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7
307화 3장. 호랑이 굴이 따로 없다(1)
“생각보다 사람이 많은 것 같지 않아?”
“음! 확실히 그러네요.”
방진보가 종리연의 말에 수긍을 했다.
지금 그들은 화음현 내의 거리를 걷고 있었다. 수년 전부터 화음현의 경기는 급속히 위축되었다. 화산파가 봉문을 하면서 그에 기대어 생계를 이어 가던 사람들 중 상당수가 빠져나갔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화음현의 분위기는 무척이나 음울하다는 것이 세상의 인식이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거리의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다.
여전히 한적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예전처럼 을씨년스러울 정도는 아니었다. 거리엔 제법 낯선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종리연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떻게 된 거지?”
“아마 그 일 때문일 거예요.”
“그 일?”
“소청과 은가보의 상단이 화산에 들어왔을 때요.”
“아! 마교의 추적대를 섬멸한 일?”
“맞아요! 그때 매화검수 형들이 신위를 발휘했잖아요. 아마 그 때문일 거예요.”
“그러니까 기둥째 뽑혀 몰락한 줄 알았던 화산파에 예상치 못했던 전력이 있었고, 그 전력이 강호의 이목을 끌 정도로 강하니까 사람들을 보내 사정을 알아보자고 하는 거다?”
“다는 아니겠지만, 그런 목적으로 온 사람들이 많지 않을까 싶어요.”
“확실히 일리가 있는 말이네.”
종리연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비록 몰락해 봉문을 택했다고 하지만 화산파는 구대문파 중 하나였다. 비록 담호라는 거인의 위명에 기대어 구대문파라는 이름을 힘겹게 이어 가고 있지만, 그래도 한때는 쩌렁쩌렁하게 천하를 호령했었다.
당시의 기억을 갖고 있는 자들이라면 누구나 화산파를 경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종리연이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에휴! 하여간 세상 인심이란 게 정말 간사하구나.”
“원래 그렇잖아요.”
“그렇긴 하지만…….”
“세상의 눈에 신경 쓸 거 있나요? 저흰 저희 일에만 충실하면 되죠.”
“…….”
“왜요?”
종리연이 말을 멈추고 바라보자 방진보가 눈을 끔뻑거렸다. 그러자 종리연이 ‘풋’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너 굉장히 어른 같아.”
“예?”
“어른 같다고.”
“에이! 누나도…….”
방진보가 손을 휘저으며 쑥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에 종리연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그녀가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 중에서 가장 성장한 이가 바로 방진보였다.
단순히 무공과 요리 실력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식견과 인품, 그리고 통찰력까지.
진보는 예전에 비할 수 없이 크게 성장했다.
‘그렇게 어린아이는 어른이 되고, 자신의 영역을 확장해 가는 건가?’
이제 방진보는 단순히 어린 소년이 아니었다.
믿을 수 있는 조력자임과 동시에 의지할 수 있는 동료였다.
종리연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가자.”
“예!”
방진보가 힘찬 대답과 함께 그녀를 따랐다.
이유야 어쨌건 간에 화음현에 활기가 돈다는 사실이 그들을 기쁘게 했다.
두 사람은 화음현 서쪽에 있는 거리로 갔다. 예전에는 그렇게 많은 약초 가게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던 곳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많이 문을 닫고 몇 개의 가게만이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그중 장가약방(長家藥房)이라는 현판이 달린 가게로 들어갔다.
“누구? 아이쿠! 신의 아가씨. 어서 오십시오.”
가게 안에서 작두로 약초를 썰고 있던 허연 머리의 노인이 종리연의 얼굴을 보자마자 급히 몸을 일으켰다.
“장 아저씨!”
“신의 아가씨께서 어쩐 일로 예까지 직접…….”
노인이 송구한 표정으로 허리를 굽실거렸다.
“잘 지내셨어요?”
“저야 신의 아가씨께서 고쳐 주신 덕분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종리연을 바라보는 장 노인의 얼굴엔 존경스러운 빛이 가득했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고, 화음현에서 가장 큰 약방을 운영하면서도 심장이 좋지 않아 고생하였던 장 노인이었다. 그런 장 노인을 고쳐 준 이가 바로 종리연이었다. 그 후 장 노인은 종리연을 생명의 은인이라 부르며 극진히 대접했다.
“그런데 여긴 어쩐 일로? 아! 이번 달 약초 때문이군요. 죄송합니다. 저 때문에 신의 아가씨께서 직접 발걸음을 하게 하셔서.”
“아니에요. 덕분에 저도 이렇게 세상에 나올 수 있어 좋네요.”
“죄송합니다, 아가씨!”
종리연의 말에도 장 노인이 연신 허리를 굽히며 사과를 했다.
“이러지 마세요. 심장도 좋지 않으신 분이.”
“이놈의 심장은 신의 아가씨께서 고쳐 주신 덕분에 멀쩡합니다.”
장 노인이 자신의 가슴을 쿵쿵 치며 대답했다. 그에 종리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머리는 하얗게 셌지만 혈색은 무척이나 좋았다. 심장이 제대로 혈액을 공급해 준다는 증거였다.
종리연은 겨우 장 노인을 진정시켜 자리에 앉게 했다. 그러자 장 노인이 그간의 사정을 말했다.
“올봄부터 약초 구하는 것이 쉽지가 않았습니다.”
“왜죠? 봄이면 약초가 한참 나올 때인데요?”
“맞습니다. 지금이 제철이지요. 약초는 분명 나옵니다. 그런데 그것을 이곳으로 들여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예?”
종리연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장 노인이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얼마 전부터 섬서성으로 넘어오는 길목에 무림맹의 검문이 강화되었다고 합니다. 명목은 마교의 무인들을 색출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이상하리만큼 화음현으로 들어오는 물건들에 대해서만큼 더욱 철저하다고 합니다.”
“그게 무슨? 말도 안 되잖아요? 마교의 무인들이 섬서성에 들어올 이유가 뭐가 있다고?”
이제까지 한쪽에서 조용히 있던 방진보가 분노해 목소리를 높였다. 그에 장 노인이 고졸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게 말입니다. 여하튼 그 때문에 화음현에 물건을 들여오는 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실제로 저희 약방에 들어오는 약초들도 압수당한 것이 다수 있고요. 그래서 약초를 화산파에 보내는 것이 늦어졌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가!”
“그래도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래서 제가 아들놈을 보냈으니까요.”
“아드님을요?”
장 노인의 아들은 화산파의 속가제자였다. 비록 무재가 떨어져서 본산제자가 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화산파에 대한 충성심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다. 그래서 자신의 아들 또한 화산파에 입문시켰다.
장 노인의 손자는 지금도 화산파에서 수련을 하고 있었다. 아비와 달리 재능도 꽤 있는 편이라 본산제자가 될 가능성이 매우 컸다.
장 노인이 미소를 지었다.
“아무래도 다른 사람들에게 맡기니까 불안해서 말입니다. 아들놈이야 화산파의 무공도 익혔고, 무림맹에 친분 있는 사람들도 있으니 분명 약초를 가지고 올 겁니다.”
“언제쯤 도착할까요?”
“아마 오늘 내일 중에 도착할 겁니다. 올라가서 조금만 기다리시면 제가 직접 약초를 가지고 올라가겠습니다.”
“그럼 저희가 화음현에서 기다렸다가 직접 받을게요.”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신의 아가씨. 저희가 직접…….”
“저희도 오랜만에 내려와서 그래요. 필요한 것도 구하고, 바깥바람도 좀 쐬고 싶거든요.”
“아! 알겠습니다. 그러시다면야.”
그제야 장 노인이 수긍하고 고개를 숙였다. 그에게 인사를 한 후 종리연과 방진보는 장가약방을 나왔다.
밖으로 나오자마자 종리연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무림맹이 섬서성으로 들어오는 길목을 막고 검문을 한다니. 까마득하게 몰랐었네.”
“그러게 말이에요.”
“도대체 왜들 이러는 건지.”
종리연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삼 년 전 화산파가 혈겁을 당했을 때도 무림맹은 그 어떤 지원을 하지 않았다. 그들의 지원만 있었더라도 화산파의 재기가 조금 더 빨라졌을 것이다.
방진보도 한숨을 내쉬며 투덜거렸다.
“휴! 요즘 무림맹의 행보를 보면 정말 무림을 지킬 의지가 있는지 의문이 간다니까요. 각 문파에서 전력과 자금은 어마어마하게 지원받지만 실질적으로 그들이 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잖아요. 삼 년 전 마교를 물리친 것도 실제로는 화산파와 담호 형이 한 거잖아요. 무림맹은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 주제에 자신들이 그 모든 일을 해냈다고 선전하는 꼴을 보면 정말 제정신이 아닌 것 같다니까요.”
삼 년 전 화산파의 싸움을 마지막으로 마교와의 전쟁은 소강상태에 들어갔다.
무림맹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외연적인 확장을 시도했다.
무림맹에 가입한 수많은 문파들로부터 병력을 차출하고, 지원금을 강제로 올려 받았다.
많은 문파들이 그에 난색을 표했지만 무림맹은 막무가내였다.
그들은 병력과 지원금을 내지 않는 문파들은 보호해 줄 수 없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결국 많은 문파들은 그들의 뜻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삼 년 전 싸움으로 그들은 마교의 무서움을 알게 되었고, 그나마 기댈 수 있는 것이 무림맹뿐이라는 사실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마교와의 싸움으로 여타 문파들은 피폐해졌는데, 무림맹은 오히려 세를 확장했다. 그리고 그렇게 쌓은 힘으로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고 있었다.
지금에 와서는 구대문파들도 무림맹의 눈치를 보게 되었다. 화산파와 종남파의 몰락은 구대문파에도 큰 충격을 던져 주었기 때문이다.
무림맹은 그렇게 삼 년 만에 천하제일의 세력을 갖게 되었고, 모든 문파들은 무림맹의 눈치를 보게 되었다.
무림맹은 삼 년 전의 전쟁도 자신들이 마교에 큰 타격을 입혔기에 소강상태가 되었다고 선전했다. 무림에 적을 둔 사람들은 그것이 사실이 아니란 진실을 알고 있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사실을 믿었다.
“휴!”
종리연이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화산파에 있을 때는 그 이야기를 듣고도 실감을 못 했는데, 막상 자신의 일이 되니까 무림맹의 위세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 것 같았다.
그녀가 애써 웃었다.
“가자. 이왕 나왔으니 시간을 헛되이 보낼 수는 없잖아.”
“그래요. 우리 시장에 가요. 가서 맛있는 것도 먹고, 쓸 만한 재료가 있는지 좀 봐요.”
“그래!”
두 사람은 함께 좌판이 몰려 있는 곳으로 향했다.
화음현에 사는 사람들은 주로 이곳에서 고기와 나물, 그리고 각종 식자재를 구매했다.
방진보는 앞장서서 좌판을 뒤지고 다녔다.
“우와! 이거 뭐예요?”
“벌써 이게 나왔어요?”
목소리를 높이는 그의 얼굴엔 생기가 넘쳐흘렀다.
화산파에도 식자재는 많았다. 은가보에서 부족하지 않게 공급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이 모든 것을 공급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제철에만 구할 수 있는 식자재는 현지에서 구하는 것 제일이었다. 그래야만 선도도 유지할 수 있고, 맛도 최고로 좋기 때문이다.
방진보는 마음에 드는 식자재가 있으면 돈을 아끼지 않고 샀다. 그렇게 사다 보니 어느새 그의 등엔 짐이 한가득이었다. 그렇게 구한 식자재를 인근의 객잔에 옮겨 놓고, 또다시 시장을 헤매고 다녔다.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하니 혼자서는 도저히 짊어질 수 없을 만큼 양이 많아졌다.
그래도 방진보는 걱정하지 않았다. 화산에 연락을 하면 짐을 가지고 올 사람들이 수두룩했기 때문이다.
“헤헤!”
방진보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어렸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의 머릿속엔 시장에서 구한 식자재로 화산파의 제자들에게 음식을 해 주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자신이 만든 음식을 먹으며 행복해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도 행복해졌다. 한시라도 빨리 요리를 하고 싶어 손이 근질거렸다.
종리연이 그런 방진보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방진보의 마음을 익히 짐작하기 때문이다.
“장 아저씨가 약초를 구하는 대로 산에 올라가자.”
“그렇게 서두르지 않아도 돼요. 누나.”
“왜? 요리하고 싶지 않아?”
“요리야 하고 싶죠. 그런데 이렇게 구경하는 것도 좋아요.”
“그렇다면야.”
종리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 역시 이대로 산에 올라가는 것이 아쉬웠기 때문이다. 지금 화산에 올라가면 또 언제 화음현에 내려올지 기약할 수 없었다.
두 사람은 의기투합해 한참이나 화음현 구석구석을 뒤지고 다녔다. 그러다 보니 배가 고파졌다.
“우와! 힘들다. 그래도 기분은 좋아요.”
“그러게!”
“우리 맛있는 것 먹어요. 제가 쏠게요.”
“정말?”
“그럼요!”
“그럼 비싸고 맛있는 것 먹어야겠다.”
“얼마든지요. 헤헤!”
방진보가 특유의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때였다.
“신의 아가씨! 진보야!”
갑자기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니 등에 커다란 짐을 짊어진 채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는 남자가 보였다.
“규호 형!”
방진보가 먼저 알은척을 했다.
종리연도 한눈에 그를 알아봤다. 그는 바로 장가약방 장 노인의 아들이었다.
이름은 장규호, 화산파의 속가제자였다.
종리연과 방진보가 반색을 하며 다가가려 할 때였다.
“이놈! 도주하다니.”
“거기 서랏!”
갑자기 일단의 무인들이 우르르 달려와 장규호를 포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