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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권마-330화 (33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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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0화 2장. 나무는 가만있고자 하지만 바람은 쉴 새 없이 흔든다(2)

무림맹은 악양의 큰 자랑이었다.

악양이 강호의 중심이라는 증거였고, 자부심의 원천이었다. 하지만 하루아침에 무림맹은 무너졌고, 그 자리를 마교가 차지했다.

수많은 이들이 죽었고, 많은 건물들이 대화재에 소실됐다. 그토록 위풍당당하던 무림맹은 잿더미가 되었고, 거리엔 수많은 시신과 피비린내가 넘쳤다.

무인들의 천당이라 불렸던 악양이 하룻밤 사이에 지옥으로 돌변한 것이다. 사람들은 공포에 떨었고, 외출을 삼갔다.

무림맹이 불탄 자리를 차지한 이들은 바로 마교의 무인들이었다. 무림맹을 점거한 마교는 거침이 없었다. 그들은 무림맹이 있던 터에 건물을 세우기 시작했다.

“이곳은 신교가 지배하는 강호의 중심이 될 것이다.”

마교의 군사 상한천이 빠른 속도로 세워지는 전각들을 보며 중얼거렸다. 그런 그의 곁에는 사대군장 중 일인인 임학을 비롯해 마교의 수뇌부들이 모여 있었다.

수뇌부들의 얼굴에는 격동의 빛이 고스란히 떠올라 있었다.

다른 곳도 아닌 무림맹이 있던 자리였다. 그런 곳에 마교의 본단이 들어서고 있다는 사실은 그들을 격동시키기 충분했다.

임학이 상한천의 곁으로 다가왔다.

“고생하셨습니다, 군사.”

“이게 어찌 나 혼자만의 고생이었겠는가? 모두 수고 많았네.”

“이로써 본교도 중원에 본단을 두게 되었군요.”

임학이 감개무량한 시선으로 새로이 세워지는 전각군을 바라봤다.

와신상담의 세월이었다.

음지에 숨어 힘을 길렀다. 떳떳하게 신교의 무인이라고 말할 수도 없는 오욕의 세월이었다. 그렇게 모진 시간을 견딘 끝에 얻은 이 조그만 땅이 그렇게 소중할 수가 없었다.

“이건 겨우 시작에 불과하네. 이곳에 세워지는 총단은 강호와 본교의 중심이 될 것일세. 그렇게 되면 이제까지 숨을 죽이고 있던 교인들도 다시 활동을 시작할 것이네.”

“생각만 해도 가슴이 뿌듯해집니다.”

“그때까지는 절대 방심을 해서는 안 되네. 원래 창업보다 수성이 더 어려운 법이네. 이곳에 총단을 세움으로써 우리는 양지에 드러나게 되었네. 이제까지 누려 왔던 장점을 전혀 살릴 수 없게 된 셈이지.”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우리에겐 군사가 있고, 흑백사자도 계십니다. 그리고 전 무림의 지존이신 교주가 계시는데.”

“그래도 방심해서는 안 되네.”

“물론입니다. 이 악양은 본교의 성지가 될 겁니다. 그리고 난공불락의 요새가 될 겁니다. 이 임학이 그렇게 만들겠습니다.”

“하하! 자네만 믿겠네.”

상한천이 오랜만에 큰 웃음을 터트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그가 평소의 냉철함을 되찾았다.

“그래도 방심해서는 안 되네. 우리는 아직 강호를 평정한 것이 아니네. 강호는 넓고 기인이사는 모래알처럼 많은 법이니까.”

“허나 그 누구도 우리의 적수가 되지는 못할 겁니다.”

“권마.”

“네?”

“권마를 조심하게.”

“그게 무슨?”

“전검류의 천 어르신이 그에게 당했네.”

“말도 안 되는…….”

순간 임학이 눈을 부릅떴다. 그의 얼굴엔 불신의 빛이 가득했다. 그것은 다른 수뇌부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전검류라면 십삼지파의 하나이면서 은연중 최강이라 불리는 곳이다. 전검류의 전대 계승자인 천오경은 십삼지파뿐만 아니라 마교 전체에서도 상대할 자가 거의 없는 초고수였다.

“정말입니까? 어르신이 권마에게 당했습니까?”

“그동안은 사기에 영향을 끼칠까 말을 안 했지만 사실이라네. 권마 한 명 때문에 어르신이 돌아가시고, 사천의 모든 기반이 송두리째 박살이 났네.”

“으음!”

상한천의 말에 임학이 침음성을 흘렸다.

그 역시 눈과 귀가 있기에 상한천이 당문과의 연합에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는지 잘 알고 있었다.

당문의 독과 암기는 마교에도 큰 부담이었다. 때문에 상한천은 당문을 끌어들임으로써 미리 자신들을 향할 위협을 제거한 것이다. 하지만 그런 노력이 담호 단 한 명에 의해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이제는 알 것 같네. 권마는 하늘이 내린 본교의 숙적이네.”

“그 정도입니까?”

“지금까지 그의 행적이 증명하지 않는가? 마모께서도 그에게 큰 상처를 입고 요양 중이라네.”

“으음!”

“권마는 최강의 적일세.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계속해서 그에게 좌절을 겪게 될 걸세.”

상한천의 음성은 무척이나 담담했다. 이제까지 대놓고 담호에게 적의를 보이던 그 모습이 아니었다. 그래서 더 무섭게 느껴지기도 했다. 최소한 임학에게는 말이다.

“군사.”

“당분간은 권마에게서 신경을 끄게. 어차피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으니까. 우리는 이곳에서 총단을 재건하고 교주님을 맞을 준비를 하면 되네.”

“교주님을? 그렇다면 교주님께서 드디어 폐관을 끝내시는 겁니까?”

“그렇다네.”

상한천이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그에 임학을 비롯한 수뇌부들이 전부 동요했다.

“오오! 드디어…….”

“교주님께서 세상에 나오시는 건가?”

그들의 얼굴에 격동의 빛이 떠올랐다.

교주인 척관혈은 오래전부터 그들에게 모습을 보이지 않고 폐관수련에만 몰두했다. 폐관에 들기 전에도 인세에 적수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강했던 척관혈이었다.

비록 중간에 풍월제 단공월의 습격을 받기도 했지만, 그는 폐관을 깨지 않았다. 그렇게 페관에 집착할 만큼 깨달음의 단초가 크다는 뜻이기도 했다.

척관혈이 폐관수련을 통해 얼마나 더 강해졌을지 감히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교주님께서 도착하기 전에 반드시 총단을 완성시켜야 하네.”

“물론입니다. 수하들을 채근해 일정을 앞당기겠습니다.”

“으음!”

상한천이 고개를 끄덕일 때였다.

“군사.”

두 사람이 그의 앞으로 다가왔다.

그들의 얼굴을 확인하는 순간 상한천의 얼굴에 미소가 활짝 피어올랐다.

“부원주, 설화야.”

“외원의 부원주 임오연이 군사를 뵙습니다.”

“소녀 설화가 군사님을 뵙습니다.”

상한천에게 포권을 취하는 이들은 바로 임오연과 원설화였다. 상한천이 미소로 그들을 맞이했다.

“모두 고생 많았네. 두 사람 덕분에 무림맹을 수월히 장악할 수 있었네.”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과찬에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신화상단의 헌신이 없었다면 어찌 본교의 오늘이 존재할까? 교주님께서도 원주와 부원주의 헌신에 무척이나 감사하고 있다네.”

“오오!”

임오연의 얼굴에 감격의 빛이 떠올랐다. 교주가 자신의 공로를 인정해 주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없던 힘까지 다시 샘솟는 느낌이었다.

원설화의 표정 역시 임오연과 비슷했다. 그녀는 몸을 가늘게 떨며 환희를 만끽했다.

상한천이 그런 두 사람에게 말했다.

“앞으로도 신화상단의 지원이 절실히 필요하네.”

“물론입니다. 본교를 지원하기 위해 만든 신화상단입니다. 단주님께서는 언제든 상단을 바칠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됐네. 상단은 제일 잘 아는 사람이 운영해야 하는 법이지. 그저 필요할 때 지원만 잘해 주면 될 일이네.”

“걱정하지 마십시오. 단주님께서는 이미 금자 수백만 냥을 준비해 놓고 있습니다.”

“말만 들어도 든든하군.”

상한천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마교의 무력에 신화상단의 재력이 더해졌다.

두려울 것도, 거리낄 것도 없었다.

상한천의 눈엔 한기가 떠올라 있었다.

‘권마여! 지금의 위세를 마음껏 누리거라. 너의 마지막이 그리 멀지 않았으니.’

그는 결코 단 한순간도 담호를 잊거나 등한시하지 않았다. 단지 지금은 때가 아니기에 참고 기다릴 뿐이다.

***

담호가 고개를 들었다.

해가 서산에 걸려 있었고, 어느새 사위가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이 이상 흑귀를 몰아 봐야 의미가 없었다.

담호는 적당한 곳을 찾아 노숙할 준비를 했다.

나뭇가지를 모아오는 사이 순식간에 어둠이 찾아왔다. 하지만 담호는 당황하지 않고 삼매진화로 나무에 불을 붙였다.

타닥! 타닥!

나뭇가지가 불타오르면서 일대가 환하게 밝아졌다. 담호는 모닥불을 정면으로 하고 앉았다. 불빛이 그의 얼굴에 깊은 음영을 드리웠다.

일렁이는 불빛은 담호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그는 사부 현소 진인을 비롯해 지인들을 떠올렸다. 그중에는 종리연도 있었고, 방진보도 존재했다.

이 넓은 세상에 돌아갈 곳이 있고, 기다려 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마음이 풍족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외롭지 않았다.

담호가 그렇게 혼자서 시간을 보낼 때였다.

“저쪽이다. 불빛이 보인다.”

“어서 가세.”

갑자기 어둠 저 너머에서 소란이 일었다.

시끄러운 목소리가 어둠을 가르는가 싶더니 이내 수많은 발소리와 마차의 바퀴가 굴러가는 소리가 담호의 귀를 파고들었다.

담호가 무심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순간 어둠 속에서 수십여 명의 무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먼 길을 온 듯 사람들의 어깨에 쌓인 먼지와 짐이 가득 실린 마차. 그리고 마차 위에 펄럭이는 커다란 깃발이 눈에 들어왔다.

깃발엔 금색 수실로 창천표국(蒼天鏢局)이라는 네 글자가 적혀 있었다.

창천표국은 천하에서 손에 꼽히는 커다란 표국이었다. 중원의 십대표국을 뽑는다면 반드시 들어갈 만큼 큰 규모를 자랑했다. 녹림도들도 창천표국이라면 한 수 접어줄 만큼 무력도 대단해서 많은 상단들이 그들과 거래했다.

그때 창천표국 표두들 사이에서 중년의 남자가 걸어 나왔다. 각이 진 턱과 굳게 다문 입술, 그리고 불빛을 받아 빛나는 매서운 눈빛의 소유자였다.

그가 담호에게 다가와 포권을 취했다.

“소생은 창천표국의 대표두 남우생이라고 합니다. 뜻하지 않게 시간이 지체되어 노숙할 수밖에 없게 되어 그러니 자리와 불씨 좀 나눠주시지 않겠습니까? 그 대가는 치르겠습니다.”

“마음대로 해.”

“감사합니다. 들었지. 얼른 모닥불을 피우고 노숙할 준비를 하라.”

담호의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표두와 쟁자수 들이 분주히 움직였다. 표두들은 이런 노숙에 무척이나 익숙한 듯 짐마차를 한 곳에 모은 후 말들을 돌봤다. 그사이 쟁자수들은 노숙할 준비를 했다.

담호의 모닥불에서 불씨를 얻어 가 불을 피우고, 식사를 준비했다. 일련의 과정은 순식간에 이뤄졌다. 삭막하기만 하던 공터는 금세 사람들의 온기로 안온해지고, 향긋한 음식 냄새가 가득 찼다.

담호는 그런 사람들의 모습을 말없이 바라봤다. 바로 코앞에서 사람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지만 그와는 상관이 없는 일이었다.

“어이, 그쪽에 번을 세워.”

“쟁자수들은 짐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대표두 남우생은 잠시도 쉬지 않고 일행을 지휘했다. 그의 지휘 아래 창천표국은 노숙할 준비를 끝마쳤다.

“휴!”

그제야 남우생은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담호의 불빛을 보고 길을 잡지 않았다면 지금쯤 황야 한가운데서 헤매고 있었을 것이다. 노숙에 무척이나 익숙한 그들이었지만, 불씨 하나 없이 자리를 잡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먼저 자리를 잡고 있던 담호에게 감사했다.

그는 다시 한 번 담호에게 다가갔다.

주변이 시끄러울 텐데도 담호는 미동 하나 없이 제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런데 묘한 이질감이 느껴졌다. 분명 모닥불을 쬐고 있는데, 불빛이 담호의 주변에서 이지러지는 듯한 느낌이 든 것이다.

마치 불빛이 담호를 거부하고 있는 듯한 그런 모습이었다.

‘무슨?’

남우생이 눈을 부릅떴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으음!”

그의 입에서 절로 침음성이 흘러나왔다. 그제야 그는 담호가 보통 사람이 아님을 깨달았다.

‘하긴 이런 혼돈의 시대에 혼자서 황야를 주유할 정도의 인물이라면 평범할 리 없지.’

생각을 정리한 그는 다시 한 번 담호에게 정중히 감사의 뜻을 표했다.

“대협의 도움에 감사드립니다. 보답을 하고 싶으니 혹시 대협의 존성대명을 알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

“대협!”

담호가 대답이 없자 남우생이 다시 한 번 정중히 불렀다. 그제야 담호가 고개를 들어 남우생을 올려다봤다.

눈빛이 마주치는 순간 남우생의 몸이 절로 부르르 떨렸다.

‘무, 무슨 눈빛이?’

불빛을 받아 검게 일렁이는 담호의 눈빛을 보는 순간 심장이 떨어지는 듯했다.

표국에서 평생 잔뼈가 굵은 남우생이었다. 그만큼 산전수전 다 겪고,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 봤다. 그중에는 강호를 쩌렁쩌렁 울리는 고수들도 다수 존재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담호만큼 섬뜩한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눈빛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

자신도 모르게 손바닥이 땀으로 촉촉이 젖어들었다. 머리보다 몸이 먼저 두려움을 느끼고 반응하는 것이다.

그 순간 담호가 입을 열었다.

“감사의 인사 따윈 필요 없으니까 돌아가.”

“아, 알았습니다. 그럼…….”

남우생은 대답과 함께 황급히 창천표국 무리에게 돌아왔다. 그런 그의 낯빛은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대표두님, 괜찮으십니까?”

“안색이 좋지 않으십니다.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혹시 저자가 대표두님 기분을 상하게 한 겁니까? 내 저자를…….”

성질 급한 표두 하나가 소매를 걷어 올리고 담호에게 달려갈 듯하자 남우생이 황급히 그를 말렸다.

“아니야. 그만두게.”

“허나 대표두님!”

“내 말 듣지 못했나?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지 않나? 내 허락이 떨어지기 전에는 누구도 저분의 곁에 얼쩡거리지 말게. 쟁자수들에게도 내 말을 단단히 일러두고. 알겠는가?”

“아, 알겠습니다.”

아직도 어깨 위에 올라앉은 소름이 가라앉지 않고 있었다.

남우생은 두려움이 담긴 시선으로 담호를 바라봤다.

“대체 저자가 누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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