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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권마-304화 (30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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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4화 2장. 진실은 언제나 무겁게 다가오기 마련이다(1)

콰아아!

화려하게 피어난 매화가 담호의 눈앞에서 폭발하며 엄청난 후폭풍이 일어났다. 칼바람이 휘몰아치고, 벽이 쩍쩍 갈라졌다.

담호는 검기의 폭풍을 향해 몸을 날렸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몸을 날리는 담호의 눈빛이 사납게 일렁였다

쩌어엉!

단공벽이 펼쳐졌다.

공기의 결에 충격이 가해지면서 그렇게 사납게 일렁이던 기파가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다.

담호가 소멸되는 기파의 중심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짧고 빠른 타격이었다. 하지만 그 위력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슈우우!

순식간에 담호의 주먹 일점으로 동혈 안의 공기가 빨려 오는가 싶더니 강렬한 폭발을 일으켰다.

쿠와앙!

동굴이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크게 흔들렸다. 벽면에 균열이 일어나 거미줄처럼 번져 가고, 돌무더기가 우수수 쏟아져 내려 시야를 가렸다.

담호는 동혈 한가운데 서서 움직일 줄 몰랐다. 먼지 속에서도 그의 눈빛이 사납게 일렁이고 있었다.

먼지가 걷히고 드러난 풍경 속에 복면인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가 썼던 것으로 짐작되는 복면과 핏방울만이 바닥에 떨어져 있을 뿐.

그 찰나의 순간 복면인은 담호의 틈을 비집고 동혈 밖으로 도주했다.

이십사수매화검 때문이었다.

복면인이 펼친 화산파의 절학이 순간적으로나마 담호에게 허점을 만들어 낸 것이다.

담호가 바닥에 떨어진 복면을 집어 들었다.

반쯤 찢어진 복면엔 핏방울이 점점이 묻어 있었다. 담호가 복면을 힘주어 잡았다.

화산의 역사는 무척이나 오래됐다.

그동안 수많은 이들이 화산의 무학을 배웠고,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속가제자들이 배출되었다.

개중에는 특출 난 재능을 갖고 있어 본산 제자들만 익힐 수 있는 절학을 전수받은 자들도 있었다. 화산파는 속가 제자들을 키우는 데 있어 인색하지 않았다.

능히 익히고, 지킬 만한 인재라고 생각되면 절학을 전수했다. 하지만 거기에도 선은 존재했다.

전수해 줘도 되는 절학과 절대 안 되는 절학.

이십사수매화검은 그중 후자에 속했다.

화산파의 본산 제자들 중에서도 선택받은 자들에 속하는 매화검수들만이 익힐 수 있는 절학 중의 절학이었다.

한 시대에 이십사수매화검을 익힐 수 있는 자의 수는 겨우 서른여섯 명. 극히 작은 숫자였다. 그만큼 화산파는 이십사수매화검을 엄격히 관리했다. 때문에 이십사수매화검이 외부로 유출될 확률은 극히 적었다.

담호는 우두커니 서서 복면인이 빠져나간 동혈을 한동안 바라봤다. 어지간해서는 감정이 드러나지 않는 그의 얼굴에 의혹의 빛이 떠올라 있었다.

분명 제대로 된 이십사수매화검이었다.

화산에 있을 때는 매일같이 매화검수들과 대련을 했기에 담호는 확신할 수 있었다. 복면인이 펼친 것이 진짜 이십사수매화검이란 사실을.

담호는 자신이 모르는 흑막이 존재하고 있음을 직감했다. 그는 복면인이 뛰어나왔던 동혈 안쪽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곳에 진실에 근접한 무언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복면인이 뛰어나왔던 곳으로 들어가자 지하 공동이 나타났다. 천금마옥을 연상시키는 거대한 공간이.

그곳에서 세 사람이 뒤엉켜 싸우고 있었다.

한 명은 바로 풍월제 단공월이었고, 다른 두 명은 바로 북철왕 석무강과 마모 단운향이었다.

석무강이 한껏 몸을 뒤로 젖혔다. 등이 활처럼 휘며 주먹에 가공할 기운이 응집됐다. 이제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기운이.

그것은 단운향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녀 역시 공력을 끌어 올리며 최후의 일격을 날릴 준비를 했다.

“휴우!”

단공월이 쇠사슬을 양손에 나눠 쥐며 거친 숨소리를 내뱉었다.

온몸이 부서질 것 같았다. 육체는 한계에 달했고, 공력은 바닥을 드러냈다. 하지만 가장 치명적인 것은 방금 전 입은 상처였다.

이곳에 들어왔을 때 웬 복면인의 기습을 받았다. 설마 동혈 안에 누군가 숨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기에 방심했다. 그래서 옆구리에 그의 일격을 허용하고 말았다.

복면인의 검은 그의 옆구리를 관통해 반대편으로 나올 정도로 큰 상처를 남겼다. 대라신선이 온다고 해도 살릴 수 없는 그런 상처였다.

단공월이 아직도 서 있는 것은 그야말로 초인적인 의지와 가공할 내공 때문이었다. 하지만 내공이 바닥난 지금 그는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 깊은 그늘이 드리워졌다.

“시대의 저편으로 사라져라! 늙은 괴물!”

“죽어랏!”

석무강과 단운향이 그를 향해 절초를 펼쳤다.

단공월은 그에 맞서 반격을 하려 했다. 그런데 쇠사슬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나마 남아 있는 공력을 쥐어짜면 한 번은 움직일 수 있었다. 그런데도 단공월은 그러지 않았다. 아니, 그럴 수가 없었다.

‘지쳤어.’

복면인을 본 순간 그는 모든 진실을 알아차렸다.

딴에는 정체를 감춘다고 복면을 썼겠지만 단공월은 한눈에 그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그 눈빛, 그 숨소리, 그 초식을 어찌 몰라볼까?

아무리 눈빛을 위장하고, 초식을 바꿔 펼쳐도 소용없었다. 단공월은 복면 뒤에 숨겨진 그의 진짜 얼굴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 허탈했다.

순식간에 족히 수십여 년은 늙은 듯한 얼굴, 총기가 사라진 눈빛, 그리고 축 늘어진 양손.

단공월은 더 이상 살아야 할 의미를 찾지 못했다. 이 이상 진실에 더 접근하는 것이 두려웠다. 그래서 모든 것을 포기했다.

‘죽으면 편해지겠지.’

눈을 감았다.

콰앙!

폭음과 함께 그의 몸이 훌훌 뒤로 날아가 공동 벽에 처박혔다. 지독한 고통에 비명도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숨이 끊어지지는 않았다.

단공월이 벽에 처박힌 채 겨우 고개를 들었다. 온 세상이 붉게만 보였다. 엄청난 충격에 두 눈의 실핏줄이 모조리 터져나갔기 때문이다.

그런 그의 눈에 누군가의 뒷모습이 흐릿하게 보였다.

헝클어진 검은 머리와 다 찢어진 검은색 피풍의를 바람에 휘날리며 서 있는 남자였다.

‘누구?’

그의 목소리는 입 밖으로 흘러나오지 못했다.

갑자기 난입한 남자가 석무강과 단운향의 공격을 대부분 해소했지만, 일부가 그의 몸을 강타했기 때문이다.

비록 숨이 끊어지지는 않았지만, 빈사 상태나 다름없었다.

“네놈은 누구냐?”

“감히 방해를 하다니.”

희미해지는 의식 너머로 분노한 석무강과 단운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뒤이어 그 남자의 대답이 들려왔다.

“내 이름은 담호다.”

그 어떤 감정도 담겨 있지 않은 차가운 목소리였다. 하지만 그에 대한 반향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컸다.

“권마?”

“네가 어떻게?”

석무강과 단운향의 놀란 목소리가 단공월이 희미해지는 정신줄을 다시 부여잡게 만들었다.

‘권마라고?’

그가 강호로 다시 나온 후 가장 많이 들었던 별호였다.

화산이 배출한 마인.

권을 쓰는 악마.

피도 눈물도 없는 악당.

그를 지칭하는 표현들은 그 외에도 수없이 많았다. 하지만 공통점은 바로 그가 무섭다는 것이다.

천하의 마교도 그 한 명의 위세에 밀려 화산을 떠났을 정도로.

사신제가 전설 속으로 사라진 이후 가장 찬란한 위명을 날리는 절대의 무인. 그래서 흥미가 돋았다. 하지만 그와는 인연이 닿지 않았기에 이제까지 만나지 못했다.

‘화산권마, 화산파. 그라면?’

단공월이 갑자기 입술을 깨물었다. 입술이 터지며 피가 흘러나왔다.

아팠다. 하지만 그 덕에 흐릿해지던 정신이 조금은 명료해졌다. 그래 봐야 꺼져 가는 불씨를 간신히 유지하는 것에 불과했지만, 그래도 그는 두 눈을 힘껏 치켜뜨고 담호의 싸움을 지켜봤다.

콰아아!

거대한 지하 공동에 검은 폭풍이 휘몰아쳤다. 담호라는 이름의 폭풍이.

그 첫 번째 목표는 바로 석무강이었다.

벽암류의 젊은 주인.

이제껏 단 한 번도 패한 적이 없는 젊은 무인의 호승심이 발동했다.

자신과 비슷한 또래, 어쩌면 더 어릴지 모르는 젊은 무인의 등장은 그에게 질투와 동시에 피를 끓게 만들었다.

권마는 이미 전설이었다.

마교의 무인들 중에는 그의 이름만 들어도 벌벌 떠는 이들도 존재할 정도였다.

모두가 말했다.

젊은 무인 중에 권마가 당연히 제일이라고.

어쩌면 나이 든 무인들까지 합쳐도 제일일지 모른다고.

석무강은 그 사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 내가 활동하지 않았기에 권마가 그런 허명을 얻게 된 것이다. 내가 나타난 이상 어림없다. 천하제일이란 칭호는 나를 위한 것이다.’

석무강은 오히려 잘됐다고 생각했다.

이번 기회에 담호를 죽이면 미래의 영광은 모두 자신의 것이 될 것이기에.

석무강이 크게 외쳤다.

“기억해라. 내 이름은 석무강. 바로 너를 죽일 고귀한 몸이……. 컥!”

쾅!

그 순간 뇌음이 울려 퍼지고 석무강의 몸이 뒤로 튕겨 나갔다. 담호가 파성추를 날린 것이다.

다행히 호신강기를 둘렀기에 치명상은 입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가슴을 서늘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이런 미친놈! 다짜고짜 공격하다니. 예의는 밥 말아 먹은 모양이구나.”

그가 노성을 터트렸다.

그 순간에도 담호는 그를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그 모습이 꼭 피에 굶주린 호랑이 같았다.

담호는 석무강의 정체나 이름에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

어차피 죽여야 할 적인데 이름을 알아 무얼 한단 말인가?

슈우우!

파성추를 펼쳤다.

화강암으로 만든 단단한 성벽도 단숨에 부술 만한 일격이었다. 석무강은 벽암류의 절초를 펼쳐 그의 공격을 막았다.

쾅!

“크읍!”

폭음과 함께 답답한 신음성이 울려 퍼졌다.

석무강의 신음이었다. 그런 그의 얼굴엔 당혹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담호의 일격을 막은 손바닥이 찌르르 울리고 있었다. 충격이 적잖았다. 그나마 뒤로 물러나며 충격을 흘려버렸기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어깨가 탈구될 뻔했다.

그래도 위기를 넘겼기에 석무강은 태세를 정비해 반격하려 했다. 하지만 다음 순간 그의 눈이 크게 치떠졌다.

흐으!

담호의 거친 숨결이 바로 코앞에서 느껴졌기 때문이다.

석무강은 뒤로 물러서면서 어느 정도 거리를 벌렸다 생각했지만, 담호와의 거리는 전혀 멀어지지 않았다. 그만큼 담호가 다가왔기 때문이다.

뒤로 물러나는 속도보다 앞으로 달려드는 속도가 배는 빠르다. 당연히 석무강이 뒤로 물러나는 것보다 담호가 달려드는 속도가 몇 배는 빨랐다.

“멈춰랏!”

바로 뒤에서 단운향이 쫓아오며 외쳤지만 담호를 멈추게 할 수는 없었다. 그녀와 담호 사이에는 상당한 거리가 존재했고, 담호는 그녀를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의 눈에는 오직 한 명, 석무강만이 보였다.

담호가 다시 한 번 파성추를 펼쳤다.

쾅!

“크윽!”

또다시 석무강의 입에서 답답한 신음성이 흘러나왔다.

절초를 펼쳐 방어를 했지만 입은 충격이 적잖았기 때문이다.

다시금 그의 몸이 뒤로 주르륵 밀렸다. 그가 발을 디딘 곳에 깊은 고랑이 생겨났다.

석무강이 이를 악물었다.

“이익! 감히!”

그는 분노했다.

그가 이렇게 일방적으로 밀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나마 제대로 싸워서 밀린 것도 아니고, 초반에 기선을 제압당해 속절없이 밀리고 있다는 사실이 그를 분노케 만들었다.

다시 담호가 달려들고 있었다. 꽉 쥔 주먹이 그를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여전히 똑같은 무공, 파성추였다.

석무강은 담호가 자신을 놀린다고 생각했다.

“이놈! 용서하지 않겠다.”

콰아아!

순간 그의 몸에 반투명한 막이 생겨났다. 절대고수들만이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반탄강기였다.

반탄강기로 담호의 공격을 막은 후 반격을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석무강은 자신의 승리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비록 기선을 제압당해 사나운 꼴을 보였지만, 그래도 충분히 반격하고 오히려 제압할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음 순간 담호의 전신에 한 줄기 기류가 휘도는 모습을 본 순간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쿠와아아!

담호는 폭마경을 몸에 두른 채 그대로 석무강의 반탄강기에 부딪쳤다.

쿠와아앙!

순간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끼아악!”

아슬아슬하게 간발의 차이로 담호를 쫓던 단운향이 폭발에 휩쓸려 뒤로 튕겨 나갔다. 다행히 급히 호신강기를 펼쳐 목숨을 구할 수 있었지만, 그녀의 얼굴엔 불신의 기색이 역력했다.

“무슨?”

그녀의 입술이 절로 떡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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