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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6화 7장. 십병(十兵). 망가진 병기……(3)
“우읍!”
입안에서 느껴지는 이물감에 동화운이 격렬하게 고개를 저으며 뱉어 내려 했다. 하지만 담호의 억센 손길을 당해 낼 수는 없었다.
콰직!
담호의 주먹이 동화운의 턱에 작렬했다.
턱뼈가 송두리째 으스러지고, 이빨이 부서졌다. 그리고 쇠구슬이 식도를 타고 넘어갔다.
“끄으으!”
동화운이 피를 흘리며 전면을 바라봤다.
담호라는 이름의 검은 짐승이 사신처럼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림없어. 구천화혼탄은 내 음공 없이는 절대 터지지 않으니까. 흐으!”
동화운이 애써 웃었다.
선혈을 흘리며 웃는 그의 모습은 섬뜩하기 그지없었다.
자신이 구천화혼탄을 복용했다고 해도 터지지 않으면 그뿐이다. 담호로서는 자신의 체내에 있는 구천화혼탄을 터트릴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웃을 수 있었다. 그 정도의 독기가 그에겐 있었다.
동화운의 이마에 핏줄이 섰다. 붉게 충혈된 눈으로 그가 담호를 노려봤다.
“이제 어떻게 할 거냐?”
“확신해?”
“뭘 말이냐?”
“정말 안 터질 거라고?”
“그게 무슨?”
알 수 없는 불길함에 동화운이 눈을 크게 치떴다.
쩌억!
그 순간 담호의 주먹이 동화운의 복부에 작렬했다.
“크웩! 소용없…….”
화르르!
갑자기 동화운의 목구멍에서 불길이 치솟아 올랐다. 지옥화였다.
“으아악!”
동화운이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나뒹굴었다. 하지만 그의 비명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지옥화가 제일 먼저 성대를 불태웠기 때문이다.
지옥화에 휩싸인 채 동화운이 담호를 올려다봤다.
‘어떻게?’
온몸을 태우는 지옥 같은 고통 속에서도 그는 의뭉스러운 시선으로 담호를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이 음공을 펼친 것도 아니었는데 어떻게 구천화혼탄이 체내에서 폭발한 것인지 그는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대체 어떻게?’
하지만 의문도 잠시, 이내 고통 속에 몸부림을 쳤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이쯤에서 숨이 끊어졌을 것이다. 그가 이제까지 태워 죽인 마을 사람들처럼.
하지만 그는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 강기를 펼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내공의 소유자였다. 그렇게 강력한 내공이 지옥화 속에서 가까스로 그를 버티게 하고 있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더더욱 지옥의 고통을 맛봐야 했다. 생생한 정신 속에서 말이다.
“아아!”
“음!”
음유경과 신무월이 그 모습을 보며 침음성을 흘렸다.
동화운은 이해하지 못했지만, 객관적으로 사태를 지켜본 그들은 담호가 침투경의 일종을 사용했음을 알 수 있었다.
강렬한 침투경이 동화운의 체내에 있던 쇠구슬을 파괴하고, 지옥화를 일으킨 것이 분명했다.
동화운은 지옥의 고통 속에서 죽어 갔다. 두 사람은 차마 그 모습을 끝까지 바라보지 못했다. 하지만 담호는 죽어 가는 동화운의 모습에서 단 한순간도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의 얼굴이 동화운의 몸에서 일어난 불길로 붉게 물들었다. 그는 동화운이 한 줌의 재가 되고 나서야 음유경과 신무월을 바라봤다.
“십병이라고?”
“그래요.”
“이제 아홉 남았군.”
“…….”
“망가진 병기가…….”
담호의 말에 음유경과 신무월이 흠칫 몸을 떨었다. 그들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담호가 그들을 향해 걸어왔다. 숨이 느껴질 만큼 지척까지.
“뭘 두려워하는 거지?”
“그게…….”
“과거의 망령인가? 아니면 앞에 기다리고 있을 가시밭길인가?”
음유경과 신무월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담호가 동화운을 상대하는 내내 그들은 아무것도 한 것이 없었다.
동화운은 그들의 어릴 적 모습이었다. 분노로 가득 찼던, 그리고 자신들이 버렸던.
담호의 냉혹한 음성이 이어졌다.
“두려우면 돌아가.”
“나는…….”
“그게 무슨?”
두 사람이 발끈했다.
“이런 놈들이 아직 아홉 명이 더 남았어. 그런 정신으로 상대할 수 있겠나?”
“상대할 수 있어요.”
“그렇소!”
음유경과 신무월이 발작적으로 대답했다. 그런 그들의 눈에는 은은한 분노가 깃들어 있었다.
담호가 그들의 눈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만일 앞으로 또 이런 경우가 생기면 내가 먼저 당신들을 죽일 거야.”
“…….”
그의 살기는 진심이었다.
‘도대체?’
두 사람의 몸이 떨려 왔다. 내공을 끌어 올렸지만 몸이 쉽게 진정이 되지 않았다. 그만큼 담호의 살기는 무서웠다.
그제야 두 사람은 담호를 상대해야 했던 동화운의 공포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할 말을 한 담호가 뒤돌아섰다. 하지만 두 사람은 쉽게 움직일 수 없었다.
담호라는 이름이 태산처럼 그들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다.
***
“쿨럭!”
노인이 피를 토했다. 그러자 적지 않은 양의 피가 쏟아져 그의 가슴을 적셨다. 그러자 옆에 있던 남자가 급히 그를 부축했다.
그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괜찮습니까?”
“괜찮네.”
노인이 입가에 흐르는 피를 닦으며 말했다.
말로는 괜찮다고 했지만 그의 안색은 그리 밝지 않았다. 얼굴은 핏기 하나 없어 백짓장처럼 창백했고, 기력이 쇠해 연신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남자가 말했다.
“많이 지쳤습니다. 조금 쉬시죠.”
“그럴 시간이 없네.”
“시간은 만들면 됩니다. 지금 쉬지 않으면 오히려 늦어질 겁니다.”
노인이 남자를 바라봤다.
칠 척의 거구에 어울리지 않는 순박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순박한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면 사자처럼 위압감이 있는 눈과 굳게 다문 입술이 보였다.
“율천.”
“말씀하십시오, 풍월제 어르신.”
“알겠네. 자네 말대로 하겠네.”
“잘 생각하셨습니다.”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는 거구의 남자는 바로 검율천이었다. 그는 피를 토한 노인을 풍월제라 불렀다.
노인의 이름은 단공월이었다. 하지만 그 이름을 기억하는 이는 현 시대에 거의 없었다. 많은 이들이 그를 풍월제(風月帝)라는 별호로 불렀고, 그마저도 오랜 시간이 지나 기억하는 이가 극히 드물었다.
단공월은 제법 평평한 바위 위에 걸터앉았다.
“휴!”
단공월이 나직이 한숨을 내쉬다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평소 그는 절대로 한숨 따윈 쉬지 않던 사람이었다. 어떤 경우에도 절대 나약한 모습을 보인 적이 없던 그였다. 심지어는 생명이 경각에 달린 경우에도 말이다.
그런 자신이 한숨을 내쉰다는 사실 자체가 약해졌다는 증거였다. 그리고 실제로 그는 약해져 있었다.
단공월이 고개를 들어 검율천을 바라봤다.
자신과 달리 검율천은 여전히 굳건한 모습이었다. 그 어떤 시련이 닥쳐와도 헤쳐 나갈 수 있을 것 같은 흔들림 없는 모습과 굳은 심지, 그리고 그것을 가능케 하는 젊음의 패기. 단공월은 그런 검율천의 젊음이 부러웠다.
“왜 그러십니까?”
단공월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던지 검율천이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단공월이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닐세!”
“운공이라도 하십시오. 이렇게 쉬는 것도 마지막일 테니까요.”
“아닐세! 운공을 해 봐야 지금 나에겐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아.”
“하지만…….”
“내 몸은 내가 가장 잘 아네.”
“알……겠습니다.”
검율천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태어나기 이전부터 강호를 호령했던 대선배였다. 비록 늙고 상처를 입었지만 그 기개마저 사라진 것이 아니었기에 존중해야 했다.
단공월이 검율천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고맙네!”
“뭐가 말입니까?”
“자네 덕분에 이곳까지 올 수 있었어. 그래서 고맙네.”
“고마우실 것 없습니다. 누구라도 노야를 만났다면 당연히 그랬을 테니까요.”
“하지만 그 누구도 자네처럼 이곳까지 나를 데려올 수 없었을 걸세.”
검율천을 바라보는 단공월의 얼굴엔 신뢰가 가득했다. 그만큼 그는 검율천을 굳게 믿고 있었다.
이곳으로 오는 도중 십병의 습격을 받았다. 그들의 무공은 실로 막강했다. 단공월의 몸이 멀쩡했다고 할지라도 상대하는 게 쉽지 않을 정도로.
그런데 검율천은 부상을 입은 단공월을 데리고 포위망을 뚫고 이곳까지 왔다. 그 과정에서 백온우를 비롯한 몇몇 이들에게 심각한 상처까지 입혔다. 그야말로 인상적인 무위였다.
‘이 아이는 분명 강호의 절대자가 될 것이다.’
단공월은 그렇게 확신했다.
그가 문득 고개를 돌려 저 멀리 보이는 산을 바라봤다.
계절은 어느새 여름으로 넘어가는 길목에 접어들고 있었다. 그런데도 저 멀리 보이는 산의 꼭대기에는 새하얀 눈이 쌓여 있었다.
사시사철 눈에 녹지 않는 만년설이 쌓인 설산. 그곳이 단공월이 가고자 하는 최종 목적지였다.
검율천도 덩달아 설산을 바라봤다.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벌써부터 설산의 한기가 느껴지는 듯했다.
검율천이 처음 단공월을 만났을 때 그는 그야말로 만신창이였다. 회복하기 힘든 중상에 죽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
생판 처음 보는 남이었다. 마음만 먹었다면 얼마든지 외면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못한 것은 바로 단공월의 눈빛 때문이었다.
결코 죽어 가는 자의 눈빛이라고 볼 수 없는 간절한 염원과 집념이 보였다. 그래서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가지고 있던 영약을 복용시켜 약간이나마 회복시켰다. 그렇게 살린 이가 풍월제라는 사실은 뒤늦게 알게 되었다.
‘사신제(四神帝).’
이제는 잊혀진 전설이었다.
검율천조차도 단공월을 만나지 못했다면 떠올리지 못했을 만큼 오래전부터 전설로 존재했던 이들.
단공월은 그 전설의 일각이었다.
풍월제라는 별호로 불렸던 전설의 무인.
그는 바람이었고, 달이었다.
바람처럼 자유로웠고, 달처럼 세상 모든 곳을 은은히 비추는 그런 존재였다.
풍류를 사랑했고, 불의에 누구보다 분노했다. 그래서 모두에게 존경을 받았고, 받은 존경을 사랑으로 돌려줄 줄 아는 그런 존재였다.
풍월제라는 별호는 그런 단공월에게 강호인들이 바친 최대의 헌사였다.
단공월은 평생을 자유롭게 살았다. 풍월제라는 별호처럼 그렇게 바람처럼, 달빛처럼.
만일 정마대전이 발발하지 않았다면 평생을 그렇게 살다가 조용히 죽었을 것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마교와 강호 무림 간의 전쟁이 일어났고, 단공월의 바람은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결국 단공월은 마교와의 전쟁에 뛰어들었고, 혁혁한 위명을 세웠다. 그의 명성은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강호인 중 그를 존경하지 않는 사람들이 없을 정도가 되었다.
언제부턴가 그는 사신제의 일원이 되어 있었다.
혈광사신(血光死神) 호천산.
풍월제(風月帝) 단공월.
서왕모(西王母) 용화설.
철혈무신(鐵血武神) 이관.
마교와의 전쟁에서 가장 혁혁한 공을 세운 이들이었고, 당시 정파 무림을 통틀어 가장 강하다고 알려진 이들이었다.
그런 이들이 네 명이나 존재하다는 것이 강호 무림의 흥복이었다. 그들이 있었기에 강호 무림은 마교와의 전쟁에서 승기를 잡을 수 있었다.
강호 무림은 사신제를 주축으로 똘똘 뭉쳤고, 마교를 강호에서 몰아냈다. 그렇게 단공월은 강호의 진정한 전설이 되었다.
하지만 검율천 입장에서 보자면 단공월은 철천지원수였다.
비록 마교를 뛰쳐나와 독자적인 노선을 걷고 있다지만 그의 뿌리는 마교였다.
만일 사신제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단공월이 없었다면 검율천이 지금처럼 힘든 길을 걸을 이유가 없었을지도 몰랐다.
그런데도 그는 단공월과 함께했다. 단공월의 짧은 말이 그를 움직였기 때문이다.
―부디 진실을 밝히게 도와주게.
그 말이 검율천을 움직였다. 그래서 이곳까지 왔다. 수없이 많은 난관과 사선을 넘어서.
설산을 바라보는 검율천의 눈빛이 묵직하게 가라앉았다.
‘저곳에 진실이 있단 말이지?’
주먹에 절로 힘이 들어갈 때였다.
“자네…….”
단공월이 그를 불렀다.
검율천이 바라보자 단공월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자네 이야기를 듣고 싶군.”
“…….”
“이제까지 동행했으면서도 나는 자네를 모르는군. 자넨 어떤 사람인가?”
검율천이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의 머릿속으로 어린 시절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한참 후 그의 입이 열렸다.
“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