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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9화 8장. 진실을 찾는 길은 언제나 험하기 마련이다(3)
쿵쿵!
마곡천이 무서운 기세로 달려들었다. 그가 발을 내디딜 때마다 대지에 깊은 족적이 패였다.
마치 거대한 곰이 전속력으로 달려오는 것 같았다. 보통의 무인이라면 마곡천의 기세에 질려 일단 피하고 봤을 것이다. 하지만 담호는 보통의 무인이 아니었다.
팟!
충보를 펼쳤다.
마곡천이 달려오는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담호의 몸이 앞으로 튀어 나갔다.
금강불괴지신과 담호가 격돌했다.
쾅!
천지를 울리는 굉음과 함께 담호의 몸이 뒤로 튕겨 나갔다.
금강불괴지신이라는 단어가 아깝지 않을 정도로 마곡천의 육체는 단단했다. 단지 피륙만 단단한 것이 아니라 내부 역시 극한까지 단련되어 있었다.
어지간한 보검으로는 그의 피륙에 작은 생채기 하나 낼 수 없었다. 하물며 인간의 주먹으로 그의 육신에 상처를 낸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쐐액!
츄화학!
날카로운 파공음과 함께 담호의 등줄기가 갈라지고 피 분수가 치솟아 올랐다. 어느새 등에 긴 자상이 생겨난 것이다.
가의천의 짓이었다.
그의 손에는 짧은 도(刀) 두 자루가 들려 있었다. 마치 거치도를 축소시켜 놓은 것처럼 날카로운 톱니가 삐죽 솟아 있는 기형의 단도였다.
호아도(虎牙刀).
마교의 보물 중 하나로 날카롭기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가의천의 속도에 호아도의 절삭력이 더해진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무시무시한 위력을 발휘한다.
베지 못할 것이 없고, 죽이지 못할 사람이 없다.
거기에 염수강이 펼친 진법이 더해졌다. 그가 펼친 진법의 이름은 운무미리진(雲霧迷理陣).
살상력은 없지만, 짙은 운무가 시야를 가리고 인간의 감각을 미묘하게 흩트려 놓는다.
진법의 원리를 알지 못하면 마치 개미지옥에 빠진 것처럼 자력으로는 빠져나올 수도 없다.
“오늘 이곳이 네 무덤이 될 것이다, 권마.”
염수강이 싸늘히 중얼거렸다.
담호는 분명 강했다.
그의 강함은 위험할 정도였고, 정면으로 그를 상대해서 이길 자는 천하에 그리 많지 않았다. 냉정히 말해서 수장인 정천악을 제외한 십병의 무력 수준은 그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십병에겐 지옥 밑바닥에서부터 기어오른 저력과 독기, 그리고 각자만의 특기가 있었다.
그 하나하나는 담호에게 밀릴지 모르지만, 둘 이상이 힘을 합치니 양상이 전혀 달라졌다.
하나 더하기 하나가 항상 둘인 것은 아니다. 셋이 될 수도 있고, 넷이 될 수도 있다.
무엇보다 그들은 최고의 효율을 내는 방법을 깊이 체득하고 있었다. 기억도 나지 않는 어린 시절부터 협조와 반목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터득한 것이다.
십병 중에서도 염수강, 가의천, 마곡천, 이 세 명의 조합은 단연 발군이었다. 그들의 조합은 특별한 위력을 발휘했으며, 십병이라는 이름을 더욱 무섭게 만들었다.
마곡천이 둔중한 발소리를 내며 담호에게 달려들었다.
금강석만큼이나 단단한 육체는 그 자체로 위협적인 무기였다. 그의 단단한 육체에는 담호의 파성추가 통하지 않았다.
시이이!
마곡천이 움직이는 것과 동시에 가의천도 경공술을 펼쳤다.
가의천의 동공이 활짝 열렸다.
시야가 열리고, 새로운 세상이 펼쳐졌다.
그의 육체가 소리를 뛰어넘을 때 일어나는 현상이었다.
콰쾅!
뒤늦게 육체가 공기의 벽을 돌파하는 뇌성이 울려 퍼졌다.
피핏!
담호의 어깨와 옆구리가 갈라지며 또 한 번 피분수가 치솟아 올랐다.
살이 너무 날카롭게 베어져 나가 고통조차 느껴지지 않았지만 순간적으로 담호의 몸이 비틀거렸다. 마곡천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멧돼지처럼 머리로 담호를 들이받았다.
쾅!
둔중한 굉음과 함께 담호의 몸이 뒤로 튕겨 나갔다.
“내 차례다.”
운무에 몸을 숨긴 채 호시탐탐 기회만 보던 염수강이 움직였다.
그의 양손에는 어느새 묵 빛 기류가 휘돌고 있었다.
현현마옥수(炫玄魔玉手).
염수강이 익힌 절예였다. 이 역시 마교의 상승 절학으로 정파 무림의 전설 중 하나인 빙백소수(氷白素手)에 비견될 만한 위력을 갖고 있다고 알려져 있었다.
콰아아!
무방비 상태인 담호의 등에 현현마옥수가 작렬했다. 하지만 염수강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현현마옥수가 담호의 등에 작렬하는 순간 미묘한 각도로 튕겨 나갔기 때문이다.
독행류 방호기공인 금구자를 이용해 담호가 염수강의 현현마옥수를 흘려 버린 것이다.
담호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뒤돌아섰다.
이제껏 운무 속에 숨어 있던 염수강과 담호의 눈이 마주쳤다.
쾅!
“크윽!”
담호의 주먹이 염수강의 몸을 강타했다. 간발의 차이로 염수강이 현현마옥수를 펼쳐 담호의 주먹을 막았다. 다행히 중상을 입는 것은 피했지만, 강렬한 충격이 전신을 관통했다.
그 때문에 그의 움직임이 잠시나마 멎었다. 담호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지천격을 펼치려 했다.
“어림없다.”
그 순간 마곡천이 끼어들었다.
그는 그 커다란 손으로 담호의 팔목을 덥석 잡은 채 휘둘렀다.
쐐애액!
담호의 몸이 마치 포탄처럼 안개를 가르며 날아갔다. 그의 몸이 향하는 곳에 가의천이 기다리고 있었다.
서걱!
그의 호아도가 안개를 날카롭게 가르며 담호의 목을 찔러 왔다.
위기의 순간 담호의 몸이 허공에서 빙그르 돌며 절묘한 각도로 호아도를 흘려 버렸다.
“치잇!”
가의천이 아쉽다는 듯이 혀를 찼다. 하지만 실망하지는 않았다. 겨우 이 정도로 권마를 잡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천하의 권마를 사냥하는 일이었다.
신중에 신중을 기해도 모자랐다. 가의천은 더 이상 욕심을 부리지 않고 다시 안개 속으로 모습을 감췄다.
그사이 염수강은 진법에 변화를 주었다.
츠츠츠!
새하얀 운무가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일렁이며 담호의 몸을 에워쌌다. 그만큼 감각을 더욱 교란했다.
마곡천이 어깨를 들썩이며 앙천광소를 터트렸다.
“으하하! 권마의 명성이 하늘을 찌른다더니 별거 아니구나.”
“원래 세상의 명성이라는 것은 과대평가되기 마련이지.”
염수강이 그에 동조했다.
반대로 가의천은 신중한 표정이었다.
지금 두 사람이 담호를 조소하는 것이 실제로 가소롭게 생각해서가 아니었다. 담호를 격동시켜 허점을 노리려는 격장지계를 펼치는 것이다.
가의천은 숨을 죽인 채 담호가 허점을 드러내길 기다렸다.
‘어서 흥분해라. 당신도 열받잖아.’
냉정을 오래 유지하는 자가 이기는 싸움이었다. 그리고 가의천은 누구보다 냉정할 자신이 있었다.
생각해 보면 항상 그랬다.
지옥 같은 천금마옥에서도, 그리고 다른 전장에서도 항상 그는 인내심을 가지고 적을 도발했다. 그렇게 적을 도발시킴으로써 심리적인 우위를 점했고, 항상 승리를 쟁취했다.
쿵쿵!
둔중한 발소리와 함께 마곡천이 담호를 향해 달려들었다. 염수강이나 가의천과 달리 그는 숨거나 피하지 않고 정면 대결을 고수했다. 그만큼 그는 자신의 육체에 자신이 있었다.
절대 파괴되지 않는 금강불괴지신이 있는데 무엇이 두려울까? 그는 진심으로 담호의 주먹이 하나도 겁나지 않았다.
‘나야말로 권마의 진정한 상극이다. 제아무리 주먹이 세면 뭐하겠는가? 내 육체엔 아무런 타격도 주지 못하는데.’
부웅!
통나무처럼 커다란 팔뚝이 휘둘러졌다.
그 어떤 변초도 담겨 있지 않은 직선적인 공격이었다. 담호는 간발의 차이로 그의 공격을 피했다.
콰앙!
굉음과 함께 방금 전까지 담호가 서 있던 대지가 쩍 갈라지고 자욱한 먼지가 피어올랐다.
그야말로 엄청난 위력의 공격이었다.
간발의 차이로 마곡천의 공격을 피했지만 담호의 위기는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피잉!
날카로운 파공음이 운무 속에서 울려 퍼졌다. 가의천이 움직인 것이다.
자욱한 운무 한가운데 통로가 뻥 뚫렸다. 가의천이 소리보다 빠르게 움직이기에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가의천이 눈을 크게 떴다.
새로운 세상이 열리고 모든 것이 느리게 움직인다.
오직 가의천만이 볼 수 있는 세상이었다.
하품이 날 정도로 느리게 움직이는 세상 속에서 오직 그만이 빠른 속도로 움직인다.
수많은 정보를 받아들이기 위해 온몸의 감각이 칼날처럼 날카롭게 곤두섰다.
느리게 움직이는 세상 속에서 담호의 모습이 선명하게 보였다.
‘굼벵이 같구나.’
그가 담호를 비웃었다.
자신은 모든 것을 희생해 절대적인 속도를 손에 넣었다.
쐐애액!
그의 손에 들린 호아도가 운무를 갈랐다.
공기의 저항이 느껴졌다. 거센 저항에 호아도의 끝이 순간적으로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담호는 아직도 반응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의 등판 전체가 무방비였다.
가의천은 등판 한가운데 호아도를 찔러 넣기로 결심했다.
날카롭기 그지없는 호아도는 담호의 척추 사이를 파고들어 분리시킬 것이다. 척추가 분리된 자가 멀쩡히 서 있을 수 없는 법.
담호는 벌레처럼 바닥을 나뒹굴며 그를 올려보게 될 것이다.
묘한 쾌감이 등줄기를 타고 전신으로 번져 갔고, 두 눈이 벌겋게 충혈됐다.
‘지금!’
가의천의 호아도가 담호의 등 살가죽에 닿았다. 이대로 힘만 주면 호아도가 담호의 등을 파고들어 척추 사이를 가를 것이다.
그 순간이었다.
쩌엉!
갑자기 쇳소리와 함께 호아도가 튕겨 나갔다.
“크윽!”
손아귀에서 느껴지는 강한 반진력에 가의천이 그만 신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무슨?’
순간적으로 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였기 때문이다.
후우웅!
그제야 담호의 몸에서 일어난 진동이 공기를 타고 그에게 전해졌다.
담호가 어느새 초진동 기공인 방패를 펼친 것이다.
호아도의 날카로움도 방패 앞에선 소용없었다.
가의천의 호구가 찢어져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처럼 속도에 치중하는 무인의 가장 큰 단점이 바로 반발력에 약하다는 것이다.
차라리 꿰뚫으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할 시 자신의 속도에 의해 오히려 몸 전체에 충격과 과부하가 걸린다.
멈춰 선 가의천을 향해 담호의 주먹이 날아왔다.
“크윽!”
가의천이 입술을 깨물며 급히 경공을 펼치려 했다. 하지만 순간적으로 워낙 큰 충격을 받았기에 그의 움직임은 약간 굼뜬 면이 없지 않았다. 그래서 반응이 조금 늦었다.
콰아아!
엄청난 풍압이 밀려왔다.
피부가 따끔거렸다. 수천, 수만 개의 송곳으로 일제히 피부를 찌르는 듯한 느낌이었다. 풍압만으로 전신의 피부가 벗겨질 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걱정하지 않았다.
그를 대신해 앞을 막아 줄 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어림없다.”
그의 예상대로 마곡천이 그 커다란 덩치로 담호를 막아섰다.
쾅!
마치 쇠망치로 바위를 후려친 듯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마곡천의 커다란 덩치가 크게 들썩였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아무런 충격도 받지 않은 얼굴이었다.
“소용없다니까.”
마곡천이 씨익 웃었다.
그사이 가의천은 충격에서 회복해 몸을 일으켰다.
최강의 방패가 그의 앞을 든든히 막아 주고 있었다. 그가 담호를 두려워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마치 톱니바퀴처럼 한 치의 빈틈없이 맞물려 돌아가는 세 사람의 합공이었다.
그 어떤 수를 쓰더라도 이 셋의 합공을 깨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그래서 십병 내에서도 이들 셋을 한데 뭉뚱그려 절망의 벽이라 불렀다.
그중에서 가장 든든한 방패막이가 되는 마곡천이 누런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나의 금강불괴지신은 너에게 절망의 벽이다. 권마여!”
그 순간 담호가 고개를 들어 마곡천을 올려다봤다.
당혹감에 물들었을 거라는 마곡천의 생각과 달리 담호의 표정엔 그 어떤 감정도 담겨 있지 않았다. 그리고 깊게 가라앉은 그의 두 눈을 보는 순간 마곡천은 정체를 알 수 없는 감정을 느끼고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담호의 입이 열렸다.
“금강불괴라고?”
마곡천은 담호의 숨결에서 유황 냄새를 맡았다. 지옥 밑바닥에서 흘러나오는 그 역한 냄새를.
쾅!
순간 강렬한 충격이 그의 전신을 강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