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8
318화 6장. 권마불굴(拳魔不屈)……(3)
당문의 무인들 얼굴에 긴장의 빛이 떠올랐다.
권마를 발견하면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척살하라는 명령이 내려진 상태였다.
지금 사천성 전역에 내려진 검문 명령 역시 담호의 행방을 추적하기 위헌 것이었다.
당문의 무인들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중년인이 앞으로 나서며 목소리를 높였다.
“대답하라. 권마가 맞느냐?”
“그렇다면?”
“놈이다.”
중년인, 당청화가 갑자기 품에서 신호용으로 쓰이는 폭죽을 꺼내 허공에 쏘았다.
퍼엉!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화려한 불꽃이 허공에 터져 나왔다.
그 순간 담호가 움직였다.
쾅!
“케엑!”
폭죽을 쏘아 올렸던 당청화가 피 떡이 되어 날아갔다.
담호를 포위하고 있던 당문의 무인들이 잠시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담호를 잡기 위해 천라지망을 펼쳤지만, 설마 담호가 이렇게 아무런 대화도 없이 공격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당청화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짓이겨진 채 부들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그의 몸이 축 늘어졌다. 절명한 것이다.
순식간에 일어난 사태에 당문의 무인들은 잠시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그 순간 담호가 움직였다.
콰쾅!
굉음과 함께 선두에 서 있던 당문의 무인 두 명이 튕겨 나갔다.
“으아악!”
“사, 살려 줘!”
뒤늦게 사태를 파악한 당문 무인들 얼굴에 공포의 빛이 떠올랐다. 설마 담호가 아무런 대화도 없이 이렇게 무자비하게 손을 쓸 줄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어떤 상대라도 일단 당문이라면 한 수 접어주고 가는 것이 그들이 경험한 상식이었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구대문파에 속하는 청성파와 아미파마저도 그렇게 했었다. 그래서 그들은 담호도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담호의 반응은 그들의 상식을 아득히 뛰어넘었다.
쾅!
“크엑!”
뇌음과 함께 또 한 명의 무인이 어육처럼 짓이겨져 날아갔다.
“이 무슨?”
“인간도 아냐. 협상 따윈 없다 이거냐?”
당문의 무인들이 뒤늦게 담호를 향해 암기를 날리고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그들이 날린 암기는 담호의 몸에 채 닿기도 전에 거친 기류에 휩쓸려 튕겨 나갔고, 검은 중간에서 부러져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크아악!”
“으헉!”
순식간에 비명과 죽음이 난무했다.
검문을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은 공포에 지린 표정으로 그 모든 광경을 지켜봤다.
그들 대부분이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살면서 단 한 번도 이런 광경을 볼 거라고는 상상도 못해 본 그런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눈에 비친 담호는 인간이 아닌 사신(死神)이었다.
가차 없이 죽음을 내리는 그의 모습에 사람들이 공포에 질린 채 벌벌 떨었다.
“…….”
순식간에 질식할 듯한 정적이 찾아왔다.
더 이상 장내에는 그 어떤 소리도 터져 나오지 않았다.
당문의 무인들은 모두 죽었고, 평범한 사람들은 손으로 입을 막은 채 눈을 질끈 감았다.
그들은 두려웠다.
담호의 눈길이 자신들을 향할까 봐. 자신들에게 손을 쓸까 봐. 하지만 담호는 평범한 이들에겐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의 적은 그에게 적대심을 갖고 행동하는 자들이었지, 평범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담호는 말없이 흑귀에 올라탔다. 그리고 검문소를 떠났다.
“흐끅!”
누군가 딸꾹질을 했다.
이제 삼십 대 후반으로 보이는 상인이었다. 그는 필사적으로 입을 막고 딸꾹질을 참으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흐끅! 흐끄윽!”
계속해서 딸꾹질이 터져 나왔다.
무서웠다.
너무 무서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눈을 뜨면 그 악마가 눈앞에 서서 자신을 노려볼 것 같았다. 그 무서운 눈빛을 정면으로 받는다면 아마 자신은 두려움을 견디지 못하고 미쳐 버릴 것이 분명했다.
심장이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처럼 미친 듯이 고동쳤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담호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제야 상인이 용기를 내서 눈을 떴다.
눈을 뜨고 그가 본 광경은 그야말로 처참했다. 방금 전까지 그토록 위세를 떨치던 당문의 무인들이 하나도 남김없이 피바다에 나뒹굴고 있었다. 하지만 어디서도 담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어느새 담호가 떠난 것이다.
“살……았다.”
다리에 힘이 풀린 상인이 그만 제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바닥에 주저앉은 이는 비단 그만이 아니었다.
공포에 떨던 사람들 모두가 다리에 힘이 풀려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살았다. 우린 살았다고. 크흐흑!”
“으허헝!”
사람들의 울음소리가 죽음이 쌓인 관도 위에 울려 퍼졌다.
권마의 전설.
언제부턴가 사천성의 사람들은 권마를 전설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권마의 행보 때문이었다.
사천성 전체에 당문의 척살령이 내려져 있었다.
당문뿐 아니라 당문에 동조하는 모든 문파들이 동원되어 천라지망을 펼쳤다.
남의문(南義門), 하영문(河影門), 녹선방(綠線房) 등 수많은 문파들이 당문의 명령에 동조해 관도를 막아섰다.
사천성 전체에 공포 분위기가 조성됐다. 청성파와 아미파가 침묵을 지키고 있는 상황에서 감히 당문의 행보에 딴죽을 걸 만큼 간이 큰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사천성의 모든 사람들이 숨을 죽였다. 그리고 담호의 행보를 지켜봤다.
보통의 무인이었다면 아마 당문의 천라지망이 펼쳐진 상황에서 감히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고 숨었을 것이다.
개인이 아무리 강해도 다수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이 정설이었고, 아무리 강한 무인이라도 천하를 상대로 싸우는 것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곳은 사천성. 당문이 이미 모든 것을 완벽하게 장악한 곳이었다. 높다란 산맥으로 폐쇄된 지형 때문에 천라지망은 더욱 촘촘히 짜여졌고, 개미새끼 한 마리 빠져나갈 틈이 없을 정도였다.
사람들은 담호가 몸을 피한 채 천라지망을 빠져나갈 거라 예상했다. 하지만 그들의 예상은 빗나갔다.
담호는 숨거나 피하지 않았다. 그는 흑귀를 탄 채 동쪽으로, 또 동쪽으로 이동했다.
찢어지고 헤져 걸레쪽을 연상시키는 흑의와 칠흑처럼 검은 말 흑귀를 타고 이동하는 그의 모습은 눈에 띄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었다.
제일 먼저 그를 막다가 박살난 곳은 바로 녹선방이었다.
녹선방의 방주는 당우천이었다. 그는 당문의 방계 혈족으로 매우 오래전 독립해 녹선방을 세웠다. 당문의 전격적인 지원 아래 녹선방은 무섭게 성장했고, 이제는 무시할 수 없는 덩치를 갖추게 되었다.
그 때문에 당우천의 자부심은 최고조에 달해 있었다. 당문을 제외한 그 어떤 문파를 상대하더라도 이길 수 있을 것 같았다. 최소한 사천성 내에서는 말이다.
하지만 그런 그의 자부심은 지금 이순간 유리 조각처럼 무참히 부서지고 깨져 있었다.
“끄으으!”
당우천의 입에서 상처 입은 짐승의 울음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의 눈엔 핏발이 서 있었고, 이빨이 부서질 것처럼 힘껏 악문 입에서는 붉은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가 그토록 자랑스럽게 여기던 녹선방의 무인들이 여기저기 널브러진 채 피를 흘리고 있었다.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숨이 끊어진 자들이 곳곳에 보였고, 설령 숨이 붙어 있다고 해도 나중에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할까 의심될 정도로 사지가 기괴한 방향으로 꺾인 자들이 다수였다.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그들의 얼굴에는 생기가 넘쳐흘렀었다. 당문의 행사에 참여를 한다는 기대심리도 있었다.
상대가 제아무리 권마라고 하지만, 그래도 녹선방의 힘이라면 큰 상처를 입힐 수 있을 거라고 자신했었다. 하지만 그런 그들의 기대는 담호를 맞닥트리는 순간 무참히 부서졌다.
담호는…… 악마였다.
그에겐 대화가 아예 안 통했다.
관도를 막아선 녹선방을 보는 순간 그는 그 어떤 대화도 없이 달려들었다. 그리고 그들의 눈앞에서 지옥이 펼쳐졌다.
‘쾅!’ 하는 뇌음이 울려 퍼진 뒤에 어김없이 남는 것은 누군가의 주검이었다.
그에겐 녹선방이 그토록 자랑하던 합격진도, 당문에서 은밀히 넘겨받은 암기도 통하지 않았다.
담호의 몸에 한 줄기 사나운 기류가 휘도는 순간 당문이 자랑하는 암기들은 힘을 잃고 떨어졌고, 녹선방의 무인들 십여 명이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날아갔다.
마치 양 떼 한가운데 난입한 호랑이를 보는 것 같았다.
그제야 녹선방의 무인들은 확실히 자신들의 처지를 깨달았다. 이제까지 스스로를 호랑이라 생각했던 자신들이 실제로는 순한 양에 불과했다는 것을.
아니 그 어떤 무인들을 담호 앞에 데려다 놔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저자 앞에서는 누구나 양이 될 수밖에 없다. 저런 자를 어떻게 감당하란 말인가?’
당장 당우천조차도 담호에게 덤벼들었다가 단 일격에 항거불능의 상태가 되고 말았다.
가슴뼈가 움푹 함몰되고, 칠공으로 피를 흘렸다. 그래도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것은 그가 익힌 매우 특별한 심공 때문이었다.
남천무왕심공(南天武王心功).
우연한 기회에 입수해 익힌 도가의 심공이었다.
심맥을 보호하는 데 탁월한 효능이 있는 심공 덕분에 숨이 끊어지지는 않았지만, 전신이 해체되는 듯한 통증에 움직이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크윽! 어떻게?”
그가 겨우 고개를 들어 담호를 바라봤다.
지옥도를 연상시키는 풍경 한가운데 담호가 서 있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그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 모습이 담호의 모습을 더욱 공포스럽게 만들었다.
그제야 당우천은 깨달았다.
‘저자는 달라. 분명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지만 사람이 아니야. 우리가 감히 감당할 자가 아니야.’
그는 처음으로 본가인 당문을 원망했다. 하필 담호를 막으라는 명령을 내렸는지, 그렇게 당문의 가주가 원망스러울 수 없었다.
그때 담호가 걸어왔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한쪽 발을 살짝 절면서.
평소라면 한껏 비웃음을 날려 주었겠지만, 지금 그의 머릿속엔 오직 공포심만이 가득할 뿐이었다.
스윽!
마침내 담호가 그의 앞에 섰다.
당우천은 잠시 고개를 들어 담호를 올려다보다 그만 급히 눈을 내리 깔고 말았다.
담호의 눈을 보는 순간 당우천은 자신의 죽음을 보았다. 온몸이 푸들푸들 떨리고, 괄약근에 힘이 빠졌다. 두 다리 사이로 냄새나고 축축한 오물들이 흘러나왔지만 정작 당우천은 그런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담호에 대한 두려움이 그의 이성마저 마비시킨 것이다.
그는 한시라도 빨리 이 악몽 같은 시간이 지나가길 빌었다. 그리고 천지신명에 맹세했다. 자신이 목숨을 구한다면 두 번 다시 담호의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겠다고.
천지신명이 그의 기도를 들어주었는지 모르지만 그 순간 담호가 흑귀를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흑귀를 타고 살육의 현장을 떠났다.
“으으!”
“사, 산 거야?”
담호가 떠난 것을 확인한 생존자들의 음성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평생을 함께한 동료들이 주검이 되어 곳곳에 널브러져 있었지만, 지금 이 순간 그들은 목숨을 구한 것에 기뻐하고 있었다.
녹선방은 겨우 시작에 불과했다.
담호를 상대로 천라지망을 펼치던 문파들은 하나같이 대참사를 피해 가지 못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당문이 동원한 천라지망은 무용지물이 되었다.
천라지망(天羅之網)이란 다수의 무인들이 소수의 무인들을 사냥할 때 사용하는 최고의 방법이었다. 각자 다른 이상과 생각을 가지고 있는 수많은 이들이 모여 ‘우리는 하나’라는 인식을 심어 주는 데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었다.
무림 공적이 나타날 때마다 수많은 문파들이 힘을 합쳐 천라지망을 펼치는 것도 그와 같은 이유 때문이었다. 무림 공적을 합심해 사냥해 가는 가운데 서로 간의 유대감도 강화시키고, 상대의 능력도 가늠해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 하지만 그것도 사냥을 할 만한 상대에 국한된 이야기였다.
담호는 강호의 통념이 통하지 않는 상대였다.
그는 겨우 일개인에 불과했지만, 천하를 상대해도 위축되지 않을 철석간담과 파격적인 무력을 소유하고 있었다.
이대로 천라지망을 유지한다면 언젠가는 담호를 죽일 수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수많은 문파들이 전멸하거나, 괴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어야 했다.
제아무리 당문의 눈치를 보는 문파들일지라도 그것만은 사양하고 싶었다. 공포가 전염된 문파들은 하나둘씩 눈치를 보며 물러서기 시작했고, 상황이 이렇게 되자 곤란해진 것은 천라지망을 주도한 당문이었다.
청성파와 아미파를 봉문하면서 한참 기세가 올랐던 당문의 분위기가 마치 찬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착 가라앉았다.
담호는 그 순간에도 동으로, 또 동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그는 숨지도, 피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그의 행보를 볼 수 있었다. 사천성에 터를 잡고 사는 무인들과 일반 백성들 모두가 담호의 행보를 지켜보는 것이다.
이제 당문이 오히려 궁지에 몰렸다.
담호가 이대로 사천성 밖으로 나간다면 그들의 명예는 땅에 떨어지고 만다. 반대로 담호와 직접 부딪쳐 싸운다면 막대한 피해를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담호는 숨지 않고 정면 돌파함으로써 당문의 생존 기반을 송두리째 뒤흔들고 있었다.
한 남자의 파격적인 행보가 사천성과 당문 전체를 뒤흔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