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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권마-295화 (29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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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5화 7장. 십병(十兵). 망가진 병기……(2)

동화운은 호신강기를 끌어 올려 전신을 보호했다.

지옥화가 무섭다고 하지만, 자신이 만든 것이었다. 그에 대한 대비책이 없을 리 없었다.

“썩을 것들이…….”

지옥화에 불타면서도 마을 사람들은 악착같이 동화운의 몸을 잡았다. 하지만 이내 그들의 몸은 재가 되어 사라져 갔다.

동화운이 불길 속을 빠져나오며 중얼거렸다.

“어림없다. 내가 너희 같은 벌레들의 손에 죽을 것 같으냐?”

쿠우우!

그때였다. 갑자기 엄청난 기파가 그에게 밀려왔다.

동화운이 놀라 고개를 퍼뜩 드는 순간 검은 그림자가 그를 덮쳤다. 담호였다.

콰앙!

“컥!”

동화운이 외마디 비명과 함께 튕겨 나갔다. 파성추를 가슴에 허용한 것이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즉사했을 것이다. 하지만 동화운은 상처를 입었을지언정 숨이 끊어지지 않았다.

지이잉!

어느새 그의 손에 동발이 들려 있었다. 위기의 순간 동발을 꺼내 담호의 주먹을 막은 것이다.

동발이 비명처럼 울음을 토하고 있었다. 표면에는 실금이 거미줄처럼 번져 있었다.

“감히! 절름발이가…….”

분노한 동화운이 공력을 끌어 올리며 동발을 날렸다.

위잉!

동발이 무섭게 회전하며 담호를 향해 날아왔다. 마치 톱날이 돌아가는 듯한 소리가 허공에 울려 퍼졌다.

한 쌍의 동발이 각기 다른 궤적을 그리며 날아왔다.

기아앙!

공기를 찢어발기며 날아오는 동발에도 담호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

“뒈져랏! 절름발이 새끼야.”

동화운의 목소리가 소음처럼 담호의 귓전을 파고들었다.

담호가 동화운을 향해 몸을 날렸다.

점과 점을 잇는 충보가 또 한 번 펼쳐졌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그 사이를 동발이 선점하고 있다는 것이다.

동발 하나가 전면에서, 또 다른 하나가 등 뒤에서 담호의 목을 노렸다.

담호는 몸을 움츠린 채 전방에서 날아오는 동발을 향해 파성추를 날렸다.

쩌어엉!

그렇지 않아도 실금이 가득했던 동발이 산산이 부서져 파편이 사방으로 흩날렸다. 하지만 동화운은 동발이 아깝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사이 다른 동발이 담호의 등에 직격했기 때문이다.

티잉!

하지만 이어 들려온 소리는 동화운의 기대를 철저히 배신했다. 담호의 등에 직격한 동발이 미세한 쇳소리와 함께 사선으로 빗겨 나간 것이다.

금구자(金龟子).

담호가 천금마옥에서 풍뎅이의 둥그런 몸체를 보고 만들어 낸 방호기공이 펼쳐졌다.

독행류 초창기에 만들어 낸 무공이었기에 효율성이 떨어진다 판단했다. 그 때문에 방패와 폭마경을 만들어 낸 후엔 펼친 적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어떤 방호기공보다 훌륭하게 동발로부터 담호의 몸을 보호했다.

그동안 담호가 깨달은 것이 있다면 초식의 극강함 따위가 중요한 것이 아니란 것이다. 대단치 않은 위력의 초식이라도 상황에 맞게 사용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효율적인 위력을 낼 수 있다.

독행류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이제 겨우 십여 년을 넘겼을 뿐이다. 그만큼 초식도 많지 않다. 하지만 조합하기에 따라 얼마든지 새로운 초식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상황에 따라 능동적으로 변화하는 살아 있는 권, 그것이 담호의 독행류였다.

“병신이…….”

믿을 수 없는 광경에 동화운이 욕설을 내뱉으며 급히 공력을 끌어 올렸다.

쾅!

그 순간 담호의 파성추가 그의 몸에 작렬하며 크게 들썩였다.

“으득!”

동화운이 입술을 질겅 깨물었다.

급히 호신강기를 끌어 올렸음에도 막대한 충격이 전신을 관통했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이쯤에서 무력화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십병이었다.

열 개의 인간 병기 중 하나. 비록 인성은 바닥을 기지만 그 실력만큼은 진짜였다.

그가 양팔을 활짝 펼치며 소리쳤다.

“청룡무상강기(靑龍無上罡氣).”

쿠우우!

순간 그의 몸을 휘감은 호신강기가 푸른 용처럼 꿈틀거리며 일어나 담호를 공격했다.

엄청난 기세에 담호의 머리와 피풍의가 흩날렸다.

거대한 입을 벌리며 다가오는 푸른 용의 모습에 음유경과 신무월이 급히 소리쳤다.

“피해요.”

“강기공은 맨몸으로 당할 수 없어. 얼른 피해.”

하지만 담호는 그들의 외침을 무시했다.

팟!

다시 한 번 충보가 펼쳐졌다. 그런데 일반적인 충보가 아니었다.

더 빠르고, 더 강렬했다.

동화운의 눈이 크게 치떠졌다.

마치 유성이 자신을 불태우면서 떨어지는 것처럼 담호가 펼친 충보는 맹렬하면서도 강렬했다.

화산에서의 삼 년은 담호에게 또 다른 변화를 가져왔다.

그중 가장 큰 변화는 바로 화산파의 무공을 마음껏 탐닉할 수 있었던 것이다.

장문인이었던 현천 진인이 죽었기에 금제도 사라졌다. 그래서 화산파의 무공을 독행류에 접목시킬 수 있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암향표(暗香飄)였다.

매화검수들만 익힐 수 있는 암향표는 매우 은밀한 보법이었다. 은은한 향기가 멀리 가듯 순식간에 상대에게 도달하는 암향표와 충보가 결합되자 더욱 빠르고, 강렬해졌다.

마치 유성이 불타오르듯.

쿠와앙!

유성이 푸른 용을 관통했다.

“크윽!”

답답한 신음성과 함께 동화운의 몸이 뒤로 튕겨 나갔다. 그런 그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머리는 산발이 되어 있었고, 입과 가슴은 선혈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옷은 갈가리 찢겨 있었고, 전신에는 크고 작은 상처가 가득했다.

동화운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의 얼굴에 어려 있던 광기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대신 그 자리에 떠오른 감정은 혼돈이었다.

그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믿을 수 없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절름발이인 담호에게 밀리고 있는 현실이.

담호는 이제 더 이상 충보를 펼치지 않았다. 그저 동화운을 향해 걸어가고 있을 뿐이다.

그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왼쪽 어깨가 조금씩 무너진다. 왼쪽 다리를 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현상이었다.

동화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담호가 발을 저는 모습이 꼭 자신을 놀리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가 소리쳤다.

“다리병신 따위가 감히 나를 놀려?”

“그래! 난 다리병신이야.”

“이익!”

“하지만 너처럼 머리가 병신이지는 않지.”

“내가 병신이라고? 감히 너 따위가 뭐라고 그따위 말을 지껄이는 거냐? 내가 어떤 지옥을 헤쳐 나온 줄 알고? 내가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알기나 하냔 말이다.”

“알 게 뭐야.”

“뭐?”

“알 게 뭐냐고?”

“…….”

살다 보면 누구나 고난을 겪게 된다.

고난의 경중은 있을지언정 힘든 것은 모두 똑같다. 누구나 마음속에서는 똑같은 지옥을 경험한다.

그런데 유독 자신이 겪은 경험이 제일 힘든 것처럼, 오직 자신만 지옥을 경험한 것처럼 떠드는 이들이 있다.

‘내가 얼마나 힘든 일을 겪은지 알아?’

‘내가 제일 힘들었다고.’

‘그러니까 너희들은 나의 아픔을 이해해야 해. 내가 어떤 짓을 하든 간에.’

그렇게 말도 안 되는 논리로 자신을 중무장한 채.

담호의 눈에 비친 동화운이 그랬다.

몸은 성인으로 성장한데 반해 그의 정신은 아직 어린아이 수준에 멈춰 있었다.

동화운이 몸을 푸들푸들 떨었다.

“뚫린 입이라고 함부로 놀리다니.”

그가 품에 손을 집어넣었다.

다시 모습을 드러낸 그의 손에는 구천화혼탄 십여 알이 들려 있었다.

“오늘 뼈도 남기지 않고 타 죽을 줄 알아라, 개새끼야!”

동화운이 담호를 향해 달려들었다.

쉬아악!

그가 연이어 구천화혼탄을 던졌다.

퍼엉!

담호의 코앞에서 구천화혼탄이 터지며 지옥화를 피워 올렸다. 뼈까지 태울 새하얀 불길이 순식간에 담호의 전신을 휘감았다.

“뒈져랏! 뼛조각 하나 남기지 말고 세상에서 사라지는 거다. 으하하!”

동화운이 연신 구천화혼탄을 집어 던지며 앙천광소를 터트렸다.

화르르!

화산이 폭발하는 것 같았다.

작렬하는 불꽃을 보며 동화운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불은 모든 것을 태운다.

거짓된 것, 부정한 것, 그를 괴롭힌 악몽까지도.

그래서 그는 불을 좋아했다. 격렬하게 타오르는 정화의 불꽃을.

동화운은 지옥화가 담호를 모조리 불태울 거라 생각했다.

그때였다.

슈우우!

갑자기 한 줄기 바람이 불어왔다.

“뭐, 뭐야?”

뜨거운 열기가 담긴 바람이 사방으로 휘몰아쳤다. 몸에 닿으면 절대 꺼지지 않는 지옥화였다.

동화운은 급히 호신강기를 끌어 올려 몸을 보호했다.

그 순간 강렬한 불꽃 속에서 커다란 주먹이 불쑥 튀어나왔다. 수많은 상처가 그물처럼 뒤덮인 주먹이었다.

쾅!

“크억!”

주먹은 동화운의 호신강기를 강타했다.

푸른색 호신강기가 마치 물결처럼 요동쳤다. 간신히 형체를 유지하긴 했지만 그 충격은 동화운의 전신을 고스란히 강타했다.

거미줄처럼 실금이 잔뜩 간 호신강기 너머 사내의 검은 모습이 보였다.

흩날리는 검은 머리칼, 펄럭이는 흑색 피풍의.

담호였다.

콰직!

이 격이 그의 호신강기를 강타했다. 실금이 더욱 번져 갔다.

출렁이는 호신강기 너머로 담호의 눈이 확대됐다.

감정이 없던 검은 눈동자에 살기가 어려 있었다.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동화운은 담호의 재수 없는 눈동자에 감정이 드러나게 하겠다고 다짐했었다. 하지만 감정을 드러낸 담호의 눈동자를 본 순간 그는 자신의 마음이 얼마나 치기 어린 것이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짐승?’

살기로 가득한 짐승이 유황 섞인 숨을 흘리고 있었다.

담호의 전신에서 지옥화가 타오르고 있었다. 아니, 그런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지옥화는 그의 몸을 휘돌 뿐 태우지는 못했다.

폭마경이 담호의 몸을 휘돌고 있기 때문이다. 지옥화는 폭강에 휩쓸려 겉돌고 있을 뿐이다.

쾅!

제삼 격이 동화운의 호신강기를 강타했다.

“아, 안 돼!”

동화운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려 갔다. 그는 어떻게든 담호의 손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쳤다. 하지만 마치 그물에 걸린 물고기처럼 꼼짝을 할 수 없었다. 담호의 몸에서 발산된 기이한 접인력(椄引力) 때문이었다.

콰콰쾅!

담호의 주먹이 폭풍이 되어 호신강기를 두들겼다.

쩌어엉!

한계에 달한 호신강기가 유리처럼 부서져 나가고, 그 속에 숨어 있던 동화운이 모습을 드러냈다.

담호가 손을 뻗어 동화운의 머리채를 잡았다.

“크윽!”

그제야 정신을 차린 동화운이 절초를 펼쳐 담호의 손에서 벗어나려 했다.

담호가 입을 열었다.

“지옥을 경험했다고?”

“이익!”

마치 철판을 손가락으로 긁듯 담호의 목소리가 동화운의 감정 기저를 긁었다. 그러자 드러난 것은 가슴속 밑바닥에 잠재해 있던 공포라는 이름의 감정이었다.

“진짜 지옥이란 건 겨우 그 정도가 아니야.”

쾅!

담호의 주먹이 동화운의 얼굴에 작렬했다.

강렬한 충격과 함께 동화운의 얼굴이 튕겨 나갔다. 그런 그의 왼쪽 뺨이 움푹 함몰되었다.

정신이 아득해지는 충격에도 동화운은 애써 이성을 찾으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다시 담호의 주먹이 복부에 처박혔다.

“우웩!”

동화운이 속에 있는 모든 것을 게워 냈다.

아찔한 노린내가 코끝을 파고들었다. 언젠가 한 번쯤은 맡은 냄새, 바로 자신과 동료들에게서 맡은 그 냄새였다.

그제야 동화운은 깨달았다.

‘이자 역시 나처럼 지옥을 기어 올라온 자.’

하지만 그의 깨달음은 너무 늦었다. 무력화된 그의 품을 담호가 뒤졌다. 잠시 후 모습을 드러낸 담호의 손에 쇠구슬 하나가 들려 있었다.

구천화혼탄이었다.

“너?”

동화운의 눈이 크게 떠진 그 순간 담호가 그의 입에 쇠구슬을 쑤셔 박았다.

“이런 게 진짜 지옥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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