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권마-323화 (323/500)

 323

323화 8장. 안에서 호응하고, 밖에서 흔든다(2)

신화상단의 무인들은 무림맹에 들어가기 직전 정문 검문소에 소지한 무기를 모두 맡겼다.

무림맹 소속이 아닌 무인들은 모두 무기를 맡겨야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마치 무당파의 해검지처럼 말이다.

그에 불만을 갖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불평 한마디 하지 않고 무기를 맡겼다. 그리고 나갈 때 다시 되찾았다.

이에 예외는 없었다. 신화상단의 부단주인 임오경조차도 들고 온 검을 맡겼다. 그렇게 신화상단의 무인들과 일꾼들은 무기 하나 없이 무림맹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시오.”

원설화와 임오연을 맞이해 준 이는 오십 대 중반의 남자였다. 한눈에 봐도 깐깐하게 보이는 인상과 날카로운 눈매의 소유자였다.

그는 무림맹의 재정을 담당하는 재물당주(財物堂主) 고승천이었다. 고승천은 숫자에 강하고, 이재에 밝았다. 또한 일처리가 칼처럼 단호해 많은 이들의 신망을 얻었다. 그가 무림맹의 재정을 맡은 이후 단 한 번도 적자가 없었다는 사실이 그가 얼마나 뛰어난 인물인지 증명해 주고 있었다.

무림맹에서 일어난 대부분의 거래는 그의 손을 거쳐 이뤄졌다. 그가 결재를 하면 맹주인 남천산조차 확인하지 않을 정도였다.

“고 당주님을 뵈어요.”

“오랜만입니다. 고 대협!”

원설화와 임오연이 고승천을 향해 포권을 취했다. 두 사람의 태도는 매우 정중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고승천의 심기를 건드렸다가는 무림맹과의 관계가 잘못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임오연이 고승천에게 말했다.

“무림맹에 주문하신 물건 가져왔습니다.”

그의 등 뒤로 수많은 수레와 무인 들이 도열해 있었다. 수레에는 상자가 잔뜩 실려 있었다.

고승천이 바라보자 임오연이 미소를 지었다.

“검과 도 이천 자루입니다. 모두 최상의 물건들입니다.”

“확인해 봐도 되겠소?”

“물론입니다. 당연히 직접 확인해 보셔야죠.”

고승천이 마차에 실린 상자를 열었다. 그러자 상자 안에 가득 들어 있는 도와 검이 보였다.

그는 한 자루를 꺼내 어루만지다가 손가락으로 튕겼다.

따앙!

맑고 경쾌한 쇳소리가 공기 중에 울려 퍼졌다.

고승천은 눈을 지그시 감고 쇳소리를 음미했다. 그에겐 쇳소리가 음악 소리처럼 들렸다.

“좋군!”

절로 탄성이 흘러나왔다.

비록 재물당을 맡고 있다지만 그 역시 무공을 상당한 경지로 익힌 무인이었다. 쇳소리만 듣고도 무기의 완성도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었다.

고승천은 각기 다른 마차에서 무작위로 검과 도 몇 자루를 꺼냈다. 그리고 마찬가지 방식으로 완성도를 가늠해 봤다.

그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역시 신화상단이구려. 완성도가 아주 좋소.”

“익히 아시다시피 본 상단은 최상의 물건이 아니면 취급하지 않습니다. 특히 무림맹과의 거래에는 더욱 신경을 쓸 수밖에 없지요.”

“좋소! 전량 구매하겠소.”

“감사합니다, 고 대협.”

고승천이 부하를 손짓해 불렀다.

“신화상단이 가져온 무기들을 전부 창고로 옮기거라.”

“예!”

대답과 함께 무림맹의 무인들이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신화상단의 무인들에게서 무기를 건네받아 창고로 옮겼다.

그 모습을 잠시 지켜보던 고승천이 임오연과 원설화에게 말했다.

“두 분은 나와 함께 갑시다. 대금을 결제해 드릴 테니.”

“알겠습니다.”

“예!”

임오연과 원설화가 고승천을 따라 무림맹 심처로 걸음을 옮겼다. 안쪽으로 들어가자 커다란 연무장이 보이고 무공을 수련하고 있는 수많은 무인들이 보였다.

수백여 명의 무인이 한자리에서 무공을 연마하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팔을 내뻗는 동작, 발을 휘두르는 동작 하나에도 힘이 담겨져 있었다. 얼핏 봐도 일반적인 수준은 훨씬 넘어서 있었다.

임오연이 감탄사를 터트렸다.

“허! 정말 대단합니다. 일반 맹도가 이 정도 실력을 가지고 있다니. 마교가 아무리 위세를 떨치더라도 무림맹 앞에서는 어린아이와 다를 바가 없겠습니다.”

“아직 멀었소. 더 강해지고, 단련이 돼야 하오. 그래야만 마교의 잡졸들을 확실히 세상에서 몰아낼 수 있을 테니까.”

고승천이 무뚝뚝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하지만 자부심까지 숨길 수는 없었다.

지난 삼 년 동안 무림맹의 무인들은 많이 강해졌다.

수뇌부들이 나서서 단련을 시켰고, 하급무인들 역시 혼신의 힘을 다해 수련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무림맹의 무인들은 강호의 그 어떤 무인들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실력을 갖게 됐다.

“여기요.”

고승천이 조그만 전각 앞에 멈춰 섰다.

전각의 현판에는 재물당(財物堂)이라는 석자가 쓰여 있었다. 이 조그만 곳에서 무림맹의 재정을 총괄하는 엄청난 일이 이뤄지고 있었다.

고승천이 먼저 걸음을 옮겼고, 임오연과 원설화가 그 뒤를 따랐다.

원설화가 감탄했다는 표정으로 임오연에게 말을 건넸다.

“대단하네요. 무림맹의 단단한 분위기가 그대로 느껴져요.”

“명문이란 대부분 이런 분위기를 갖고 있지.”

“그런가요?”

“그렇다.”

“그럼 우리 신화상단에 비하면 어떤가요?”

원설화의 말에 임오연이 걸음을 잠시 멈춰 섰다. 잠시 생각하는 듯한 표정을 짓던 임오연이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원설화의 입가에도 미묘한 미소가 떠올랐다.

“안으로 들어가자. 빨리 일을 처리해야 푹 쉴 수 있다. 자고로 큰일을 하려면 충분한 휴식이 필요한 법이지.”

“예!”

원설화가 공손히 대답했다.

임오연은 그녀에게 친숙부 이상의 존재였다. 단순히 상단주의 딸과 부상단주의 관계가 아니었다. 그들은 그 이상의 유대감을 갖고 있었다.

고승천의 방에 들어온 두 사람의 얼굴에 이채가 떠올랐다. 고승천의 방에 다른 사람이 먼저 들어와 있었기 때문이다.

고승천이 급히 그를 향해 포권을 취했다.

“군사.”

“하하! 미안하외다, 고 당주.”

“아닙니다. 그보다 군사께서 여기에 어쩐 일이신지?”

고승천의 얼굴에 의아한 표정이 떠올랐다. 허락도 없이 그의 방 안에 들어온 이는 바로 군사인 남궁창이었기 때문이다.

남궁창이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저 두 분하고 긴히 할 이야기가 있어서 이렇게 왔소이다. 잠시 자리를 비워 줄 수 있겠소? 고당주.”

“물론입니다.”

고승천이 정중히 고개를 숙인 후 물러났다.

그가 자리를 비우자 남궁창이 원설화와 임오연에게 사과했다.

“미안합니다. 이렇게 불쑥 찾아와서 놀라셨을 겁니다. 무림맹의 군사 남궁창입니다.”

“아닙니다. 저는 신화상단의 부단주인 임오연입니다. 그리고 이쪽은 제 질녀인 원설화라고 합니다.”

“원설화가 무림맹의 남궁 군사께 인사드려요.”

“반갑소이다. 임 대협, 원 소저.”

남궁창이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무림맹의 군사직을 오래 수행하다 보니 그의 미소에도 무게가 실렸다. 임오연과 원설화가 받는 압박감이 적지 않았다.

남궁창이 안색이 경직된 그들에게 말했다.

“자자, 이렇게 서 있을 것이 아니라 자리에 앉으시지요. 먼 길을 오신 분들을 이렇게 세워 두는 것은 예의가 아니지요.”

“감사합니다.”

“으음!”

임오연과 원설화가 남궁창이 권한 자리에 앉았다. 그들이 앉고 나서야 남궁창도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그가 자연스럽게 분위기를 주도해 나가는 모습이었다.

‘남궁창, 무림맹의 기틀을 잡은 남자답게 보통이 아니구나.’

임오연의 눈에 순간적으로 경계의 빛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그의 눈빛이 유순해졌다.

“이렇게 무림맹의 군사님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저야말로 오래전부터 임 대협을 뵙고 싶었습니다.”

“저를요?”

“그렇습니다. 원회상 대협과 더불어 오늘날의 신화상단을 일으켜 세운 입지전적인 분 아닙니까? 한 번쯤 편히 이야기를 나누면서 조언을 듣고 싶었습니다.”

“조언은 무슨? 모든 것은 저희 단주님이 다 하셨지, 저는 한일이 거의 없습니다.”

“그리 겸양 떠실 것 없습니다. 신화상단이 커 나가는 과정에서 임 대협이 얼마나 지대한 공을 세웠는지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것 참!”

임오연이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그런 임오연의 모습에 남궁창의 미소가 짙어졌다.

두 사람은 한참이나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원설화는 한쪽에서 조용히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할 수밖에 없었다. 연륜이 깃든 그들의 이야기에 원설화가 끼어들 자리는 없었기 때문이다.

중간에 간단한 술상이 들어와서 이야기는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이어진 두 사람의 대화는 밤늦은 시간에 끝이 났다.

“그럼 잘 부탁드리겠소이다.”

“단주님께 잘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임 대협의 말씀이라면 원 대협도 거절하지 않으실 겁니다. 그럼 임 대협만 믿겠습니다. 하하하!”

남궁창이 큰 웃음과 함께 퇴장했다. 임오연도 미소로 그를 바라봤다. 하지만 그의 미소는 남궁창의 모습이 사라지는 순간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남궁창.”

“숙부.”

이제까지 침묵을 지키고 있던 원설화가 입을 열었다. 그러자 임오연의 시선이 그녀를 향했다.

“참으로 머리가 좋은 자가 아니더냐? 본 상단을 끌어들이려 이런 잔수를 생각해 내다니.”

“그런 것 같습니다.”

“허허!”

임오연이 너털웃음을 지었다.

무척이나 긴 시간 동안 뱅뱅 돌려 말했지만 남궁창의 요건은 매우 간단했다.

신화상단의 주인인 원회상을 무림맹의 장로로 맞아들이고 싶다는 것이다. 신화상단과 같은 거대 상단의 주인이니 당연히 무림맹의 장로가 될 자격이 있고, 무림의 안위를 지키기 위해 힘을 보탤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그와 같이 간단한 이야기를 남궁창은 무척이나 길고 장황하게 이야기했다. 부탁할 것이 있는데 자존심은 상하기 싫다. 그러니까 무척이나 장황하게 말해서 상대의 혼을 쏙 빼놓고, 알아서 굽혀 들어오게 만드는 화술이었다.

물론 임오연은 그와 같은 화술에 당할 정도로 녹록한 상대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오연은 남궁창의 말을 경청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단주님이 무림맹의 장로가 되면 당연히 신화상단은 지원을 늘릴 수밖에 없지. 정말 손 안 대고 코를 풀려는 격이구나.”

“그러게 말이에요. 저도 어이가 없어서 말이 안 나오네요.”

“그러면서도 자신의 면은 상하기 싫으니 빙빙 돌려 말하고. 정말 피곤한 부류구나.”

임오연이 혀를 찼다. 원설화도 고개를 끄덕여 그의 의견에 동의했다.

순간 임오연의 눈매가 변했다.

마치 칼날처럼 날카롭게 변한 눈매와 차가운 눈빛은 소름이 끼칠 만큼 섬뜩했다. 하지만 원설화는 그런 임오연의 변화를 보고도 놀라지 않았다.

이것이 임오연의 본래 모습이었다.

세상에 파운검이라는 별호로 알려져 있었지만, 그것은 실제 임오연의 무서움을 반도 표현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비인 원회상조차 인정해 주는 무인이 바로 임오연이었다.

원회상이 굳이 오늘 이 자리에 임오연을 보낸 데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 사실을 알기에 원설화는 앞에 나서는 대신 조용히 침묵을 지켰던 것이다.

잠시 후 재물당주 고승천이 들어왔다.

그는 임오연과 원설화에게 오늘 들어온 무기 대금을 전표로 지급했다. 그렇게 모든 거래가 끝난 후 두 사람은 숙소로 안내되었다.

그들이 배정 받은 숙소는 재물당에 소속된 빈객청이었다. 재물당의 창고와 가까운 곳에 위치한 빈객청은 높다란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어 외부의 시선에서 자유로웠다.

임오연과 원설화가 빈객청 내부를 둘러봤다.

“좋군!”

“좋네요.”

두 사람이 거의 동시에 중얼거렸다. 그들이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

동정호의 밤은 화려했다.

호변에 있는 거리엔 붉은 등이 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를 오갔다. 붉은 등불이 비친 동정호는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많은 사람들이 술에 취하고, 흥에 취하고, 그리고 그림 같은 풍광에 취했다. 하지만 끝나지 않는 잔치는 없었고, 아무리 화려한 밤이라도 영원하지는 않았다.

새벽녘이 가까울 무렵 거리를 가득 채웠던 사람들도 모두 집으로 들어갔는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인기척이 사라진 동정호의 거리는 을씨년스럽기 그지없었다.

기기긱!

그때 기괴한 소음이 동정호에 울려 퍼졌다. 동정호변에 정박한 천하제일선에서 나오는 소리였다.

갑자기 천하제일선의 선체 벽이 열리더니 나무 계단이 내려왔다. 그 직후 검은 무복을 입은 무인들이 하나둘씩 내리기 시작했다.

소리도 없이 선착장에 내린 무인들이 선착장으로 이동했다.

제일 먼저 목표가 된 곳은 선착장에 있는 무림맹의 감시소였다. 번을 서고 있던 무림맹의 무인들은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검은 무복을 입은 무인들은 제일 먼저 그들부터 제거했다.

스걱!

날카롭게 벼려진 단검이 그들의 목을 긋고 지나갔다. 무림맹의 무인들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그대로 절명했다.

감시자를 모두 제거한 무인들이 손짓을 했다. 그러자 천하제일선에서 본격적으로 대규모의 병력이 내렸다. 그 수가 무려 오백 명이 넘었다.

그 선두에 사십 대 후반으로 보이는 장한이 있었다. 철탑을 연상시키는 거대한 체구와 단단한 인상. 그리고 살벌한 위압감까지. 장한의 압도적인 존재감이 선착장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잠시 주위를 둘러보던 장한이 언덕 위로 보이는 무림맹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무림맹.”

거대한 전각군을 바라보는 그의 음성엔 살기가 가득했다.

그의 이름은 묵천강, 금마각의 각주였다.

금마각은 마교의 진정한 정예라 할 수 있는 내원의 주축 중 하나였다.

묵천강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화려한 잔치가 열리겠군.”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