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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권마-331화 (33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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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1화 2장. 나무는 가만있고자 하지만 바람은 쉴 새 없이 흔든다(3)

담호는 새벽 일찍 노숙지를 떠났다. 창천표국의 무인들이 깨어나기도 전이었다.

노숙지를 떠난 지 한나절 만에 커다란 마을이 보였다. 준의현이었다.

준의현(遵義縣)은 귀주성 북부에 위치한 제법 큰 현이었다. 첩첩한 산봉과 험준한 바위, 푸른 숲과 대나무, 맑은 물과 붉은 땅으로 대변되는 아름다운 풍광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준의현은 특히 술이 유명했는데 이곳에서 생산되는 모태주(茅台酒)는 천하에서 손꼽히는 명주였다. 때문에 많은 사람과 상단들이 모태주를 구하기 위해 준의현에 들어왔다. 하지만 모태주를 구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준의현에서 만들어지는 모태주는 전량 백화방(白貨房)에서 관리했다. 백화방은 철저하게 수량을 조절함으로써 모태주의 가격을 유지했다.

백화방과 친분이 없는 자라면 모태주를 구할 수가 없는 것이 현실이었다. 모태주를 기반으로 백화방은 준의현을 꽉 잡고 있었다.

술을 좋아하는 주당에겐 이곳 준의현이 바로 천당이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거리의 주점마다 술을 즐기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담호는 모태주에 관심이 없었다. 그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간단한 음식과 의복이었다. 그가 걸친 옷은 숱한 전투를 걸치면서 마치 걸레쪽처럼 헤져 있었다.

담호는 제일 먼저 보이는 객잔에 들어갔다. 그러자 점소이가 그를 맞이했다.

“어서 오세요.”

“방 있느냐?”

“주무시고 가실 건가요?”

“그래!”

“마침 좋은 방이 남아 있어요. 그런데 일인실이라서 조금 비싼데 괜찮으시겠어요?”

“상관없다.”

“헤헤! 저를 따라오세요.”

점소이는 담호를 깨끗한 방으로 안내했다.

객잔 뒤쪽에 있는 별채였는데, 한쪽에는 커다란 우물이 존재했다.

담호는 점소이에게 돈을 두둑이 주고 자신이 입을 만한 옷을 사 올 것을 주문했다. 그런 후에 우물 앞에서 옷을 벗었다.

찌직!

옷이 피에 말라붙어 잘 벗겨지지 않았다. 피딱지가 떨어지면서 피가 나기도 했다. 고통스러웠지만 담호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옷을 벗었다. 그러자 상처가 가득한 육체가 드러났다.

담호의 육체는 수많은 상처로 덮여 있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수십 번을 죽었어도 이상하지 않을 엄청난 상처들이 수없이 겹쳐 마치 갑옷처럼 보였다.

담호는 우물에서 물을 길러 머리 위에 쏟아부었다.

촤하학!

시리도록 차가운 물이 전신을 타고 흘렀다. 말라붙어 있던 핏자국과 먼지가 씻겨 나갔다.

담호는 그 후로도 몇 번이나 더 물을 뒤집어썼다.

핏자국과 먼지는 씻겨 나갔지만, 몸에 배어 있는 혈향은 지워지지 않았다.

“후!”

담호가 나직이 한숨을 내쉬며 옷을 입으려 했다. 하지만 걸레쪽처럼 변한 옷은 다시 입기엔 무리였다.

그때였다.

“손님!”

점소이가 후다닥 뛰어 들어왔다. 그의 손에는 검은 무복이 들려 있었다.

“헤헤! 마침 근처 옷집에 쓸 만한 옷이 있어서 금방 구할 수 있었어요. 상의와 하의, 그리고 먼 길을 가는 것 같아 장포도 구입했어요.”

눈썰미가 있는 점소이였다. 담호는 점소이에게 은자 한 냥을 더 건네주었다. 그러자 점소이의 입이 헤벌쭉 벌어졌다.

“고맙습니다, 손님. 헤헤!”

점소이가 한 달을 일해도 벌 수 없을 만큼 큰돈이었다. 그는 담호에게 두 번, 세 번 연거푸 감사의 인사를 한 후 밖으로 나갔다.

담호는 점소이가 사 온 옷을 입었다.

검은 무복은 맞춤옷처럼 딱 맞았다. 거기에 장포를 걸치니 제법 든든했다.

담호는 옷을 입은 후 객잔의 식당으로 나왔다. 식당에는 점소이가 이미 식사준비를 끝내놓고 있었다.

“헤헤! 미리 모태주와 간단한 안주 준비해 놨어요.”

“고맙구나.”

아무리 돈을 받고 하는 일이라지만 이렇게까지 준비를 해 주면 기분이 좋지 않을 수 없었다.

담호는 점소이가 안내해 준 자리에 앉아 모태주를 한잔했다. 목구멍이 짜르르 울리는 것이 기분 좋은 자극이 느껴졌다.

술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담호였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 모태주를 즐겼다. 숱한 사선을 넘긴 후 마시는 술은 지친 그의 심신에 기운을 북돋아주는 것 같았다.

그가 술을 석 잔 정도 마셨을 때였다.

“저, 저기?”

“불이다.”

갑자기 객잔 안이 시끄러워졌다. 사람들이 창밖을 보며 웅성거리고 있었다. 담호의 시선도 자연스럽게 창밖을 향했다. 그러자 저 멀리 불길이 치솟아 오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저긴 백화방의 창고가 있는 곳 아닌가?”

“맞네! 바로 거기네.”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준의현의 토박이였다. 그들은 불길이 어디서 치솟고 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아이고!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래?”

“백화방의 창고면 모태주가 보관되고 있는 곳 아닌가?”

“맞네! 이러고 있을 게 아니라 어서 가서 불을 꺼야 하네.”

사람들이 서둘러 일어났다.

준의 사람들과 백화방은 공생관계였다. 백화방이 망하면 타격을 입는 이들은 바로 준의 사람들이었다. 그렇기에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백화방의 창고로 달려가려 했다.

그때였다. 갑자기 몇몇 사람들이 객잔 안으로 뛰어 들어오며 소리쳤다.

“밖에 나가지 말게나. 위험하니까.”

“그게 무슨 말인가?”

이유를 묻는 객잔안의 손님에게 뛰어 들어온 사내가 숨을 고르며 말했다.

“백화방에서 강호인들이 충돌했네. 지금 그곳은 전쟁이라네. 괜히 얼쩡거리다가는 눈먼 칼에 맞을 걸세.”

“강호인들이 충돌했다고?”

“그렇다네. 지금 백화방 쪽은 난리도 아닐세.”

“허어!”

뛰어 들어온 사내의 대답에 객잔 안의 손님들이 탄식을 내뱉었다.

백화방은 그들의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도 했지만, 또한 강호 방파이기도 했다. 단순한 화재가 아니라 강호 방파끼리의 충돌이라면 괜히 얼쩡거리지 않는 것이 최선이었다.

“도대체 어떤 방파가 백화방과 충돌을 하는 겐가? 일대에서 백화방에 비견될 방파는 없을 텐데.”

“흑무방이라고 하네.”

“흑무방?”

“그래! 그들이 금사문을 멸문시키고 이번에는 백화방을 노린다고 하네. 그러니 괜히 밖에 나갔다가 횡액당하지 말고 가만있게.”

“으음!”

사내의 설명에 객잔 안의 손님들 안색이 딱딱하게 굳었다.

흑무방에 관한 소문은 들었지만, 설마 백화방과 충돌을 일으킬 줄은 미처 몰랐다.

“허! 세상이 어떻게 되려고 이러는 건지.”

“흑무방은 도대체 무얼 믿고 저리 날뛰는 건지.”

“무림맹이 무너지고 나니 겁나는 게 없나 보군.”

객잔 안에는 그들의 탄식 섞인 목소리만 울려 퍼졌다.

담호는 말없이 술잔을 기울였다. 창밖으로 보이는 불길은 시간이 갈수록 기세를 떨치고 있었다.

성의 패권을 놓고 무림 문파가 격돌하는 것은 결코 흔한 일은 아니었다. 대부분의 성에는 이미 오래된 명문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귀주성처럼 거대한 명문이 없는 곳이라면 이런 충돌이 일어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때문에 담호는 그들에게서 신경을 껐다. 이런 일에까지 관여할 만큼 그는 한가하지 않았다.

방으로 돌아온 담호는 침상에 누워 잠을 청했다. 다행히 높다란 담이 밖의 소음을 어느 정도 막아 주어 담호는 오랜만에 푹 쉴 수 있었다.

푹신한 침상에서 하룻밤을 푹 쉰 덕분인지 몸 상태가 무척이나 좋았다.

식당으로 나오자 점소이가 알은척을 했다.

“푹 주무셨어요?”

“음!”

“다행이네요. 저는 한숨도 자지 못했는데.”

“…….”

“간밤에 아주 난리가 났잖아요. 근처에서 칼부림 소리가 나는데 겁이 나서 잠을 잘 수 있어야지요. 참, 오늘 나갈 때 조심하세요. 간밤에 흑무방이 백화방을 완전히 집어삼킨 모양이에요. 지금 준의현의 질서를 유지한다는 명목으로 무인들을 거리에 풀어놓고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네요. 잘못 걸리면 곤욕을 치르니 각별히 조심하세요.”

“그러지.”

“그럼 앉아서 기다리십시오. 금방 식사를 갖다드리겠습니다.”

“음!”

점소이가 재빨리 주방으로 달려갔다.

담호는 창가에 앉아 창밖을 바라봤다. 점소이의 말처럼 거리 곳곳엔 검은 옷을 입은 무인들이 쫙 깔려 있었다. 흑무방의 무인들이었다. 그들은 눈알을 부라리며 길을 지나가는 사람들을 노려봤다.

사람들은 감히 크게 숨도 쉬지 못한 채 고개를 숙이고 그들을 지나쳐 갔다.

흑무방의 무인들은 여인들이 지나갈 때마다 음담패설을 주고받았다.

“킬킬! 고년 참 먹음직스럽네.”

“저 엉덩이 보라구. 토실토실하니 끝내주는군.”

그들의 목소리는 여인들의 귀에도 들어갔다. 여인들은 얼굴이 붉어진 채 아무런 말도 못 하고 급히 그들을 지나쳐 갔다.

하룻밤 사이에 세상이 바뀌었다.

준의현의 든든한 방패막이였던 백화방은 몰락을 했고, 그 자리를 흑무방이 차지했다. 그리고 흑무방은 지금 승자의 권리를 마음껏 누리고 있었다.

원래 강호란 곳이 그랬다. 승자가 모든 것을 독식하는 구조였다. 금사문과 백화방이 몰락한 이상 귀주성에서 흑무방에 대항할 수 있는 문파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 말은 곧 흑무방이 무슨 짓을 하든 견제할 존재가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리고 견제할 존재가 없는 집단의 분위기는 패도적으로 흐르기 마련이었다. 지금 흑무방처럼 말이다.

당연히 사달이 일어났다.

“꺄아악!”

갑작스레 골목 한쪽에서 여인의 찢어지는 듯한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웬 여인 하나가 세 명의 사내에게 둘러싸여 희롱을 당하고 있었다.

“흐윽! 제발 보내 주세요.”

“흐흐! 누가 잡아먹는다냐?”

“그러게 말이야. 그저 이야기만 하자는 것뿐인데.”

여인을 둘러싼 사내들은 바로 흑무방의 무인들이었다. 그들은 유달리 아름다운 여인을 희롱하고 있었다.

다른 여인들은 그냥 보냈지만, 눈앞의 여인은 도저히 그냥 보낼 수가 없었다. 여인은 준의현에서도 아름다운 미모로 유명했다. 간밤에 치열한 격전을 벌이고 흥분에 차 있는 사내들이 이성을 잃고 덤벼들 정도로 말이다.

“아아! 제발 보내 주세요. 전 남편이 있는 몸이에요.”

“씨발! 나도 마누라 있다고. 그런데 뭐 어쩌라고? 한번 대주면 닳기라도 하냐? 어차피 네년 남편은 그런 사실도 모를 거야.”

“킬킬!”

유달리 덩치가 큰 사내가 투박한 손으로 여인의 머리채를 휘어잡았다. 그리고 근처 골목으로 끌고 갔다.

“흐흐! 내가 먼저 하지.”

“그다음 나다.”

“망이나 잘 보고 있으라구. 흐흐:

“아아악! 제발 도와주세요.”

남자에게 끌려가면서 여인이 목이 터져라 도움을 청했다. 하지만 거리를 오가는 그 누구도 그녀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다.

“씨발! 눈 안 돌려? 확 눈깔 빼 버린다.”

흑무방의 무인들은 공포분위기를 조성했다. 그 누구도 그들에게 대항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아아! 제발!”

여인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왔다.

찌이익!

덩치 큰 남자의 손에 그녀의 옷이 갈가리 찢겨져 나가며 뽀얀 속살이 드러났다.

“흐흐!”

남자의 눈이 벌겋게 충혈됐다. 그는 커다란 손으로 여인의 가슴을 우악스럽게 잡아 비틀었다. 여인은 수치심과 공포를 못 이겨 비명을 연신 내질렀다.

길가를 지나가는 사람들 대부분이 그 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그들은 애써 외면했다. 그런 그들의 얼굴엔 수치심과 무기력함이 가득했다.

불의를 보고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현실이 싫었다. 하지만 그들에겐 현실을 바꿀 힘이 없었다.

담호는 그 모든 광경을 지켜보았다.

그때 점소이가 음식을 내왔다.

“음식 나왔습니다.”

그때 담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소, 손님?”

“식사는 잠시 후에 하겠다.”

“예?”

영문을 알 리 없는 점소이가 큰 눈만 끔뻑거렸다.

그사이 담호는 객잔을 나서 여인이 당하고 있는 골목으로 향했다.

“넌 뭐야? 어서 꺼지지 못해?”

“뭐야? 절름발이 새끼 아냐?”

골목을 막아선 흑무방의 무인들이 눈알을 부라렸다.

그렇지 않아도 흉악한 얼굴에 사나운 기세까지 더해지니 꿈에 볼까 무서웠다. 거리를 오가던 사람들이 겁을 집어먹을 만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상대는 담호였다.

쾅!

거리에 한 줄기 뇌음이 울려 퍼지는 순간 사나운 표정을 짓던 사내 한 명의 머리가 그대로 날아갔다.

“뭐, 뭐야? 씨발!”

뒤늦게 상황을 인지한 동료가 두 눈을 끔뻑거렸다.

콰득!

“켁!”

담호가 그런 남자의 목을 움켜잡았다. 담호가 손을 들자 남자의 두 다리가 땅에서 떨어져서 버둥거렸다.

“으헥!”

숨이 막혀 남자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갑작스러운 소란에 골목 안에서 여인을 겁간하려던 남자가 바지춤을 치켜 올리며 나왔다. 그는 바닥에 쓰러져 있는 동료의 시신과 담호를 번갈아 바라보며 놀랐다.

“뭐야? 이 새끼.”

그는 이성을 잃고 담호에게 덤벼들려고 했다. 하지만 담호의 전신에서 흘러나오는 불길한 기세에 움찔했다.

비록 간밤의 흥분이 가시지 않아 여인을 겁탈하려 했지만 그역시 무공을 익힌 무인이었다. 그는 단숨에 담호가 범상치 않은 상대임을 눈치챘다.

그는 담호에게 덤벼드는 대신 호각을 입에 물었다.

“우리가 누군지 알고 감히 이러는 거냐? 우린 흑무방의 무인이다. 우리가 죽으면 방주님이 네놈을 절대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내가 호각을 불면 인근에 있는 방도들이 전부 달려와 네놈을 난도질할 것이다.”

“불어.”

“뭐, 뭐라고?”

“개떼처럼 모두 몰려오게 불라고.”

뿌드득!

순간 담호의 손에 잡힌 사내의 목이 부러져 덜렁거렸다.

“으으!”

그 순간 공포에 질린 무인이 자신도 모르게 호각을 힘껏 불었다.

삐이이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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