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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권마-316화 (316/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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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6화 6장. 권마불굴(拳魔不屈)……(1)

담호와 검율천은 배 위에 우뚝 선 채 흘러가는 풍경을 바라보았다. 그들 모두 말이 많은 사람이 아니었기에 침묵은 한동안 이어졌다.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 먼저 입을 연 이는 바로 검율천이었다.

“풍월제는?”

“죽었어.”

“역시 그렇게 되었나? 원하던 것은?”

“…….”

“찾은 모양이군.”

검율천이 담호를 똑바로 바라봤다.

답을 구하는 눈빛이었다.

단공월을 구해 이곳까지 데려온 이도 검율천이었다. 하지만 그는 정작 십병과 싸우느라 단공월의 최후를 보지 못했다.

담호는 검율천에게 답을 들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곳은 천사교의 터전이었어.”

“역시 그랬나?”

담호는 단공월에게 들은 것을 모두 이야기했다.

사신제가 천사교의 후인들을 모조리 죽인 일, 벽에 그려져 있던 쌍두비익사(雙頭飛翼蛇), 그리고 자신을 공격했던 의문의 매화검수까지. 하나도 빼놓지 않고 말했다.

담호는 담담히 이야기했고, 검율천은 말없이 들었다.

더하지도 않고, 덜하지도 않고, 있는 그대로의 이야기가 마침내 끝났다.

검율천이 눈을 감았다.

수많은 상념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토록 오랜 세월동안 추적해 왔던 천사교였다. 그들은 마치 물안개 같았다. 분명히 존재하지만 잡을 수도 없고, 아침 해가 뜨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그래서 어떤 때는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 허상에 집착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정도였다.

그는 그림을 그렸다. 하지만 그가 그린 그림엔 군데군데 빠진 부분이 존재했다. 그래서 하나의 그림이 되지 못하고, 의미 없는 낙서로 남아 있었다. 그런데 담호의 이야기가 빠져 있는 부분을 채워 주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확인할 것이 있었다.

“풍월제께서 분명 이관을 조심하라고 했나?”

“그래!”

“철혈무신 이관, 금서, 결사대……. 역시 그렇게 이어지는 거였나?”

“…….”

담호는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았다. 대신 검율천을 바라봤다.

검율천의 상념은 끝없이 이어졌고, 그의 머릿속에서는 커다란 그림이 완성되어 가고 있었다.

검율천이 눈을 뜬 것은 그로부터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였다. 그런 그의 눈은 확신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가 담호를 바라봤다. 담호는 오래전부터 말없이 검율천을 보고 있었다. 담호의 시선은 답을 구하고 있었다.

검율천은 그에 답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사신제는 옛 강호의 절대자이기에 앞서 오래된 친우들이었네. 그들은 무척이나 오랜 세월을 함께했고, 언제나 같이 다녔지. 그들은 특히 의협심이 강해서 불의를 보고 그냥 넘어가지 못했지. 그런 그들이 천사교의 마지막 교단을 발견했네. 당연히 그냥 지나치지 못했겠지. 그들은 무척이나 고직식한 데다가 타협을 모르는 성격을 지녔으니까.”

“…….”

“결국 그들은 천사교의 마지막 교단을 몰살시켰네. 그리고 오랜 세월이 흘렀겠지. 그 과정에서 어떤 사람은 자신들이 한 일에 회의를 느꼈을 것이고, 또 어떤 이는 아쉬움을 느꼈겠지. 풍월제 단 대협이 전자일 것이고, 철혈무신 이관은 후자였겠지.”

“그래서 이관이 천사교의 금서의 봉인을 풀었다?”

“지금으로서는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최선이겠지.”

담호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천사교의 금서가 무엇인지 모르지만, 이관의 숨겨진 욕망을 자극할 만큼 대단한 것이 분명하네. 오래된 친우들의 등에 비수를 꽂게 할 정도로…….”

“그럼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천사교는?”

“자네가 연화루에서 죽인 태극수사(太極修士) 고주월을 기억하나?”

“…….”

“그는 일차 정마대전 당시 결사대에 참여했던 무인이었다네.”

순간 담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무언가 가정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 모습을 보며 검율천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자네 생각이 맞네. 당시 결사대를 이끈 이들은 사신제, 그중에서도 철혈무신 이관이었지.”

“…….”

“묘하게 일치하지 않나? 이관은 천사교의 금서를 빼돌리고, 그가 이끌던 결사대에 참여했던 고주월은 천사교의 교인이 되었다네.”

“그럼 천사교는?”

“결사대의 후신이 분명하네,”

“결사대에 참전했던 무인 중 화산파의 무인도 있었나?”

담호의 물음에 검율천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비록 그 당시에 태어나지 않았지만, 천사교를 추적하면서 수많은 정보를 수집해온 검율천이었다. 다는 몰라도 굵직한 인물들 정도는 알고 있었다.

“화산파에서는 진궁자(眞穹子)를 비롯한 몇몇 고수들이 참여했네.”

“진궁자?”

담호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당시 화산파 제일의 고수는 천궁자였고, 장문인은 일궁자였다. 그리고 천궁자는 바로 현소 진인의 사부이기도 했다.

진궁자라면 천궁자와 같은 배분의 고수일 터였다.

담호의 눈빛이 더욱 깊어졌다. 검율천의 눈빛 역시 그와 똑같았다.

그들은 결코 머리가 나쁜 사람들이 아니었다. 오히려 보통 사람들보다 뛰어난 두뇌를 가지고 있었다. 무엇보다 결코 포기하지 않는 집요함을 공유하고 있었다.

그들의 결론은 하나였다.

무슨 이유에선지 모르지만 당시 정마대전에 참여했던 결사대가 이관을 따라 배신했다. 그리고 천사교를 세웠다.

검율천이 고개를 내저었다.

“최악이군.”

절로 한숨이 나올 지경이었다.

그가 담호를 바라봤다. 담호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깊이 가라앉아 있었다.

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검율천을 알 수 없는 전율을 느꼈다.

‘권마.’

담호가 강하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능히 자신의 경쟁자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담호는 그만큼의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마교의 칠대마인 절반이 그의 손에 죽었다. 세상이 깜짝 놀랄 만한 성과이긴 했지만, 그 정도는 검율천도 할 수 있었다.

그가 이어받은 뇌정류는 능히 그 정도의 파괴력을 갖고 있었으니까. 실제로 그는 정천악을 비롯한 십병을 상대로 월등한 무위를 뽐냈다.

하지만 십삼지파, 그중에서도 수장이라 할 수 있는 전검류의 계승자인 천오경을 상대하는 것은 차원을 달리하는 일이었다.

솔직히 그도 천오경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는 것은 자신할 수 없었다. 그런데 눈앞의 남자는 천오경이란 최강의 무인을 상대로 승리를 거뒀다.

이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담호라는 남자는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강대했다. 어쩌면 자신보다 더…….

검율천의 눈빛도 담호처럼 깊어졌다.

‘이 검율천의 운명 반대편에 그가 서 있다. 그는 나의 동반자이자, 운명의 적수. 결국 최후엔 그와 나만이 강호의 끝자락에 서 있을 것이다.’

검율천이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어 피가 흐를 정도로. 하지만 그는 이내 주먹에 힘을 풀었다.

담호는 명문정파인 화산파의 제자, 자신은 마도의 종주인 마교의 제자. 강호의 모든 은원이 해소되면 필연적으로 붙게 되겠지만, 지금은 그와 대립할 때가 아니었다.

검율천의 눈빛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이관이 무슨 이유 때문에 천사교를 계승하고, 마도와 강호의 충돌을 부채질하는 것인지는 모르네. 하지만 이대로 그들을 두고 본다면 강호와 신교는 필시 공멸을 하고 말 게야.”

“…….”

“담호.”

“말해!”

“자네에게 정식으로 제안하겠네. 한시적으로 협력하세.”

“전에는 혼자 해결하겠다고 하지 않았나?”

“내가 오만했네. 미안하네.”

검율천이 사과를 했다. 그런데 비굴하지 않고 당당했다. 담호는 그런 검율천을 빤히 바라봤다.

‘난세를 헤쳐 나갈 자격과 힘을 가진 자.’

그가 본 검율천은 패웅이었다.

언젠가는 필연적으로 부딪쳐야 할지 모르지만, 지금으로서는 그의 협력이 필요했다.

담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네! 친구.”

검율천이 손을 내밀었고, 담호가 그 손을 잡았다.

권마(拳魔)와 불굴(不屈)…….

훗날 강호와 마도의 전설이 될 남자들이 처음으로 손을 잡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

“허억!”

남궁창이 갑자기 침상을 박차고 일어났다. 그런 그의 전신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군사, 무슨 일이십니까?”

밖에서 번을 서고 있던 호위 무사가 문을 박차고 달려왔다. 그러자 남궁창이 손을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다. 잠시 악몽을 꾸었을 뿐이다.”

“악몽?”

“요즘 기력이 허한 모양이다. 신경 쓸 거 없으니 물러가거라.”

“예!”

남궁창의 말에 호위무사가 고개를 숙이고 물러갔다. 그가 나간 직후 남궁창이 창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차가운 공기가 밀려와 그의 폐부를 시원하게 만들었다.

그제야 정신이 조금 맑아졌다.

대부분의 악몽이 그렇듯 무슨 꿈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하지만 한 가지만은 확실했다. 꿈속의 그는 끝이 보이지 않는 어마어마한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에게 고통을 주는 자는 그도 익히 알고 있는 인물이었다.

“권마, 하다 하다 못해 이젠 꿈에까지 나타나는 것이냐?”

남궁창이 이빨을 뿌득 갈았다.

이제 치가 떨리다 못해 심장이 너덜너덜해질 지경이었다.

탄탄대로를 달리는 그의 인생에 유일한 오점이 있다면 바로 담호뿐이었다. 그가 세상에서 사라져야만 자신이 살 것 같았다.

“반드시…… 반드시 네놈을 내 손으로 죽이고 말겠다.”

남궁창은 찬바람에 화를 식혀야 했다.

그가 다시 평정심을 되찾은 것은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였다.

“휴!”

한숨을 내쉬며 돌아설 때 갑자기 밖에서 호위무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군사님.”

“무슨 일이냐?”

“맹주님의 호출이십니다.”

“이 시간에?”

“맹주부로 오시랍니다.”

“알겠다. 내 채비를 할 테니 잠시 기다리거라.”

“알겠습니다.”

남궁창은 급히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갔다. 걸음을 옮기면서도 그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새벽 이른 시각이었다. 이 시간에 맹주 남천산이 그를 호출한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무슨 일이지?’

남천산은 평소 그를 매우 어려워했다.

신창이라는 별호로 불리는 위대한 무인이지만, 무림맹에 기반이 거의 없었다. 때문에 무림맹의 맹주라는 직책을 갖고도 부맹주인 조의명과 군사인 남궁창, 그리고 수뇌부를 장악한 무림 명숙들에게 휘둘릴 수밖에 없었다.

남천산은 조의명과 남궁창을 직접 대면하는 것을 극도로 꺼려 했다. 허수아비 맹주일망정 자존심만큼은 지키고 싶었기 때문이다.

남천산의 그런 성향을 알고 있기에 남궁창의 의문은 커질 수밖에 없었다.

몇 개의 관문을 통과해 마침내 맹주부에 도착했다. 그러자 번을 서고 있던 무인이 큰 목소리로 안을 향해 외쳤다.

“맹주님, 군사님께서 도착하셨습니다.”

“안으로 들이거라.”

“예!”

남궁창은 무인의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문을 열고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야말로 거침없는 모습이었다.

“군사, 어서 오시오.”

“맹주님. 이 시간에 어인 일로 찾으신 겁니까?”

자신을 반가이 맞아 주는 남천산을 향해 남궁창이 살짝 날을 세웠다. 그렇지 않아도 악몽 때문에 기분이 뒤숭숭한 남궁창이었다. 자연 목소리가 날카로워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남천산은 익숙하다는 듯이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처음 일이 년은 그도 무림맹 내에서의 생활이 힘이 들었다. 겉보기엔 극진한 대접을 받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별다른 힘이 없는 허수아비 맹주. 하지만 강호 대의를 위해 참고 또 참았다. 그러다 보니 몸 안에 사리가 생길 정도로 마음고생이 심했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익숙해져서 인내하는 게 쉬워졌다.

또한 그렇게 인내하다 보니 맹 내에 그를 따르는 자들도 적잖게 생겨났다. 처음엔 맹 내에 기반이 하나도 없었지만, 지금은 그의 기반도 제법 커져서 제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이렇게 이른 시간에도 군사를 마음껏 부를 수 있는 것이다.

“군사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싶어 이렇게 불렀다오.”

“기쁜 소식? 그게 무엇입니까?”

“전대의 고인 한 분이 우리를 돕겠다가 찾아오셨소.”

기분이 좋은지 남천산의 목소리는 살짝 고조되어 있었다. 반대로 남궁창의 기분은 살짝 가라앉았다.

전대의 고인이 돕는다면 그만큼 맹주의 힘이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남궁창과 수뇌부들로서는 그다지 반갑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티를 낼 수 없기에 남궁창은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그거 잘되었군요. 그분이 누굽니까?”

“내가 말하는 것보다 직접 보는 게 좋을 것이오.”

남천산이 미소를 지으며 방 한쪽을 가리켰다. 그러자 누군가 어둠 속에서 서서히 걸어 나왔다.

육 척 장신에 이제 육십 대 후반으로 보이는 노인이었다. 은은한 어둠 속에서도 그의 눈동자는 맹호처럼 빛나고 있었다. 위풍당당한 걸음은 호랑이를 닮았으며, 전신에서는 가공할 기세가 피어나고 있었다.

남궁창은 노인의 기세에 살짝 압도당함을 느끼고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을 본 남천산이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미소를 지었다.

“인사하시오, 군사. 이분은 천도왕 적경천 대협이시오.”

“천……도왕?”

남궁창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현 시대를 살아가는 무인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이름이었다.

천도왕(天刀王) 적경천.

사신제와 같은 시대에 살았고, 일차 정마대전 당시 결사대의 일원이었던 자. 하지만 그 후 신비롭게 실종되었기에 모두가 죽은 줄로만 알고 있었던 무인이었다.

“정……말 천도왕 적 선배십니까?”

남궁창의 목소리가 떨려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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