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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7화 8장. 진실을 찾는 길은 언제나 험하기 마련이다(1)
검율천의 아비는 마교의 하급 무사였다.
무공이 강하지도 않았고, 심지도 굳지 않았다. 지나칠 정도로 다른 사람들에게 친절한 호인일 뿐이었다. 그래도 한 가지만은 절대 남에게 뒤지지 않았다. 바로 마교를 향한 충성심이었다.
언제부턴가 마교라는 단어로 세상에서 배척을 받고 있었지만, 검율천의 아비에게 마교는 세상의 모든 것이었다. 그렇기에 누구보다 마교의 충성했고, 신앙심이 깊었다.
―아들아! 너는 언제나 신교에 충성을 다해야 하느니라.
그는 검율천에게 매일같이 똑같은 말을 하곤 했다. 귀에 딱지가 앉을 만큼 반복된 말에 싫증이 날 법도 했지만 검율천은 아비의 말이 싫지가 않았다.
아비가 그랬듯 검율천에게도 마교는 그의 모든 것이었다. 마교가 강호 무림과의 전쟁에서 패해 세상 오지로 떠돌 때도 마교를 향한 그의 사랑은 전혀 사그라들지 않았다.
고난은 사람들을 힘들게도 하지만 뭉치게도 만든다. 당시 마교의 무인들이 그랬다. 그들은 몰락한 마교를 부흥하기 위해 하나로 똘똘 뭉쳐 있었다.
검율천 역시 그랬다.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검율천은 마교를 위해 몸을 바칠 각오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누구보다 무공을 익히는 데 열심이었다.
그때는 모든 것이 즐거웠다. 비록 무공을 익히는 것은 고됐지만 그래도 마음만은 편한 시절이었다.
이제는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을 인생의 황금기.
검율천에겐 그 시절이 그렇게 느껴졌다.
문제는 검율천이 천금마옥에 들어간 후 시작됐다.
그곳은 마교 최후의 보루 중 하나였다. 마교의 중죄인들을 가두기 위해 만들어진 천금마옥은 천혜의 요새였다. 그렇기에 마교가 몰락한 이후 부활을 위한 거점으로 활용됐다.
문제는 천금마옥이 본래의 목적에서 벗어나 변질되었다는 것이다. 마교는 천금마옥에 기재들을 몰아넣었다. 그리고 그들을 무한 경쟁 체재로 밀어붙였다.
어제까지만 해도 같이 웃고 떠들던 동료들을 밟고 올라서야만 살 수 있는 극한의 생태계가 조성되었다.
동료를 죽이지 않으면 자신이 죽는다.
그 절대의 명제 앞에 기재들은 절망했다. 밖에서는 마교라 불린다지만 그들 역시 사람이었다. 동료들과 단순히 경쟁하는 것도 모자라 그들을 죽이고 살아남아야 한다는 사실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 당연했다.
처음엔 저항도 했다. 하지만 수뇌부는 실로 집요하게 기재들을 궁지에 몰아넣고, 결국 기재들도 하나둘씩 현실을 받아들이게 됐다.
동료를 죽여야만 자신이 살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싸우기 시작했다. 그때부터는 하루하루가 지옥이었다.
어제의 동료가 오늘의 적이 되었다. 누가 등 뒤에 칼을 박아 넣을지 몰랐기에 한시도 방심할 수 없었다.
무한 경쟁 속에 수많은 아이들이 죽어 갔다. 살아남은 아이들도 하나둘씩 미쳐 가기 시작했다.
인성이 마비되고,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없었다.
그들은 인세의 지옥을 경험하고 있었다.
그 한가운데 검율천도 있었다. 그도 하루하루 미쳐 갔다. 어제의 친구들을 죽이고, 악착같이 살아남았다. 그런 그에게 심마가 찾아온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몰랐다.
“그들을 만나지 못했다면 나 역시 그렇게 끝까지 괴물로 남았을 겁니다.”
“그들이라면?”
“유경, 무월, 명천……. 나와 함께 천금마옥에 떨어졌던 아이들, 그들이 있었기에 나는 한 가닥 인성을 붙잡고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허허! 천금마옥이라……. 마교도 정말 대단하군. 그곳을 그렇게 활용하다니. 그래서 어떻게 되었나?”
단공월이 궁금한 표정을 지었다.
“버텼습니다.”
“버텼다?”
“하루, 하루 버텼습니다. 악착같이…….”
검율천의 설명은 짧았지만 그 안에 담긴 각오와 결의가 단공월에게까지 고스란히 전해졌다.
‘이 아이도 만만치 않은 수라장을 헤쳐 나왔구나.’
단공월은 내심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사람의 얼굴과 눈에는 그 사람이 살아온 인생이 담겨 있었다. 단공월처럼 오래 살아온 이들일수록 타인의 얼굴에 담긴 인생을 더욱 잘 읽게 된다.
단공월이 본 검율천은 굳은 심지의 소유자였다. 그 어떤 고난과 역경에도 굴하지 않는 강한 마음이 그대로 얼굴에 드러났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버티다가 기연이 이어졌습니다.”
“기연?”
“사부의 무공을 얻었습니다.”
“당시 마교에 자네 정도의 무인을 키워 낼 무인이 남아 있었는가? 내 자랑은 아니지만 당시 나와 사신제는 마교의 절대고수라 할 만한 자들을 많이도 죽였다네.”
단공월의 얼굴에 의뭉스러운 빛이 떠올랐다.
당시 사신제는 정말 무자비했다. 마교의 절대고수라 할 만한 이들에게 단죄의 철퇴를 내렸다. 그런 상황에서 검율천과 같은 수준의 고수를 키워 낼 만한 무인이 있었는지 의문이었다.
“신교의 역사는 당신들이 아는 것보다 훨씬 더 오래되었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고수들이 존재합니다.”
“그런데 왜 그때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나?”
“세월이 흐르면서 신교를 떠난 이도 있고, 독자적인 유파를 형성한 이들도 있습니다. 이를테면 신교라는 거대한 뿌리를 토대로 제각기 다른 방향으로 가지가 자란 겁니다. 그들은 신교를 떠나 독자적으로 자리를 잡았지요.”
“으음!”
“십삼지파(十三支派), 신교에서 시작된 열세 개의 무파를 그렇게 부릅니다. 저에게 무공을 전수해 준 사부도 그중 한 곳을 잇고 있습니다.”
“열세 개나 되는 지파가 있단 말인가?”
“그렇습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열세 개나 되는 후환을 남겨 둔 셈이구나.”
단공월이 탄식을 터트렸다.
마교 십삼지파라니? 전혀 상상도 하지 못했던 단어였다.
‘마교의 역사가 천 년이나 된다더니 그 뿌리가 상상 이상으로 뻗어 있구나.’
그 순간에도 검율천의 말은 이어지고 있었다.
“열세 개의 지파는 때로는 서로를 견제했고, 또 때로는 협력하면서 균형을 유지했습니다.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평화를 주장하던 이들이 우위에 있었습니다만 최근에 들어서는 주전파의 목소리가 높아졌습니다.”
“강호인들의 총공세에 총단이 무너졌기 때문이겠지?”
“맞습니다. 총단이 무너진 것을 기점으로 잠잠하던 주전파의 목소리가 높아졌고, 그들이 신교의 재건에 나섰습니다.”
“으음!”
단공월은 할 말을 잃었다.
검율천의 말이 사실이라면 자신들이 오히려 마교의 숨은 저력을 이끌어 낸 꼴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자네의 사부도 십삼지파 중 하나란 말이지?”
“십삼지파 중 하나인 뇌정류(雷霆流)의 전대 계승자였습니다. 당시 사부는 후계자를 구하지 못한 채 죽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우연히 저를 만났습니다.”
뇌정류의 전대 계승자의 이름은 고원강이었다.
고원강이 검율천을 만났을 때 그는 거의 빈사상태였다. 적에게 당하거나 천수가 다해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뇌정류의 대표적인 절기인 뇌격술(雷擊術)은 그야말로 패도무쌍의 무공. 대성하지 못하면 오히려 체내를 파괴하고 만다. 그 때문에 뇌격술을 대성하지 못한 계승자들은 나이 오십이 넘기 전에 체내의 심맥이 갈가리 찢어져 숨이 끊어졌다.
고원강 역시 마찬가지 상황이었다. 그는 숨이 끊어지기 전에 후계자를 찾아 뇌격술을 전수하려 했다.
수많은 기재를 만났지만, 그중 뇌격술을 완성할 만한 기재는 보이지 않았다. 결국 그가 최후로 선택한 곳이 바로 천금마옥이었다.
신분을 숨기고 천금마옥으로 숨어든 고원강은 검율천을 만나게 된다.
“사부는 죽기 직전 자신의 원정과 심득을 나에게 넘겼습니다.”
검율천의 눈빛이 무겁게 일렁였다.
그가 받은 원정은 고원강의 목숨이었다. 원정을 넘김으로써 고원강은 목숨을 잃었고, 그 빚은 고스란히 검율천에게 이어졌다.
단공월이 물었다.
“자네는 마교의 십삼지파 중 하나인 뇌정류를 이었으면서 어찌하여 마교에 반한 행동을 하는 것인가?”
“배신의 길을 걷는 것이 아닙니다. 잘못된 것을 바로잡으려 하는 것일 뿐.”
“배신이 아니다? 마교의 교주를 습격한 나를 구한 것이 배신이 아니란 말인가?”
“그건…….”
검율천의 눈동자가 처음으로 흔들렸다.
강호에 알려지지 않은 비사였다.
단공월은 교주인 척관혈을 홀로 찾았다. 그리고 생사투를 벌여 교주에게 큰 상처를 입혔다. 그 대가로 그 역시 회생 불능의 상처를 입었지만.
척관혈이 중상을 입고 폐관에 들면서 마교는 대외적인 활동을 멈춰야 했다. 지난 삼 년 동안이나 마교의 활동이 잠잠했던 것에는 그와 같은 비사가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
그 후 단공월은 마교의 추적을 피해 다녔다. 하지만 마교의 추적은 실로 끈질겨서 도저히 그에게 회복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결국 단공월의 상처는 점차 악화되었고 회생 불가 판정을 받게 되었다.
검율천이 그런 단공월을 구한 것은 불과 한 달 전이었다. 마교의 추적을 받는 그를 우연히 발견하고 구한 것이다.
그런 검율천에게 단공월은 이곳까지 데려다 달라고 부탁했다.
‘목리의 설산에 모든 진실이 있네.’
검율천은 그런 단공월의 청을 거절할 수 없었다.
단공월의 표정이 조금은 누그러졌다.
“미안하네. 내 말이 심했네. 자네에게 사정을 묻고, 오히려 화를 내다니.”
“아닙니다.”
“자네 말이 맞네. 잘못된 것은 바로잡아야지. 나 역시 그 때문에 목숨을 건 주제에 자네를 타박하다니. 아무래도 내가 제정신이 아닌 것 같네.”
“노야!”
“설산에 도착하면 모든 진실이 밝혀질 걸세. 내 짐작이 사실인지, 아니면 정신 나간 늙은이의 착각인지.”
“…….”
“설산이 멀지 않았네. 부디 조금만 참아 주겠는가?”
검율천이 단공월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의 패력이 두 눈을 통해 분출되고 있었다. 보통 사람은 감히 마주할 수 없는 강렬한 눈빛을 단공월은 담담히 받아들이고 있었다.
검율천의 입가가 씰룩거렸다. 할 말이 많았다. 하지만 단공월의 절박한 표정을 보고 있자니 더 이상 말할 수가 없었다.
단공월은 사신제 중 한 명이었다. 비록 상처를 입고 지쳤다고 하지만 그 위압감이나 실력이 어디로 가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그는 간곡한 눈빛으로 검율천을 바라보고 있었다. 검율천은 그 눈빛을 거부할 수 없었다.
“알겠습니다.”
“고맙네!”
단공월이 감사의 인사를 했다.
검율천은 그에게서 시선을 돌리며 하늘을 바라봤다. 순간 그의 눈이 빛났다. 하늘을 맴돌고 있는 커다란 새가 보였기 때문이다.
“적명조(赤冥鳥)?”
“그게 무엇인가?”
“본교에서 특별히 키운 영물입니다. 영물답게 영특한 데다 눈이 밝아 추적에 요긴하게 쓰입니다.”
“으음!”
“추적이 지척까지 따라붙었습니다.”
“나 때문에 시간을 너무 지체했군. 벌써 추격자가 따라붙다니.”
“어서 이동해야 합니다.”
“설산 북쪽에 있는 절명애가 멀지 않았네. 그곳까지만 가면 되네. 어서 가세.”
단공월이 몸을 일으켰다.
그때까지도 검율천은 적명조에서 시선을 거두지 못했다.
적명조는 영물이었다. 당연히 쉽게 다룰 수가 없었다.
그가 아는 한 적명조를 다룰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뿐이었다.
‘수현…… 너도 이곳에 온 것이냐?’
그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뭐하는 건가? 어서 움직이지 않고.”
단공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검율천은 급히 바위 위에 표식 하나를 남기고 그의 뒤를 따랐다.
두 사람의 모습은 금세 숲 속으로 사라졌다.
그들이 사라지고 한참 후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묘령의 여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난초를 연상시키는 청초한 얼굴의 여인이었다.
잠시 주위를 둘러보던 여인이 정확히 단공월과 검율천이 앉아 있던 자리로 걸어왔다.
“역시 여기에 있었구나.”
그때였다.
“수현.”
묵직한 목소리와 함께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푸른 전포를 입은 강인한 인상의 사내였다. 사내의 얼굴 한가운데를 커다란 흉터가 가로지르고 있어 더욱 무섭게 보였다.
사내의 등장에 여인의 낯빛이 더욱 어두워졌다.
“천악.”
“그들의 흔적은 찾았느냐?”
“찾았어. 그들은 방금 전까지 여기에 있었어.”
“거의 다 따라잡았군.”
남자의 입가에 스산한 미소가 어렸다. 그러자 엄청난 살기가 일렁였다.
‘천악!’
남자의 살기에 여인의 표정이 더욱 어두워졌다.
남자의 이름은 정천악, 십병의 수장이자 그녀의 연인이었다. 그리고 여인의 이름은 지수현, 그녀 역시 십병의 일원이었다.
정천악이 검율천과 단공월이 사라진 방향을 보며 말했다.
“율천. 이제 곧 만날 수 있겠군.”
“천악.”
“무척 반가울 거야. 그렇지 않나? 수현.”
“…….”
지수현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검율천을 향한 정천악의 증오를 잘 알기 때문이다.
그때였다. 적명조 한 마리가 더 날아왔다. 잠시 허공을 맴돌던 적명조는 이내 지수현을 향해 내려왔다.
적명조의 발에는 조그만 통이 매달려 있었다. 통을 열자 둘둘 말린 조그만 서신이 보였다. 지수현이 급히 서신을 읽어 내렸다.
정천악이 눈을 빛냈다.
“뭐지?”
“화운이 죽었어.”
대답하는 지수현의 목소리가 착 가라앉았다. 그만큼 공기도 무겁게 가라앉았다.
“누가 감히!”
뒤늦게 정천악의 살기 어린 음성이 흘러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