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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9화 2장. 나무는 가만있고자 하지만 바람은 쉴 새 없이 흔든다(1)
무림맹이 마교에 함락되었다는 소식은 순식간에 천하로 퍼져 나갔다. 무림맹이 무너졌다는 소식에 제일 경악한 이는 바로 구대문파와 오대세가로 대변되는 명문들이었다.
무림맹에 무너졌다는 소식을 들은 그들은 제일 먼저 소문의 진위를 확인했다. 소문이 진짜라는 사실에 그들이 가장 처음 느낀 감정은 공포와 혼돈, 그 자체였다.
무림맹에 무너졌으니 더 이상 그들을 지켜 줄 단체는 존재하지 않았다. 스스로의 힘으로 지키는 수밖에.
각 문파들은 외부에 나가 있는 제자들을 모두 불러들이고 방비를 단단히 했다. 정도를 지향하는 문파들이 그렇게 몸을 사리고 있을 때 마도를 지향하는 문파들이 활개를 치기 시작했다.
정파를 지향하는 문파들의 위세에 짓눌려 있던 마도 문파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세를 확장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정도를 표방하는 문파들과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천하 곳곳에서 분란이 일어났고, 혼돈의 바람은 급속히 각지로 퍼져 나갔다.
혼란의 화룡정점은 바로 사천성이었다.
특유의 폐쇄적인 지형 때문에 사천성 내의 소식은 원래 중원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 사천삼주로 대변되는 당문과 아미파, 청성파의 성향 역시 폐쇄적이었기에 그런 경향은 더욱 강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사천성 내의 소식이 여과 없이 전해진 것이다.
제일 큰 충격은 당문의 배신이었다.
비록 독과 암기를 사용하긴 하지만 그래도 정도를 지향하던 당문이 마교와 손을 잡은 것은 강호에 큰 충격을 안겨 주었다. 그들 때문에 아미파와 청성파가 큰 피해를 입고 봉문을 택했다는 소식은 강호인들을 공포와 혼돈으로 몰아넣었다.
명문정파인 당문이 왜 마교와 손을 잡았는지 이유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들이 마교와 손을 잡고 사천성을 장악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경악은 극에 달했다.
호남성의 무림맹은 마교가 장악했고, 서쪽의 사천성은 당문이 장악했다. 만일 당문이 계속해서 사천성을 장악했다면 천하는 마교와 당문의 포위망에 갇힌 셈이 됐을 것이다.
담호만 없었다면 말이다.
화산권마 담호.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당문이 사천성을 장악했던 당시 하필 그가 사천성에 있었다. 그리고 운명처럼 당문과 충돌했다.
결과는 당문의 참패였다.
문주인 당사일이 죽고, 수많은 정예들이 궤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당문은 회복 불가의 피해를 입고 봉문을 택했다. 그리고 당문을 피해 봉문을 했던 아미파와 청성파가 다시 활동을 재개했다.
그야말로 믿을 수 없는 반전이었다.
단 일인에 의해 당문이라는 거대한 문파가 굴복을 한 것이다.
당문은 단순한 문파가 아니었다. 일시적이긴 했지만 사천성을 제패했을 정도로 엄청난 저력을 지닌 거대문파였다. 특히 독과 암기를 다루기 때문에 더욱 상대하기 까다로울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많은 문파들이 당문을 두려워했고. 청성파와 아미파 역시 봉문이라는 굴욕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당문이 단 일인에 의해 치명적인 타격을 입고 봉문을 한 것은 강호사에 단 한 번도 존재하지 않던 일대사건이었다.
사람들은 무림맹이 무너지면서 입은 마음의 상처를 담호의 행보를 보면서 위안 삼았다.
담호는 이제 단순한 일개 무인이 아니었다. 별호에 마(魔)자가 들어간다고 폄하받을 만큼 미약한 존재도 아니었다.
마교라는 초거대 세력을 견제할 수 있는 유일한 개인.
일개인의 무력과 영향력이 천하를 아우르는 절대의 무인이 바로 담호였다.
사람들의 시선은 이제 담호의 행보에 모아졌다.
그 시각 화산에서도 비상회의가 벌어지고 있었다.
태상장로인 현소 진인의 주재 아래 수뇌부들이 상궁에 모여들었다. 장문인 운경과 명경, 그리고 종리연과 방진보 등이 한 자리에 모여들었다.
현소 진인이 운경에게 말했다.
“이제 모두 모였으니 회의를 시작합시다, 장문인.”
“예! 태상장로님.”
운경이 현소 진인에게 고개를 숙여 보인 후 수뇌부를 돌아봤다.
“모두 소식은 들었을 겁니다. 마교가 드디어 본색을 드러냈습니다. 무림맹이 무너지고, 그 자리를 마교가 차지했습니다. 이제 호남성은 무림맹이 아닌 마교의 영역이 되었습니다.”
“으음!”
사람들의 입에서 절로 침음성이 흘러나왔다. 이미 알고 있는 소식이었지만, 운경의 입을 통해 들으니 느껴지는 무게감이 달랐다.
“마교는 이제 중원에 거점을 마련했습니다. 그들은 분명 호남성을 거점으로 세를 확장해 갈 겁니다.”
“호남성이라면 중원에서도 핵심의 요지 아닙니까?”
“그렇다네. 육로와 수로가 사통팔달로 뻗어 나갔기에 이동이 용이하고 물자를 확보하는 데 어려움이 없지. 애초에 무림맹이 그곳에 세워진 이유이기도 하고.”
사람들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무림맹이 무너졌다는 것, 그리고 무림맹이 무너진 자리에 마교의 분타가 들어섰다는 사실이 주는 충격은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다행히도 지난 삼 년 동안 본파는 전력을 착실히 보강할 수 있었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교의 위협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네. 마교가 단순히 호남성 하나에 만족할 리도 없고. 그들은 분명 언젠가는 본문을 노릴 것이네. 때문에 우리는 방비를 단단히 해야 하네.”
사람들은 운경의 말을 주의 깊게 들었다.
화산파의 장문인이 된 운경의 말이었다. 자리에 어울리는 무게감이 담겨 있었다.
“어떻게 하면 본파의 전력을 끌어올릴 수 있을지 의견을 기탄없이 말해 보게.”
“제가 한 말씀 드려도 되겠습니까?”
제일 먼저 손을 든 이는 삼십육매화검수의 수장인 원명이었다.
“말하게, 원명.”
“태상장로님과 신의, 그리고 진보의 도움으로 인해 본파는 매화신단을 다시 만들어 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덕분에 삼십육매화검수들과 일대제자들의 내공이 비약적으로 상승할 수 있었습니다. 우선 이에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원명이 종리연과 방진보에게 감사의 뜻을 표했다. 그에 방진보가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그 모습을 보며 잠시 미소를 짓던 원명의 표정이 이내 단호하게 바뀌었다.
“하지만 단기간 안에 내공이 폭발적으로 상승하다 보니 육체가 그에 따르지 못하는 부작용이 있습니다. 때문에 저는 삼십육매화검수들과 일대제자들을 데리고 폐관수련을 하고 싶습니다.”
“폐관수련이라.”
“상황이 상황인지라 이런 말씀 드리는 것이 무척이나 죄송스럽습니다. 하지만 이런 때일수록 미래에 대한 투자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폐관수련을 통해 내공을 안정화시키고, 육체를 그에 적응시키면 무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할 겁니다. 이는 곧 화산파 전체의 전력 상승으로 이어질 겁니다.”
“으음!”
“그래서 무리인 것은 알지만 장문인께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폐관수련을 허락해 주십시오.”
원명의 말에 운경이 잠시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그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허락하겠네. 매화검수들과 일대제자들의 공백은 나머지 제자들과 우리가 어떻게든 메워 보겠네.”
“감사합니다, 장문인.”
“아닐세. 오히려 자네의 선택에 감사하네.”
운경은 알고 있었다. 폐관수련에 들어가면 원명이 얼마나 제자들을 혹독하게 몰아붙일지.
원명은 결코 녹록한 사람이 아니었다. 아마 한계까지 매화검수들과 일대제자들을 몰아붙일 것이다. 그리고 매화검수들과 일대제자들도 기꺼이 그에 따를 것이다.
원명의 사제인 원진이 말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사형이 매화검수들과 폐관하는 사이 화산파는 저희들이 지키고 있겠습니다. 목숨을 걸고 지킬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 폐관하십시오. 단 저희가 만족할 만큼 강해지지 못하면 각오하십시오.”
“고맙네! 사제. 반드시 더 강해져서 나오겠네.”
“사형과 매화검수들이 나오면 저희 차롑니다. 저희들도 매화검수들만큼 강해질 겁니다.”
“물론이네. 자네들도 매화신단을 지급받았으니 충분히 강해질 것이네.”
원명이 미소를 지었다. 신뢰의 미소였다.
이제는 일대제자가 된 그들이었다. 그만큼 커다란 책임감이 어깨를 짓눌렀다. 옛날이었으면 엄청난 무게에 짓눌려 어찌할 바를 몰라 했을 지도 몰랐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숱한 고난이 그들을 단련케 했다. 산전수전 다 겪으면서 그들은 강해졌다. 무공보다 더 강한 것이 있다면 바로 그들의 마음이었다.
그들의 마음은 강철보다 단단해져서 이제 어지간한 일로는 절대 흔들리지 않게 되었다.
‘우리에겐 든든한 태상장로님이 계시고, 훌륭한 문주님이 계시지 않은가? 거기에 신의와 진보께서 혼신의 힘을 다해 보조해 준다. 게다가 우리에겐 담호 사숙이 계시다. 그러니 무엇이 두려울까?’
기대고 의지할 만한 존재가 한 사람만 있어도 무서울 것이 없었다. 그런데 화산파에는 그런 존재들이 여럿 있었다. 때문에 든든할 수밖에 없었다.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며 다른 수뇌부들이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그들의 의욕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현소 진인이 말했다.
“그래! 그렇게만 하면 된다. 화산을 지키는 것은 장문인과 명경이 할 것이다. 너희들은 그렇게 착실히 내실을 키우면 된다. 외부에서 아무리 큰 바람이 불어도 나만 흔들리지 않으면 미풍과 다를 바가 없다. 훌륭하다.”
현소 진인의 말은 수뇌부들에게 묘한 안정감을 주었다.
같은 말이라고 하면 그가 하면 이상하게 안도감이 들고 신뢰가 갔다. 그래서 많은 제자들이 현소 진인을 믿고 의지했다.
현소 진인은 화산파의 정신적인 지주였다. 이제 그 사실을 부인하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현소 진인의 말이 이어졌다.
“우리 화산은 이제까지 단 한 번도 외세의 침입에 굴복한 적이 없다. 그 때문에 멸문지경에 몰린 적이 있었어도 말이다. 일차 정마대전 때도 그랬고, 삼 년 전에도 그랬다. 우리는 언제나 위기 앞에서 강해졌고, 외압이 강할수록 오히려 더 거세게 일어났다.”
“맞습니다. 우리 화산은 결코 꺾이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명경을 비롯한 제자들이 현소 진인의 말에 동조했다.
대책을 마련하자고 모인 자리였지만,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들은 이미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준비가 되어 있었다. 이 자리는 그를 확인하는 것에 불과했다.
회의는 싱겁게 끝이 났고, 수뇌부는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휴!”
밖으로 나온 종리연이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에 방진보가 말했다.
“형, 생각하는 거 맞죠?”
“표 나니?”
“많이요.”
“그래? 에구! 표정 관리하는 게 마음대로 되지 않네.”
“그래도 그 정도면 잘하는 거예요.”
방진보의 말에 종리연이 빙긋 미소를 지었다.
“이제 진보다 다 컸네. 위로가 되는 말도 해 줄 줄도 알고.”
“그런가요?”
“고마워! 덕분에 기분이 조금은 나아졌어.”
“헤헤!”
방진보가 특유의 헤픈 웃음을 흘렸다.
웃음은 여전히 그대로였지만 이제 그의 얼굴에선 성숙한 분위기가 물씬 풍겨 나오고 있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형은 금방 돌아올 거예요.”
“그렇겠지?”
“그럼요. 형이 돌아올 곳은 이곳밖에 없으니까요.”
방진보가 자신 있게 대답했다.
화산파는 단순한 문파가 아니었다. 방진보에겐 화산파가 안식처이자 마음의 고향이었다. 그는 담호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했다.
현소 진인이 있는 이곳이야말로 담호에겐 유일한 의지처였다. 그래서 반드시 그가 돌아올 거라고 자신했다.
종리연이 말했다.
“그가 돌아오는 것은 의심하지 않아. 그저 많이 다치지 않고 왔으면 바랄 뿐이야. 내가 고쳐 줄 수 있을 정도의 상처만 입었으면 좋겠어.”
죽지만 않으면 된다. 숨만 붙어 있으면 어떻게든 살릴 자신이 있었다.
“형은 반드시 무사히 돌아올 거예요. 걱정하지 말아요. 누나가 이곳에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형도 알고 있어요. 그러니까 반드시 돌아올 거예요.”
“고마워! 대숙수님. 덕분에 많은 위로가 되었어.”
“그럼 또 매화신단을 만들러 가시죠, 신의 님.”
“풋!”
방진보의 너스레에 다시 한 번 종리연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녀는 방진보와 함께 약왕당을 향했다.
그런 두 사람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현소 진인과 운경, 그리고 명경이었다.
현소 진인이 따스한 미소를 지었다.
“저 두 사람에게 너무나 고맙구나.”
“그렇습니다. 저 두 사람이 있었기에 본파가 단시간에 이렇게 전력을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본파에겐 참으로 큰 흥복입니다.”
운경과 명경이 현소 진인의 말에 동의했다.
화산파는 하루가 다르게 강해지고 있었다. 제자들은 열정적으로 무공을 익히고, 화산파는 충분한 지원을 했다.
특히 순차적으로 지급되는 매화신단은 제자들의 의욕을 크게 고취시켰다. 누구나 열심히 하면 매화신단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그들을 더욱 열정적으로 만들었다.
“저들이야말로 화산파의 진정한 보물입니다.”
“맞습니다.”
운경과 명경이 주거니 받거니 말했다.
그들은 종리연과 방진보를 남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의 대화 속에서 정감이 뚝뚝 묻어 나왔다.
현소 진인은 미소를 지은 채 두 사람을 바라봤다.
담호가 없는 지금은 그들이 화산을 떠받치는 기둥이었다. 그들이 있기에 현소 진인은 큰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장문인, 명경.”
“예!”
“말씀하십시오. 사숙!”
“나도 이번 기회에 잠시 폐관에 들겠네.”
“예? 사숙께서 말씀이십니까?
운경과 명경이 깜짝 놀라 현소 진인을 바라봤다.
“세상은 오직 마교만을 견제하고 있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위협이 존재하고 있음을 아직 몰라.”
“천사교 말씀이십니까?”
“그렇다네. 그들의 사술에 대항하자면 나 역시 더 큰 깨달음이 필요하다네.”
현소 진인의 시선이 하늘을 향했다.
다른 이들의 눈에는 평범하게만 보이는 하늘이 그에겐 불길하게 느껴질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