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7
327화 1장. 난세가 시작되니 곳곳에서 도적이 날뛴다(2)
그들은 칠흑처럼 검은 무복을 입고, 허리에는 커다란 도를 차고 있었다. 그들은 마당으로 들어오자마자 장우칠 부자들을 에워쌌다.
장우칠이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봤다. 그 순간 우두머리로 보이는 남자가 앞으로 걸어 나왔다.
사십 대 초반의 나이에 염소수염을 기른 얄팍한 인상의 남자였다. 눈이 쫙 찢어져 있어 그의 인상을 더욱 음험하게 보이게 했다.
그가 장유관을 보며 말했다.
“겨우 도망친 곳이 여기냐? 애송이.”
“이익!”
장유관이 입술을 질근 깨물었다. 그런 그의 얼굴엔 당혹한 기색이 역력했다.
장우칠이 이유를 물었다.
“이게 어찌 된 일이냐? 유관.”
“죄송해요, 아버지. 제가 조금 더 일찍 도주했어야 하는데.”
“무슨?”
“저들은 흑무방의 무인들이에요. 한밤중에 저희 금사문을 기습했어요. 그 때문에 문주님이 죽고 많은 이들이 죽거나 다쳤어요.”
“금사문이?”
장우칠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금사문은 이곳 귀주성에 터전을 둔 문파였다. 비록 구대문파처럼 거대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중견 문파로서의 힘과 위상은 충분했다.
문도 수만 삼백여 명이 넘었고, 장유관처럼 다른 무관에서 받아들인 문도도 이백여 명이 넘을 정도로 탄탄한 전력을 자랑했다. 그런 금사문이 흑무방의 기습을 받아 문주가 죽을 정도의 타격을 받았다는 사실이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그가 알고 있는 흑무방의 전력은 금사문과 비슷하거나 그보다 약간 아래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염소수염의 무인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금사문 외당주 장유관. 도주한 곳이 겨우 집이라니, 정말 실망스럽구나. 그 나이에 믿을 만한 것이 아비밖에 없었느냐? 역시 애송이답구나.”
“크윽!”
장유관이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그가 이곳으로 도주해 왔기에 아버지와 동생마저 위험하게 됐다. 도주할 때는 그런 사실을 미처 인지하지 못했지만, 막상 인지하게 되자 자신이 얼마나 큰 실수를 한 건지 알게 됐다.
염소수염 남자가 장우칠 앞으로 다가왔다.
“어차피 금사문과 연관된 인간들은 하나도 남김없이 죽이려 했는데, 잘됐구나. 이 자리에서 너와 가족들까지 모두 죽여 주마.”
그의 얼굴에 진득한 살기가 흘러나왔다. 그에 장유관이 심신이 급속히 위축됨을 느꼈다.
‘흑무방이 저런 고수들을 숨겨 두고 있었다니.’
금사문과 경쟁관계에 있었기에 장유관은 흑무방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특히 흑무방의 고수라 할 수 있는 자들에 대해선 거의 파악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정보망 어디에도 염소수염과 같은 무인이 있다는 사실은 파악되지 않았다.
“이제 귀주는 흑무방이 접수한다.”
염소수염 남자가 장유관을 향해 걸어왔다. 그 순간 장우칠이 장유관의 앞을 가로막았다.
“내 아들은 누구도 죽일 수 없다.”
그의 손에는 어느새 칼 한 자루가 들려 있었다. 생선을 다듬을 때 사용하던 칼이었다. 그래 봤자 부엌칼보다 조금 더 큰 수준에 불과했다.
“아버지.”
“내가 막을 테니 너는 어서 동생을 데리고 도망가거라.”
“안 돼요.”
“어서 도망가. 이대로 놈들에게 개죽음을 당할 테냐?”
장우칠이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소리쳤다.
무림에서 오래전에 발을 뗀 장우칠이었다. 무공도 변변치 않았고, 큰 상처를 입어 기의 순환도 원활치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앉아서 자식이 죽임을 당하는 꼴을 두고 볼 수는 없었다.
“큿! 애잔해서 도저히 봐 줄 수가 없군.”
염소수염 남자가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그러자 장우칠 일가를 포위하고 있던 무인들이 도를 빼 들었다.
스르릉!
장우칠 같은 삼류무인이 아닌 극도로 단련된 무인들이 발산하는 도기가 어두운 밤을 밝혔다.
“큭! 아버지, 뒤로 물러나세요.”
이번엔 장유관이 장우칠의 앞을 막아섰다.
“유관아.”
“이미 도주하기엔 늦었어요. 아버지!”
장유관도 검을 꺼내 들었다.
적을 바라보는 그의 눈동자는 흔들리고 있었다. 눈에서 시작된 흔들림은 어깨에서 떨림으로 변했고, 검을 쥐고 있는 손에도 영향을 주었다.
마치 사시나무처럼 그의 몸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런 장유관을 보며 염소수염의 남자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누구에게 무공을 배웠는지 모르지만 도무지 기본이 되어 있지 않구나.”
“닥쳐!”
장유관이 큰 소리를 쳤다. 그런 그의 얼굴은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의 기초는 어릴 적 장우칠이 잡아 준 것이었다. 나이가 들어서는 집을 뛰쳐나가 큰 마을의 도관에서 무공을 배웠지만, 아비에게 무공의 기초를 배웠던 기억은 아직도 그에게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었다.
“이야아!”
분을 참지 못한 장유관이 검을 휘두르며 튀어 나갔다.
캉!
하지만 그의 공격은 염소수염 남자에게 닿기도 전에 허무하게 튕겨 나갔다. 염소수염 수하가 중간에 뛰어들어 막은 것이다.
지이잉!
검을 잡은 손바닥이 찌르르 울렸다. 강렬한 충격에 하마터면 검을 놓칠 뻔했을 정도였다. 장유관은 애써 고통을 참으며 연신 검을 휘둘렀다.
창파십이검(蒼波十二劍).
집을 뛰쳐나가 무관에서 배운 무공이었다.
마치 파도가 일렁이듯 그의 검이 연신 곡선을 그렸다. 하지만 그의 공격은 무인들의 단단한 벽을 뚫지 못했다. 애초부터 장유관은 그들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그들은 마치 쥐새끼를 가지고 놀듯 장유관을 희롱했다. 장유관의 전신에 상처가 늘자 장우칠의 눈이 뒤집혔다.
“이 새끼들아! 내 아들은 안 된다.”
그는 앞뒤 가리지 않고 무인들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래 봤자 무인들이 보기엔 가소로운 수준이었다.
쉬앙!
무인 중 한 명이 장우칠을 향해 도를 휘둘렀다. 단숨에 목을 벨 작정이었다.
“아빠!”
“아버지!”
그 모습을 본 장유월과 장유관이 동시에 소리쳤다.
죽음을 직감한 장우칠이 눈을 질끈 감았다.
‘끝인가?’
쾅!
그 순간 뇌음과 함께 거센 바람이 불어와 그의 몸을 들썩이게 만들었다. 하지만 생각만큼 큰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기에 그는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그러자 그의 앞을 막아선 누군가의 뒷모습이 보였다.
“아!”
장우칠의 입에서 절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자신의 앞을 막아선 존재가 담호라는 사실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아저씨!”
장유월도 담호를 알아보고 소리쳤다.
담호의 발치에는 장우칠에게 도를 휘둘렀던 남자가 피떡이 되어 널브러져 있었다.
마치 거대한 바위에 강타당한 것처럼 머리부터 오른쪽 상반신이 원래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짓이겨져 있었다.
동료를 바라보는 무인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이유를 아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갑작스럽게 뇌음이 울려 퍼지더니 동료가 피 떡이 되어 있었다. 그들은 마치 날벼락을 맞은 듯한 기분이었다.
“네놈은 누구냐?”
염소수염 남자가 갑작스레 나타나 수하를 죽인 담호를 잡아먹을 듯 노려봤다. 그런 그의 얼굴엔 당혹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설마 이런 시골구석에서 그의 수하를 단숨에 죽일 만한 무인이 숨어 있을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담호는 말없이 염소수염 남자를 바라봤다. 그러자 염소수염 남자가 움찔했다.
‘무, 무슨 눈빛이…….’
오랫동안 굶주린 대호의 눈빛을 보는 것 같았다. 마주 보는 것만으로도 심혼이 혼미해지고, 넋이 날아가는 듯한 기분에 염소수염 남자가 이를 악물었다.
염소수염 남자가 두려움을 떨쳐 내기 위해 목소리를 높였다.
“네놈은 누구냐? 감히 흑무방의 행사를 방해하다니, 후환이 두렵지도 않은 모양이구나.”
“흑무방?”
“그렇다. 오늘부로 귀주는 우리 흑무방의 것이 된다. 네놈이 흑무방과 척을 지면 절대 귀주에서 살아 나갈 수 없을 것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이대로 물러나면 내 문제 삼지 않을 것이다.”
염소수염 남자는 담호가 제발 자신의 말을 듣길 원했다.
그는 결코 자비로운 자가 아니었다. 마음이 약하지도 않았다. 평상시 투쟁심이 너무 과하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호전적인 무인이었고, 그만큼 자신의 무공에도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꺼림칙한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말단신경이 간질거리고, 호흡이 거칠어졌다.
인정하긴 싫었지만, 그는 겁을 집어먹었다. 우습게도 말이다. 그래서 더 큰소리를 쳤다. 자신의 위협이 먹혀들길 바라면서.
하지만 그에겐 불행히도 담호는 위협이 먹히는 존재가 아니었다. 담호는 마치 염소수염 남자의 말을 듣지 못한 것처럼 걸음을 옮겼다.
순간 염소수염 남자의 눈동자가 더욱 격하게 흔들렸다. 살짝 저는 담호의 발을 보았기 때문이다.
“설마?”
천하에 수많은 무인이 존재하지만 이렇게 극명한 특징을 가진 무인은 몇 되지 않는다. 그중에서도 이렇게 강렬한 존재감을 발산하는 무인은 단 한 명밖에 없다.
“궈, 권마?”
담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염소수염의 남자와 수하들에겐 충분한 대답이 됐다.
“맙소사! 권마라니?”
“권마가 여기에 왜?”
애써 침묵하던 수하들이 눈에 띄게 동요를 했다.
화산권마 담호에 대한 소문은 이곳 귀주성에도 퍼져 있었다.
손을 쓰면 절대 용서하는 법이 없는 단호한 손속과 마교마저 두려워하는 강력한 무위.
구대문파의 화산파 출신이면서도, 오히려 화산파를 뛰어넘는 명성과 실력을 가진 희대의 마인.
그가 바로 화산권마 담호였다.
일단 적으로 규정한 자는 절대로 살려 두지 않는 그 잔혹함은 강호의 무인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비단 놀란 이는 그들만이 아니었다.
“권마라고?”
“아!”
장우칠 부자마저도 숨이 넘어갈 듯 놀랐다.
염소수염의 남자가 이를 악물고 담호를 노려봤다.
“권마.”
결코 만나고 싶지 않은 최악의 적이 눈앞에 있었다. 그는 이대로 물러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을 그가 제일 잘 알고 있었다.
담호가 빤히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속내를 환히 꿰뚫어 보는 듯한 눈빛에 염소수염 남자의 눈동자가 격하게 흔들렸다.
화악!
그 순간 엄청난 풍압이 그를 덮쳐 왔다. 담호가 충보를 펼친 것이다.
염소수염의 남자는 천지를 집어삼키는 태풍이 자신을 덮쳐 온다고 생각했다.
그는 혼신의 힘을 다해 뒤로 물러났다. 애초부터 담호에 맞서 싸우려는 생각 따윈 없었다. 염소수염 남자는 담호의 첫 공격을 피하는 즉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아날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가 물러나는 속도보다 담호가 달려드는 속도가 배가 빨랐다.
결국 염소수염 남자는 담호의 손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직감하고 대신 손에 든 도를 격렬하게 휘둘렀다. 순간 그물 같은 도기가 발산되어 그의 앞에 방벽을 만들었다.
순식간에 그의 앞에 도막(刀膜)이 펼쳐졌다.
직후 담호가 직격했다.
콰앙!
“컥!”
굉음과 함께 염소수염 남자의 입에서 선혈이 터져 나왔다. 그는 마치 거대한 쇠망치에 얻어맞은 것처럼 뒤로 훌훌 날아가고 있었다.
우당탕!
염소수염 남자가 요란하게 바닥을 나뒹굴었다.
“당주님.”
“당주.”
수하들이 달려와 염소수염 남자를 부축했다. 하지만 염소수염 남자는 힘없이 축 늘어진 채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절명한 것이다.
“이럴 수가!”
“제기랄!”
그들이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그 순간에도 담호는 그들을 향해 걸어왔다. 그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압도적인 기세가 그들을 압박하고 있었다.
그 어떤 대화도 통하지 않는 벽과 같은 상대였다. 그들은 결국 죽기를 각오하고 덤벼들었다.
“같이 죽자, 권마!”
“이야아!”
쉬아악!
날카로운 칼바람이 담호를 향해 해일처럼 밀려왔다.
“아!”
그 순간 장유관이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터트렸다.
콰콰쾅!
그는 결코 감당할 수 없는 도기(刀氣)가 갈래갈래 찢겨지고 터져 나갔다. 그리고 폭발에 휩쓸린 무인들이 걸레쪽처럼 헤진 채 튕겨져 나갔다.
“…….”
순식간에 그의 집에 침묵이 찾아왔다.
목이 탁 막혀 왔다.
“저것이…… 권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