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권마-298화 (298/500)

 298

298화 8장. 진실을 찾는 길은 언제나 험하기 마련이다(2)

동화운의 죽음 뒤 마을은 눈물바다가 되었다. 창고에 갇혀 있던 사람들은 풀려난 후 한 줌의 재로 변한 가족을 보고 울부짖었다.

구슬픈 그들의 울음소리는 음유경과 신무월을 괴롭게 만들었다. 동화운이 자행한 일이었지만, 그들에게도 일말의 책임이 있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더 이상 마을에 있을 수가 없었다. 그들은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쫓기듯 마을을 떠나야 했다.

담호는 말없이 흑귀를 몰았다.

저 멀리 설산이 보였다. 커다란 설산은 마치 가까이 있는 것처럼 어마어마한 위용을 자랑했다.

설산은 마치 태고의 거인처럼 우뚝 선 모습으로 담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담호는 설산의 모습에 위축되지 않았다.

설산이 검율천의 목적지라는 것쯤은 쉽게 알 수 있었다.

워낙 눈에 띄는 덩치를 가진 검율천이었다. 그래서 그를 기억하고 있는 마을 사람들이 많았다.

마을 사람들은 검율천이 웬 노인과 함께 설산으로 향했다고 말해 줬다.

‘노인이라.’

지금 현재로써는 검율천이 동행하고 있는 노인이 누군지 알 수 없었다. 음유경과 신무월도 노인의 정체는 알지 못하고 있는 듯했으니까.

설산을 바라보는 담호의 미간에 깊은 골이 패였다.

신령스럽게만 보이는 설산이었다. 보는 이들로 하여금 절로 경외감이 들게 할 정도였다. 음유경과 신무월도 경외감이 어린 시선으로 설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담호는 달랐다.

설산이 가까워질수록 기묘한 감각이 느껴졌다. 손발이 저리는 것처럼 쩌릿쩌릿한 느낌이 그의 신경을 자극하고 있었다.

담호의 눈빛이 착 가라앉았다.

설산에 있는 무언가가 그의 감각을 건드리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그리 하나요?”

담호가 고개를 들자 뒤로 곁으로 다가온 음유경의 얼굴이 보였다.

그녀는 동화운의 죽음에서 받은 충격에서 벗어난 듯 한결 개운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것은 앞서 말을 몰고 있는 신무월도 마찬가지였다.

“아무것도 아니야.”

“그렇군요.”

“…….”

“고마워요. 그 말을 하고 싶었어요. 덕분에 정신을 차렸거든요.”

“다행이군.”

“잠시 정신이 나갔었나 봐요. 화운을 보는 순간 옛 생각이 나고 말았거든요. 생각보다 정이 무서워요. 알면서도 사람을 움직이지 못하게 하니까요.”

“…….”

“하지만 이제 그런 일은 없을 거예요. 더 이상 걱정시키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음유경이 일부러 밝은 표정을 지었다.

담호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일 때였다.

“여기!”

앞서가던 신무월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앞을 보니 신무월이 말에서 내려 바닥을 살피고 있었다. 음유경이 말에서 내려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무슨 일이야?”

“보입니까? 사저.”

“뭐가?”

무심코 대답하던 음유경의 눈이 크게 떠졌다.

신무월이 가리킨 조그만 바위에 남은 흔적 때문이었다.

“이건?”

“대형이 남긴 표식이에요.”

세상에서 오직 그들만이 알아볼 수 있는 표식이었다. 그 안에 담긴 뜻을 해독할 수 있는 이 역시 그들뿐이었다.

신무월이 표식에 담긴 내용을 해독했다.

“설산…… 북쪽 절명애(絶命崖).”

“절명애?”

“아무래도 그곳으로 오라는 것 같은데요.”

신무월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마을 사람들에게 대충 들은 바로는 설산의 북쪽 사면이 가장 험하다고 했다. 깎아지른 절벽의 연속이기 때문에 지형에 익숙한 사람들조차도 절대 접근하지 않는다고.

“휴! 아무래도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할 것 같네요. 절명애라니. 이름도 으스스한 게 심상치 않네요.”

“각오는 이곳에 오기 전부터 했잖아.”

“하긴…….”

신무월이 손으로 무릎을 탁탁 털며 일어났다.

그의 얼굴에 망설임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갑시다.”

신무월과 음유경이 급히 말에 올라탔다.

마음이 급했기에 그들은 전력으로 말을 달렸다. 그렇게 얼마나 갔을까? 그들의 얼굴에 당혹스러운 빛이 떠올랐다.

눈앞에 두 갈래 길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게 무슨?”

두 길 모두 설산 방향으로 향하고 있었다.

문제는 검율천이 두 개의 길 중 어느 곳으로 갔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음유경과 신무월이 난감한 표정으로 서로의 얼굴을 바라봤다.

두 사람 모두 이곳이 초행이었다. 당연히 이곳의 지리에 대해 알지 못했다.

그들이 망설이는 사이 담호가 앞으로 나섰다.

“이쯤에서 헤어지는 것이 좋겠군.”

“아무래도 그래야겠네요.”

음유경이 담호의 의견에 수긍했다.

검율천이 어느 길로 갔는지 모른다면 두 개의 길을 모두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신무월이 물었다.

“어느 쪽으로 갈 겁니까?”

“왼쪽.”

“좋습니다. 그럼 우리는 오른쪽을 택하지요.”

신무월이 음유경과 함께 오른쪽 길 앞으로 향했다. 신무월과 함께 움직이던 음유경이 문득 뒤를 돌아 담호를 바라봤다.

“부디 조심하세요.”

그 말을 끝으로 음유경이 신무월과 함께 말을 달렸다. 그만큼 마음이 급한 것이다.

그들의 모습이 순식간에 담호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담호는 그제야 움직였다.

그는 천천히 흑귀를 몰았다.

푸르르!

흑귀가 거친 콧김을 뿜었다. 묘하게 흥분된 모습이었다. 흑귀 역시 거칠게 일렁이는 전장의 공기를 느끼고 있는 것이다.

담호는 가볍게 흑귀의 목을 두들겼다. 그러자 흑귀가 금세 안정을 되찾았다.

담호가 택한 왼쪽 길은 무척이나 거칠었다. 푸른 수목은 어느새 사라지고 을씨년스러울 정도로 황량한 풍경만이 그를 맞이하고 있었다. 적갈색 대지 위로 짐승의 송곳니같이 뾰족한 바위들이 수도 없이 솟아나 있었다.

담호의 눈매가 좁아졌다.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황량한 풍경이 그의 머리에서 십 수 년 전의 기억을 끄집어내게 만들었다.

‘새외.’

청해성, 정확히는 천금마옥이 있던 곳의 풍경이 이랬었다. 그곳에서 그는 십 년이 넘는 시간을 보냈어야 했다.

덕분에 독행류를 만들어 내고, 지금과 같은 강함을 성취할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는 것은 아니었다.

푸르르!

그때였다.

흑귀가 갑자기 거칠게 투레질을 했다. 담호가 고개를 드니 저 멀리 보이는 커다란 바위 꼭대기에 한 사내가 여유롭게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담호가 바라보자 사내가 마치 반가운 사람을 만난 것처럼 손을 흔들었다.

“여!”

사내는 해맑은 미소를 지은 채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담호가 바위 앞에서 흑귀를 멈춰 세웠다. 그러자 사내가 높다란 바위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읏샤!”

“…….”

“안녕하슈! 반갑수다. 댁이 그 유명한 권마요? 당신이 이쪽 길로 오다니, 이걸 운이 좋다고 해야 하나?”

사내가 수다스럽게 떠들었다.

두 손을 허리에 떡하니 올려놓은 채 떠드는 모습이 사춘기 소녀 못지않게 시끄러웠다.

담호는 말없이 그를 바라봤다. 보통 사람이라면 머쓱해할 만도 하건만 사내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어 갔다.

“거참 듣던 대로 과묵하시구만. 그렇게 살면 세상 심심하지 않으쇼? 입에 거미줄 치겠소이다. 난 그렇게는 못 살 것 같은데.”

“…….”

“뭐 좋수다. 사람마다 다 사정이란 게 있는 법이니까. 나는 관대한 사람이니까 그 정도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소.”

“십병인가?”

담호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그러자 사내가 놀랍다는 듯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벙어리는 아니었구만. 난 너무 말이 없어서 벙어린 줄 알았지. 맞수! 나 역시 십병의 일원이지. 가의천이라고 하오.”

사내가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그는 자신의 이름에 굉장히 자부심이 있는지 가슴을 쭉 내밀었다.

“가의천.”

“맞아요. 내 이름은 가의천. 꼭 기억해 두는 게 좋을 거요.”

“왜지?”

“왜냐면 당신의 생애 마지막 보는 얼굴이 바로 내 얼굴일 테니까. 하하하!”

가의천이 큰 웃음을 터트렸다. 다분히 과장된 몸짓과 목소리였다.

담호가 그를 빤히 바라봤다. 무섭도록 착 가라앉은 눈빛이 가의천의 몸에 꽂혔다. 일반인은 물론이고 무공이 고강한 자들조차도 감히 마주 보지 못하는 담호의 눈빛이었다. 그런데도 가의천은 아랑곳하지 않고 웃고 있었다.

담호의 눈빛이 더욱 차가워졌다.

“자신 있나?”

“자신 있냐고? 당연하지. 왠지 아슈? 그건 내가 가의천이기 때문이오.”

“그리고 우리들이 있기 때문이지.”

마지막 목소리는 담호의 뒤쪽에서 흘러나왔다.

담호가 뒤돌아보자 두 명의 사내가 보였다.

한 명은 무척이나 호리호리했고, 다른 한 명은 철탑을 연상시키는 거구였다.

그들의 등장에 가의천이 활짝 웃었다.

“소개하지. 볼품없이 삐쩍 마른 친구의 이름은 염수강이오. 그래도 우리 중에서는 머리가 제법 똑똑하다는 평가를 받는 친구지. 그리고 저 큰 녀석의 이름은 마곡천이오. 거대한 덩치를 보면 알 수 있지만 힘이 무척 장사지.”

“…….”

“우리 세 명이라면 충분하지 않을까 싶은데. 그쪽 생각은 어떻수?”

가의천이 히죽 웃었다.

그제야 담호가 흑귀의 등에서 내렸다. 그러자 가의천의 눈에 탐욕의 빛이 떠올랐다.

“오! 그 말 멋진데. 잘됐군. 마침 탈것도 없는데 당신을 죽이고 그 말을 내가 가지면 되겠구려.”

“입은 만화의 근원이지.”

담호가 그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쿵!

진각을 펼치지도 않았는데 평범한 걸음에 대지가 강하게 울렸다.

발바닥을 타고 올라오는 진동에도 가의천은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조소를 피워 올렸다.

“당신은 오늘 이곳에서 죽을 거요. 왜인 줄 아슈? 그건 내가 당신의 상극이기 때문이라오.”

“…….”

“오! 화났나 보구려. 하지만 사실인 걸 어떡하겠수? 당신은 절대로 날 어쩌지 못하우. 지금부터 왜 그런지 당신에게 알려 주지.”

가의천의 얼굴 전체로 미소가 번져 갔다.

팟!

순간 담호가 충보를 펼쳤다.

그의 몸이 순식간에 가의천에게 쇄도했다. 바로 앞에 가의천의 웃는 얼굴이 보였다. 담호는 그의 얼굴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파성추였다.

가의천의 얼굴에 파성추가 작렬했다. 하지만 가의천의 얼굴에 어린 미소는 사라지지 않았다.

“느려!”

가의천의 목소리와 함께 그의 모습이 환상처럼 스르륵 사라졌다.

‘잔상?’

담호의 눈매가 좁아졌다.

가의천의 얼굴에 작렬했던 주먹에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실체가 아닌 잔상을 공격한 것이다.

“느리다니까.”

가의천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어느새 뒤로 이동해 있는 것이다.

담호조차 인지하지 못했을 정도로 엄청난 속도로 이동한 것이다.

가의천은 동료들의 어깨에 손을 얹은 채 미소를 짓고 있었다.

동료들이 부르는 그의 별호는 섬전(閃電)이었다.

빠름의 극한을 넘어선 자.

그의 모든 것은 쾌(快)에 맞춰져 있다.

호흡, 체형, 근육, 심법과 무공까지도.

소리를 넘어서는 빠름을 가진 남자, 그래서 동료들은 그를 이름 대신 섬전이라 불렀다.

가의천의 시선이 담호의 다리를 향했다.

“어떻게 겨우 장애를 극복했지만, 그래도 절름발이라는 사실은 변치 않지. 어떻수? 그 다리로 나를 잡을 수 있겠수?”

“그만 놀려라, 섬전. 그러다 울겠다.”

염수강이 피식 웃으며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그의 손에 들려 있던 나무가 바닥에 깊숙이 꽂혔다.

휘이이!

순간 짙은 안개가 일어나 사위를 잠식했다.

자연적으로는 절대 일어나지 않는 현상이었다.

염수강의 특기 중 하나는 바로 진법(陣法)이었다. 그는 이미 주위에 진법을 펼쳐 놓고 있었던 것이다. 나뭇가지가 생문을 자극하며 진이 발동했다.

가의천과 염수강의 모습이 안개에 가려 사라지고 마곡천만이 남았다.

“흐흐! 동화운이야 머리가 고장 난 놈이라 맥없이 당했겠지만 우리는 다르다.”

투투툭!

마곡천의 근육이 크게 부풀어 오르고 힘줄이 툭툭 불거져 나왔다.

금강마영공(金剛魔影功).

대성하면 금강불괴(金剛不壞)가 된다는 마도 외공의 최정점.

마곡천은 금강마영공을 대성에 가깝도록 익혔다.

“너는 죽는다. 오늘! 이 자리에서!”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