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8
308화 3장. 호랑이 굴이 따로 없다(2)
“감히 무림맹의 검문을 무시하고 도주하다니. 그러고도 네놈이 무사할 줄 알았다면 오산이다.”
“무림맹을 능멸하다니.”
무인들은 장규호를 에워싼 채 노성을 내질렀다. 하나같이 범상치 않은 기세를 풍기는 무인들이 십여 명이 포위하니 그 기세가 실로 살벌했다.
‘무림맹?’
갑작스러운 상황에 종리연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그녀는 평정을 회복하고 장규호를 향해 달려갔다. 그 뒤를 방진보가 따랐다.
“잠깐만요. 이게 무슨 짓인가요?”
그녀가 양팔을 벌린 채 장규호의 앞을 가로막았다.
종리연의 갑작스러운 난입에 무인들이 잠시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내 노기를 피워 올리며 말했다.
“그는 무림맹의 검문을 받지 않고 달아난 죄인이다.”
“죄인?”
“그렇다.”
무인들 중 우두머리로 보이는 자가 당당하게 말했다.
종리연이 그의 얼굴을 똑바로 보며 물었다.
“당신은 누군가요?”
“나는 무림맹 외당 오 조장인 임합추다.”
“임합추? 무림맹의 외당 조장이란 말인가요?”
“그렇다.”
“무림맹의 외당이 화음현에는 무슨 일이죠?”
종리연의 도발적인 말에 임합추의 인상이 일그러졌다. 종리연에게서 풍기는 분위기가 범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대는 누군가?”
“내가 먼저 물었잖아요. 화음현에 무림맹이 어쩐 일인가요?”
“말했잖느냐. 죄인을 잡으러 왔다고.”
“죄인? 누가요?”
“이자 말이다.”
임합추가 손가락으로 장규호를 가리켰다. 그러자 장규호가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나는 죄인이 아니오.”
“그런데 왜 도주한단 말이냐?”
“당신들이 억지를 부려 짐을 빼앗으려 하지 않았소?”
“억지라니? 감히 무림맹의 행사를 부정하는 것이냐?”
순간 임합추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러자 장규호가 더욱 목소리를 높였다.
“나는 이미 당신들에게 충분히 설명했소. 이것은 화산파로 들어가는 물건이라고. 그리고 당신들도 약초임을 확인하지 않았소. 그런데 왜 압수하려는 것이오?”
“네놈이 화산파의 제자임을 어찌 믿는단 말이냐?”
임합추의 볼살이 푸들푸들 떨리고 있었다.
“나는 분명 화산파의 속가제자요.”
“개나 소나 속가제자라고 하지. 네놈이 몰락한 화산파의 속가제자인지 내가 어찌 안단 말이냐? 그걸 확인하려는데 도주하다니. 네놈의 방자함을 내 도저히 용서할 수 없구나.”
임합추의 눈이 어느새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종리연은 어떻게 된 사정인지 대번에 알아차렸다.
“그는 화산파의 속가제자가 분명해요.”
“흥! 그걸 내가 어떻게 믿느냐?”
“나는 종리연이에요. 부끄럽지만 신의라는 별호로 불리고 있어요.”
“신……의 종리연?”
임합추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그도 강호인이었다. 강호인 이상 신의 종리연을 모를 수가 없었다.
“정말 신의인가?”
“맞아요. 그녀가 바로 신의 종리연이에요.”
이제까지 조용히 있던 방진보가 나서 말했다. 그러자 임합추가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나는 믿을 수 없다.”
“당신이 믿든 안 믿든 상관없어요. 중요한 것은 저 사람이 화산파의 속가제자라는 것이고, 당신들은 감히 화산파의 영역에 들어와서 화산파의 제자를 핍박하고 있다는 거죠.”
“이익!”
“비록 화산파가 봉문을 하고 있다지만 안마당이나 다름없는 이곳에서 무림맹이 쳐들어와 속가제자를 잡아가려는 것은 월권 아닌가요?”
종리연의 목소리는 무척이나 조곤조곤했다. 하지만 또렷하게 울려 퍼졌다. 인근에서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이 들을 정도로.
임합추의 눈에 언뜻 당혹한 빛이 스쳐 지나갔다.
그도 자신이 억지를 부린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역시 명령을 받고 하는 일이었다. 이유는 모르지만 위에서 명령이 내려온 이상 따를 수밖에 없었다.
화산파를 흔들어라.
그것이 임합추가 위에서 받은 명령이었다.
그가 목소리를 높였다.
“이렇게 된 이상 모두 무림맹으로 가서 시시비비를 가리자. 모두 나를 따라와라.”
“무림맹으로 간다구요? 섬서성에서 수천 리 떨어진 호남성으로 가자는 건가요?”
“그렇다.”
“당신은 정말 후안무치하군요. 기껏 화음현에 들어와서 한다는 소리가 그건가요?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요?”
“감히 무림맹의 권위를 무시하는 것이냐?”
“누가 무림맹의 권위를 무시한단 말인가요? 오히려 화산파의 권위를 무시하는 것은 당신이에요. 아무리 화산파가 봉문을 했다고 해도 이건 정도가 지나치죠. 혹시 이곳에 들어오기 전에 화산파에 공문을 보냈나요? 그게 아니라면 당신은 무단으로 화산파의 영역에 침입한 거예요.”
“계집이 헛소리가 대단하구나. 누가 들으면 진짜인 줄 알겠구나. 더 이상 들을 것도 없다. 저 계집까지 모조리 무림맹으로 압송해 간다. 제압하라.”
“옛!”
이제까지 조용히 있던 수하들이 대답과 함께 무기를 꺼내 들었다. 그들이 무기를 겨눈 채 종리연과 장규호 등을 압박해 왔다.
그때였다.
“이놈들아! 네놈들이 뭔데 신의 아가씨에게 검을 겨눈단 말이냐?”
갑자기 노성과 함께 누군가 그들 사이에 뛰어들었다.
머리가 새하얗게 센 노인은 바로 장규호의 아비인 장 노인이었다. 그가 나서자 이제까지 지켜만 보던 사람들이 앞으로 나섰다.
“무림맹이 해 준 것이 뭐가 있다고 화음현에서 행패냐?”
“그분들은 화산파의 제자들이 맞다. 그들에게 손대지 마라.”
한두 명이 아니었다. 순식간에 종리연과 장규호 등을 중심으로 인간의 벽이 만들어졌다.
그에 임합추와 외당 무인들이 당황했다. 설마 이렇게 많은 이들이 나설 줄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들을 바라보는 화음현 주민들의 눈엔 적개심이 가득했다. 평생을 화산의 그늘 아래 살아온 이들이었다.
비록 지금은 화산파가 봉문을 했다지만, 화산파에 대한 자부심만큼은 하나도 줄어들지 않았다.
화산파가 건재하던 시절에는 그 어떤 문파도 화음현에서 이리 난동을 피우지 못했다. 설령 무림맹이라 할지라도 예의를 갖춰야 했다.
그 시절을 기억하기에 그들의 분노는 무척이나 컸다.
임합추는 순간 짜증이 왈칵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
“감히!”
이들의 분노가 정당한 것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또한 자신에게도 피치 못할 이유라는 것이 있었다. 하지만 저런 비루한 무지렁이들에게까지 구차하게 설명해 주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가 사람들에게 소리쳤다.
“모두 물러나지 않으면 무림맹의 이름으로 처단하겠다.”
“흥!”
하지만 누구 한 명 물러서는 이는 없었다. 그에 임합추의 얼굴이 더욱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가 수하들에게 소리쳤다.
“저놈들도 공범이다. 모두 단단히 혼내 주거라.”
“예!”
외당 무인들이 살기를 피워 올렸다.
비록 많은 사람들이 앞을 가로막고 있지만 그들은 하나도 겁나지 않았다. 그들은 모두 일정 경지 이상의 무공을 익힌 무인들이었다. 그들은 여타 대문파의 제자들과 겨뤄도 손색이 없을 거라고 자부하고 있었다. 하물며 무공을 익히지 않은 사람들 따위야 아무리 많이 있어도 겁이 날 리 만무했다.
“쳐랏!”
“챠앗!”
그들이 앞을 가로막은 사람들을 향해 무공을 펼쳤다. 죽일 의도는 없었다. 하지만 팔다리 하나는 부러트려 단단히 혼을 낼 작정이었다.
쉬아악!
그들의 검과 도가 허공을 날카롭게 가르는 그 순간이었다.
“하! 정말 어이가 없네.”
나직한 목소리와 함께 방진보가 그들 사이로 뛰어들었다. 갑작스러운 난입에 놀란 외당 무사가 소리쳤다.
“뭐, 뭐냐?”
“뭐긴 뭡니까? 화산파의 대숙수님이십니다.”
퉁명스러운 대답과 방진보의 주먹이 날아왔다.
순간 외당 무사는 허공에 매화가 흩날리는 듯한 환영을 보았다.
퍽!
“커헉!”
비명과 함께 그가 튕겨 나갔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어이쿠!”
“허억!”
비명과 함께 외당 무사들이 우수수 쓰러졌다.
바닥에 쓰러지기 직전 그들은 하나같이 허공에 피어나는 매화의 환영을 보았다.
매화권(梅花拳)이었다.
화산파의 본산제자들이라면 누구나 익히는 기본 권공이 바로 매화권이었다. 하지만 그 위력은 결코 약하지 않았다.
바람에 날리는 매화 잎처럼 가벼워 보이지만, 철퇴만큼이나 묵직한 위력을 갖고 있는 것이 매화권이었다.
방진보가 펼치는 매화권은 그 위력을 제대로 살리고 있었다.
순식간에 대여섯 명의 외당 무인들이 바닥에 나뒹굴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기세등등하게 사람들에게 달려들었던 외당 무인들이 겁을 집어먹고 주춤했다.
임합추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네놈 누구냐?”
“말했잖아요. 화산파의 대숙수라고.”
“감히 날 놀리는 거냐? 숙수 따위가 어찌 무공을…….”
“숙수라고 무공을 익히지 말라는 법 있나요?”
방진보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화산파는 방진보에게 무공을 전수했다.
담호와 현소 진인은 방진보가 익힌 오행군자공을 화산파의 무공을 익히기 적합하게 뜯어고쳤다. 덕분에 방진보는 화산파의 무공을 제약 없이 익힐 수 있었다.
임합추의 등 뒤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그 역시 무공을 익힌 무인이었다. 방진보가 펼친 매화권이 화산파의 정통 일맥을 계승했다는 것을 모를 수가 없었다.
‘칫!’
그는 점점 더 일이 커진다고 생각했다. 허나 기호지세(騎虎之勢)였다. 이미 호랑이 등에 올라탔다. 이제 와서 물러날 수는 없었다.
그가 소리를 높였다.
“화산파가 감히 무림맹의 행사를 방해하려는 것이냐?”
“자꾸 똑같은 말을 반복하는데요, 아저씨! 화산파의 영역에 함부로 침입해서 난리를 치는 것은 그쪽이거든요.”
“시끄럽다.”
“하여간 귀가 있으면 뭐해? 들으려고 하질 않는데.”
“감히 나를 모욕하다니 용서하지 않겠다.”
임합추가 검을 뽑으며 달려들었다.
쉬악!
그의 검이 날카롭게 허공을 갈랐다. 그 안에 담긴 살기가 피부로 전해져 왔다.
방진보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었다. 상대의 살의가 진짜였기 때문이다. 임합추는 정말로 자신을 죽이려 하고 있었다.
순간 방진보의 눈빛이 변했다.
이제까지 일은 봐줄 수 있었다. 하지만 상대가 정말 살의를 가지고 죽이려 한다면 절대 용서할 수 없었다.
살의를 가지고 덤벼드는 자에겐 같은 살의를 가지고 대응해야 한다.
그것이 담호에게 그가 배운 소중한 교훈이었다.
“챠앗!”
그의 허리에 걸려 있던 작달막한 도가 뽑혔다. 주방에서 사용하는 주도였다.
쉬가악!
주도에서 도기가 폭죽처럼 연이어 피어올랐다. 그리고 도기는 매화를 피워 냈다.
임합추의 눈이 크게 치떠졌다.
“매, 매화검법?”
검으로 매화를 만들어 내는 검법은 천하에 단 하나밖에 없었다.
이십사수매화검(二十四手梅花劍).
오직 매화검수들만이 익힐 수 있다는 그 검법을 방진보는 도로 펼쳐 냈다. 그 위력은 결코 본래의 이십사수매화검에 뒤지지 않았다.
카카카캉!
“크헉!”
처음 몇 번은 매화를 막았던 임합추가 결국 비명과 함께 뒤로 나가떨어졌다. 그의 가슴과 옆구리엔 긴 자상이 생겨나 피가 철철 흐르고 있었다.
그나마 방진보가 손속에 사정을 두었기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진즉에 숨이 끊어졌을 것이다.
“크으윽!”
임합추의 입에서 신음성이 흘러나왔다.
그 모습에 그나마 멀쩡히 서 있는 외당 무인들이 얼어 버렸다. 설마 어리디어린 소년이 단 일수에 그들의 조장인 임합추를 쓰러트릴 줄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말도 안 돼.”
“조장이 단 일합에…….”
스스로를 화산파의 대숙수라고 부르는 소년의 신위가 그들의 가슴을 짓누르고 있었다.
방진보가 그들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화산은 당신들이 우습게 볼 정도로 약하지도, 무르지도 않아요. 그 누구도 화산을 능멸하는 것은 절대 용서하지 않아요. 설령 대상이 무림맹일지라도.”
“으으!”
“이들을 데리고 썩 물러가요.”
방진보의 음성이 쩌렁쩌렁하게 화음현에 울려 퍼졌다.
외당무인들은 쓰러진 자들을 부축해 서둘러 화음현을 빠져나갔다. 그런 그들의 뇌리에 방진보의 이름 석 자가 깊이 각인되는 순간이었다.
무림맹의 무인들뿐만이 아니었다. 화음현에 은밀히 들어와 있는 무인들 전부가 방진보의 이름을 되새기고 있었다.
화산파의 대숙수 방진보.
드디어 무림사의 전면에 이름을 드러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