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1
311화 4장. 혈풍은 사천성에서 불어온다(2)
쾅!
담호의 발이 배의 갑판을 박찼다. 순간 커다란 배가 마치 해일에 휩쓸린 것처럼 요동쳤다. 그 때문에 배 위에 있던 사람들이 균형을 잃고 비틀거려야 했다.
쐐애액!
담호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마치 충차처럼 맹렬한 돌진에 주위의 공기가 훅 하고 빨려 왔다. 단운향과 당군양의 머리카락이 미친 듯이 펄럭였다. 그러나 두 사람은 당황하지 않고 배 밖으로 몸을 날렸다. 그것은 다른 부하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일제히 몸을 날렸다.
허공에 몸을 띄운 단운향이 외쳤다.
“지금!”
콰콰쾅!
그 순간 이제까지 그들이 타고 있던 배가 폭발을 일으켰다. 안에 숨겨 두었던 벽력탄을 터트린 것이다.
커다란 배가 순식간에 화염에 휩싸였고, 연쇄 폭발을 일으켰다. 시뻘건 화염과 함께 배의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단운향과 당군양 등이 수면 위로 착지하며 그 광경을 바라봤다. 그들이 착지하는 곳에는 어느새 조그만 쪽배가 대기하고 있었다.
쪽배에 착지한 그들은 불에 휩싸여 침몰하는 배를 바라보면서도 경계를 풀지 않았다. 그들의 상대는 권마였다. 천하에서 가장 포악하고 위험한 자.
어느새 그들 주위로 수십 척의 쪽배가 모여들었다. 쪽배에는 단운향의 수하들과 당문의 무인들이 타고 있었다.
퓨퓨퓨퓩!
그들이 혈루관혼침을 불타는 배를 향해 발사했다.
셀 수도 없이 많은 은침이 붉은 화마를 뚫고 배에 박혀 들었다.
“날개가 달렸더라도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다, 권마!”
단운향의 얼굴이 타오르는 불길에 붉게 물들었다. 일렁이는 음영은 그녀의 표정을 더욱 섬뜩하게 만들었다.
당군양은 그 곁에서 미소를 지었다. 천하에 적수를 찾기 힘들다는 절대의 마인을 자신의 손으로 사냥한다는 사실에 그는 환희를 느끼고 있었다.
‘권마만 제거하면 사천성에서 우리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드디어 당문이 좁은 사천성을 벗어나 천하를 웅비하는 순간이었다. 담호의 죽음은 그 서막에 불과했다.
그의 미소가 짙어지는 그 순간이었다.
위이잉!
쪽배를 타고 강 위에 서 있던 사람들은 마치 수만 마리의 벌 떼가 일제히 날갯짓을 하는 듯한 소음을 들었다.
처음엔 잘못 들은 줄 알았다. 하지만 소음이 점점 커져 가자 사람들은 자신들이 잘못 들은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조심…… 놈이…….”
쐐애액!
당군양이 경호성을 내뱉는 순간 불길을 뚫고 기다란 물체가 튀어나왔다. 마치 승천을 하는 용처럼 꿈틀거리며 수면을 휩쓸어 가는 기다란 물체는 바로 배를 고정시킬 때 쓰는 닻줄이었다.
불이 붙은 닻줄은 마치 빗자루처럼 강 수면을 휩쓸었다.
콰가가각!
“크헉!”
“피해!”
닻줄에 강타당한 쪽배들이 수수깡처럼 부서지고, 그 위에 타고 있던 무인들이 메뚜기처럼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놈이다!”
단운향과 당군양이 허공으로 몸을 띄우며 소리쳤다.
푸화학!
그 순간 담호가 불길을 뚫고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손에는 기다란 닻줄이 들려 있었다. 불이 붙은 닻줄은 그의 손에서 미친 듯이 요동쳤다.
닻줄에 강타당한 무인들은 뼈가 부서지고, 근육이 짓이겨진 채 강에 떨어졌다. 운이 좋은 자들은 부서진 쪽배의 파편을 잡고 살 수 있었지만, 그렇지 못한 자들은 치명적인 상처를 입은 채 익사했다.
타탁!
담호가 수면 위에 떠 있는 배의 파편을 밟으며 단운향을 향해 달려왔다.
언제나 걸치고 있던 피풍의는 곳곳이 찢겨진 채 불이 붙어 있었고, 담호의 전신에도 폭발에 휩쓸린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벽력탄의 파편이 옆구리에 꽂힌 채 선혈이 흘러내리고 있었고, 어깨에도 끔찍한 상처가 입을 벌리고 있었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즉사했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처를 입고도 담호는 야수처럼 달려오고 있었다.
“으음!”
“저 악귀 같은…….”
단운향과 당군양은 모골이 송연해져 옴을 느꼈다.
그들은 지옥의 밑바닥에서 기어 올라온 짐승이 아가리를 벌린 채 달려오는 환영을 보았다.
벽력탄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지만, 담호의 미친 질주를 멈추게 할 수는 없었다.
쉬아악!
불붙은 닻줄이 그들을 향해 날아왔다.
“하아앗!”
“크압!”
단운향과 당군양은 동시에 절초를 펼쳐 몸을 보호했다. 단운향은 허리에 차고 있던 붉은 채대를 채찍처럼 휘둘렀고, 당군양은 당문의 비전 공부 중 하나인 혈령충독수(血靈蟲毒手)를 펼쳤다.
콰드득!
채대와 닻줄이 뱀처럼 엉켜 요동쳤다. 채대에도 순식간에 불이 옮겨 붙었지만 단운향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스스로를 마모(魔母)라고 칭할 만큼 그녀는 무공에 절대적인 자신이 있었다. 비록 지하 동혈에서는 담호의 위세에 짓눌려 도주했지만, 그녀 역시 마교 내에서 내로라하는 고수였다.
단운향은 순간적이나마 담호의 공격을 저지했고, 당군양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혈령충독수의 절초를 펼쳐 담호를 공격했다.
콰앙!
그의 손이 담호의 어깨에 작렬했다.
순간 당군양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마치 철판을 후려친 것 같은 통증이 손에서 느껴졌기 때문이다.
“무슨?”
담호의 어깨를 후려쳤던 손바닥뼈가 부서졌다는 것을 보지 않고도 알 수 있었다. 담호가 공격을 받는 순간 초진동 방호 기공인 방패를 펼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군양도 마냥 손해를 본 것은 아니었다. 그가 펼친 혈령충독수엔 가공할 독기가 담겨 있었다. 일단 혈령충독수에 격중당한 이상 담호 역시 무사할 수는 없었다.
혈령충독수의 독기를 해독하려면 반드시 당문의 비약이 필요했다. 내공으로 중독을 어느 정도 늦출 수는 있지만 완전히 해독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실제로 담호의 안색이 순식간에 흑빛으로 변했다. 독기가 심장을 공격했기 때문이다.
단순히 당군양의 혈령충독수 때문만이 아니었다. 언제부턴가 수면 위로 녹색 안개가 일렁이고 있었다. 당문의 무인들이 독연을 터트린 것이다.
그들은 이미 해약을 복용하고 있었기에 독기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
십리절혼독(十里絶魂毒), 녹화혈산산(盝和血散酸)과 같은 절독들이 강에 뿌려졌다.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푸르기만 하던 강은 순식간에 독수로 변했다.
물속을 자유롭게 헤엄치던 물고기들이 순식간에 씨 몰살을 당해 수면 위로 둥둥 떠올랐다.
담호가 단운향의 채대와 얽혀 있는 닻줄을 버리고 불씨가 옮겨 붙은 피풍의를 움켜잡았다.
설마 담호가 닻줄을 버릴 줄 예상하지 못했던 단운향이 균형을 찾지 못하고 잠시 비틀거렸고, 같은 배에 타고 있던 당군양도 균형을 잡기 위해 애를 써야 했다.
화하학!
그 순간 담호가 피풍의를 당군양을 향해 집어던졌다. 당군양은 순식간에 시야가 어두워지는 것을 느끼고 당황했다. 피풍의가 그의 상체를 완전히 덮은 것이다.
쾅!
그 순간 담호의 파성추가 그의 몸통에 격중했다.
“커억!”
피풍의 속에서 당군양이 피를 토했다. 마치 거대한 쇠망치로 두드려 맞은 듯한 고통이 그를 덮쳤다. 하지만 고통은 이제 겨우 시작에 불과했다.
콰콰콰각!
피풍의에 덮인 그의 몸통 위로 담호의 주먹이 연이어 쏟아졌다.
뼈가 부러지고, 근육이 짓이겨졌다. 혈관이 터지고, 힘줄이 끊어졌다. 당군양을 인간답게 만들던 모든 것이 과자처럼 부서지고 있었다.
쾅!
최후의 일격이 작렬한 순간 당군양의 몸은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맥없이 무너져 내렸다.
그것이 당군양의 최후였다.
피풍의에 덮인 당군양은 자신의 죽음을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두 눈에 산 자의 생기는 존재하지 않았다.
당군양의 죽음은 그야말로 순식간에 일어난 재앙이었다. 거대한 재앙 앞에서 단운향과 당문의 고수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겨우 채대와 엉켜 있던 닻줄을 푼 단운향이 치를 떨었다.
“악귀 같은…….”
당문의 수많은 독에 중독되고, 벽력탄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은 채로도 살육을 자행하는 담호의 모습은 도저히 같은 인간으로 보이지 않았다.
“죽여! 죽이라고!”
단운향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이마에 핏대가 서고, 목에도 힘줄이 돋아났다.
두려웠다.
살면서 이처럼 두려웠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담호라는 인간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죽음의 악취가 그녀의 이성을 마비시켰다. 도저히 같은 인간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그 음습한 숨결이 느껴지자 더욱 두려웠다.
단운향의 수하들이 그녀를 구하기 위해 몸을 날렸다. 선녀를 떠올리게 할 만큼 아름다운 여인들이 육탄공세를 펼치는 모습은 처절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그 어떤 남자도 여인들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면 마음이 흔들릴 수밖에 없을 터였다. 하지만 담호라는 인간은 그녀들이 알고 있는 여타의 인간과는 궤를 달리하는 존재였다.
적은 적이다.
적에게 성별의 여부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콰직!
“꺄아악!”
선녀처럼 아름답던 여인이 비명과 함께 강으로 떨어져 내렸다. 독수에 빠져 허우적거리던 여인은 순식간에 가라앉아 모습을 감췄다.
“제발 죽어랏!”
“으으으!”
당문의 무인들이 절규를 하며 암기를 날렸다.
그들의 눈에 비친 담호는 인간이 아니었다. 그 어떤 상처를 입어도 죽지 않는 괴물이었다.
그들의 얼굴은 피와 눈물, 공포로 얼룩이 져 있었다.
콰가각!
죽음의 바람이 불어왔다. 담호가 몰고 온 바람이었다. 바람에 휩쓸린 당문의 무인들이 처절한 비명과 함께 죽어 나갔다.
그 과정 속에서 담호 역시 더욱 많은 상처를 입었지만, 그의 전진은 결코 멈추지 않았다.
단운향이 몸을 날려 다른 쪽배로 옮겨 탔다. 그러자 담호 역시 그녀가 타고 있는 배로 몸을 날렸다.
피로 얼룩진 얼굴, 그 사이로 광포하게 일렁이는 검은 눈동자. 그 안에 비친 공포에 질린 단운향의 얼굴.
단운향은 그제야 자신이 얼마나 안일하게 생각했는지 깨달았다.
담호는 결코 이 정도 함정과 인원으로 상대할 수 있는 자가 아니었다. 애초 십삼지파 중 하나인 석무강만 믿고 이곳에 온 것이 잘못이었다.
담호와 같은 자를 상대하기 위해선 그에 필적하는 괴물 같은 존재가 필요했다. 하지만 이곳에 그럴 만한 존재가 없었다.
그녀가 그토록 사랑하는 교주도, 흑백사자도, 사대군장도, 칠대마인도…….
그들은 너무 먼 곳에 떨어져 있었다.
‘아니, 있다.’
그 순간 그녀의 머릿속에 섬전처럼 한 가지 사실이 떠올랐다.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그가 있었다.
담호 못지않은, 아니…… 그보다 더 엄청난 괴물이.
그를 떠올리는 순간 단운향은 하늘에서 구원의 동아줄이 내려왔음을 깨달았다.
단운향은 필사적으로 강 밖을 향해 몸을 날렸다.
담호 역시 그녀를 따라 몸을 날렸다. 하지만 당문의 무인들과 단운향의 수하들이 필사적으로 그를 막아섰다.
“목숨으로 그를 막아라.”
단운향이 그런 그들에게 죽음의 명령을 내렸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들이 모두 죽을 거란 사실을. 담호라는 괴물을 겨우 그들만으로 막는다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었으니까. 그 사실을 알면서도 그녀는 죽음의 명령을 내렸다.
단운향에게 수하들은 언제든지 교환할 수 있는 소모품에 불과했다. 그들의 목숨은 그녀에게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녀의 관심은 오로지 자신의 안위뿐이었다. 자신의 목숨만 구할 수 있다면 몇 명이 죽든 상관없었다.
“으아악!”
“크악!”
등 뒤에서 끝없이 죽음의 비명이 들려왔다.
물이 하늘로 치솟고, 담호를 가로막았던 자들이 뒤로 튕겨 나갔다. 아수라 지옥도가 따로 없었다.
담호는 앞을 가로막는 자들을 쓰러트리며 전진했다.
그가 옮겨 타는 쪽배마다 죽음이 찾아왔다.
수면 위로 배를 드러내고 죽은 물고기들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이 똑같은 모습으로 죽어 갔다.
탁!
마침내 담호가 앞을 가로막던 인의 방벽을 뚫고 뭍에 상륙했다. 그런 그의 전신은 피로 흠뻑 젖어 있었고, 입으로는 거친 숨이 흘러나왔다.
그도 인간이었다. 인간인 이상, 지치고 상처 입지 않을 수 없었다.
“흐으!”
상처 입은 짐승의 숨소리가 입술을 비집고 흘러나왔다.
담호가 품에 손을 집어넣었다. 그러자 조그만 목함이 잡혔다. 목함 안에는 구전활독단(求轉活毒丹)이 들어 있었다.
까득!
담호는 구전활독단을 입에 털어 넣은 후 바닥을 바라봤다.
단운향의 발자국이 바닥에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