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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권마-321화 (32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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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1화 7장.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기 마련이다(3)

“크헉!”

무혼랑에게 격체전공을 해 주려던 당문의 무인이 비명과 함께 나가떨어졌다.

츄화학!

대열에서 이탈한 그의 몸이 독기에 휩쓸려 순식간에 녹아내렸다. 멀쩡했던 사람이 순식간에 한 줌의 독수로 변하는 광경은 차마 두고 보기 힘들 정도로 끔찍했다.

오죽했으면 천독멸혼진을 펼치던 당문의 무인들조차도 공포에 질린 표정을 지었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들은 이를 악물고 담호를 공격했다.

담호를 죽이면 당문은 높이 비상할 것이다. 반대로 담호를 죽이지 못하면 당문이 몰락한다. 그 절체절명의 명제가 당문의 무인들을 절박하게 만들었다.

“이야아!”

“죽어랏!”

그들은 혼신의 힘을 다해 담호를 공격했다.

제아무리 절대고수의 경지에 달했을지라도 천독멸혼진에 갇혔다면 벌써 즉사했어야 했다. 천독멸혼진은 분명 그럴만한 위력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담호는 벌써 이각째 천독멸혼진 안에서 버티고 있었다.

코와 입으로 피를 흘리면서도 말이다. 오히려 그는 무혼랑을 피해 당문의 무인들을 공격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당문의 피해는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었다.

‘왜?’

‘왜 안 죽는 거지?’

그 순간 그들의 머릿속에 공통으로 떠오른 생각이었다.

천독멸혼진을 펼칠 때까지만 하더라도 그들은 자신만만했다. 제아무리 천하의 권마라 할지라도 한 줌의 독수로 녹을 거라고. 그런데 천 가지의 독기를 뒤집어쓰고도 담호는 움직이고 있었다.

파직! 파지직!

자세히 보면 담호의 몸 주위에서 끊임없이 불꽃이 일어나고 있었다. 폭강이 휘돌며 독기 대부분을 태우고 있는 것이다. 그 덕분에 담호는 천 가지가 넘는 독의 안개 속에서도 지금까지 버틸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담호는 알고 있었다. 이렇게 버틸 수 있는 시간이 그리 길지 않다는 것을.

담호의 눈빛이 깊이 침잠됐다.

또한 그는 알고 있었다. 보통의 방법으로는 천독멸혼진을 깰 수 없다는 것을. 싸우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불리해지는 것은 자신이라는 것을.

암혼심공을 끌어 올렸다.

화산파의 옛 무공인 중천심결을 기반으로 마교의 여러 심공이 접목되어 만들어진 것이 바로 암혼심공이었다. 파괴력만 놓고 보면 천하에서 수위를 다툴 만한 심공이었다.

쿠콰콰!

암혼심공을 끌어올리자 폭마경이 더욱 위세를 떨쳤다. 담호의 몸 주위로 폭강이 맹렬하게 휘돌았다.

그 상태 그대로 담호는 허공을 향해 몸을 날렸다.

전신을 짓누르는 가공할 압력에 담호의 표정이 절로 일그러졌다. 마치 깊은 심해에 들어온 것처럼 엄청난 압력이 느껴졌다.

뼈와 근육이 오그라들고, 혈관이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불거져 나왔다. 그래도 담호의 신형은 멈추지 않고 허공으로 치솟아 올랐다.

뒤늦게 무혼랑들이 달려왔지만 그때는 이미 담호의 신형이 높이 치솟은 후였다.

푸스스!

머리카락이 독기에 부서져 나갔다. 피부에 수포가 생겨나더니 순식간에 진물이 흘러나왔다. 그래도 담호는 결코 멈추지 않았다.

푸화학!

마침내 그의 몸이 독기의 바다를 뚫고 허공 높이 솟구쳐 올랐다. 발밑으로 녹색의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았지만 그 안에 사백여 명의 당문 무인들이 존재했다.

“저, 저?”

그 광경을 본 당사일이 눈을 부릅떴다.

완벽하다 생각했던 천독멸혼진에 저런 약점이 있을 줄은 그도 몰랐기 때문이다.

독기의 바다를 헤치고 나오느라 담호의 몸은 만신창이였다. 겉으로 보이는 상처보다 보이지 않는 상처가 훨씬 심각했다. 어떻게 살아남는다 해도 후유증이 어디까지 미칠지 감히 예상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담호는 그런 걱정 따윈 하지 않았다.

아주 오래전 천금마옥에 홀로 갇혔을 때 맹세했다.

뒤는 생각하지 않기로.

오직 지금 이 순간 최선을 다하기로.

쿠콰콰!

그의 몸을 휘도는 폭강이 더욱 거세졌다. 마치 조그만 폭풍이 그의 몸을 휘도는 것 같았다.

허공에 잠시 떠 있던 담호의 몸이 이내 유성처럼 맹렬한 기세로 낙하했다. 폭강이 공기와 마찰을 일으키며 담호의 몸을 붉게 물들였다.

불꽃처럼 타오른 담호가 천독멸혼진에 직격했다.

콰아앙!

수십 개의 벽력탄이 한꺼번에 터진 것처럼 땅거죽이 뒤집어지고, 사나운 기파와 바람이 사방으로 휘몰아쳤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마치 부서진 인형처럼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담호가 떨어져 내린 곳을 중심으로 방원 십여 장이 크게 패여 있었다. 그리고 그 주위로 수많은 무인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오십여 명이나 되는 무인들이 단 일격에 목숨을 잃은 것이다.

“끄으으!”

“허윽!”

그리고 많은 이들이 부상을 당해 쓰러져 있었다.

“으으!”

“어떻게?”

겨우 목숨을 구한 무인들이 눈앞에 펼쳐진 믿을 수 없는 광경에 눈을 부릅떴다.

단 한순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토록 철옹성 같던 천독멸혼진이 이렇게 단숨에 깨질 줄은 그들도 몰랐다. 내부의 반발엔 강한 반진력을 가진 천독멸혼진이 외부의 충격에 이렇게 취약할 줄 미처 알지 못했던 것이다.

당문의 무인들은 아직도 삼백 명이나 남아 있었다. 다섯 명의 무혼랑도 아직 건재했다. 하지만 그들의 얼굴엔 숨길 수 없는 공포심이 드러나 있었다. 설마 담호가 이렇게 과격한 방법으로 천독멸혼진을 깰지 몰랐기 때문이다.

츠으으!

거대한 구덩이 중앙에서 담호의 몸이 흔들거리고 있었다.

천독멸혼진을 깬 반진력을 고스란히 몸으로 감당하고 있는 것이다. 뼈마디가 으스러질 것 같고, 근육이 갈가리 찢겨 나가는 것 같았다. 내장이 울리고, 머리가 진탕되어 사물이 서너 개로 겹쳐 보였다.

입술을 비집고 선혈이 흘러나왔다. 온몸이 깨지고 찢어져 선혈을 흘리는 데다가 진물까지 흘러나오는 모습은 차마 꿈에 볼까 두려울 정도로 끔찍했다.

더욱 무서운 것은 그런데도 담호가 무너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상상해 봐도 담호가 무너지는 모습은 그려지지 않았다. 그만큼 담호의 인상은 강렬하면서도 단단했다.

천독멸혼진을 펼쳤던 당문의 무인들이 서로의 얼굴을 바라봤다. 누구도 먼저 움직이는 이가 없었다.

담호의 잔향이 그만큼 강렬하게 짓누르고 있었다.

그때 멀찍이서 떨어져 보고 있던 당사일이 소리쳤다.

“무얼 하고 있는 게냐? 놈도 인간이다. 봐라! 움직일 기력도 없지 않느냐? 어서 놈을 공격해 숨통을 끊어라.”

그의 명령에 그제야 당문의 무인들이 잔향에서 벗어나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은 미처 인지하지 못했다.

방금 전까지 그들이 천독멸혼진을 펼치면서 살포했던 천여 종류가 넘는 독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담호가 그들을 직격했을 때의 충격으로 하늘 높이 비산했던 독무가 서서히 내려앉고 있었다.

“크헙!”

“컥!”

독무에 노출된 당문의 무인들이 목을 부여잡으며 주저앉았다. 독을 다루는 당문의 무인들이 중독되는 어이없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어지간한 독에는 내성이 형성된 당문의 무인들이었다. 하지만 천독멸혼진을 펼치면서 그들이 살포한 독은 천하에서 가장 지독한 것들이었다. 더구나 천여 가지 독이 섞이면서 새로이 만들어진 독은 그들의 내성마저 송두리째 무너트리고 있었다.

독무에서 자유로운 이는 이지를 잃은 무혼랑들뿐이었다. 무혼랑은 오히려 독기를 흡수해 더욱 생기가 넘쳤다.

무혼랑들은 미친 듯이 담호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 순간 담호의 흔들림이 멈췄다.

그 모습을 본 당사일은 알 수 없는 섬뜩한 느낌에 몸을 흠칫 떨었다. 불길한 예감은 곧 현실이 되어 나타났다.

담호가 전진했다.

충보가 펼쳐진 것이다.

곁가지가 없이 오직 앞으로만 전진하는 충차 같은 보법.

기이잉!

이어 파성추가 펼쳐졌다.

이제는 담호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두 가지 절기였다. 강호의 모든 이들이 익히 알고 있는 무공이었다.

너무나 단순하기에 대비를 한다면 막을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이 들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미 경험한 당사일은 알고 있었다. 그것이 얼마나 허황된 생각인지.

충보와 파성추를 펼치는 담호의 전신에서 기이한 접인력이 발생했다. 접인력에 휩쓸린 무혼랑들이 담호에게 쭉 딸려 왔다.

중심을 잃고 비틀거리는 무혼랑에게 파성추가 작렬했다.

퍼엉!

주먹은 가슴에 격중 했는데, 등이 터져 나갔다.

근육이 터져 나가고, 부서진 뼛조각이 날아갔다. 그리고 녹색의 피가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담호가 전진했다.

또다시 펼쳐지는 충보와 파성추.

콰앙!

여지없이 또 다른 무혼랑의 등이 터져 나갔다. 독혈과 뼛조각이 비산했고 담호는 또 다른 희생자를 찾아 움직였다.

“저, 저?”

당사일의 눈꼬리가 금방이라도 찢어질 듯 치켜 올라갔다. 그의 눈동자가 격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서, 선(線)을 이루고 있다.”

담호는 하나의 선을 이루며 전진하고 있었다.

그 선에 걸린 모든 것이 파괴되고 있었다. 독을 흡수해 능력이 최고조에 달한 무혼랑들이 부서지고 있었다. 그리고 당사일의 꿈이 무너지고 있었다.

콰아앙!

유달리 강한 굉음이 터진 순간 당사일은 그만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태풍이라도 몰아치는 것처럼 흔들리던 대기가 안정을 찾은 후에야 당사일은 눈을 뜰 수 있었다. 그가 눈을 뜨고 처음 본 것은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짓이겨진 채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무혼랑이었다. 그리고 그 앞에 우뚝 선 담호였다.

담호의 어깨가 들썩이고 있었다.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강렬한 열기가 그가 얼마나 많은 원기와 체력을 소모했는지 보여 주고 있었다.

당사일은 담호가 도저히 같은 인간으로 보이지 않았다.

마교와도 거래를 할 정도로 담대한 그였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담호라는 인간에게 아주 기가 질려 버리고 말았다.

당사일이 주위를 둘러봤다.

현세의 지옥이 그의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천독멸혼진을 펼치는 데 동원되었던 당문의 무인들 백여 명이 죽거나 다쳤고, 나머지 무인들도 독에 중독되어 생사지경을 헤매고 있었다. 그들은 각자 당문의 비전 해독약을 복용한 채 운공을 하고 있었지만, 상황이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설마 담호를 잡기 위해 준비한 독들이 오히려 당문을 괴멸지경으로 몰아넣을 줄은 몰랐다. 여유만 있다면 바닥에 주저앉아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당사일은 슬퍼하는 대신 분노를 불태웠다.

“이놈! 권마.”

그가 담호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언제나 냉정하기만 하던 그의 얼굴엔 균열이 가 있었고, 그 사이로 분노와 당혹성이란 감정이 내비치고 있었다. 하지만 분노가 워낙 커서 다른 감정들을 짓누르고 있었다.

담호는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할 만큼 상처 입고 지쳐 있었다. 사실 천독멸혼진과 무혼랑을 상대하고도 이렇게 서 있을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기적일 정도였다.

실제로 지금 담호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힘들 정도였다. 숨은 턱 끝에 차 있었고, 전신을 잠식한 독기 때문에 정신이 다 아득해지고 있었다. 그런데도 담호가 쓰러지지 않고 있는 것은 암혼심공과 눈앞에 멀쩡히 서 있는 적 때문이었다.

스윽!

문득 담호가 고개를 들어 당사일을 바라봤다. 그러자 거침없이 다가오던 당사일의 움직임이 딱 멎었다.

담호가 더 이상 움직일 기력이 없다고 확신하는 당사일이었다. 하지만 담호의 눈빛을 보는 순간 가슴속 깊은 곳에서 두려움이란 낯선 감정이 고개를 들면서 그를 위축되게 만들었다.

‘허장성세다. 놈은 더 이상 움직일 기력이 없어.’

당사일이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당문의 절대자로 평생을 보낸 그였다.

그의 말 한마디면 수천 명의 당문 무인들이 목숨을 바쳤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때문에 그는 평생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직접 움직여 본 적이 없었다.

손가락 하나만 까닥이면 많은 일들을 이룰 수 있는데, 굳이 자신이 움직일 필요가 없는 것이다. 특히 당문의 암기술과 내공을 완성한 이후에는 더욱 그랬다. 그래서 직접 이렇게 움직여 본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을 정도였다.

당사일의 전신엔 수많은 암기가 숨겨져 있었다. 그는 언제라도 당문 최고의 암기술이라는 만천화우(滿天花雨)를 펼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가 양손을 활짝 펼치는 순간 암기의 비가 담호를 향해 쏟아질 것이다. 그런데도 그는 만천화우를 펼치는 것을 주저하고 있었다.

함정이 아닐까 하는 의심 때문이었다.

저렇게 지친 모습도, 상처 입은 모습도 모두 자신을 유인하기 위한 함정이 아닐까 하는 의심에 그는 섣불리 걸음을 옮기지도 못했고, 암기술을 펼치지도 않았다.

그때 굳게 닫혀 있던 담호의 입술이 열렸다.

“당신…….”

가레가 끓고 피거품이 흘러나와 발음조차 불분명한 탁한 음성이었다. 그런데 묘하게 또렷하게 들렸다.

당사일이 지레짐작해 말했다.

“설마 목숨을 구걸하려는 것이냐? 권마. 그렇다면 실망이구나.”

“겁……쟁이군.”

“무슨 헛소리냐?”

“한 번도 직접 싸워 본 적 없지?”

순간 당사일의 얼굴이 종잇장처럼 구겨졌다. 그가 변명을 하려는 찰라 담호의 말이 이어졌다.

“목숨을 건 싸움이란 건 무공으로 하는 게 아니야.”

“…….”

“심장으로 하는 거지. 누가 더 강한 심장을, 큰 배포를 가졌느냐가 중요해.”

기이하게 여운이 많이 남는 말이었다.

쿠웅!

당사일의 심장이 크게 고동쳤다.

“당신의 심장이 겁내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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