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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권마-305화 (30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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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5화 2장. 진실은 언제나 무겁게 다가오기 마련이다(2)

“커헉!”

석무강이 피를 울컥 토해 냈다.

붉은 피가 그의 턱과 가슴을 축축하게 적셨다. 가슴을 적신 피만큼이나 붉게 충혈된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마치 산에서 굴러온 집채만 한 바위에 부딪친 것처럼 온몸이 삐그적거리고 내장이 진탕돼서 숨을 쉬는 것조차 힘이 들었다.

“감히! 감히!”

석무강이 소매로 입가의 피를 닦으며 분노를 불태웠다.

자신은 십삼지파 중 하나인 벽암류의 주인이었다. 그런 자신이 한낱 절름발이 무인에게 이렇게 몰리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하지만 한가히 앉아서 분노를 불태울 기회가 그에겐 주어지지 않았다. 그 순간에도 담호가 폭풍처럼 몰아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슈우우!

폭풍은 모든 것을 빨아들인다.

담호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몸에서 발생한 기이한 접인력이 석무강의 발을 붙잡았다. 그리고 담호의 주먹이 날아왔다.

반탄강기도 통하지 않는 상대다. 그런 이에게 대응하는 방법은 단 하나였다. 바로 똑같이 공격한 것.

석무강이 주먹을 마주 날렸다.

쾅!

주먹과 주먹이 부딪쳤다.

인간의 육신이지만 쇠보다 단단하게 단련된 주먹이었다. 쇳소리가 나며 두 사람의 몸이 잠시 비틀거렸다.

석무강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주먹이 깨질 듯 아파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뒤로 주춤 물러났다.

담호는 달랐다. 그 역시 인간이었다. 똑같은 고통을 느꼈다. 하지만 그는 고통을 무시하고 앞으로 달려들었다.

산발한 머리카락 사이로 번뜩이는 검은 눈동자.

그의 눈에는 광기(狂氣)나 분노 같은 소모적인 감정 따윈 담겨 있지 않았다. 그 어떤 감정도 담겨 있지 않은 그 무감각한 눈이 오히려 석무강을 섬뜩하게 만들었다.

“이놈!”

한겨울도 아닌데 등줄기에 찬바람이 느껴졌다. 온몸의 털이란 털이 모조리 곤두섰다.

쾅!

그 순간 담호의 이격이 쏟아졌다.

석무강은 어찌어찌해서 이격을 막아 냈다. 하지만 그 대가로 그의 발이 꼬였다. 그런 그에게 담호의 삼격이 쏟아졌다.

쾅!

“크윽!”

석무강의 몸이 크게 요동쳤다.

그는 어떻게든 반격의 기회를 잡고자 했다. 하지만 담호의 공격은 숨 쉴 틈 없이 이어졌다.

쾅! 쾅!

사격, 오격이 이어졌다.

석무강의 얼굴이 점점 일그러졌다. 횟수를 거듭할수록 고통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져만 갔다.

위잉!

기이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처음에는 그것이 단순한 이명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것은 이명이 아니었다.

담호의 허리가 회전할 때마다, 그의 주먹이 허공을 가를 때마다 톱니바퀴 회전하는 듯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쾅!

담호의 주먹이 다시 한 번 석무강의 팔뚝을 강타했다.

우지끈!

순간 석무강은 자신의 팔뚝이 수수깡처럼 부서지는 소리를 들었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콰콰콰콰!

담호의 주먹이 폭풍이 되어 몰아쳤다.

그의 주먹이 한 번씩 강타할 때마다 석무강의 몸이 조금씩 쪼그라들었다.

전신을 관통하는 엄청난 충격, 벽암류의 호신기공인 금성철벽(金城鐵壁)을 펼쳤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제야 석무강은 숨 쉴 틈 없이 이어지는 폭풍 같은 연환격(連環擊)이 단순한 임기응변이 아니라 사실은 철저하게 계산된 하나의 절기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육합혈산하(六合血山河).

단 한 호흡 사이 스물네 번의 연격을 날리는 독행류 최종장.

담호는 실전에서 처음으로 육합혈산하를 펼치고 있었다.

열다섯, 열여섯, 그리고…… 열일곱.

콰지끈!

“크악!”

열일곱 번째 주먹이 석무강의 가슴에 커다란 구멍을 뚫었다.

석무강은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믿을 수 없는 얼굴로 자신의 가슴과 담호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봤다.

“이럴…… 수가!”

그의 볼이 푸들푸들 떨리고, 눈과 코, 귀와 입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석무강은 도저히 현실을 믿을 수 없었다.

자신은 벽암류의 주인이었다.

선택받은 자였고, 그래서 고귀한 길을 걸어 강호의 정상에 서야 했다. 그런 자신이 이렇게 초라한 최후를 맞이해야 한단 사실이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그래서 남은 힘을 모아 소리쳤다.

“뭐냐? 네놈은 대체 뭐란 말이냐?”

원한과 분노가 녹아든 목소리가 지하 동혈을 쩌렁쩌렁 울렸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엔 이미 힘이 담겨 있지 않았다.

“도대체 네놈은 뭐란 말이냐? 도대체…….”

그것이 벽암류의 주인 석무강의 마지막 말이었다.

그의 고개가 덜컥 떨어졌고,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으으!”

단운향의 입에서 앓는 듯한 신음성이 흘러나왔다.

그녀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은 불신 그 자체였다.

석무강이 누구던가?

마교의 젊은 무인들 중 가히 최강이라 할 만한 자였다. 십삼지파의 수장들 중에서도 상위에 속하는 절대강자였다. 그런 강자가 별반 대응도 하지 못하고 담호에 의해 처참히 부서지고 말았다.

눈으로 그 광경을 보지 않았다면 절대 믿지 않았을 그런 거짓말 같은 광경이었다.

담호와 석무강의 실질적인 무력 차이는 생각만큼 그렇게 크지 않았다. 그들에게 차이점이 있다면 담호가 수많은 실전을 통해 완성된 무인인데 반해 석무강은 수련실에서 완성된 무인이라는 것이다.

담호는 자신의 모든 것을 이용할 줄 알았다. 마치 숨을 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자신이 익힌 모든 무공을 적재적소에 펼칠 줄 아는 것이다.

반면 석무강의 무공은 틀에 박혀 있었다. 초식 하나하나가 강대하기에 변칙적인 조합을 할 필요가 없었다.

그 차이가 두 사람의 생과 사를 갈랐다. 하지만 그들보다 무공이 떨어지는 단운향으로서는 그런 차이를 알 수가 없었다.

“마, 마귀(魔鬼).”

그녀가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때 담호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봤다. 눈이 마주친 순간 단운향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주했다.

석무강도 순식간에 격살한 괴물이었다. 혼자서 당해 낼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지금은 피해야 할 때였다.

그녀는 순식간에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담호는 그런 단운향을 추적하려 했다. 하지만 다음 순간 들려온 단공월의 목소리가 그의 발목을 잡았다.

“권마여.”

담호가 고개를 돌려 바라보자 단공월이 힘겹게 손짓을 했다.

“이……리 오게.”

담호는 그의 눈에 어린 간절한 바람을 보았다. 그래서 그에게 다가갔다.

누가 봐도 가망이 없는 모습이었다. 벌써 숨이 끊어졌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만큼 처참한 모습으로도 그는 애써 생의 끈을 부여잡고 있었다.

담호가 한쪽 무릎을 꿇고 그와 시선을 맞췄다.

이젠 초점이 사라진 눈으로 그는 담호를 보고 있었다.

“허억! 허억! 하늘이 아직 강호를 버……리지 않았는지 이렇게 자……네를 만나게 되는군. 자넨 내가 누군지 아는가?”

“…….”

담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단공월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어렸다.

“맞네! 나는 풍월제라는 허명을 갖고 있는 늙은일세. 이제부터 내가 하는 이야기 잘 듣게. 아주 중……요한 일이니까.”

“말해!”

“이곳은 천……사교의 마지막 교단이었네. 겨우 명맥을 유지하던 것을 우리들이 찾아내 멸절시켰지.”

그것은 아주 오래전…… 강호의 역사엔 기록되지 않은 은밀한 이야기였다.

사신제라고 불리기 전, 그들은 친구였고, 꽤나 많은 시간을 함께했었다.

그들은 우연히 아주 오래전 사라졌던 사교의 명맥이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그들은 강호의 정의를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에 불타고 있었다. 그래서 사교의 뿌리를 뽑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곳에 왔지. 그리고 이곳에 살고 있던 이들을 죽였지. 정말 많이도 죽였어. 피에 굶주린 악귀처럼…….”

단공월의 음성엔 회한이 가득했다.

“그들은…… 우리가 절대 용서받지 못할 존재라고 생각했던 그들 대부분은 평범한 사람이었다네. 천사교의 후인이었지만, 그들은 조상의 기억을 잊고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촌부와 다름없었다네. 그들은 우리 손에 죽어 가면서도 이유를 물었지. 왜 죽어야 하냐고? 왜 이런 짓을 벌이냐고? 우리는 대답했네. 너희들이 천사교의 후인이기 때문이라고.”

그렇게 그들은 조상이 지은 죄를 대신 치렀다.

단공월은 그때 죽어가던 자들의 눈빛을 잊을 수가 없었다. 그들의 눈빛은 수십 년이나 그를 괴롭혔고, 단 한순간도 잊은 적이 없었다.

“그때는 몰랐네. 그것이 그렇게 큰 죄일 줄.”

“…….”

“우리는…… 사신제는 그 죄의 대가를 치르고 있네. 우리 중 한 명이 이곳에 보관되어 있던 천사교의 금서(禁書)를 열었네.”

“금서?”

“천사교의 비전이 담긴 책자일세. 우린 이곳에서 그것을 발견했고, 봉인해 두었지.”

그것이 단공월이 이곳에 돌아온 이유였다. 그들은 이곳에서 천사교의 유물이라 할 수 있는 금서를 발견했었다.

금서에는 각종 사술과 대법이 적혀 있었는데, 그들은 합의하에 이곳에 봉인해 두기로 했다.

단공월의 시선이 지하 공동 한쪽에 있는 석관을 바라봤다. 금서를 봉인해 둔 장소였다. 하지만 석관은 활짝 열려 있었고, 안은 텅 비어 있었다.

누군가 봉인을 풀고 금서를 가져간 것이다.

“그리고 결국 그가 봉인을 풀었네.”

“누구지?”

“이관.”

“이관?”

“철혈……무신 이관……. 그를 조심……하게.”

“그가 봉인을 열었다고?”

“그는…….”

단공월이 말끝을 흐렸다.

목이 갈라지고, 숨이 가빠서 말을 잇기 힘들었다.

아주 오래전 마교의 총단을 완전히 무너트리기 직전 이관은 사신제의 등에 비수를 꼽았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배신이었다. 그 때문에 사신제는 분열됐고, 마교를 완전히 격멸시키는 것은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단공월은 궁금했다. 그가 왜 자신들을 배신했는지, 왜 공격을 했는지. 자신은 요행히 치명상은 피했지만 호천산과 용화설은 큰 중상을 입고 모습을 감췄다.

단공월은 담호에게 그 모든 이야기를 해 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 모든 이야기는 입안에서만 맴돌 뿐 밖으로 흘러나오지 않았다.

“그륵! 그르륵!”

식도에서부터 피거품이 넘어와 입안을 가득 채웠다.

꾸욱!

단공월이 담호의 손을 힘껏 잡았다.

죽기 직전의 노인이라고 도저히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한 힘이었다.

“자네를…… 공격한…… 자는…… 그의…… 그는…… 화…….”

스르륵!

담호의 손을 잡고 있던 단공월의 손이 힘없이 미끄러졌다. 숨이 끊어진 것이다.

단공월은 죽어서도 눈을 부릅뜬 채 담호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미 숨이 끊어졌지만, 그의 눈은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담호는 마치 석상처럼 제자리에 앉아서 그의 눈과 얼굴을 한참이나 들여다보았다.

사신제라는 위명에 어울리지 않는 초라한 죽음이었다.

죽음은 그렇게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찾아왔다. 험난한 강호를 살아가는 자들에게 있어 죽음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니었다.

담호는 부릅뜬 단공월의 눈을 감겨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단공월은 혼신의 힘을 다해 진실을 전해 주려 했지만, 발음이 뭉개져 태반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하지만 중요한 사실은 알았다.

“이관이란 말이지?”

철혈무신 이관.

사신제 중에서도 무공이 가장 강하다고 알려진 존재였다.

그의 사문이나, 무공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확실한 것은 그의 무공이 사신제 중 최강이라는 것이다.

머리가 아파 왔다.

이관이 천사교와 관계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오히려 모든 것이 더 복잡해진 느낌이었다.

사신제 중 하나로 부족할 것 없는 영화를 누리던 그가 왜 천사교의 금서를 탐하고, 또 천사교를 현시대에 되살렸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담호가 고개를 내저으며 동혈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밖으로 나오자 햇빛이 눈부시게 쏟아졌다. 하지만 담호에겐 햇볕을 음미할 여유 따윈 없었다.

그가 동혈 입구에 손바닥을 대고 오지암파경을 운용했다.

파스스!

나선형의 경력이 발생하면서 동굴 입구가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렸다.

이곳은 평생토록 천하를 떠돈 단공월의 마지막 안식처였다. 이곳에서 그는 영면할 것이다.

담호는 완전히 무너지는 동혈을 뒤로 하고 걸음을 옮겼다.

그의 시선은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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