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6
326화 1장. 난세가 시작되니 곳곳에서 도적이 날뛴다(1)
소년의 집은 강 근처 낮은 언덕 중간에 위치해 있었다. 덕분에 소년의 집에서는 일대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적수(赤水)라는 지명답게 강은 붉은색에 가까웠다. 그리고 신록에 덮인 산 역시 전체적으로 붉은색을 띄고 있었다. 이곳의 대지 자체가 붉은색을 띄고 있는 사암으로 이뤄져 있다 보니, 그에 영향을 받아 산도 물도 온통 붉은 것이다.
녹색의 초목과 붉은색 대지는 묘하게 대비를 이뤄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거기에 물안개까지 나직이 깔리자 더욱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
“아저씨, 여기가 우리 집이에요.”
소년이 해맑은 미소와 함께 담호를 집 마당으로 끌고 들어왔다. 소년의 아비는 그리 탐탁한 표정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소년이 워낙 담호를 좋아하는 모습을 보이니 어쩔 수 없이 허락했다.
소년의 이름은 장유월, 아비는 장우칠이었다. 두 사람은 적수에서 고기를 잡아 생계를 이어 가는 전형적인 어부 가족이었다.
담호가 집 내부를 둘러보았다. 나무로 만든 집은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초라했고, 마당에는 어구가 잔뜩 널려 있었다. 처마 끝에는 이름 모를 생선이 걸린 채 건조되고 있었다.
담호가 흑귀의 목덜미를 두들기며 말했다.
“수고했다. 나중에 부를 테니 쉬고 있거라.”
그러자 흑귀가 알아들었다는 듯이 투레질을 한 후 밖으로 달려 나갔다.
담호는 숲 속으로 사라지는 흑귀의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집 안으로 들어갔다.
집 안도 바깥만큼이나 초라하고 정리가 되어 있지 않았다. 여인의 손길이라고는 전혀 담겨 있지 않은 모습이었다.
장우칠이 말했다.
“조금만 기다리시오. 금방 식사를 내올 터이니.”
그는 담호의 대답도 듣지 않고 그대로 주방으로 들어갔다. 둘만 남게 되자 장유월이 말했다.
“아빠가 조금 거칠죠? 그래도 나쁜 분은 아니에요. 엄마가 돌아가신 이후 아무도 믿지 않아서 저러는 거예요.”
“…….”
담호는 말없이 소년을 바라봤다. 보통 사람은 담호의 눈빛을 받는 순간 그대로 얼어붙기 일쑤였다. 하지만 소년은 담호의 눈빛에 전혀 위축됨이 없이 해맑게 웃었다.
담호는 그의 모습에서 방진보를 떠올렸다. 방진보도 그랬었다. 마치 활화산과 같은 담호의 눈빛을 보면서도 스스럼없이 다가왔었다.
“내가 무섭지 않느냐?”
“아저씨요? 안 무서워요. 왜요? 무서워해야 해요?”
장유월은 오히려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에 담호가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장유월에겐 담호를 향한 그 어떤 선입견이 없었다. 그래서 순수한 시선으로 담호를 보고 평가할 수 있었다.
“아저씨는 사천성에서 온 거예요?”
“그렇다.”
“우와! 저도 사천성에 한번 가 보고 싶었는데.”
“왜?”
“청성파가 그곳에 있잖아요. 청성파에서 무공을 익히는 게 제 꿈이에요.”
“아미파와 당문도 있는데 왜 청성파냐?”
“아미파의 제자가 되려면 머리를 깎아야 하고, 남자는 잘 받아 주지도 않잖아요. 당문은 당씨 성을 쓰는 사람이 아니면 아예 자격도 없는걸요. 그나마 청성파가 가장 현실적이고, 또 가능성이 높아요.”
장유월의 눈이 초롱초롱하게 빛났다. 보통 영민해 보이는 것이 아니었다.
“형이 그랬어요. 자신은 동네 무관에서 무공을 익히지만, 저는 반드시 청성파에 보내 무공을 익히게 하겠다구요.”
“또 그 이야기냐? 형의 헛소리는 믿지 말거라. 제 몸 하나도 건사하기 힘든 놈의 헛소리를 어찌 믿는단 말이냐?”
주방에서 퉁명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장우칠이 듣다못해 한 소리 한 것이다. 그래도 장유월의 얼굴에 어린 미소는 사라지지 않았다.
“헤헤! 우리 아빠는 늘 저래요. 형이 무공을 익히는 것도 싫고, 제가 청성파에 들어가는 것도 싫은가 봐요.”
“이놈아!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 하는 법이야. 그게 안 되면 탈이 나서 죽게 되는 거야.”
다시 주방에서 장우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쯤 되면 기가 죽을 만도 하건만 장유월은 여전히 꿋꿋했다.
장유월은 꿈을 꾸는 아이였다. 그 꿈이 이뤄질지, 안 이루어질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꿈을 꾸는 것만으로도 행복해했다.
담호는 장유월을 말없이 바라봤다.
아마 장유월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 줄 누군가가 필요했을지 몰랐다. 그것이 생전 처음 보는 낯선 남자에게 장유월이 호감을 보이는 이유일 것이다.
그 후로도 장유월은 한참을 떠들었고, 담호는 그의 이야기를 말없이 들었다. 누군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 줄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장유월은 신나 했다.
“그만하거라. 밥이나 먹자.”
그때 장우칠이 밥상을 차려 안으로 들어왔다. 그제야 장유월의 입이 조개처럼 다물어졌다.
“보다시피 찬은 별거 없으니까 이해하시우.”
그의 말처럼 밥상에는 별다른 반찬은 없었다. 공기 가득 푼 밥과 나물 몇 가지, 그리고 갓 잡은 것으로 보이는 생선 세 마리가 다였다. 그래도 담호는 고개를 숙여 감사의 뜻을 표했다.
오랜만에 먹는 따뜻한 밥과 찬이었다. 담호는 위장이 놀라지 않도록 천천히 꼭꼭 씹어 먹었다.
장우칠은 밥을 먹다 말고 그런 담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형장, 무림인이구려.”
“…….”
“주먹에 박힌 정 같은 굳은살은 무공을 익히지 않으면 절대 생겨나지 않는 거지. 무슨 사정 때문에 이곳까지 흘러왔는지 모르지만, 가실 때는 조용히 가시구려. 괜히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한테 바람 넣지 말고. 이 녀석이 세상 물정을 몰라서 헛꿈만 가득하다오.”
“아빠!”
담호 대신 장유월이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자 장우칠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너도 마찬가지야. 헛꿈 꾸지 마. 청성파라니. 자그마치 천하 구대문파 중 하나야. 너 같은 시골 무지렁이가 꿈꿀 만한 곳이 아니야.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지, 분에 넘치는 꿈을 꾸는 것만으로도 탈이 나고 죽을 수 있어.”
“형도 무관에서 무공을 익히잖아요.”
“아비가 말하면 그냥 들을 것이지, 무슨 말이 그리 많아? 그냥 조용히 밥이나 먹거라.”
장우칠은 더 이상 반론을 용서하지 않겠다는 듯이 고개를 숙이고 밥을 퍼먹었다. 그에 장유월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장우칠도 그 사실을 알았을 거다. 하지만 그는 고개 한 번 들지 않고 순식간에 밥그릇을 모두 비웠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상은 네가 치우거라. 그리고 형장은 저쪽 끝 방에서 주무시고 가시오.”
그는 두 사람의 대답도 듣지 않고 그대로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장유월이 소매로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죄송해요, 아저씨. 제가 무공을 익히겠다는 말만 나오면 저래요. 그래도 형한테는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
“나도 무공을 익히고 싶은데.”
장유월이 답답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소년의 한숨은 유달리 크게 울려 퍼졌다.
마침내 식사가 모두 끝났다. 장유월은 설거지를 하러 갔고, 혼자 남은 담호는 잠시 밖으로 나왔다.
마당에 나오자 평상에 멍하니 앉아 있는 장우칠의 모습이 보였다. 강을 바라보며 앉아 있는 장우칠의 등이 유독 굽어 보였다.
담호의 인기척을 느꼈는지 장우칠이 뒤돌아봤다. 그런 그의 얼굴엔 복잡한 심정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식사는 잘 하셨소?”
“덕분에.”
“다행이구려. 피곤할 텐데 들어가서 쉬시구려.”
장우칠이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 하지만 담호는 움직이지 않고 그를 빤히 바라봤다.
“당신도 무공을 익혔군.”
“…….”
“큰 부상을 입었었나 보군. 기의 순환이 원활치 않은 걸 보니.”
순간 장우칠이 움찔하며 눈을 감았다. 잠시 동안 침묵을 지키던 그가 한숨과 함께 입을 열었다.
“후! 고인을 눈앞에 두고 지랄을 떨었구려. 기의 순환이 원활하지 않다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는 고수라니. 맞소! 예전에 큰 부상을 입었소이다. 그 때문에 귀향해서 물고기나 잡으며 생활하고 있소.”
일단 말문이 한번 터지자 봇물처럼 쏟아져 나왔다.
“나는 강호에서 흔히 말하는 삼류 무인이었소. 정말 죽어라 무공을 익혔는데, 재능이 없어 대성하지 못했지. 그래도 인간관계가 나쁘지 않아서 무관에서 제법 대접을 받았소. 그때는 내가 정말 잘나서 그런 줄 알았지. 허나 아니었소. 아직 이용 가치가 남아 있기 때문이었지. 나는 철저히 이용당했고, 부상을 입은 이후 버려졌소.”
그 후 장우칠은 이곳에 들어왔고, 무림과 인연을 완전히 끊고 생활했다.
그가 경험한 무림이란 세계는 참으로 잔혹했다. 겉으로 보기엔 화려하지만 그 속에서는 세인들은 상상할 수 없는 치열한 암투가 연일 벌어졌다.
진입 장벽 또한 높아서 명문에 속하지 않는 이상 제대로 된 사람대접받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그가 경험한 무림은 구대문파와 오대세가, 그리고 몇몇 명문정파들의 세상이었지, 자신처럼 뿌리 없는 무인이 비벼 볼 만한 곳이 아니었다.
“귀주성엔 구대문파와 같은 거대 문파는 존재하지 않소. 대신 흑무방(黑武房)과 금사문(金沙門)과 같은 중견 문파들이 치열한 다툼을 벌이고 있소. 규모는 작지만 그 안의 다툼은 훨씬 더 치열하다 볼 수 있지. 그들은 인근의 작은 무관들에서 무인들을 공급받아 패권 싸움에 몰두하고 있소. 그들은 휘하의 무인들을 도구 취급할 뿐 동등한 인간으로 생각하지 않소. 유월이 애써 무공을 익혀 봐야 그들의 도구로 이용당할 뿐이오.”
장우칠이 탄식을 토해 냈다.
자신이 먼저 경험해 봤던 일이었기에 아들인 장유월에겐 그와 같은 미래를 경험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청성파? 구대문파 중 하나요. 그곳에서 유월일 받아 준다? 어림없는 일이지. 구대문파는 오직 천하에서 손꼽히는 재능만을 받아 주오. 유월이 비록 똑똑하기는 하지만 그 정도의 기재는 아니라오. 구대문파에 들어가지 못할 재능이라면 차라리 나와 함께 이곳에서 고기를 잡으며 살아가는 것이 훨씬 나은 인생이 될 것이오.”
장우칠은 어느새 눈을 지그시 감고 있었다.
자식의 꿈을 이뤄 주고 싶지 않은 부모가 누가 있을까? 하지만 그렇게 될 경우 자식이 걸어갈 길이 얼마나 혹독할지 너무 잘 알기에 허락할 수가 없었다.
그의 첫째 아들 장유관은 어느 날 집을 가출해 무관에 들어갔다. 아비의 뜻을 어기면서까지 무관에 들어갔지만, 그의 한계는 너무나 명확했다.
장우칠이 그랬던 것처럼 장유관 역시 삼류의 경지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에 장우칠은 장유관이 집으로 돌아오길 바랐지만 장유관은 죽어도 무림에서 죽겠다며 거부하고 있었다.
담호는 장우칠을 바라볼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자식을 생각하는 아비의 마음을 그가 모두 이해할 수는 없었다. 그는 운이 좋게도 현소 진인을 만나 화산파에 들어갈 수 있었지만, 세상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그와 같은 행운이 주어지지 않았으니까.
장우칠이 중얼거렸다.
“나라고 이러는 마음이 편하겠소? 허나 어쩌겠소. 단순히 객기만으로 도전하기에는 무림이란 세상이 너무나 무서운데.”
첫째 아들인 장유관을 무림에 빼앗겼지만, 둘째 아들인 장유월마저 그럴 수는 없었다.
방으로 들어온 담호는 운공을 했다.
몸 안의 독기를 완전히 몰아내고, 내상을 치유해야 했다. 담호는 금방 운공 삼매경에 빠져들었다.
운공이 절정에 달하면서 그의 모공에서 검은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검은 기운은 마치 안개처럼 담호의 몸을 감싼 채 휘돌았다.
담호는 모든 것을 잊었다.
망아(忘我). 망상(忘想), 망존(忘存).
나를 잊고, 생각을 잊고, 존재를 잊었다. 그리고 운공을 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었다.
그렇게 모든 것을 잊은 채 담호는 운공에만 몰두했다.
뚝뚝!
어느 순간 담호의 전신에서 악취가 섞인 땀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몸 안에 남아 있던 독기가 땀과 함께 배출되는 것이다.
독기가 배출되고, 내상이 치유되었다.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 담호가 눈을 떴다. 몸 안에 있던 독기가 모두 빠져나간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그는 숨을 돌릴 수 있었다.
그는 바닥에 흘린 땀을 천으로 깨끗이 닦아 낸 후 삼매진화로 태워 버렸다. 그리고 방문을 열어 환기를 시켰다.
찬바람이 불어와 방안에 남아 있는 역한 냄새를 모두 날려 버렸다. 그제야 담호는 쉴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얻었다.
그때였다.
“아버지!”
누군가 소리를 지르며 이곳으로 뛰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소리를 들었는지 안채의 등불이 밝혀지고 문이 열렸다. 그리고 장우칠이 모습을 보였다.
“누구냐?”
“아버지, 저예요.”
큰 소리와 함께 마당에 뛰어 들어온 이는 장우칠을 꼭 닮은 젊은 남자였다.
“형아!”
장우칠의 뒤쪽에서 장유월이 모습을 보였다. 그는 남자의 얼굴을 확인하자마자 맨발로 뛰어나왔다.
“형아! 어쩐 일이야?”
마당에 뛰어 들어온 이는 바로 장우칠의 첫째 아들인 장유관이었다. 장유월은 장유관의 품에 폴짝 안겼다. 하지만 장유관의 반응이 이전과 달랐다. 평소라면 품에 꼭 안아 주었을 장유관이 급히 장유월을 떼어 놓으며 말했다.
“이러고 있을 시간 없어. 어서 피해야 해.”
“무슨 말이냐? 피하다니?”
장우칠이 의문을 표했다.
“설명할 시간 없어요, 아버지. 어서 피해야 해요.”
“그게 무슨?”
“제발요. 아버지. 이유는 나중에 설명할 테니 어서 피해요.”
장유관의 얼굴에는 다급한 빛이 가득했다. 그에 장우칠은 무언가 사달이 일어났음을 직감했다.
“무슨 일이냐?”
그때였다.
“저기다.”
일단의 무리가 어둠을 뚫고 장우칠의 집으로 몰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