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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권마-324화 (32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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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4화 8장. 안에서 호응하고, 밖에서 흔든다(3)

새벽에도 무림맹 군사부의 불은 꺼지지 않았다. 무림맹에서 유일하게 열두 시진 불이 꺼지지 않는 곳이 바로 군사부였다.

맹주부가 무림맹의 심장이라면 군사부는 두뇌였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불이 꺼지는 순간이 바로 무림맹 최후의 날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 정도로 군사부와 남궁창은 사람들의 신뢰를 받고 있었다.

임오연, 원설화와의 만남 후 남궁창은 바로 군사부로 들어왔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군사부에는 많은 이들이 모여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이는 삼십 대 후반으로 보이는 장년인이었다. 유난히도 날카로운 눈매와 얄팍한 입술이 인상적인 남자는 바로 무림맹 직속의 정보 조직 암운의 수장인 구여산이었다.

구여산 주위에 있는 자들 역시 무림맹의 주요 조직을 담당하고 있는 자들이었다.

“군사.”

“어서 오십시오.”

그들은 공손한 태도로 남궁창을 맞이했다.

“모두들 늦게까지 고생이 많네.”

“아닙니다.”

“군사께서 제일 고생이 많으시지요.”

그들은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자리에 앉는 순간 분위기가 일변했다.

먼저 입을 연 이는 바로 남궁창이었다.

“맹주부는 어떻소?”

“천도왕 적 선배의 합류 이후 활기가 돌고 있습니다.”

“역시 당연한 수순인가?”

“아무래도 전대의 선배들이 더 합류할 것으로 예상되니 더욱 그런 것 같습니다.”

“맹주의 위세가 하늘을 찌르고 있겠군.”

남궁창의 얼굴에 거북한 표정이 떠올랐다. 그것은 다른 수뇌부들도 마찬가지였다. 이 자리에 있는 수뇌부들은 모두 무림 명문가에서 파견 나온 무인들이었다.

그들은 맹주가 일정 이상의 힘을 갖는 것을 원치 않았다. 맹주가 힘을 갖는다는 것은 곧 그들의 힘이 약해지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천도왕 적경천의 합류는 그들에게 큰 타격을 주었다. 특히 적경천을 등에 업은 남천산은 이번 기회를 놓치지 않고 무섭게 세를 확장했다.

이제까지 어느 쪽 편도 들지 않고 있던 중도의 무인들이 적경천의 합류를 기점으로 맹주의 편에 서기 시작했다. 남천산의 위세가 커질수록 남궁창과 명문의 무인들은 심기가 불편해질 수밖에 없었다.

남궁창의 미간에 깊은 골이 패였다.

“하필 이 시기에 천도왕의 합류라니. 공교로워도 이렇게 공교로울 수가 있나?”

“그러게 말입니다. 아무도 이런 상황은 예상하지 못했을 겁니다.”

“한시라도 빨리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이렇게 상황이 흘러가면 저희측이 불리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순식간에 장내가 시끌벅적하게 변했다.

그만큼 그들은 큰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딱 사냥개 역할 정도만 바라고 맹주로 내세운 남천산이었다. 그런 그가 적경천을 영입함으로써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을 얻었다. 사냥개가 늑대가 된 것이다.

길들일 수 없는 늑대는 주인에게 위협이 되기 마련이다.

지금 그들의 상황이 그랬다.

그 때문에 매일 밤 모여서 회의를 거듭하고 있었다.

아무리 회의를 해도 답이 나오지 않자 남궁창이 화제를 돌렸다.

“권마는?”

“아직 소식이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사천성이 너무 먼 곳이다 보니 소식이 들어오는 것이 늦습니다.”

대답을 한 이는 암운의 수장인 구여산이었다.

남궁창의 표정이 더욱 굳었다.

“권마는 우리의 가장 큰 주적이네. 그에 대한 감시망을 더욱 강화시키게.”

“알겠습니다.”

구여산이 굳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 역시 담호에 큰 원한을 갖고 있었다. 그의 휘하에 있는 암운 이 조가 담호에게 몰살을 당했기 때문이다.

담호에게 원한을 갖고 있는 것은 비단 남궁창과 구여산뿐만이 아니었다. 이 자리에 있는 자들 중에 담호에 대해 좋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담호는 든든한 우군이 아닌 큰 위협이었다. 마교보다 그들의 아성에 더 큰 위협을 주는 존재가 바로 담호였다.

‘그 극단적인 성질만 아니었어도 유용하게 잘 써먹었을 텐데.’

이 순간 그들의 머릿속에 공통적으로 떠오른 생각이었다.

그들은 알고 있었다. 담호는 통제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통제가 가능한 그런 존재였다면 진즉에 무림맹에 영입해서 떠받들어 주며 이용했을 것이다.

“화산파의 동향은?”

“여전히 봉문을 유지 중입니다.”

“내부의 사정을 알 수 있는 방법은?”

“여러 가지 강구하고 있지만 쉽지 않습니다.”

“빨리 방법을 찾게. 권마가 사천성에 떠나 있는 지금이 절호의 기회니까.”

“알겠습니다.”

구여산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할 때였다.

콰앙!

갑자기 천지를 진동하는 거대한 굉음이 무림맹 내부에 울려 퍼졌다.

“뭐, 뭐냐?”

“무슨?”

방 안에 모여 있던 이들이 급히 밖으로 나왔다. 그러자 무림맹 한가운데서 치솟는 커다란 불길이 보였다.

콰쾅!

그 순간 다시 한 번 폭발과 함께 엄청난 불길이 곳곳에서 치솟았다.

“뭐냐?”

남궁창을 비롯한 수뇌부들이 잠시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너무 비현실적인 광경이어서 인지부조화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좋군.”

임오연이 손에 들고 있는 장검을 가볍게 휘두르며 중얼거렸다.

무림맹에 들어오면서 검을 반납한 임오연이었다. 그런 그가 검을 들고 있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정상적인 상황에서라면 말이다.

그러나 지금은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었다. 그의 앞에 있는 커다란 창고의 문이 열려진 상황이 그랬다.

신화상단이 납품한 무기가 보관되었던 바로 그 창고였다. 재물당에서 관리하는 그 창고의 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그리고 신화상단은 창고에 보관되어 있던 무기들을 약탈하고, 창고를 지키던 무인들을 죽였다.

“크윽! 신화상단이 왜?”

아직 숨이 끊어지지 않은 무림맹의 무인이 힘겹게 고개를 들어 임오연을 바라봤다. 그런 그의 얼굴엔 의혹이 가득했다.

신화상단은 무림맹의 가장 큰 거래 상대일 뿐만 아니라 오랜 후원자였다. 때문에 무림맹에서도 그들을 각별히 대우하고 별다른 감시를 하지 않았다. 그만큼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 신화상단이 갑자기 안면을 바꿔 무기가 보관된 창고를 약탈했다. 그리고 무림맹 전역에 흩어져 방화를 했다. 특히 벽력탄을 보관하고 있던 장소에 불을 지른 것이 큰 피해를 줬다.

갑작스러운 사태로 인해 무림맹 내부는 큰 혼란에 빠졌다.

무인이 피를 토하며 소리쳤다. 죽기 전에 이유를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왜?”

“무림맹은 우리의 적이니까.”

푹!

임오연이 대답과 함께 그대로 무인의 가슴에 검을 찔러 넣었다. 이유를 묻던 무인은 그대로 절명했다.

임오연의 곁으로 원설화가 다가왔다.

“숙부!”

“무기는?”

“모두 되찾았어요.”

“고생했다.”

“고생은요. 생각보다 무림맹 내부의 경계가 허술해서 별로 힘들지 않았어요.”

원설화의 입가에 차가운 웃음이 걸렸다. 그것은 분명 조소였다.

무림의 힘이 결집된 곳이 무림맹이었다. 때문에 사람들은 무림맹이 철옹성인 줄 안다. 그것이 외부에서 보는 시선이었다. 실제로도 겉으로 보기엔 그랬다. 하지만 내부의 경계는 생각보다 허술했다. 무림맹이란 명성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그 덕에 신화상단의 무인들은 무림맹 곳곳에 흩어져 맡은 바 임무를 수월하게 할 수 있었다. 내부에서 일어난 소란에 무림맹의 혼란은 극에 달했다.

그때였다.

일단의 무인들이 창고 앞으로 달려왔다.

재물당주 고승천과 휘하의 무인들이었다.

그들이 활짝 열린 창고와 그 앞에 서 있는 임오연과 원설화를 보고 안색을 굳혔다.

“임 대협, 이게 무슨 짓이오? 신화상단이 대체 왜?”

고승천의 눈이 분노로 이글거리고 있었다.

자신이 거래하는 상단이 자신이 관리하는 창고를 약탈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임오연이 그런 고승천을 보며 피식 웃었다.

“큿! 이거 미안하게 됐소. 나도 이러고 싶지는 않았소.”

“그런데 왜?”

“나는 신화상단의 부단주로 계속 살고 싶었는데, 그분은 이제 원래의 신분으로 돌아오라는구려.”

“그게 무슨?”

“교주께서 명령을 내린 일인데 일개 교도인 내가 무슨 힘이 있겠소? 그냥 따르는 수밖에.”

“교주? 그렇다면 마교?”

“그렇소! 다시 정식으로 내 소개를 하리다. 신교 외원(外院) 부원주 임오연이오.”

“외, 외원이라고?”

“그렇소! 신화상단은 신교의 외원이라오. 신교가 궁지에 몰렸을 때 전대 교주께서는 본교의 재산을 모두 정리하셨다오. 그리고 나와 원 대형에게 맡기셨소.”

고승천이 눈을 부릅떴다.

무림맹뿐만 아니라 천하의 그 누구도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던 비사였다. 천하제일상단인 신화상단이 마교의 외원이라니.

“어, 어떻게 신화상단이…….”

“인고의 시간이었소. 본교의 소중한 종잣돈을 어떻게든 불려야 하는 중임이 떨어졌으니까. 그래서 이를 악물고 상단을 꾸려 운영했소. 잠을 줄이고, 밥 먹는 시간마저 아꼈소. 그렇게 수십 년을 악착같이 일하다 보니 상단의 규모가 오늘처럼 커졌소. 그런데 사람의 마음이 참 간사하더구려. 배부르고, 등이 따뜻해지다 보니까 그냥 이대로 안주하고 싶어지더이다. 만일 본교가 재등장하는 시간이 조금만 더 늦어졌다면 우리는 영원히 신화상단으로 남았을 것이오.”

임오연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할 수 있다면 영원히 신화상단의 부단주로 살고 싶었다. 엄청난 부를 손에 쥐었는데, 굳이 다시금 손에 피를 묻히면서 살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을까? 그는 차라리 마교의 연락이 오지 않길 빌었다. 하지만 그의 의형이자 신화상단의 주인인 원회상은 뼛속 깊은 곳까지 마교에 대한 충성심으로 가득 찬 인물이었다.

그는 이윤이 나는 족족 마교에 재물을 바쳤고, 그의 후원 아래 마교는 빠르게 전열을 정비했다. 결국 마교의 부활에 가장 큰 기여를 한 이는 신화상단의 단주이자 외원의 원주인 원회상이었다.

“허! 이럴 수가! 신화상단이 마교의 주구라니.”

사실을 모두 알게 된 고승천이 탄식을 내뱉었다. 마치 망치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처럼 충격이 엄청났다. 하지만 그는 이내 정신을 차리고 임오연을 노려봤다.

“마교의 주구. 내 모두를 용서해도 당신만은 용서할 수 없다.”

그가 검을 꺼내 들었다.

비록 이재에 밝아 재물당을 맡고 있다지만 그 역시 무공을 익힌 무인이었다. 그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삭이지 못하고 임오연을 향해 달려들었다.

쉬아악!

그의 검이 눈부신 빛을 뿌렸다. 예리한 검기가 뿜어져 나온 것이다.

카카캉!

임오연이 검을 휘둘러 고승천의 공격을 막아 내며 말했다.

“당신의 분노를 이해하오. 하지만 이미 늦었소.”

“웃기지 마라. 겨우 이 정도 기습에 본맹이 무너질 것 같은가? 어림없다.”

“겨우 이 정도의 전력일 거라 생각하시오?”

“그럼?”

고승천의 얼굴에 의혹의 빛이 떠오른 그 순간이었다.

콰앙!

갑자기 무림맹의 정문에서 굉음과 함께 화염이 치솟아 올랐다. 그리고 이제까지와 비교할 수 없는 커다란 함성 소리가 울려 퍼졌다.

“와아아!”

“무림맹을 쓸어버려라.”

엄청난 수의 무인들이 정문을 통해 밀물처럼 쏟아져 들어왔다. 정문뿐만 아니라 담장을 넘어서도 많은 무인들이 무림맹을 침투했다.

“어, 어떻게?”

너무나 엄청난 광경에 고승천이 검을 휘두르는 것도 잊고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만큼 눈앞에서 벌어진 광경은 충격적이었다.

강호의 중심인 무림맹이었다. 당연히 무림맹 주위에는 거미줄 같은 감시망이 구축되어 있었다.

불온한 움직임이 조금이라도 보인다면 순식간에 포착되어 군사부에 전달된다. 하지만 이번엔 그런 감시망이 조금도 작용하지 않았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무림맹의 감시체계가 붕괴되고 적들이 안마당까지 침입한 상황이었다. 고승천으로는 이해할 수도 없고, 하고 싶지도 않은 최악의 상황이 펼쳐진 것이다.

그때였다.

“궁금한가?”

마치 속삭이는 듯한 음성과 누군가 고승천이 있는 곳으로 걸어왔다.

수백 명의 무인들을 호위로 둔 채 당당히 걸음을 옮기는 문사. 그를 본 순간 임오연이 검을 거두고 포권을 취했다.

“외단 부단주 임오연이 군사를 뵙습니다.”

“천녀 원설화가 군사를 뵙습니다.”

원설화 역시 예를 차렸다.

그들의 태도에 고승천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마교의 군사?”

“그렇다네. 내가 바로 신교의 군사 상한천이라네.”

문사, 상한천이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새벽에 이뤄진 전격적인 기습은 모두 그의 작품이었다.

신화상단을 이용해 무림맹 내부를 흔들고, 천하제일선에 숨겨 두었던 병력으로 악양의 무림맹 감시체계를 완전히 무력화시켰다. 그리고 항주에서부터 끌고 온 병력으로 전격 기습을 감행했다.

“신교에 대항한 죄, 오직 죽음으로만 갚을 수 있다.”

수많은 병력을 도륙하며 압도적인 무위를 뽐내는 자는 바로 만영신군(萬影神君) 임학이었다.

사대군장의 일인인 임학의 무위는 실로 가공했다. 무림맹의 수많은 고수들이 그의 가공할 위력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거기에 내원의 금마각, 신화전, 운룡전까지 합류했다. 수천 명의 마인들은 이제까지 참았던 울분을 무림맹을 상대로 마음껏 발산했다.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사대군장들도 각기 병력을 이끌고 무림맹으로 오고 있었다.

“크읏!”

고승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상한천은 입가에 차가운 미소를 지은 채 주위를 둘러봤다.

“너희들이 이 풍요로운 곳에서 술과 계집을 즐기고 있을 때 우리는 칼과 독기를 갈고 있었다. 이번에는 너희들이 우리의 입장을 알게 될 것이다. 무림맹의 잡졸 놈들을 한 놈도 남기지 말고 쓸어버리거라.”

“와아아!”

마교의 무인들이 기세를 올리며 무림맹을 공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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