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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권마-320화 (32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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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0화 7장.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기 마련이다(2)

담호의 무심한 시선이 당사일을 향했다.

“왜 그랬지?”

“뭐가 말이냐?”

“왜 마교와 손을 잡았지?”

순간 당사일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설마 담호가 이렇게 단도직입적으로 치고 들어올 줄 몰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이내 표정을 수습하고 말을 이었다.

“당연한 일 아닌가? 야망 때문이지.”

“야망?”

“우리는 오래전에 날개가 꺾였다. 바로 같은 명문정파들에 의해. 그들은 우리에게 사천삼주라는 거짓된 명예를 주며 족쇄를 채웠다.”

“…….”

“말이 좋아 사천삼주지. 사실은 사천에 만족하며 살라는 무림의 뜻이 아닌가? 우리에겐 천형이고, 벗어나지 못할 금제를 가한 거지.”

독과 암기를 사용하는 당문은 모두에게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무림은 당문의 활동 영역을 사천에 한정해 두었다.

사천삼주라는 거짓된 명예로.

당문은 오랫동안 사천을 벗어나 천하의 패자를 꿈꾸었다. 하지만 사천성에 한정된 그들의 힘만으로는 결코 천하를 도모할 수 없었다.

“그때 그들이 손을 내밀었다.”

“그래서 마교와 손을 잡았다는 건가?”

“필요에 의해서 서로를 이용하는 것뿐이지. 그들에겐 우리의 독이 필요했고, 우리는 그들의 비전이 필요했으니까.”

당사일은 거침없이 말을 이어 갔다.

평상시 거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당사일이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달랐다.

기이하게 달궈진 공기가 냉철한 그의 가슴마저 뜨겁게 달궈 놓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당사일은 그런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채 담호를 노려보고 있었다.

다 찢어진 흑의를 걸친 사내.

성한 곳이 하나 없어 보이는 그 사내가 일대의 공기를 뜨겁게 달구고 있었다.

수백 명의 무인들이 담호를 포위하고 있었다. 그들은 이제까지 담호가 상대했던 무인들과 질적으로 달랐다.

담호의 눈빛이 깊이 침잠됐다.

언제부턴가 송곳으로 쿡쿡 찌르는 것처럼 피부가 아파 오고, 눈이 따끔거렸다. 당문의 무인들이 발산하는 독기가 공기를 타고 퍼져 가는 것이다.

“컥!”

“흐읍!”

담호를 보기 위해 몰려들었던 군중들이 갑자기 목을 부여잡고 쓰러졌다. 순식간에 독에 중독된 것이다.

뒤늦게 사태를 파악한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사방으로 도주했다.

“우와악!”

“살려 줘!”

하지만 채 서너 걸음을 옮기기도 전에 그들이 픽픽 쓰러졌다. 그들의 칠공으로 피가 흐르고 있었다.

당사일은 죽어 가는 사람들에겐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들은 이 자리에 오기 전에 다시 한 번 생각했어야 했다. 천하의 당문이 실력을 행사하는 자리였다. 그런 곳에서 남의 집 불구경을 하듯 안전하게 관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었다.

당문은 그렇게 너그러운 집단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당사일은 당문이 마교와 손을 잡았다는 사실을 아직 세상에 알리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담호가 당사일의 등 뒤로 보이는 당문의 무인들을 바라봤다. 그중 몇 명이 유독 눈에 띄었다.

유난히도 감정이 없어 보이는 얼굴을 한 다섯 명의 무인들. 그들의 눈빛은 마치 죽은 자의 그것처럼 퀭하기만 했다.

전형적인 실혼인의 특징이었다.

당사일이 말했다.

“무혼랑은 이미 상대해 봤겠지?”

“…….”

“하지만 네가 상대한 무혼랑은 진정한 전력의 반도 채 발휘할 수 없는 반쪽짜리다. 이들이야말로 진정한 무혼랑이라 할 만하지.”

당사일의 음성엔 자부심이 가득했다.

무혼랑이야말로 그가 마교와 손을 잡은 진정한 이유였다.

당사일의 얼굴에 이제까지 잘 억누르고 있던 광기가 떠올랐다. 유리알 같은 눈동자에 광기가 더해지자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섬뜩했다.

그때였다.

콰아아!

당사일을 향해 한 줄기 폭풍이 휘몰아쳤다. 예고도 없이 담호가 달려든 것이다.

충보에 이어 파성추가 펼쳐졌다. 하지만 당사일은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이 재빨리 뒤로 몸을 날려 담호의 공격을 피했다.

“흥! 네놈의 수법 정도는 이미 파악하고 있다.”

그동안 당사일은 담호의 행적을 면밀히 파악해서 공격 방식을 알아냈다.

담호가 가장 무서울 때는 바로 첫 공격이었다.

일반적으로 명성을 어느 정도 얻은 무인들은 타인의 평판을 중요시하게 여겨서 선공을 될 수 있으면 자제하는데 반해, 담호에겐 그런 것이 없었다.

그는 강호의 평판 따윈 신경 쓰지 않고 선공을 선호했다. 많은 이들이 담호와 같은 고수가 다짜고짜 공격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하지만 나는 다르다.”

대화를 하면서도 끊임없이 담호의 동향을 파악하던 당사일이었다. 그래서 이상한 조짐이 느껴지자마자 망설이지 않고 뒤로 몸을 날렸던 것이다.

하지만 그가 미처 예상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

기이잉!

담호의 몸에서 기이한 접인력이 발생해 그의 발목을 붙잡은 것이다.

“무슨?”

쾅!

그 순간 담호의 주먹이 당사일에게 작렬했다. 겨우 양 손바닥에 공력을 집중해 담호의 주먹을 막아 냈지만, 그 충격까지 완전히 흘려 버리지는 못했다.

“크윽!”

당사일의 입에서 답답한 신음성이 흘러나왔다, 단정하게 묶었던 머리칼은 온통 풀어헤쳐져서 어지럽게 흩날렸다.

그 순간 담호의 이격이 들이닥쳤다.

말도 없이 이어지는 담호의 공격에 당사일은 숨 쉴 여유조차 없이 움직여야 했다.

“감히!”

“쳐랏!”

때마침 당문의 무인들이 개입하지 못했다면 당사일은 더 큰 수난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제일 먼저 무혼랑들이 담호를 공격했다.

무혼랑은 이지가 없기에 두려움이란 감정 자체가 없는 이들이었다. 그들은 몸으로 담호의 공격을 받아 냈다.

콰쾅!

굉음과 함께 그들의 몸이 들썩였다. 하지만 그들의 몸 어디서도 상처는 보이지 않았다.

그들의 몸엔 어느새 은은한 녹색 강기가 어려 있었다. 호신독강(護身毒罡)이었다.

겨우 한숨을 돌린 당사일이 살기 어린 음성을 토해 냈다.

“권마를 사냥하라.”

당문의 무인들이 일제히 움직였다.

사사삭!

옷깃이 바닥에 스치는 소리가 스산하게 울려 퍼졌다.

천독멸혼진(千毒滅魂陣).

당문 내에서 전설처럼 내려오는 진법이었다.

천독멸혼진은 말 그대로 천 가지 독이 조합되는 진법이었다. 천독멸혼진에 참여하는 무인의 수는 모두 사백여 명. 그들은 각기 두세 가지의 다른 독을 소유하고 있었고, 자유자재로 사용할 줄 알았다.

사백여 명이 각기 두세 가지의 독을 펼치면 천여 개가 되고, 그 독들이 각각 상생과 조화를 통해 독력이 비약적으로 상승되어 전혀 새로운 독을 만들어 내게 된다.

인간이라면 천여 개의 독과 조화를 통해 새로이 형성되는 수십여 가지의 절독을 견딜 수 없다. 제아무리 가공할 독공을 익힌 무인일지라도 말이다.

천독멸혼진을 펼치는 당문의 무인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용독자이지, 전신의 피가 독으로 만들어진 독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법이 중요했다.

진법을 펼칠 때 일어난 기류는 그들의 몸을 독에서 잠시나마 보호해 줄 수 있었다. 하지만 법칙에서 벗어난 자는 오히려 자신들이 펼친 독에 의해 전신이 녹아내리게 됐다. 그래서 실혼인으로 만든 무혼랑들이 중요했다.

무혼랑들은 피가 독으로 이뤄진 독인들이었다. 그들은 천독멸혼진의 가공할 독기 속에서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을뿐더러, 오히려 주변의 독기를 흡수해 더 가공한 위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그것이 당사일이 마교와 손을 잡은 이유였다. 마교가 실혼인을 만드는 법을 무혼랑에 적용시킨 것이다.

무혼랑들이 합류함으로써 천독멸혼진은 완전해졌다. 그 어떤 인간이라도 천독멸혼진의 가공할 독기 앞에서는 생존할 수 없었다.

“놈을 뼛조각 하나 남기지 않고 녹여 버려라.”

당사일이 전장을 보며 중얼거렸다.

그런 그의 눈은 완전히 녹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촤하학!

천여 개의 독이 뿌려졌다. 뿌연 녹연이 시야를 어지럽혔다.

제멋대로 허공을 부유하던 독들은 천독멸혼진의 법칙에 따라 담호를 향해 칼날처럼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찌이익!

담호가 천을 찢어 입과 코, 귀를 막았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천이 얼마나 독기를 막아 줄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아예 무방비 상태로 있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츠으으!

독기를 포함한 칼바람 소리가 소름 끼치게 울려 퍼졌다. 천으로 귀를 막고 있음에도 소리는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마치 수천, 수만 마리의 벌들이 일제히 날갯짓을 하는 듯한 소리에 일대의 대기가 다 일렁일 정도였다.

독기가 배어 있는 칼바람에 그렇지 않아도 걸레쪽 같던 담호의 흑의가 서서히 녹아내렸다.

문제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슈와악!

무혼랑들이 일제히 공격해 온 것이다. 그들이 주먹을 지르고, 발을 휘두를 때마다 가공할 독기가 일어나 담호를 덮쳐 왔다.

담호가 선두에 있는 무혼랑을 향해 파성추를 펼쳤다.

쾅!

굉음과 함께 무혼랑의 몸이 들썩였다.

커다란 성벽이라도 단숨에 뚫어 버릴 정도의 일격이었다. 하지만 무혼랑은 그저 주춤하기만 했을 뿐, 그 어떤 타격도 입지 않았다.

무혼랑 혼자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미 무혼랑을 상대해 본 담호가 그 사실을 가장 잘 알고 있었다.

담호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파성추에 격중당한 무혼랑의 등에 당문 무인들이 손을 대고 있었다.

격체전공(隔體傳功).

서로의 내공을 전해 주는 고도의 공부가 펼쳐진 것이다.

그제야 담호는 천독멸혼진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용독술과 격체전공이 조화를 이룬 고도의 합격진. 담호가 이제까지 단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미지의 진법이었다.

촤아아!

칼바람과 함께 무혼랑들이 들이닥쳤다. 거기에 당문의 무인들이 내공을 더해 줬다.

순식간에 담호의 주위로 녹색의 방벽이 만들어졌다.

완벽하게 외부와 차단된 공간이었다. 그 안에 갇힌 담호에게 막대한 압력이 가해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당사일이 미소를 지었다.

“사람들이 권마라고 부르고 두려워하니 네놈이 그렇게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미쳐 날뛰었겠지. 허나 그것도 오늘로 끝이다. 천독멸혼진은 결단코 일개인이 감당할 수 있는 진법이 아니니까.”

당문이 천독멸혼진을 구상한 것은 무척 오래전의 일이었다.

마교가 세상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을 그때, 당문 역시 그들과 충돌을 한 적이 있었다. 그때 당문이 입은 피해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것이었다.

특히 당시 마교의 교주였던 멸황신마(滅皇神魔) 조곽에게 입은 피해는 당문을 거의 괴멸지경으로까지 이끌었다.

당문은 그때 깨달았다. 한 개인이 어디까지 강해질 수 있는지. 그리고 단 한 명에 의해서 그들이 수백 년 동안 쌓아 온 성이 모래알처럼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에 공포를 느꼈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바로 천독멸혼진이었다.

그러나 상대를 마교의 교주를 상정하고 만들어진 진법은 수백 년 동안 완성되지 못했다. 천독멸혼진의 가공할 위력을 견딜 만한 독인을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 천독멸혼진이 완성된 것은 역설적이게도 마교의 도움을 받았기 때문이다. 당문의 선대는 그토록 마교를 견제하고 물리치려 했건만 후대가 마교와 손을 잡고 천독멸혼진을 완성했다.

이 사실이 알려진다면 강호의 지탄을 받게 될 터지만, 당사일은 태연했다. 오늘 이 자리에서 담호를 죽이고 사천성을 완벽하게 장악하기만 한다면 그 어떤 이도 두렵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천성의 폐쇄적인 지형은 천험의 요새나 다름없었고, 설령 무림맹이 동원된다고 해도 많은 피해를 입고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하물며 마교와의 전쟁으로 정신이 없는 무림맹이 이곳 사천성까지 신경을 쓸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쿠콰가각!

담호를 중심으로 독으로 된 태풍이 휘몰아쳤다. 바람을 타고 무혼랑들이 다가왔다. 그들은 담호를 전력으로 공격했다.

쾅! 쾅!

굉음이 터져 나오고 사방으로 일진광풍이 휘몰아쳤다.

담호의 몸이 이리 튕겨 나가고, 저리 튕겨 나갔다.

제아무리 그의 공력이 심후하다고 해도 혼자의 몸으로는 사백여 명이 넘는 무인들이 펼치는 격체전공을 당할 수는 없었다.

쩌어엉!

담호의 단양타가 무혼랑의 머리에 격중 했다. 강한 충격을 받고 튕겨져 나가는 그의 몸을 뒤쪽에 있던 당문의 무인들이 붙잡았다. 그리고 격체전공으로 내력을 주입했다.

순간적으로 의식을 잃었던 무혼랑이 금세 정신을 되찾고 반격을 가해 왔다.

쾅!

담호의 몸이 뒤로 튕겨 나갔다.

그 위로 다른 무혼랑들의 공세가 무차별적으로 쏟아졌다.

독기가 배어 있는 태풍이 전신을 짓누르고, 무혼랑들이 파상공세가 펼쳐졌다. 거기에 천독멸혼진을 지원하는 당문의 무인들까지.

담호의 모습은 태풍 앞의 촛불처럼 위태롭기 그지없었다. 그의 코와 입으로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는 물러서지 않고 정면으로 천독멸혼진을 상대하고 있었다. 그런 그의 모습은 처절하기까지 했다.

“오늘 이 자리가 너의 무덤이다, 권마.”

그때 담호가 대지를 박찼다. 충차처럼 쏘아져 가는 그의 신형.

당사일이 비웃음이 가득 담긴 얼굴로 ‘어림없다’는 말을 하려는 그 순간이었다.

쾅!

뇌음과 함께 선두에 있던 무혼랑의 몸이 튕겨져 나갔다. 당문의 무인들이 그런 무혼랑의 등에 대고 내공을 주입하려 했다.

화하학!

그 순간 담호가 무혼랑의 몸을 뛰어넘어 당문의 무인들을 덮쳤다.

태풍과 같은 독풍이 전신을 짓누르고, 가공할 독기에 전신의 심맥이 녹아내리려 했다. 그래도 담호는 멈추지 않았다.

멈추는 그 순간이 죽음이었다.

움직여야 한다.

숨 한 번이라도 내쉴 힘이 남아 있다면.

담호의 눈이 희번덕거렸다.

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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