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
300화 8장. 진실을 찾는 길은 언제나 험하기 마련이다(4)
“큭!”
마곡천이 입을 살짝 벌렸다. 내장을 울리는 강렬한 충격 때문이었다.
그의 복부엔 어느새 담호의 주먹이 꽂혀 있었다. 하지만 금강불괴지신을 뚫진 못한 상태였다.
“소용없다니까.”
마곡천이 중얼거리며 두 팔을 치켜 올렸다. 그대로 담호의 등을 내리칠 작정이었다.
쾅!
그 순간 담호의 반대쪽 주먹이 마곡천의 배에 틀어박혔다. 강렬한 충격에 마곡천의 몸이 크게 흔들렸다.
마곡천의 얼굴에 분노의 빛이 떠올랐다.
“소용…….”
쾅!
그의 말이 끊겼다. 다시 한 번 담호의 주먹이 틀어박혔기 때문이다.
“이익! 이 개자식이…….”
쾅! 쾅! 쾅!
마곡천은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그가 말할 틈을 주지 않고 담호의 주먹이 연이어 틀어박혔기 때문이다.
그의 몸이 마치 허공에 매달린 가죽부대처럼 연이어 흔들렸다. 담호의 주먹이 마치 소낙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꼿꼿하던 마곡천의 몸이 마치 새우처럼 꼬부라졌다.
“크윽!”
처음으로 그의 입술을 비집고 고통 섞인 신음성이 흘러나왔다. 그런 그의 눈에 믿을 수 없다는 빛이 떠올랐다.
‘나는 금강불괸데. 고통을 느낄 수 없는데?’
거의 이십여 년 만에 처음 느끼는 고통이었다. 그래서 더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금강불괴?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고?’
담호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인간이 진정한 금강불괴가 될 수 있을까? 인간의 몸이 금강석이 아닐진대 아무리 단련을 혹독하게 한다고 해도 금강석처럼 단단해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콰콰콰!
파성추에 이어 오지암파경이, 그리고 단공벽이 수레바퀴처럼 굴러가며 연이어 펼쳐졌다.
파성추가 마곡천의 단단한 육체에 균열을 만들고, 오지암파경이 균열을 넓힌다. 그리고 단공벽이 충격을 내부로 전달했다.
“크으으!”
마곡천이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그런 그의 눈은 더 이상 커질 수 없을 정도로 크게 치떠져 있었다.
복부에서 시작한 극통이 전신으로 번져 가고 있었다. 온몸이 삐그적거리는 듯한 이질적인 느낌이 그를 정상적으로 반응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위험해!”
비틀거리는 마곡천의 모습에서 위험을 제일 먼저 감지한 이는 바로 염수강이었다.
그가 현현마옥수를 펼쳐 담호를 공격했다. 하지만 담호는 그에게는 눈길 하나 주지 않고 마곡천을 공격했다.
콰아아!
현현마옥수의 검은 기류가 담호의 몸 주위에서 헛되이 흩어졌다.
“크윽!”
염수강이 당혹스러운 신음성을 흘렸다. 현현마옥수를 펼쳤던 오른쪽 손가락 다섯 개가 전부 관절 반대 방향으로 꺾여 있었다. 담호의 몸을 강타하는 순간 미증유의 거력에 오히려 그의 손이 타격을 입은 것이다.
“어떻게?”
염수강이 고개를 들어 담호를 바라봤다. 그제야 담호의 몸 주위를 휘도는 폭강이 보였다. 어느새 담호가 폭마경을 펼친 것이다.
쾅! 쾅!
담호는 폭마경을 펼친 채 마곡천을 공격했다.
담호를 한참이나 내려 보던 마곡천의 눈높이가 어느새 대등해져 있었다. 계속되는 충격에 허리가 그만큼 꺾인 것이다.
담호와 마곡천의 시선이 딱 마주쳤다.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깊이 가라앉은 담호의 눈을 보는 순간 마곡천은 이제까지 자신이 느낀 감정의 실체를 알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공포였다.
공포(恐怖).
타인을 두려워하는 마음.
마곡천은 가슴속 깊은 곳에서부터 담호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래서 더 허세를 부렸던 것이다.
그 순간 담호가 마곡천의 멱살을 틀어쥐었다.
“안 돼!”
“멈춰라!”
위기를 느낀 염수강과 가의천이 동시에 소리치며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들보다 담호의 움직임이 훨씬 빨랐다.
콰아아!
회오리 기류가 발생하며 마곡천의 거대한 몸이 허공으로 뽑혀 올라갔다. 그리고 최고치에 도달한 그의 몸이 벼락처럼 뒤집혀 거꾸로 떨어져 내렸다. 지천격이 펼쳐진 것이다.
“크읏!”
마곡천이 머리부터 바닥에 떨어지는 것을 목격한 가의천이 섬전처럼 몸을 날렸다.
제아무리 금강불괴지신이라 자부하는 마곡천이라 할지라도 저렇게 머리부터 바닥으로 떨어지면 큰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분명 큰 충격을 입을 것이다.
순식간에 접근한 가의천이 손바닥을 활짝 펼쳐 마곡천의 몸을 받아 내려 했다. 그의 내공이라면 마곡천을 받아 내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말이다.
하지만 그가 상대하는 담호라는 남자는 그의 상식에서 한참을 벗어난 존재였다. 특히 승부의 순간을 잡아내는 감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패앵!
담호의 허리가 팽이처럼 무섭게 돌아갔다. 덩달아 마곡천이 떨어지는 방향도 바뀌었다. 바로 가의천이 그를 받아 내기 위해 달려오던 방향이었다.
“큿!”
가의천의 얼굴에 당혹스러운 빛이 떠올랐다. 그의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마곡천의 몸이 떨어져 내렸기 때문이다.
“제기랄!”
우당탕!
비명과 같은 음성과 함께 가의천이 마곡천과 한데 엉켜 나뒹굴었다.
예상치 못한 충격에 온몸이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한가하게 고통을 호소할 시간이 없었다.
가의천은 본능적으로 마곡천을 밀치며 벌떡 일어났다.
속도가 생명인 가의천이었다. 금강불괴지신을 이룬 마곡천에겐 버틸 만한 맷집이 있었지만 가의천은 아니었다. 그의 두 다리가 움직임을 멈추는 순간이 그에겐 최대의 위기였다.
‘벗어나야 해!’
그 순간이었다.
쩌억!
마치 대나무가 갈라지는 듯한 소리가 그의 다리 쪽에서 들려왔다.
순간 가의천의 눈이 크게 치떠지고, 입이 떡 벌어졌다.
엄청난 고통이 다리에서 느껴졌다. 조심스럽게 바라보니 담호의 다리가 자신의 왼쪽 정강이를 두 동강 낸 것이 보였다.
뼈가 살가죽을 뚫고 나오고, 동강 난 다리가 덜렁이고 있었다.
“끄으으!”
너무 고통스러우면 신음 소리도 나오지 않는 법이다. 지금 가의천의 상태가 그랬다.
입에서 피가 침과 섞여 흘러나왔다.
‘곡천은 미끼였어. 놈이 진짜로 노린 것은 바로 나.’
그제야 그는 담호의 수작에 넘어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그의 깨달음은 너무 늦었다.
담호의 손바닥이 어느새 그의 가슴에 흡착되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나선형으로 뒤틀렸다.
오지암파경(五指巖破勁)이 펼쳐진 것이다.
“끄아아!”
온몸이 해체되는 고통에 가의천이 목이 터져라 비명을 질렀다.
“미친놈!”
그 광경을 본 염수강이 왼손으로 현현마옥수의 구명절초를 펼쳤다.
콰르르!
해일 같은 수강(手罡)이 담호를 향해 밀려왔다.
제아무리 담호라 할지라도 강기를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염수강은 이 한 수로 담호에게 상처를 입히지는 못하더라도 두 사람에게서 떼어 놓을 수는 있을 거라고 자신했다.
하지만 담호의 반응은 그의 상상을 초월했다. 담호는 바닥을 나뒹구는 마곡천을 잡아 자신의 전면을 가렸다.
콰쾅!
“크헉!”
염수강이 날린 수강은 애꿎은 마곡천의 등에 작렬했다.
평상시 마곡천의 몸이었다면 수강에도 끄떡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의 육체는 담호의 연이은 공격으로 한계에 달한 상태였다.
그릇에 가득 찬 물이 넘치는 데는 물 한 방울만 더해지면 되듯 담호에 의해 한계에 달한 마곡천의 육체가 부서지는 데는 염수강의 일격이면 족했다.
츄화학!
마곡천의 등에서 엄청난 양의 피분수가 치솟아 올랐다. 수강이 마곡천의 육체에 구멍을 뻥 뚫은 것이다.
졸지에 자신의 손으로 동료에게 상처를 입힌 염수강이 놀라서 멈춰 섰다.
연이은 부상에 마곡천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거의 이십 년 만에 느끼는 고통은 그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었다.
순식간에 마곡천이 무력화되었고, 가의천이 기동력을 잃고 바닥을 나뒹굴고 있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믿을 수 없는 광경에 염수강이 이를 꽉 깨물었다.
“이 악마 같은 놈!”
그의 목소리가 절로 떨려 나왔다. 하지만 정작 염수강은 그런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의 머릿속엔 오직 마곡천과 가의천을 구해야 한다는 생각만이 가득했다.
지옥 같은 세상을 헤쳐 나온 친구들이었다. 비록 반목도 많이 했지만, 그래도 이 거친 세상에서 믿을 수 있는 존재라곤 그들밖에 없었다.
그에겐 친구들이 세상의 모든 것이었다. 그들을 모두 잃는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염수강이 말했다.
“곡천을 내려놔라, 권마!”
순간 담호의 팔뚝이 뱀처럼 마곡천의 목을 휘감았다.
“너?”
“싫다면?”
“죽인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반드시!”
순간 담호의 눈동자가 더욱 검게 변했다. 묵 빛이 일렁이는 그의 눈동자는 섬뜩한 위화감을 물씬 풍겼다.
담호의 팔뚝에 힘이 들어갔다.
꾸득! 꾸드득!
마곡천의 목에서 뼈가 부딪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컥!”
잠시 정신을 잃었던 마곡천이 눈을 번쩍 떴다. 그는 발버둥 치면서 담호의 손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하지만 담호의 팔은 강철 집게 같아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마곡천은 금강불괴지신을 이루게 만든 금강마영공을 운용했다. 강력한 내공이 전신을 휘돌면서 근육에 힘이 들어갔다. 하지만 담호의 팔에서 빠져나오지는 못했다. 담호 역시 암혼심공을 운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힘 대 힘, 금강마영공 대 암혼심공의 힘겨루기가 시작됐다.
뿌득! 뿌드득!
“끄으으!”
마곡천의 목에서 뼈가 어긋나는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입에서는 답답한 신음성이 흘러나왔다. 그의 얼굴이 점점 벌겋게 달아오르고, 전신의 핏줄이 모두 불거져 나왔다.
마곡천은 느낄 수 있었다. 강철보다 단단한 자신의 목뼈가 부러지고 있다는 사실을. 황당하게도 담호는 그의 목을 비틀어 부러트리려 하고 있었다.
“멈춰랏!”
푸욱!
그때 겨우 몸을 일으킨 가의천이 호아도로 담호의 등을 찔렀다. 날카로운 호아도는 어떤 저항도 없이 담호의 등에 깊숙이 박혔다.
극렬한 통증에 담호가 움찔했다. 하지만 마곡천의 목을 조르는 것을 멈추지는 않았다.
“저, 저?”
등에 호아도가 박힌 채 마곡천의 목을 비트는 담호의 모습은 섬뜩함을 넘어서 공포, 그 자체였다.
콰지끈!
“켁!”
순간 마곡천의 머리가 팩 돌아갔다. 강철보다 단단하다고 자랑하던 목뼈가 부러지고, 혀가 입 밖으로 길게 늘어졌다.
“곡천!”
“안 돼!”
염수강과 가의천의 절규가 동시에 울려 퍼졌다.
담호가 마곡천의 목을 붙잡고 있던 팔을 놓았다. 그러자 마곡천의 거대한 육체가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무너지는 마곡천의 뒤로 마신처럼 우뚝 서 있는 담호의 모습이 보였다.
치열한 전투는 담호에게도 큰 상처를 안겨 주었다.
그의 전신은 피로 붉게 물들어 있었고,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비틀거리고 있었다. 호아도가 박힌 등에서는 엄청난 양의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그의 두 눈은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 모습이 도저히 인간 같아 보이지 않았다.
“이 악마 같은 새끼!”
“어떻게 인간이?”
두 사람이 그 모습을 보고 치를 떨었다.
그들의 몸에 잔경련이 일고 있었다. 인정하기 싫지만 그들은 지금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특히 가의천이 느끼는 공포는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토록 비웃었던 담호다.
죽어도 자신을 잡을 수 없을 거라 비웃었다. 절뚝거리는 발로는 절대 자신의 두 다리를 따라올 수 없을 거라 자신했다. 그런데 담호는 전혀 상상하지 못한 방법으로 자신의 다리 하나를 부러트렸다.
섬전이라는 별호는 이제 쓸 수 없다. 상처가 완치돼도 두 번 다시 예전과 같은 속도는 나오지 않을 테니까.
그때였다.
갈대처럼 흔들거리던 담호의 움직임이 딱 멈췄다. 언제부턴가 호아도가 박힌 곳에서 흘러나오던 피도 딱 멎었다.
담호가 등 뒤로 손을 뻗어 호아도의 손잡이를 잡았다.
스르륵!
날카로운 도신이 살을 가르며 빠져나오는 소리에 겁을 집어먹었는지 운무가 크게 출렁였다.
쩔그렁!
호아도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염수강과 가의천의 심장을 때렸다.
“이제 어떡할 거지?”
“…….”
담호가 물었고 두 사람은 답하지 못했다.
담호가 운무를 헤치고 그들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여전히 똑같이 발을 절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무도 그런 담호를 비웃지 못했다.
쿵! 스르륵!
그의 발걸음 소리가 재앙이 되어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