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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권마-319화 (319/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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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9화 7장.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기 마련이다(1)

항주(杭州)는 절강성의 성도였다. 바다와 인접해 있기에 해산물이 풍부하고, 항구가 잘 발달되어 있어 사시사철 수많은 상인들이 찾는 곳이었다.

송나라 시인 소동파가 서시에 비유할 정도로 아름다운 절경을 자랑하는 서호가 있었고, 무엇보다 등대 역할을 하는 육화탑(六和塔)이 유명했다.

높이가 무려 이십여 장에 달하는 육화탑은 밖에서 보면 십삼 층인데, 실제로는 칠 층이었다. 유선형의 계단이 탑의 꼭대기까지 이어져 있어 항주 시내를 한눈에 보기 좋았다.

육화탑 정상에 푸른 장포를 걸친 장년인이 서 있었다.

마치 평생 햇볕 한번 쬐지 못한 사람처럼 창백한 피부와 대조되는 깊고 검은 눈동자가 유독 대조적이었다.

전체적으로 마른 인상이었는데, 깊은 호수처럼 잔잔한 분위기가 눈길을 끌었다.

그는 심유한 눈으로 항주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정확히는 수많은 배가 정박해 있는 항주항을 보고 있었다.

항구에는 크고 작은 배 수십 여척이 정박해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바닷바람에 절은 배들에서는 오랜 항해의 고단함이 그대로 묻어 나오고 있었다.

가까운 바다에서 고기를 잡는 조그만 어선부터 이역만리 먼 외국에 다녀온 커다란 배까지 종류도 다양했고, 그만큼 항구를 거니는 사람들의 수도 많았다.

단순히 짐을 나르는 일꾼, 물건이 이상이 없는지 살펴보는 상인, 그리고 검을 들고 있는 무인 들까지. 그야말로 수많은 사람들로 항구는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장년인의 눈에 항구에 들어오는 유독 큰 배 한 척이 보였다. 무척이나 오랜 항해를 한 듯 배의 돛에는 하얀 소금기가 그대로 묻어 나오고 있었다.

배를 바라보는 장년인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그때였다. 젊은 무인 한 명이 육화탑 정상으로 급히 뛰어올라왔다.

“군사, 배가 들어옵니다.”

“그래! 드디어 들어오고 있구나.”

장년인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어렸다.

그의 이름은 상한천. 마교에서는 그를 마천수사(魔天修士), 혹은 군사라고 불렀다.

지난 삼 년 동안 중원에서 종적을 감췄던 그가 항주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가자.”

“예!”

상한천이 육화탑의 나선형 계단을 내려갔다.

한 층, 한 층 내려갈 때마다 경계를 서고 있던 무인들이 그의 뒤를 따라붙었다. 칠 층을 모두 내려왔을 때 어느새 그의 등 뒤로는 칠십여 명의 무인들이 따라붙고 있었다.

하나같이 범상치 않은 기세를 풍기는 무인들은 상한천의 호위였다. 본래 상한천은 이렇게 거창한 호위를 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얼마 전부터는 어쩔 수 없이 이렇게 호위를 받고 있었다.

그의 뒤를 따르던 무인 한 명이 조심스럽게 다가와 입을 열었다.

“군사.”

“말하라.”

“사천성에서 급보입니다.”

거칠 것이 없어보이던 상한천의 걸음이 딱 멈춰 섰다.

“사천성이라고?”

“예!”

순간적으로 상한천의 눈에 한기가 스쳐 지나갔다. 왠지 느낌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항주와 사천성은 서로 중원의 반대편에 위치해 있었다. 거리로 따지면 물경 오천 리가 훨씬 넘는다. 때문에 아무리 빨리 소식이 전해지라도 최소 열흘이 넘게 걸린다. 그러니까 지금 무인이 전하는 급보는 열흘 전에 벌어진 일이라는 뜻이다.

“말하거라.”

“마모께서 상처를 입은 채 사천성을 빠져나왔다 합니다.”

“마모가?”

순간 상한천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렇습니다. 지금 운남성의 분원으로 잠시 몸을 의탁하셨다 합니다.”

“생명엔 지장이 없다는가?”

“그런 것 같습니다.”

“십병은 어찌 되었나? 그들에게 마모를 지키라고 분명히 당부했을 텐데.”

“그게…….”

보고를 하던 수하가 잠시 머뭇거렸다. 그러자 상한천의 눈빛이 사나워졌다.

“어서 말하거라.”

“네 명이 죽고, 나머지 사람들도 크고 작은 상처를 입었다 합니다.”

“으음!”

상한천의 입술을 비집고 침음성이 흘러나왔다.

십병은 단순한 후기지수가 아니었다. 마교에서 전략적으로 키우는 미래의 희망이었다. 상한천뿐만 아니라 교주까지도 십병에게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었을 정도였다.

“사천성에서 그들을 곤경에 처하게 할 만한 이들이 있었던가? 설마 당문이 배신을 한 것이냐?”

“그건 아닌 듯합니다.”

“그럼?”

“권마가…….”

“권마라고?”

상한천의 목소리가 자신도 모르게 높아졌다.

평소 표정의 변화가 거의 없는 상한천이었다. 군사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냉철한 이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 평소 그의 지론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의 얼굴엔 커다란 균열이 번져 가고 있었다.

“권마? 담호 말이냐?”

“그렇습니다.”

“그가 사천성에 있다고? 화산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런데 왜 내가 몰랐던 거지?”

“사천성이 너무 먼 곳에 있는지라 소식이 들어오는 것이 늦었습니다.”

부하의 말에 상한천이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다른 곳은 몰라도 화산의 동향만큼은 직접 챙기는 상한천이었다. 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그곳에 담호가 있기 때문이다.

담호의 무력을 직접 보았기에, 그의 위험성이 얼마나 상상을 초월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화산에 대한 보고만큼은 정기적으로 받고 있었다.

상한천의 눈치를 보던 부하가 눈을 질끈 감은 채 입을 열었다.

“그리고…….”

“또 보고할 게 있느냐?”

“예!”

그의 목소리가 절로 떨려나왔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조차도 보고하기 두려운 내용이었으니까. 이 보고를 받는 상한천의 반응이 어떠할지 예측할 수 없었다. 그 정도로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말하거라.”

“북철왕과 마검선께서 운명하셨다합니다.”

“흉수는?”

“권마……. 케엑!”

쩌엉!

갑자기 보고를 하던 자가 피를 토하며 뒤로 날아갔다. 그의 보고를 듣던 상한천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일장을 후려친 것이다.

보고를 하던 부하는 잠시 몸을 푸들푸들 떨다 그대로 절명했다. 하지만 상한천은 그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아니, 줄 수가 없었다.

“권마, 크으으!”

그는 순간적으로 이성을 잃을 만큼 분노했다. 살면서 그가 이렇게 격렬하게 감정을 드러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담호 한 명으로 인해 그가 그려 왔던 커다란 그림이 뭉개지고 있었다. 십삼지파를 끌어들이기 위해 그가 쏟아부은 심력과 정성은 그야말로 엄청났다. 그래서 끌어들인 이가 바로 벽암류의 수장인 북철왕 석무강이었다.

그런데 석무강뿐만 아니라 전검류의 계승자인 천오경마저 목숨을 잃고 말았다. 마교의 근간을 흔들게 할 만큼 큰 충격이었다.

“으아아!”

그의 처절한 외침이 항주 하늘에 울려 퍼졌다.

그렇게 한바탕 속에 있던 모든 것을 토해 낸 후에야 상한천은 이성을 찾았다.

“당문은?”

“그들 역시 권마 때문에 곤혹스러운 처지에 처한 것 같습니다. 본교에 도움을 청하고 있습니다만 어떻게 할까요?”

다른 부하가 나서서 급히 대답했다. 그런 그의 얼굴엔 긴장의 빛이 역력했다.

“알아서 처리하라고 해. 어차피 그쪽이나 이쪽이나 필요에 의해서 서로 손을 잡은 것뿐이니까.”

“알겠습니다.”

상한천의 눈빛이 광기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어차피 필요에 의해 서로 손을 잡았을 뿐이다. 거기엔 어떠한 의리도 존재하지 않았다.

“어차피 우리가 사천성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권마는 당문에 맡기고 우리는 이쪽의 일에 집중한다.”

“옛!”

일단 한 번 결정하자 상한천은 원래의 냉철함을 되찾았다.

사천성까지는 물경 오천 리가 넘는 거리가 있었다. 어차피 지금 손을 쓴다고 해도 늦었고, 어떻게 할 도리도 없었다. 그렇다면 깨끗하게 신경을 끄는 것이 정신 건강에 해로웠다.

“오히려 우리에겐 절호의 기회다. 권마가 미쳐 날뛸수록 사람들의 시선은 사천성으로 몰릴 터. 이 기회를 절대 놓쳐서는 안 된다.”

“알겠습니다.”

상한천이 입술을 꾹 다물었다. 그런 그의 입술을 비집고 선혈이 내비치고 있었다.

그렇게 감정을 절제하며 그가 향한 곳은 방금 전 커다란 배가 들어온 항구였다. 그가 항구에 도착하자마자 배에서 발판이 내려졌다. 그리고 삼십 대 후반으로 보이는 장한이 배에서 내려왔다.

입가에 어린 여유로운 미소와 달리 매처럼 날카로운 눈매가 인상적인 남자였다.

회색 무복을 입은 그의 등 뒤로 똑같은 복장을 한 수백 명의 무인들이 보였다. 마치 틀로 찍어 놓은 것처럼 똑같은 분위기와 기세를 풍기는 무인들의 모습은 기괴하기 짝이 없었다.

상한천이 선두의 장한을 향해 다가갔다.

“어서 오게나.”

“많이 기다리셨습니까?”

“아닐세!”

상한천이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만일 다른 사람이 그를 이렇게 기다리게 했다면 불벼락을 내렸을 것이다. 하지만 회색의 사내는 그를 기다리게 할 만한 충분한 자격이 있는 사람이었다.

만영신군(萬影神君) 임학.

사대군장(四大軍將)의 일인이자 만 가지 그림자를 지녔다는 회색의 무인. 마교 내에서도 손에 꼽히는 무인인 그의 등장에 상한천은 바닥까지 떨어졌던 기분이 다시 회복되는 것을 느꼈다.

‘너는 머나먼 사천성에서 마음껏 날뛰거라, 권마. 대신 우리는 너희의 숨통을 끊어 줄 터이니.’

***

따그닥! 따그닥!

돌을 깔아 만든 관도에 말발굽 소리가 선명하게 울려 퍼졌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관도 위로 흑마 한 마리가 나타났다.

흑마 위에는 걸레쪽을 연상시키는 복장을 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 다 찢어진 흑의를 입은 이는 바로 담호였다.

관도 주변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담호를 향했다.

“권마다.”

“정말 권마가 나타났다.”

대번에 사람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들 중 일부는 근처에 사는 사람들이었지만, 상당수는 담호의 모습을 보기 위해 일부러 이곳까지 찾아온 사람들이었다.

사천성에서 써 내려가는 권마의 전설을 직접 보기 위해서였다.

담호는 당문이 주도한 천라지망을 깨부수며 이곳까지 왔다. 그동안 그 어떤 문파도, 그 어떤 무인도 담호의 발걸음을 잡아 두지 못했다.

수많은 문파들이 멸문에 가까운 타격을 입었고, 엄청난 수의 무인들이 죽거나 다쳤다.

이제 사람들은 담호에게 공포를 느끼기보다는 경외심을 느꼈다. 일개인이 이렇게 강해질 수 있다는 것. 당문이라는 초거대 세력에 맞서 당당할 수 있다는 사실이 그들을 전율케 만든 것이다.

모두가 꿈꾸지만,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그 행보를 담호가 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런 담호의 모습을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보고 싶어 했다.

그동안의 행보를 말해 주기라도 하듯 담호와 흑귀의 전신은 피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사람들은 넋을 잃고 담호와 흑귀를 바라봤다.

그때 갑자기 뒤쪽에서 소요가 일었다.

“당문이다.”

“당문의 무인들이 나타났다.”

사람들의 시선이 뒤쪽으로 향했다. 그러자 이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는 일단의 무인들이 보였다.

당문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녹의를 입은 무인들의 등장에 사람들은 숨을 죽이고 뒤로 물러났다.

모두가 알다시피 당문은 독과 암기를 사용하는 가문이었다. 독과 암기에는 눈이 존재하지 않았다. 괜히 근처에서 알짱거리다가는 횡액을 당할 수가 있었다.

당문의 무인들 사이에서 한 남자가 걸어 나왔다.

“정말 대단하구나. 이 나를 직접 움직이게 만들다니.”

한겨울 북풍한설처럼 차가운 음성을 토해 내는 남자는 바로 당문의 가주인 당사일이었다. 그의 등장에 담호를 보러 온 사람들이 숨을 죽였다.

당사일은 단순히 당문의 주인이란 신분을 뛰어넘어 사천성의 맹주이자 최강의 무인이라 할 수 있었다.

그의 등장에 담호가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어 바라봤다.

당사일을 필두로 수많은 당문의 무인들이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제까지 천라지망을 펼쳤던 문파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전력이 그를 막아선 것이다. 그래도 담호의 표정에는 별반 변화가 없었다.

담호가 흑귀에서 내려 그를 향해 걸어갔다. 순간 당사일과 당문 무인들 전체가 움찔했다.

사천 최강의 전력을 상대로도 거침이 없는 그의 모습과 박력에 밀린 것이다.

당문 무인들 얼굴에 수치스러운 표정이 떠올랐다. 잠시나마 담호의 존재감에 밀린 것이 부끄러운 것이다. 그들은 이내 전의를 북돋으며 담호를 노려봤다.

그 정도면 위축될 만도 하건만 담호는 무심한 표정으로 당사일을 바라봤다.

당사일의 눈동자가 유리알처럼 투명하게 변했다. 마치 뱀의 눈처럼 변한 모습은 섬뜩함을 더했다.

“권마.”

“…….”

“넌 오늘 이곳에서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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