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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권마-328화 (328/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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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8화 1장. 난세가 시작되니 곳곳에서 도적이 날뛴다(3)

고요했다.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적막은 그 안에 존재하는 이들의 심혼을 불길하게 옥죄었다.

장유관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것은 장우칠과 장유월도 마찬가지였다. 단 한 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는 참상이 그들의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그제야 그들은 권마의 전설을 떠올렸다.

‘그는 적으로 규정한 자는 결코 살려 두지 않는다.’

피도 눈물도 없는 철혈의 무인.

그가 어째서 화산파라는 정도의 문파에 속해 있으면서도 마인이라 불리는지 그 이유를 확실하게 알 것 같았다.

담호의 시선이 장유관을 향했다. 순간 장유관이 움찔했다. 그는 감히 담호의 시선을 감당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위기에 닥쳤을 땐 가족에게 도망쳐오는 것이 아니야.”

“그건…….”

“삶도, 죽음도 혼자 감당해야 하는 거야. 적어도 무림에 적을 둔 무인이라면…….”

장유관이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입이 열 개 있어도 할 말이 없었다. 그의 의도는 그것이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결론적으로는 담호의 말처럼 되었다.

담호가 장유관을 지그시 바라봤다.

“가족을 데리고 이곳을 떠나.”

“하지만 금사문은…….”

“감당할 수 있겠나?”

“그건…….”

“족쇄가 풀렸어. 마교도, 세상도 미쳐서 날뛸 거야. 질서는 사라지고, 힘이 모든 것을 증명할 거야. 규칙 따윈 상관하지 않는 짐승들이 날뛰는 세상을 감당할 수 있겠나?”

“…….”

장유관이 고개를 떨궜다.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담호의 말처럼 그는 그런 시대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이유는 최소한의 감성과 도덕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어느 정도 질서가 유지될 때나 가능한 이야기였다.

그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당분간 가족과 함께 강호를 떠나겠습니다.”

“잘 생각했어.”

“저희를 지켜 주셔서 감사합니다.”

장유관이 고개를 숙여 감사의 인사를 했다.

담호의 시선이 장우칠과 장유월을 향했다. 그러자 장우칠도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저희 아들을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대협.”

“빚은 갚았어.”

“빚이라면? 아!”

장우칠이 갑자기 탄성을 내뱉었다.

겨우 밥 한 끼를 대접하고, 허름한 방 하나를 내주었을 뿐이다. 누구도 그런 것을 가지고 빚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담호는 빚이라고 생각했다.

은혜를 입었으면 반드시 갚는 자.

그것이 아주 조그만 것일지라도 말이다.

바꿔 말하면 아무리 작은 원한이라도 잊지 않고 되갚아 주는 것을 의미했다.

‘이런 자와 적이 된다면 결코 두 발을 뻗고 자지 못할 것이다. 차라리 흑무방과 마교가 불쌍하구나. 어쩌다 이런 자를 건드려서.’

장우칠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휘익!

담호가 휘파람을 불자 어둠을 헤치며 흑귀가 달려왔다. 잡털 하나 없이 새까만 흑귀의 움직임에 어둠이 물결쳤다.

“아!”

장우칠이 절로 탄성을 터트렸다.

오랫동안 강호에 몸을 담고 있던 장우칠도 처음 보는 명마였다.

담호가 흑귀에 올라탔다.

“가자.”

그는 그대로 흑귀를 달렸다.

장유월이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담호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

“아저씨!”

입안이 바짝바짝 타고 손에 땀이 흥건히 고여 있었다.

언젠가는 구대문파의 제자가 되겠다던 생각은 지금 이 순간 떠오르지 않았다. 그만큼 눈앞에서 벌어진 광경은 충격적이었다.

구대문파의 제자가 된다는 것, 또 강호인이 된다는 것은 언제나 이런 죽음을 곁에 두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담호가 보여 주었다.

아직 어린 장유월이 감당하기엔 너무나 충격적인 사실이었다.

그때 장우칠이 장유월의 손을 꽉 잡았다.

“가자.”

“아빠!”

“일단 이곳을 피해야 한다.”

장우칠은 장유월의 손을 억지로 잡아끌었다. 그 뒤를 장유관이 따랐다.

그들이 사라지고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 일단이 무리가 나타났다. 염소수염의 남자와 똑같은 복장을 한 무인들, 바로 흑무방의 추적대였다.

그들은 장우칠의 집 마당에 널브러져 있는 시신들을 발견하고 말에서 내렸다.

“이럴 수가! 염 당주가…….”

“전멸했습니다.”

그들의 얼굴에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 떠올랐다. 몇몇 무인은 뒤돌아서 구역질을 했다. 그만큼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처참했다.

“대체 누가?”

“장유관에게 이런 조력자가 있었다니. 어서 빨리 본방에 알려서 대책을 세워야 한다.”

그들은 감히 더 이상 추적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시신을 수습해 흑무방으로 돌아갔다.

***

소림사 하면 떠오르는 생각은 바로 강호 무림의 태두라는 것이다.

달마가 이 땅에 넘어왔을 때부터 소림사는 강호의 태두였고, 정신적인 의지처였다. 주도적으로 강호의 일에 나선 적은 거의 없었지만, 간혹 한번 나설 때마다 강호의 역사가 그들에 의해 큰 변곡점을 맞이하곤 했다.

어떤 이들은 소림사를 일컬어 이렇게 불렀다.

강호 최후의 저지선이라고.

결국 강호가 위기에 처하면 마지막에 나서는 것은 소림사라는 의미였다. 그만큼 소림사가 강호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어마어마했다.

소림사가 본격적으로 움직인다 함은 곧 강호가 위기에 처했음을 의미했다. 그리고 지금 소림사가 다시금 움직이고 있었다.

발단은 오늘 오후에 들이닥친 수많은 무인들 때문이었다. 예고도 없이 들이닥친 무인들은 바로 무림맹의 패잔병들이었다.

“이럴 수가!”

소림사의 방장인 광천의 하연 눈썹이 잔뜩 찌푸려졌다. 광천뿐만이 아니었다.

나한전주 광문, 계지원주 광진, 그리고 광해와 수많은 소림사 승려들이 광천과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미타불! 아미타불!”

그들은 아무런 말도 못 하고 불호만 외웠다. 그만큼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처참했다.

“크윽! 방주님.”

“죄송합니다.”

맹주 남천선과 내당주 조명율이 분루를 흘렸다.

그런 그들의 전신에는 수많은 상처들이 입을 벌리고 있었고, 아직 말라붙지 않은 선혈이 혈향을 풍기고 있었다.

“아미타불! 이게 어찌 된 겁니까?”

“놈들의 간계에 당했습니다.”

“그게 무슨?”

“무림맹이 마교의 손에 넘어갔습니다.”

“아미타불! 아미타불!”

남천산의 말에 너무 놀란 광천은 눈을 지그시 감은 채 불호만 연신 외웠다.

무림맹의 병력이 패잔병 꼴로 나타났을 때부터 어느 정도 짐작했던 일이긴 했지만, 그래도 맹주인 남천산의 입으로 직접 들으니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정말 무림맹이 마교의 손아귀에 넘어갔습니까?”

“크윽!”

“이럴 수가!”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여러분들이 맡은 중임을 완수하지 못하고, 오히려 맹을 무너트리고 말았습니다.”

남천산이 무릎을 꿇은 채 흐느껴 울었다.

무림맹의 맹주가 흘리는 뜨거운 눈물은 주변을 숙연하게 만들었다.

평생 단 한 번도 남들 앞에서 흔들리는 모습을 보인 적이 없는 남천산이었다. 그런 그가 흐느껴 운다는 사실 자체가 얼마나 큰 심적 타격을 받았는지 말해 주고 있었다.

“아미타불! 일어나십시오, 맹주.”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그것이 어찌 맹주 한 명만의 책임이겠소. 우리 모두의 책임이지요.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어서 안으로 들어가 대책을 의논합시다.”

광천이 남천산을 일으켜 세우며 주위를 둘러봤다.

너무나 큰 충격에 소림사의 승려들도 얼어붙어 있었다. 광천이 그런 승려들에게 소리쳤다.

“무얼 하는 것이냐? 어서 무림맹의 무인들에게 쉴 곳을 안내해 주지 않고. 다들 정신 차리지 못하겠는가?”

그의 사자후가 소림사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그제야 소림사의 승려들이 정신을 차리고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미타불! 이리 오시지요.”

“숙소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무림맹에는 다행히도 소림사에는 충분한 숙소가 있었다. 삼 년 전 마교가 침공했을 때 만들어 두었던 곳이었다.

소림사의 승려들이 무림맹의 무인들을 숙소로 안내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광천이 수뇌부들에게 말했다.

“안으로 들어갑시다. 자세한 사정을 들어야 대책을 세울 수 있을 듯싶으니까.”

“그전에 소개해 드리고 싶은 분이 있습니다.”

“누굴?”

“천도왕 적경천 선배님이십니다.”

남천산이 뒤쪽에 있던 적경천을 소개했다. 그러자 광천을 비롯한 소림사 승려들의 눈이 크게 떠졌다.

“정말 적 대협이시오?”

“그렇습니다.”

“아미타불! 천도왕이 아직 생존해계셨다니 강호의 흥복이외다.”

그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적경천이 앞으로 나섰다.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 이 천 모를 이렇게 반겨 주셔서 감사하외다, 방장.”

“아닙니다. 그동안 어떻게 지내신 겁니까? 생존해 계셨으면 소식이라도 전해 주시지.”

“여러 가지 사정이 있었소.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따로 자리를 내서 합시다.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니.”

“알겠습니다.”

적경천의 말에 광천이 고개를 끄덕이며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 뒤를 소림사의 수뇌부와 무림맹의 수뇌부들이 따랐다.

그중에는 남궁창도 있었다.

소림사에 도착한 이후 남궁창은 단 한마디도 않았다. 아니, 할 수가 없었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었다.

무림맹의 맹주는 남천산이지만, 실질적으로 무림맹을 운영한 이는 남궁창이라는 것을 무림의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었다. 즉 무림맹이 무너진 것은 그의 책임이었다. 여기에 면죄부는 있을 수가 없었다.

‘제기랄!’

복잡한 심경을 대변이라도 하듯이 남궁창의 꽉 쥔 주먹 위로 굵은 힘줄이 지렁이처럼 꿈틀거렸다.

수뇌부들은 지객청에 모였다.

제일 상석에 광천이 앉고 왼쪽으로는 무림맹의 수뇌부들이, 오른쪽에는 소림사의 수뇌부들이 앉았다.

이곳까지 오는 동안 그들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만큼 분위기는 가라앉아 있었고, 머릿속은 복잡하기 그지없었다.

자리에 앉고 나서도 그들은 잠시 동안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무거운 분위기를 깬 이는 소림사의 방장인 광천이었다.

“아미타불! 모두 고생하셨습니다. 그럼 어떻게 된 건지 무림맹 측의 이야기부터 들어봅시다.”

“휴우! 아무래도 이 이야기는 군사께서 하시는 것이 제일 나을 듯합니다.”

남천산이 남궁창을 바라봤다.

모두의 시선을 한 몸에 받게 된 남궁창이 잠시 눈을 지그시 감았다. 좋든 싫든 모두의 주목을 받게 됐다. 여기서 말을 잘 하지 못하면 무림맹의 군사직은 물론이고, 그동안 쌓은 명예도 날아갈 것이다.

잠시 생각을 정리한 남궁창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이일은 전적으로 제 책임입니다. 신화상단이 마교의 외원이라는 사실을 진작 알아차렸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 이 사달이 일어났습니다.”

“신화상단이 마교의 외원이라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성질이 급한 광문이 단숨에 목청을 높였다.

신화상단은 소림사와도 거래를 하는 곳이었다. 그런 곳이 마교의 외원이라고 하니 모두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저도 까마득하게 몰랐던 사실입니다. 일차 정마대전 당시 승산이 없음을 깨달은 마교는 모든 재산을 정리해서 원회상에게 맡겼습니다. 원회상이 바로 신화상단의 창업주이자 주인입니다.”

“으음!”

“신화상단은 본맹과 거래를 하면서 허실을 파악해 마교에 넘겨주었습니다. 그리고 마교의 기습 때 내부에서 호응해 혼란을 부추겼습니다. 그들 때문에 본맹은 속절없이 무너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정말입니까? 신화상단이 마교의 외원이라는 것이.”

“그렇습니다. 신화상단의 부단주인 임오연이 직접 말한 사실입니다. 그에게 본맹의 재물당주인 고 대협이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 다행히 재물당의 무인 한 명이 그 사실을 엿들었기에 저도 그런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으음!”

소림사 승려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만큼 남궁창이 한말이 충격적이었기 때문이다.

신화상단은 소림사와도 거래를 하고 있는 곳이었다. 신화상단은 이미 수차례나 소림사에 들어온 적이 있었다.

광천이 말했다.

“남궁군사의 말이 사실이라면 신화상단은 본사를 비롯해 수많은 문파들의 내부 사정을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겠구려. 어쩌면 내부의 기밀까지도.”

“그렇습니다.”

“아미타불! 아미타불!”

“무림맹이 무너진 데는 신화상단이 가장 큰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니 소림사에서도 신화상단에 대한 방비를 철저히 해야 합니다.”

남궁창의 말에 광천이 계지원주 광진을 바라봤다.

“광진.”

“예! 방장.”

“자네는 당장 가서 신화상단이 본사의 기밀을 어디까지 파악했는지 알아보고 대책을 세우게.”

“알겠습니다.”

광진이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그가 나간 후에도 남궁창의 이야기는 계속됐다. 그는 특히 신화상단을 부각해서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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