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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권마-309화 (309/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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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9화 3장. 호랑이 굴이 따로 없다(3)

“으음!”

등관열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그의 등 뒤로 서 있는 십여 명의 무인들도 그와 똑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만큼 멀리서 바라본 소년의 무위가 충격적이었기 때문이다.

“숙수라고?”

소년은 스스로를 화산파의 대숙수라고 밝혔다. 그리고 그가 보여 준 무위는 그야말로 충격적이었다.

그가 상대한 이는 무림맹의 외당 소속 무인들이었다. 무림맹의 외당이라 하면 그래도 어지간한 문파들의 제자는 감히 덤빌 엄두를 내지 못할 정도로 단련된 정예들이었다.

그런 정예들이 합공을 하고서도 참패를 당했다. 그만큼 소년의 무위가 뛰어나다는 뜻이었다.

“이름이 방진보라고 했나?”

등관열은 그 이름을 몇 번이나 되뇌며 확실히 각인시켰다. 반드시 기억해야 할 이름이었다. 그만큼 방진보의 무력은 뛰어났다.

“저런 자가 매화검수가 아니라 숙수란 말이지? 도대체 화산파 내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그는 눈앞에서 벌어진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일개 숙수가 무림맹의 정예를 이렇게 압도하는 것은 그의 상식으론 납득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일단 맹에 보고해야 한다. 상운, 당장 전서구를 띄워라.”

“…….”

평소라면 즉각 대답을 해야 할 수하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에 등관열이 다시 한 번 불렀다.

“상운.”

“…….”

그래도 대답이 들려오지 않자 등관열이 인상을 팍 쓰며 뒤를 돌아봤다. 그 순간 그의 표정이 그대로 굳었다.

“어, 언제?”

등관열의 목소리가 절로 떨려나왔다.

그의 부하들이 석상처럼 우두커니 서 있었다. 움직이고 싶지 않아서 그러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의 목을 겨누고 있는 검 때문이었다. 십여 명의 도사들이 언제부턴가 검으로 부하들을 겨누고 있는 것이다.

꿀꺽!

등관열의 수하들은 입을 열지도 못하고 마른침만 삼키고 있었다. 그런 그들의 얼굴에는 두려운 기색이 역력했다.

등관열이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그대들은 누군가? 감히 무림맹의 무인들을 핍박하다니 두렵지도 않은가?”

“역시 무림맹이었군.”

그때 도사들 사이로 수장으로 보이는 도사가 걸어 나왔다. 그는 바로 매화검수들을 이끄는 원명이었다. 그리고 무림맹의 무인들을 제압한 도사들은 바로 매화검수들이었다.

그들은 방진보와 종리연을 암중에서 보호하다가 등관열과 수하들을 발견하고 은밀히 접근해 제압한 것이다.

‘제기랄!’

등관열이 입술을 질겅 깨물었다.

그는 무림맹의 비밀 정보 조직인 암운 삼 조장이었다. 이 조장이었던 조원명 대신 이곳을 감시하기 위해 파견된 것이다.

외당 조장인 임합추가 난동을 부린 것은 그의 명 때문이었다. 화산파의 전력과 대응을 살펴보기 위해 일부러 화음현으로 통하는 길목을 막고 괴롭힌 것이다.

본래 그는 화산파의 대응과 전력을 파악한 뒤 몰래 이곳을 빠져나갈 생각이었다.

임합추가 화음현 내에서 난동을 피웠다고 하지만 검문을 피해 도주한 자를 추적해 왔다는 명분이 있었다. 그런데 화산파의 대응은 그의 예상을 훌쩍 뛰어넘었다.

설마 자신과 암운이 이렇게 쉽게 화산파의 도사들에게 제압을 당할 줄은 몰랐다.

‘이자들은 매화검수가 분명하다. 그런데 매화검수가 이렇게 뛰어났던가?’

그는 잠시 자신들과 매화검수들의 무력을 가늠해 봤다. 여차하면 무력으로 상대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내 포기하고 말았다.

낌새도 눈치채지 못하고 제압을 당했다. 그만큼 무력의 격차가 현격하다는 뜻이었다. 반항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원명이 등관열을 향해 걸어왔다.

“무림맹이 왜 화음현에서 이런 짓을 벌이는 것인가?”

“우리는…….”

“잊었는가? 비록 봉문을 택했지만 우리 역시 무림맹의 일원이다. 그런데 동맹의 영역에서 이런 비겁한 짓을 벌이다니. 이것이 무림맹의 방식인가?”

“크윽!”

“대답하라. 누구의 명인가? 맹주의 명인가?”

등관열은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여기서 군사인 남궁창의 명이라고 대답했다가는 정말 일이 커지기 때문이다.

순간적으로 맹렬하게 머리를 굴리던 그가 가장 평이한 답을 내놨다.

“맹의 뜻이오.”

“맹?”

“그렇소!”

“무림맹은 화산파를 우습게 보는 모양이군. 감히 화산파의 영역에서 이따위 짓을 벌이다니.”

원명의 얼굴에 노기가 가득했다.

비록 몰락해서 어쩔 수 없이 봉문을 하고 있다고 하지만, 화산파의 제자라는 자부심이 어디로 간 것은 아니었다. 그는 누구보다 화산파를 사랑했고, 그에 대한 자부심도 엄청났다.

그 때문에 감히 화산파의 영역에서 이따위 짓을 벌인 무림맹에 대한 분노가 클 수밖에 없었다.

등관열이 필사적으로 변명했다.

“무림맹은 결코 화산파를 우습게 보지 않소.”

“그럼 왜 이따위 짓을 벌인 것인가? 화산파가 봉문을 하였다고 그리 우습게 보였던가?”

“그게 아니오. 우리는 단지 마교의 준동을 감시하기 위해…….”

“씨도 먹히지 않을 소리 그만하라. 더 이상 화산파를 능욕하면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분노한 원명의 사자후가 일대를 휩쓸었다.

순간 등관열의 안색이 싹 변했다. 원명의 사자후에 담긴 심후한 내공을 느꼈기 때문이다.

전성기 화산파의 매화검수들에게도 느껴 보지 못한 엄청난 내공이었다.

‘이 정도의 내공이라면 능히 무림맹의 오행대주(五行隊主)과 비견될 터. 어떻게 한낱 매화검수가 이런 심후한 내공을…….’

오행대는 무림맹의 최정예 조직이었다.

역사가 짧은 무림맹의 대표 조직이다 보니 아무래도 더욱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 많은 영약과 비급이 투입되었고, 그 덕에 다섯 명의 대주는 무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지금 눈앞에 서 있는 원명에게서 그들과 비등한 내력이 느껴졌다.

등관열로서는 믿기 힘든 사실이었다.

원명의 도명이나 내력은 알지 못했지만, 나이로 미뤄 봤을 때 그가 옛 화산파의 이대제자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 정도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화산파의 이대제자? 아니지. 장로들이 모두 죽고 경 자 배의 새로운 장문인이 탄생했다고 하니 이제 일대제자라고 불러야겠지. 허나 그렇다고 해도 이건 너무 하지 않은가? 갓 일대제자가 된 이의 내공이 이 정도라니. 도대체 화산파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가?’

원명이 매화신단을 복용해 내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그로서는 당연한 의문이었다.

원명을 비롯한 매화검수들은 모두 매화신단을 복용해 내력뿐 아니라 무공도 엄청난 성취를 이뤘다. 지금 그들의 무위는 오히려 예전의 매화검수들을 아득히 능가하고 있었다.

그 안에 담긴 사정을 알지 못하는 등관열의 머리로는 죽었다 깨어나도 알 수 없는 사실이었다.

원명의 노기 어린 시선을 감당하기가 힘이 들었다. 그래서 등관열은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입이 열 개 있어도 변명할 수 없는 상황이기도 했지만, 원명의 기세에 눌렸기 때문이기도 했다.

“오늘 벌어진 일은 절대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이에 대한 제대로 된 사죄가 없을 시 화산파는 무림맹에서 탈퇴를 할 수도 있음을 명심하라.”

“타, 탈퇴는…….”

“왜 못 할 것 같은가? 어차피 무림맹에서도 다시 회생할 가능성이 없다고 보고 본문을 버리지 않았던가?”

“버린 것이 아닙니다.”

“그럼 왜 이제까지 그 어떤 지원도 하지 않았는가?”

“그것은 화산파가 봉문을 해서…….”

“흥! 개도 믿지 않을 소리를 하는구나.”

원명이 코웃음을 쳤다.

지원을 하려 했으면 지난 삼 년 동안 얼마든지 할 수 있었던 무림맹이었다. 그런데도 철저하게 방관했다.

화산파의 제자들은 모두 그 사실을 가슴에 담아 두고 있었다.

분(忿)을 누르고 노(怒)를 삭이면서 그렇게 숙성시키고 있는 것이다.

“오늘은 보내 줄 것이다. 너희 일당들을 데리고 섬서성을 나가라. 그렇지 않으면 응당한 대가를 치르게 될 터이니.”

“아, 알겠습니다.”

“검문을 명분으로 길목에 배치한 자들 역시 모조리 철수시키거라.”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리고 무림맹에도 이 사실을 확실히 알려라. 무림맹의 사과와 확실한 재발 방지 약속이 없을 시 본문은 무림맹을 탈퇴할 것이다.”

“확실히 전하겠습니다.”

등관열이 고개를 숙였다.

그는 이미 사태가 자신의 손을 벗어났음을 알고 있었다. 자신이 어떻게 무마를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무림맹의 수뇌부가 결정하고 움직여야 할 일이었다.

‘화산파가 무림맹을 탈퇴하게 둬선 안 돼. 화산파에는 단순히 권마만 있는 것이 아니야.’

권마가 강하다고 하지만 그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분명히 있다. 하지만 거기에 부활한 화산파의 힘이 더해진다면 한계는 사라진다.

등관열은 그 사실을 확실히 인지했다.

그때 원명이 말했다.

“가라. 그리고 똑똑히 전하라.”

매화검수들이 겨누고 있던 검을 거둬들였다.

“휴!”

“아아!”

그제야 등관열의 수하들이 억눌린 숨을 터트리며 목을 만졌다. 그들의 얼굴엔 공포심이 은은하게 어려 있었다.

등관열과 수하들은 임합추와 외당 무사들을 데리고 화음현을 빠져나갔다. 힘없이 걸음을 옮기는 그들의 어깨는 축 늘어져 있었다.

원명은 서늘한 시선으로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때 매화검수 중 한 명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사형, 정말 무림맹을 탈퇴할 생각이십니까?”

“그런 엄청난 일을 내가 어떻게 결정하냐?”

“방금 전에는…….”

“그냥 사숙이면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실까 해서 해 본 말이야. 어떻게 받아들이는가는 저들의 생각에 달렸지.”

“아!”

순간 매화검수들이 납득했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매화검수 중 한 명인 원화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사숙이 계셨으면 저들 모두 죽었겠죠.”

“으음!”

매화검수들이 무의식중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아는 담호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에겐 무림맹이란 이름 따위는 길가에 굴러다니는 돌멩이만큼도 못했다.

원명이 저 멀리 보이는 방진보와 종리연을 보며 중얼거렸다.

“그나저나 사숙은 언제쯤 돌아오시려나?”

***

담호는 흘러가는 강물을 무심히 바라보았다.

그는 흑귀와 함께 운마도강선을 탄 채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고 있었다.

검율천과 음유경 등은 끝내 만나지 못했다. 하지만 담호는 그들의 행방을 궁금해하지 않았다. 살아만 있다면 언젠가 자신을 찾아올 인물들이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담호는 운마도강선의 기둥에 편하게 등을 기댄 채 전신을 이완시키고 있었다. 아직도 그의 전신에 입은 상처는 낫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무서운 속도로 회복을 하고 있었다.

담호의 회복력과 체력은 범인이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영역에 걸쳐 있었다. 인간의 육체를 극한까지 단련시키면 어디까지 가능할 수 있는지 보여 주고 있었다.

담호는 느리게 호흡했다. 그의 들숨과 날숨 사이의 간격은 무척이나 넓었다. 마치 거북이가 물속에서 호흡을 하듯 그 역시 아주 느리게 호흡했다.

호흡이 길어질수록 그의 상처는 눈에 띄게 좋아지고 있었다. 그야말로 무시무시한 회복력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담호가 갑자기 고개를 들어 전면을 바라봤다. 그런 그의 눈빛이 무섭게 일렁이고 있었다.

운마도강선의 선수 저 멀리 거대한 배가 보였다. 한눈에 봐도 일반적인 배들과 차원을 달리하는 거대함이 돋보였다. 하지만 담호가 주목한 것은 그런 배의 외향적인 모습 때문이 아니었다. 배의 선수에 서 있는 붉은 면사의 여인 때문이었다.

굴곡진 몸매와 서릿발 같은 기도가 유독 인상적인 여인. 바로 마모 단운향이었다. 목리에서 도주했던 단운향이 다시 나타난 것이다.

“권마!”

그녀의 목소리가 카랑카랑하게 강가에 울려 퍼졌다. 그녀의 외침에 갈대밭이 출렁였다.

담호가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단운향이 더욱 목청을 높였다.

“권마! 네가 무사히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을 줄 알았다면 오산이다.”

그녀의 목소리에 담긴 가공할 살기에 뱃사공들이 넙죽 엎드려 벌벌 떨었다.

담호는 말없이 단운향을 바라봤다.

그 무심한 눈빛과 침묵이 단운향을 더욱 수치스럽게 만들었다.

석무강이 담호에게 죽임을 당할 때 그녀는 도주를 택했다. 담호라는 존재에게 공포를 느꼈기 때문이다.

겨우 목숨을 건졌지만 그때 느꼈던 수치심과 공포심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제야 단운향은 깨달았다.

담호라는 존재를 완전히 말살하지 않고선 자신이 그의 잔향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다는 사실을. 그래서 그녀는 되돌아왔다.

거대한 배 위로 여인들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단운향을 따르는 이들이었다.

하나같이 살벌한 기세를 풍기는 여인들이 수십 명이 넘었지만 담호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그에 수치심을 느낀 단운향이 손을 들었다. 그러자 강가 갈대밭에서 녹의를 입은 무인들이 불쑥 불쑥 모습을 드러냈다.

순간 담호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당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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