮은 마을 사람들의 배 속에서 구천화혼탄이 터지면서 지옥화가 붙었다. 시뻘건 불길은 순식간에 마을 사람들을 휘감았다.

불꽃이 성대마저 잠식하며 목소리조차 나오지 않았다. 세상에서 제일 고통스러운 죽음이 불에 타 죽는 것이다. 그런데 마을 사람들은 고통을 무시한 채 담호를 바라봤다.

‘내 가족을 부탁합니다.’

‘부디…….’

그들의 시선 하나하나가 담호의 가슴에 박혔다.

“그리 오래 기다리게 하지 않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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