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권마-322화 (322/500)

 322

322화 8장. 안에서 호응하고, 밖에서 흔든다(1)

당사일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핏발이 선채 부릅떠진 눈과 꽉 다문 입술이 그가 얼마나 분노하고 있는지 보여 주고 있었다.

태어나면서부터 탄탄대로를 달려온 당사일이었다. 전대 가주의 장남으로 태어나 별 어려움 없이 당문의 후계자가 되었다. 거기다 가진 바 재능과 오성 또한 탁월해서 하루가 다르게 무공이 쑥쑥 늘었다.

그런 당사일이 당문의 가주가 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가주가 된 후에도 그는 무공과 암기 수련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성취는 하루가 다르게 높아졌고, 어느새 높다란 벽을 깨고 절대의 경지에 발을 들일 수 있었다.

그때까지 당사일은 단 한 번도 제대로 싸운 적이 없었다. 당문 내에서는 물론이고, 청성파와 아미파의 무인들도 그와는 싸우려 하지 않았다.

당문의 가주는 은연중 사천제일의 무인으로 인정을 받았고, 당대 가주인 당사일에게 덤빌 만큼 간담이 큰 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나마 최근에 싸워 볼 기회를 얻었던 것이 청성파를 봉문시킬 때였다. 하지만 청성파의 장문인인 호광 진인이 싸우는 것을 포기했기에 무공을 제대로 펼칠 기회를 얻지 못했다.

그 때문에 담호를 만나기 전까지는 무척이나 몸이 근질근질한 상태였다. 하지만 그런 마음은 담호와 직접 대면하는 순간 사시나무처럼 사정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무공의 고하나 강함 때문이 아니었다. 담호라는 인간 자체가 당사일을 질리고 두렵게 만든 것이다.

팔십 평생을 살면서 이렇게 두려웠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당사일은 자신이 설마 이렇게 타인을 두려워하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스르륵!

담호가 왼발을 바닥에 끌며 걸어왔다.

쿵!

오른발이 대지를 찍었다. 그 울림이 대지를 타고 당사일에게 전해졌다.

담호의 전신은 걸레쪽처럼 헤지고 찢어져 피가 철철 흘러내리고 있었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벌써 죽었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처를 입고도 담호는 움직이고 있었다.

그래서 평소보다 더 발을 끌었다. 들어 올릴 힘마저 없어 그렇게 질질 끄는 것이다. 하지만 담호의 눈빛만큼은 아직도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투지로 가득한 사납고 거친 눈동자. 그 안에 비친 당사일의 얼굴엔 숨길 수 없는 공포가 드러나 있었다.

여든이 넘은 나이, 육체는 아직 젊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탄탄하기 그지없었지만, 정신은 노인의 그것이었다.

“크으!”

당사일의 입술을 비집고 침음성이 흘러나왔다.

담호의 기세가 그를 압박해 왔다.

쿵! 스르륵! 쿵! 스르륵!

유난히도 다리를 끄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그리고 그 소리는 당사일의 심장을 고동치게 만들었다.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

담호의 입이 열렸다.

“겁쟁이!”

“감히! 그…… 누구도 나를 그렇게 부를 수 없다.”

쾅!

그 순간 담호가 그대로 당사일을 들이받았다. 파성추를 펼치는 대신 몸통으로 들이받은 것이다.

“크윽!”

호신강기를 끌어올렸기에 육체적인 타격을 입지는 않았지만, 대신 당사일의 심령이 크게 흔들렸다.

그는 절대 해서는 안 될 실수를 하고 말았다. 담호에게 간격(間隔)을 허용하고 만 것이다.

대부분의 암기술이 그렇듯 당문 최고의 절기인 만천화우를 펼치기 위해서는 일정한 간격이 필요했다. 그런데 담호의 기세에 질려 만천화우를 펼칠 간격을 잃고 말았다.

당사일은 결국 만천화우를 포기하고 당문의 절기인 구환연혼장(九環聯魂掌)을 펼쳤다.

구환연혼장은 당문의 최고 절기 중 하나로 아홉 번의 장력을 단 일수에 연거푸 펼치는 데 묘미가 있다. 구환연혼장에 적중당하면 아홉 가지의 다른 힘이 각기 작용해 인체 내부를 완벽하게 붕괴시킨다.

슈우우!

당사일의 구환연혼장은 매우 완벽했다. 그래서 너무나 깔끔하게 담호의 몸에 작렬하는 듯싶었다.

턱!

그 순간 담호의 손이 그의 팔목을 잡았다. 너무나 궤적이 깨끗해서 오히려 쉽게 잡힌 것이다.

당사일이 미간을 찌푸리며 담호의 손을 뿌리치려 했다. 하지만 담호의 손아귀 힘은 너무 억세 뿌리칠 수 없었다.

후웅!

당사일은 자신의 두발이 대지에서 떨어짐과 동시에 아찔한 부유감을 느꼈다. 머리와 다리의 위치가 순식간에 바뀌고 대지가 급속도로 확대되었다. 담호의 지천격이 들어간 것이다.

이제까지 수많은 이들이 담호의 지천격에 머리가 터져 죽었다. 개중에는 강호에서 명성을 날리던 고수들도 즐비했다. 하지만 당사일은 그들과 차원을 달리하는 고수였다. 당연히 대응도 남달랐다.

턱!

재빨리 한 손으로 바닥을 짚어 충격을 완화하고 몸을 비틀어 담호의 손에서 벗어나려 했다.

쾅!

그 순간 당사일의 머리가 강렬한 충격과 함께 튕겨져 나갔다. 담호의 주먹이 관자놀이에 작렬한 것이다.

내공을 끌어 올려 머리가 터져 나가는 것은 막았지만, 정신이 순간적으로 아득해졌다. 당사일은 급히 입술을 깨물어 정신이 날아가는 것을 막았다.

“놈!”

쾅!

그 순간 이격이 터져 나왔다.

당사일의 몸통에 담호의 주먹이 작렬한 것이다.

“크윽!”

당사일의 얼굴이 절로 일그러졌다.

그는 고통을 참으며 반격을 하려 했다. 이성은 물러나야 한다고 판단하고 있었지만, 당문의 가주라는 자존심이 그의 발목을 붙들고 있었다.

콰직!

“컥!”

하지만 제삼격이 어깨에 작렬했을 때 당사일은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엄청난 고통이 등골을 타고 전신으로 번져 나갔다.

그는 반격을 멈추고 일단 거리를 벌리려 했다. 하지만 마치 늪에 빠진 것처럼 그의 몸이 무겁기 그지없었다. 담호에게서 발생한 기이한 접인력이 그의 몸을 붙잡고 있는 것이다.

“무슨?”

그가 두 눈을 부릅뜬 순간 담호의 주먹이 연이어 작렬했다.

콰가가가각!

육합혈산하(六合血山河).

독행류의 최종장이 펼쳐진 것이다.

처음에 작렬했던 주먹은 그 서막에 불과했다. 마치 가죽 북이 털리듯 당사일의 몸이 흔들렸다.

그는 급히 호신강기를 펼쳐 전신을 보호했다. 하지만 담호의 육합혈산하는 호신강기를 종잇장처럼 찢어 버렸다.

“크아악!”

당사일의 입에서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팔이 부러지고, 근육이 파열됐다. 부러진 뼛조각이 살점을 파고들고, 내장이 짓이겨져 울컥 피를 토해 냈다.

순식간에 그의 몸이 걸레쪽처럼 짓이겨졌다.

“흐으!”

담호가 거친 숨을 내뱉으며 멈춰 섰을 때 당사일에게선 인간의 형상을 찾아볼 수 없었다.

일순간에 모든 것을 토해 낸 담호의 몸은 금방이라도 폭발할 듯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피와 땀이 수증기가 되어 증발하고 있었고, 거칠게 내쉬는 숨엔 열기가 가득했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온몸의 관절이 따로 노는 것이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았다. 하지만 담호는 버티고 섰다.

몸 안에 있는 모든 기력을 끌어 썼다. 단전에 가득 찼던 내공은 바닥나고, 극심한 고통과 허탈함에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았지만 그래도 버티고 섰다.

그렇게 우뚝 선 채 그는 걸레가 되어 쓰러진 당사일을 내려다보았다. 그런 그의 모습은 섬뜩하다 못해 공포스러웠다.

“으으!”

“가주께서…….”

그나마 간신히 버티고 있던 당문의 무인들이 그 광경을 보며 피눈물을 흘려야 했다.

“끄으으!”

당사일이 버둥거렸다. 하지만 그의 움직임은 생의 끝자락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떨림에 불과했다.

이내 당사일의 움직임은 잦아들었고, 거칠게 내뱉던 숨소리도 더 이상 흘러나오지 않았다. 절명한 것이다.

사천제일세인 당문이었다. 그런 당문의 최정점에 서 있는 가주의 충격적인 죽음이었다. 담호에 의해 죽었기에 그 충격은 더욱 컸고,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이럴 수가!”

“어떻게?”

당문 무인들이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믿기지 않는 현실을 부정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눈앞에서 벌어진 일은 분명 현실이었다.

“거봐! 겁쟁이라니까.”

그 순간 담호의 중얼거림이 들려왔다.

이미 숨이 끊어진 당사일을 모욕하는 말이었다. 그런데도 이 자리에 있는 누구도 감히 나서 담호의 말을 반박할 수 없었다.

그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위태하게 휘청이고 있었다. 하지만 당사일을 죽이기 전에도 그는 그 모습이었다.

담호의 잔향이 전장을 지배하고 있었다.

당문의 무인들은 복수심보다 먼저 공포심을 느끼고 있었다.

그때 흑귀가 담호에게 다가왔다.

잠시 거친 숨을 몰아쉬던 담호는 겨우 흑귀에 몸을 실었다. 두 팔을 들어 올릴 힘이 없어 고삐도 제대로 쥘 수 없었다. 흑귀는 그런 담호를 싣고 전장을 빠져나갔다.

“아아!”

그제야 누군가의 입에서 억눌러 두었던 탄식이 터져 나왔다. 탄식은 마치 전염병처럼 당문 무인들 전체로 퍼져 나갔고, 곧 울음이 되었다.

“가주님!”

“크흐흑!”

담호가 떠난 자리엔 사람들의 절망만이 가득했다.

***

무림맹이 자리를 잡고 있는 호남성 악양(岳陽)은 언제나 수많은 사람들로 활기가 가득했다.

무림맹은 단순히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 아니었다. 무림맹이라는 이름답게 무림의 중심이었고, 무림맹의 수뇌부들은 모두 무림에서 명성을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사람들이었다. 당연히 그 영향력이 엄청날 수밖에 없었다.

강호의 정의를 지킨다는 명분 아래 수많은 무인들이 찾아오고, 또 그들을 지원하기 위해 많은 이들이 들어왔다.

사람들이 모이자, 많은 물자가 소요됐고, 그래서 상인들이 찾아왔다. 재화가 돌고, 사람이 모이고, 일련의 순환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사정이 그렇다보니 악양은 완전히 무림맹 중심으로 체계가 바뀌었다. 모든 일이 무림맹 중심으로 결정되고 이뤄졌다. 그야말로 강호의 중심지가 된 것이다.

무림맹과 가까운 동정호에는 연일 수많은 배들이 드나들었다. 예전에는 동정호를 구경하기 위한 시인묵객들과 백성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지금은 무림맹과 거래를 하기 위한 상인들이 많이 찾았다.

“우와!”

동정호변을 걷던 사람들이 갑자기 탄성을 내뱉었다. 동정호에 들어오는 배치고 작은 것은 없었다. 하지만 지금 들어오는 배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컸기 때문이다.

동정호에 정박한 가장 큰 배보다 두어 배는 더 크게 보이는 거대한 배가 들어오고 있었다. 배의 깃대에는 신화상단(晨火商團)이라 적힌 깃발이 펄럭이고 있었다.

“신화상단이다.”

“천하제일상단의 천하제일선이 들어오고 있다.”

신화상단은 누구나 천하에서 첫 손가락 안에 꼽히는 거대상단이었다. 그들이 벌어들이는 돈은 그야말로 천문학적이어서 정확한 규모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고 했다. 심지어는 상단의 주인인 원회상조차도 말이다.

신화상단은 원활한 상행을 위해 휘하에 수많은 배를 두고 있었는데, 그중 가장 큰 배를 천하제일선(天下第一船)이라 불렀다.

천하제일선은 신화상단에서도 손꼽히는 거래가 있을 때만 움직였다. 그 말은 곧 신화상단이 무림맹과 큰 거래를 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는 뜻이었다.

“무슨 거래를 하러 온 거지?”

“누가 책임자로 왔을까?”

천하제일선을 알아본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그런 그들의 얼굴에는 기대감이 가득했다.

천하제일선과 같은 거대한 배의 등장은 호사가들의 흥미를 끌기 충분했다.

선착장에는 천하제일선에서 물건을 내리기 위해 동원된 인부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마침내 천하제일선이 정박을 하자 우두머리의 인솔 아래 그들이 올라갔다.

“모두 조심해서 움직여라.”

“귀한 물건이 많으니 각별히 주의하거라.”

천하제일선을 타고 온 상인들과 일꾼들의 목소리가 어우러져 갑판은 시장통처럼 시끄럽게 변했다.

그때 두 사람이 선실에서 나왔다.

눈에 띄는 미모의 여인과 화려한 복색을 한 중년의 남자였다. 그들을 본 신화상단의 상인들이 분분히 고개를 숙였다.

“아가씨!”

“부단주님!”

미모의 여인은 신화상단의 주인인 원회상의 딸 원설화였다. 그리고 화려한 복장의 중년인은 바로 부단주인 임오연이었다.

원설화의 존재는 사람들에게 익히 알려져 있었지만, 임오연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았다. 하지만 신화상단 내의 사람들에게 누구보다 유명한 이가 바로 임오연이었다.

원회상과 함께 실질적으로 신화상단을 일으켜 세운 입지전적인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활동이 뜸하지만, 신화상단의 초창기에는 그가 나서서 수많은 상로를 개척했었다.

그때 붙여진 별호가 파운검이었다.

파운검(破雲劍) 임오연.

얼핏 보기엔 겨우 중년으로 보이지만 실은 그의 나이 예순이 넘었다. 단지 강력한 내공으로 노화를 억누르고 있을 뿐이다.

그가 나선 곳엔 항상 신화상단의 깃발이 높이 나부꼈다.

임오연이 고개를 들어 동정호변에 우뚝 선 전각군을 바라봤다.

“저곳이 무림맹이군.”

“맞아요.”

여인 원설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그녀의 입가엔 은은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