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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권마-314화 (31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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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4화 5장. 삶의 의미를 죽음에서 찾는다(2)

담호와 천오경, 두 사람이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채 거친 숨을 몰아쉬는 담호와 평온한 안색의 천오경. 두 사람의 모습은 너무나 대조적이었다.

“훅! 훅!”

담호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몸을 일으켰다.

그그극!

뼈마디가 비명을 지르고, 한계 이상으로 혹사당하고 쥐어짜인 근육이 고통을 호소했다. 물고기의 아가미처럼 쩍 벌어진 상처에서는 울컥 선혈이 치솟고 있었다. 그래도 담호는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두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그는 결코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런 담호를 바라보는 천오경의 얼굴엔 의미를 알 수 없는 수많은 표정이 교차하고 있었다.

그가 입을 열었다.

“어떤가? 쓸 만한가?”

“…….”

담호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부러 말을 안 한 게 아니라, 할 수가 없었다. 입을 열었다가는 그대로 피를 토할 것 같았다.

천오경이 그런 담호를 보며 담담히 물었다.

“방금 전 그 초식은 무엇인가?”

“육……합혈산하(六合血山河).”

담호가 들끓는 기혈을 겨우 진정시키며 대답했다. 그러자 천오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름 그대로군. 정말 천지사방이 피로 물드는 듯했어.”

천오경이 문득 자신의 배를 바라봤다.

그곳에서부터 피가 번져 가고 있었다. 옆구리와 가슴, 어깨에도 피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멀쩡하던 그의 모습이 순식간에 피로 물들어 갔다.

쩔그렁!

그의 손에 들려 있던 낫이 바닥에 떨어졌다. 방금 전까지 낫을 들고 있던 손이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나도 참 오만했던 것 같군.”

“…….”

천오경의 목소리가 절로 떨려 나오고 있었다.

순간 그의 몸이 크게 휘청이더니 그대로 주저앉았다. 그리고 피를 왈칵 쏟아 냈다.

겉보기엔 멀쩡한 듯 보이지만 그의 내부는 그야말로 완전히 짓이겨진 상태였다. 내부 장기는 멀쩡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 없을 정도였다.

천오경이 담호를 올려다봤다.

담호는 여전히 무심하고, 냉혹한 표정이었다. 그런데도 그런 모습이 그렇게 잘 어울려 보일 수 없었다.

극한까지 단련된 육체와 수없이 많은 싸움을 통해 예리하게 벼려진 실전 감각, 그리고 무공일도를 향한 집념이 지금의 담호를 만들었다.

독행류는 그런 담호의 모든 것을 집대성한 무공이었다. 살을 주고 뼈를 취하는 심정으로 만든 실전무학의 총요(總要).

담호는 수많은 싸움을 통해 독행류를 더욱 다듬었다. 그의 독행류는 아직도 현재진행형이었다.

반면 천오경의 전검류는 이미 완성된 무공이었다. 오래전에 완성되었기에 당할 적수가 없었고, 천오경도 딱히 그 이상의 성취를 원하지 않았다.

마교 내에서도 그를 존중해 줬고, 그 역시 딱히 마교의 패권을 원하지 않았으니까.

대신 그는 유유자적 신선의 삶을 살았다. 재능이 뛰어난 제자를 거둬 전검류를 물려준 후에는 더더욱 검을 잡을 이유가 없었다.

굳이 무공을 수련하지 않아도 머릿속의 심득은 더욱 깊어졌다. 비록 늙은 육신이지만, 무공을 펼치는 데 무리도 없었다. 그래서 스스로가 무적인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의 전검류는 분명 담호의 독행류를 압도했다.

그만큼 그의 검은 날카로웠고, 신묘한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늙은 육신은 그의 머릿속에 있는 깨달음을 모두 구현하지 못했다.

일반적인 고수와의 싸움이었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담호처럼 실전 감각과 육체적인 능력이 최고조에 달해 있는 무인을 상대하자 미세한 파탄이 일어났다.

깨달음과 육체의 미세한 간극.

담호는 그 틈을 집요하리만큼 파고들었다. 그 어떤 상처를 입어도 멈추지 않고 거리를 좁혀 나갔다. 천오경은 그런 담호의 집념과 광기에 조금이나마 심신이 위축되었다.

그것이 결정적인 패인이었다. 그의 마음에 의심과 두려움이 깃드는 순간 완벽하던 검공에 파탄이 일어났고, 담호가 파고들었다.

그 결과가 바로 이것이었다.

천오경의 내부는 산산이 부서지고, 짓이겨져 있었다. 뼈마디는 모조리 부서져 형체를 유지하고 있는 것조차 기적에 가까웠다.

“깨달음만 믿고 육신의 단련을 게을리했으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르겠군.”

“…….”

“현소에게는 내 죽음을 이야기하지 말게. 그는 분명히 슬퍼할 테니까.”

담호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천오경이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하늘의 뜻은 참 알 수 없군. 교주를 당할 자가 없다 여겼는데, 자네와 같은 자를 화산에 내려보내 균형을 절묘하게 맞추다니. 정말 얄궂어.”

“…….”

문득 천오경이 하늘을 올려다봤다.

화르륵!

그런 그의 몸에서 갑자기 불길이 치솟았다. 삼매진화(三昧眞火)를 운용해 스스로를 불태우는 것이다.

“명존이시여! 이 늙은 육신을 불태워 세상을 밝힐지니, 부디 천상의 광휘를 지상에도 내려 주시옵소서. 무량의 법도로 신교를 인도해 주시고, 당신의 가르침을 세상에 널리 알려 주시옵소서.”

불길은 순식간에 천오경의 몸을 집어삼켰다. 그래도 천오경은 말을 멈추지 않았다.

담호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그는 바로 앞에서 불타오르는 천오경의 모습을 말없이 바라봤다.

담호에게 패했지만, 죽음만큼은 스스로의 의지로 정했다. 그런 천오경의 모습은 장엄하기까지 했다.

“이럴 수가!”

그때 뒤에서 여인의 음성이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니 단운향이 비칠거리면서 다가오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경악과 분노, 체념과 절망이 교차하고 있었다.

천오경이 누군가? 마교 십삼지파 중 하나인 전검류의 전승자였다. 열세 개의 지파 중 겨우 하나라 할 수 있지만, 그 어떤 이도 전검류가 십삼지파 중 최강이라는 사실을 부정하는 이는 존재하지 않았다.

심지어는 마교 최강의 반열에 올라 있는 흑백사자와 사대군장조차도 그를 인정하고 자유롭게 풀어 두지 않았던가?

천오경은 어떤 이들에겐 도달할 수 없는 하늘이었고, 넘지 못할 거대한 벽이었다.

그의 죽음은 단순한 전력의 손실 정도가 아니었다. 한 시대의 몰락을 의미했다.

단운향이 담호를 노려봤다. 그런 그녀의 눈에는 원독의 빛이 가득했다.

“네가 감히…….”

그녀가 품에서 비수를 꺼내 들었다.

암룡비(暗龍匕).

마교의 오래된 보물 중 하나였다.

원래는 명존에게 제(祭)를 지낼 때 산 제물을 잡는 데 사용하던 비수였다. 그만큼 많은 원한이 담겨 있어, 암룡비에 당하면 극도의 고통에 시달리다가 죽는다.

단운향이 암룡비를 겨눈 채 담호에게 다가갔다.

담호는 그 모습을 빤히 보면서도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움직일 수 없었다. 천오경과의 싸움에서 입은 내상과 검상으로 인해 그는 손가락 하나 까닥할 힘도 없었다. 지금 이렇게 서 있는 것조차 기적에 가까웠다.

그 사실을 단운향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암룡비를 앞세워 담호를 죽일 용기를 낸 것이다. 만일 담호가 멀쩡한 상태였다면 그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주했을 것이다.

‘이건 마지막 기회다. 저 포악한 짐승을 죽일 마지막 기회. 명존이 내게 기회를 내려 주었어. 아직 하늘이 신교를 버리지 않았다는 증거다.’

그녀는 이와 같은 기회를 준 명존에게 감사하며 걸음을 옮겼다. 그녀의 예상대로 담호는 물끄러미 그녀를 바라볼 뿐 어떠한 움직임도 없었다.

“호호! 어떻느냐? 죽음을 앞둔 기분이. 권마라는 이름의 포악한 짐승아. 너는 하늘의 뜻을 저버리고 마음껏 세상을 날뛰었지만, 결국 천리를 어겼기에 나의 손에 의해 지옥 밑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

“너는 이제까지 수많은 본교의 고수들을 학살하며 쾌감을 느꼈겠지. 허나 그것도 오늘로 마지막이다. 내가 네 생애 마지막 보는 얼굴일지니 실컷 봐 두거라. 오호호!”

그녀의 날카로운 웃음소리가 하늘높이 울려 퍼졌다. 그런 그녀의 눈은 광기로 물들어 있었다.

담호는 무심한 눈으로 바라봤다.

죽음을 앞두고 있었지만 두렵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수많은 사선을 넘어 이곳까지 왔다.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이들을 죽였고, 그들의 피를 양 주먹에 묻혀 왔다. 그렇기에 언젠가는 자신 역시 그렇게 타인의 제물이 되어 죽을 거라 각오했었다.

‘하지만 혼자 죽지는 않을 것이다.’

이빨이 빠지고, 발톱이 부러져도 짐승은 짐승이었다.

담호 역시 마찬가지였다.

비록 내공 한 점 끌어 올릴 수 없고, 손발을 움직이기도 힘들었지만 결코 혼자 죽을 생각은 없었다.

그의 투쟁심은 아직 꺾이지 않았다.

단운향은 그런 담호의 눈빛을 보며 기가 질렸다. 하지만 그녀도 이 이상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그녀가 담호의 가슴을 향해 암룡비를 뻗었다.

스윽!

암룡비는 너무 쉽게 담호의 살점을 파고들었다. 이제 힘만 주면 암룡비는 단숨에 담호의 심장에 틀어박힐 터였다.

그 순간 담호가 살짝 입을 벌렸다. 단숨에 단운향의 목을 물어뜯을 생각이었다.

그때였다.

쐐액!

한 줄기 날카로운 파공음이 울려 퍼졌다.

째앵!

뒤이어 쇳소리와 함께 담호의 심장을 향해 파고들던 암룡비가 튕겨 나갔다. 조그만 비수가 날아와 암룡비를 튕겨 낸 것이다.

“크윽! 누구냐?”

단운향이 손목을 부여잡고 급히 뒤로 물러났다. 그녀가 다급한 표정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 순간 옷깃이 펄럭이는 소리와 함께 남녀 한 쌍이 단운향과 담호 사이에 뛰어들었다.

“넌?”

단운향의 눈이 크게 떠졌다.

“오랜만이에요.”

하얀 옷을 입은 여인이 입을 열었다. 그러자 단운향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유경? 네가 어떻게?”

“사부!”

결정적인 순간 비수를 날려 단운향의 암룡비를 날려 버린 여인은 바로 음유경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곁에 서 있는 남자는 바로 검율천이었다.

“괜찮나?”

검율천이 급히 담호에게 다가갔다.

그 역시 담호만큼이나 많은 상처를 입은 채 많은 피를 흘리고 있었다. 하지만 담호만큼 위중한 상처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렇기에 아직 굳건히 버틸 수 있는 것이다.

검율천이 급히 품에서 단환 하나를 꺼내 담호의 입안에 넣어주었다.

“복령회혼단(復靈回魂丹)일세. 어서 운공부터 하게.”

그가 담호에게 복용시킨 복령회혼단은 최고의 요상약이었다. 담호는 즉시 가부좌를 틀고 앉아 운공에 들어갔다. 그런 담호의 모습을 보며 단운향이 치를 떨었다.

담호를 죽일 기회를 놓친 그녀가 사나운 시선으로 음유경을 바라봤다.

“이익! 네년이 감히 사부의 행사를 방해하는 것이냐? 감히 기사멸조의 죄를 짓고도 무사할 줄 아는 것이냐?”

“사부!”

“시끄럽다.”

음유경은 소리를 치는 단운향을 안타까움이 가득 담긴 시선으로 바라봤다.

그래도 한때는 사부라고 불렀던 사람이었다. 지금이야 저렇게 독기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지만, 그때는 자애로운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보살펴 주었었다.

야망과 원한이 그녀를 변하게 만들었다. 너무나 변해서 이질적으로 보일 정도였다.

단운향이 이빨을 뿌득 갈며 말했다.

“십병은…… 어떻게 되었느냐? 설마 모두 죽인 거냐?”

그녀의 물음에 음유경이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그들은 도주했어요.”

“도주?”

순간 단운향의 눈에 안도의 빛이 스쳐 지나갔다.

십병은 마교의 미래였다. 만일 그들이 이곳에서 몰살을 당했다면 마교 역시 큰 타격을 입었을 것이다.

단운향이 음유경과 검율천을 향해 온갖 저주를 퍼부었다.

“네 두 연놈들은 반드시 본교를 배반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죽어서도 지옥 밑바닥을 기어 다닐 것이고, 버러지로 환생해 영원히 윤회할 것이다.”

“사부?”

“누가 너의 사부란 말이냐? 나는 너 같은 제자를 둔 적이 없다. 본교를 부정한 년이 어떻게 내 제자가 된단 말이냐?”

단운향은 음유경의 존재 자체를 부정했다.

광기마저 일렁이는 그녀의 모습에 음유경은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유경!”

그녀의 곁으로 검율천이 다가올 때였다. 갑자기 단운향이 몸을 돌려 달아났다.

“아!”

예상치 못한 단운향의 행동에 음유경이 급히 추적하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검율천이 그녀의 어깨를 붙잡았다.

음유경이 의아한 표정으로 검율천을 바라봤다.

“왜?”

“그녀를 추적할 사람은 따로 있어.”

“무월?”

“그래!”

검율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신무월이라면 단운향을 추적해 총단의 위치를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그를 믿고 기다려야 했다.

“후!”

검율천이 운공을 하는 담호의 곁에 주저앉았다.

그런 그의 얼굴엔 피로감이 가득했다.

지금은 정비를 해야 할 때였다. 그도 담호의 곁에서 운공을 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운공 속에서 기나긴 하루가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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