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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권마-332화 (33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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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2화 3장. 공포를 지배하는 공포(1)

조관은 오십 대 중반의 남자였다. 보통 그 나이대의 남자는 주름살이 깊이 패고, 세월의 풍상이 얼굴에 고스란히 새겨지기 마련이었지만 조관은 달랐다.

그는 주름살 하나 없이 팽팽한 얼굴과 탄력 있는 근육을 자랑했다. 비록 눈가엔 자잘한 주름이 가득했지만, 그 나이를 감안하면 그 정도는 주름살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였다.

그렇게 조관이 젊음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그의 강력한 내공 덕분이었다. 그가 익힌 흑상심공(黑象心功)은 마도에서도 손에 꼽히는 강력한 내공심법이었다.

흑상심공으로 쌓은 내공은 심후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렇게 강력한 내공은 노화를 늦춰졌고, 덕분에 조관은 오십 대 중반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체력과 왕성한 정력을 자랑했다.

그의 침상에 나신으로 누워 있는 세 명의 여인이 그 사실을 증명하고 있었다. 침상에 누워 있는 여인들의 얼굴은 모두 눈물로 얼룩져 있었다.

그녀들은 백화방 수뇌부의 딸이었다. 미모도 출중해 백화방의 남성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간밤에 흑무방과 백화방이 충돌하면서 그녀들의 운명은 급전직하했다.

그녀들의 아비들은 죽거나 다쳤으며, 남은 가족들도 모두 뇌옥에 갇혔다. 그들은 남은 가족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조관의 노리개가 되어야 했다.

조관은 흑무방의 방주이자 귀주성의 지배자였다. 강력한 경쟁자였던 금사문과 백화방이 무너진 이상 귀주성에서 그를 견제할 이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그는 승자의 권리를 마음껏 누렸다. 백화방에서도 손에 꼽히는 여인들 세 명을 한꺼번에 품은 그의 얼굴엔 만족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흐흐!”

조관이 음소를 흘리며 침상에서 일어났다. 그가 옷을 주섬주섬 찾아 입을 때였다.

“바, 방주님.”

밖에서 호들갑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이냐?”

“크, 큰일 났습니다.”

“큰일?”

조관이 미간을 찌푸리며 문을 열었다. 그러자 문밖에 서 있는 심복이 보였다.

“백화방의 잔도들이 난리라도 친단 말이냐? 무슨 큰일이 일어났다는 게냐?”

“그게…….”

“어서 말하지 못할까. 무슨 일이냐?”

“지금 서통가에 난리가 났습니다.”

“서통가?”

“예! 백화방 서쪽에 있는 거리 말입니다. 객잔들이 몰려 있는 곳.”

“그건 나도 아니까 무슨 문젠지나 말하거라.”

결국 조관의 화가 폭발했다. 그에 심복이 움찔하며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그곳에 사신이 나타났습니다.”

“사신?”

“예! 본방의 무사들과 웬 떠돌이 무인 하나가 시비가 붙은 모양인데 피해가 막심합니다.”

“겨우 한 놈 때문에 피해가 막심하다고?”

“그렇습니다.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놈에게 무사들을 보내는 족족 주검이 되어 돌아오고 있습니다. 놈에게 죽임을 당한 무사들의 수만 벌써 삼십 명이 넘습니다.”

“감히!”

쾅!

분노가 극에 달한 조관이 주먹으로 벽을 후려쳤다. 그러자 두꺼운 벽에 커다란 구멍이 뻥 뚫렸다.

그는 급히 밖으로 나왔다. 밖에는 흑무방의 무사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조관의 시선은 흑무방의 무사들을 지나쳐 한참이나 떨어져 있는 십여 명의 무인들을 향했다.

그들은 붉은 방립과 피풍의를 걸치고 있었는데, 무척이나 살벌한 기세를 발산하고 있었다. 한눈에 봐도 흑무방의 무인들과 구별이 되는 복장과 기도를 가지고 있었다.

조관이 그들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돌아가는 상황이 심상치 않소. 혹시 모르니 여러분들께서 같이 갑시다.”

“그러지.”

붉은 피풍의의 사내들 중 우두머리가 짧게 대답했다. 그 모습이 다소 신경에 거슬렸지만, 조관은 화를 꾹 눌러 참았다. 지금 아쉬운 것은 자신이지, 그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조관이 흑무방의 무인들에게 말했다.

“가자. 감히 어떤 놈이 본방의 행사에 겁도 없이 훼방을 놓는지 낯짝을 봐야겠다.”

“예!”

부하들이 힘찬 대답과 함께 조관을 따랐다.

그들은 어젯밤 점거한 백화방을 나서서 서통가로 향했다.

서통가에 가까워질수록 조관은 짙은 혈향을 맡았다. 바람을 타고 피비린내가 퍼져 나가는 것이다.

조관의 미간에 깊은 골이 패였다. 짙은 혈향이 그의 심기를 자극한 것이다.

마침내 서통가에 도착하자 병풍처럼 서 있는 무인들이 보였다. 그들 역시 흑무방의 무인들이었다. 그들은 마치 겁에 질린 개들처럼 한데 모여 꿈쩍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 모습이 조관의 화를 폭발하게 만들었다.

“여기 모여서 대체 무얼 하고 있는 것이냐?”

“아!”

“방주님.”

뒤늦게 조관이 온 것을 눈치챈 방도들이 분분히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그 모습을 보면서도 조관의 화는 풀리지 않았다.

“물었지 않느냐? 본방의 무인들을 죽인 놈을 족치지 않고 여기서 무얼 하느냐고?”

“그, 그것이…….”

“어서 대답하지 못할까?”

결국 조관의 화가 폭발했다.

노기가 섞인 음성이 거리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내공이 약한 이들의 얼굴이 핼쑥하게 질렸을 정도였다. 그런데도 그들은 대답을 하길 꺼려했다. 그들의 얼굴에 떠올라 있는 것은 공포라는 감정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느끼는 공포는 조관을 향한 것이 아니었다.

“비켜랏!”

결국 조관이 그들을 헤치고 앞으로 나갔다. 그러자 서통가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으음!”

순간 조관의 입에서 침음성이 흘러나왔다. 그런 그의 얼굴엔 당혹스러운 감정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인의 장벽에 가려 보이지 않던 서통가의 거리엔 수많은 시신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거리는 그들이 흘린 피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그 참혹한 모습에 조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이게 무슨?”

금사문을 병탄할 때도, 백화방과 싸울 때도 이렇게 많은 이들이 죽지 않았다.

조관은 꽤나 공을 들여 흑사방의 무인들을 키웠고, 그렇게 육성된 무인들의 전력은 어지간한 중원의 명문 못지않을 정도로 강력했다. 그 때문에 조관 역시 귀주성을 병탄할 야망을 품을 수 있었다.

그렇게 공들여 키운 소중한 전력들이 문파 간의 전쟁이 아닌 단 일인에 의해서 죽임을 당했으니 조관으로서는 속에 천불이 날 노릇이었다.

“놈은 어디에 있느냐?”

조관의 말에 수하들이 일제히 손가락을 들어 어느 한 방향을 가리켰다. 조관의 시선이 수하들이 가리키는 곳을 따라갔다.

그곳은 객잔이었다.

정확히는 객잔의 일층에 자리한 식당의 창가 자리였다. 활짝 열린 창문 사이로 한 남자가 식사를 하고 있었다.

절그럭!

그가 젓가락질을 할 때마다 그릇과 부딪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거리가 어찌나 조용하던지 그 소리가 조관의 귀에도 선명하게 들려왔다.

조관이 왔음을 알 텐데도 남자는 눈길 하나 주지 않고 식사를 하고 있었다. 남자의 뒤로 겁에 질린 점소이와 객잔 주인의 얼굴이 보였다.

그들은 마치 석상이라도 된 것처럼 꼼짝도 하지 않고 눈알만 뒤룩 굴려 담호와 조관을 번갈아 바라보고 있었다.

“이런 개새…….”

화가 폭발한 조관이 노성을 내뱉으려는 순간이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남자가 젓가락을 탁자에 내려놓았다.

탁!

별거 아닌 행동이었지만, 그로 인해 조관의 맥이 뚝 끊겼다.

남자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봤다. 순간 조관은 온몸에 소름이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감정이 담기지 않은 새까만 눈동자. 그리고 그 안에 담긴 불길한 일렁임.

조관은 단 한 번도 이런 종류의 눈동자를 본적이 없었다.

사내의 눈을 보는 순간 조관은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남자는 이곳에 있어서는 안 되는 존재였다.

오랫동안 귀주성을 병탄할 야망을 품었던 조관이었다. 때문에 귀주성의 무인들에 대해서는 하나도 빠짐없이 조사했다. 자신의 발목을 잡을 만하거나, 걸림돌이 될 만한 무인들을 특히 중점적으로 말이다.

하지만 그 어떤 조사에도 눈앞에 있는 남자와 같은 존재가 있다는 내용은 나오지 않았다.

‘저런 눈빛을 가진 놈이 평범할 리 없잖은가?’

있다면 반드시 알아내 제일 먼저 제거하거나, 아예 문제의 소지를 일으키지 않았을 것이다.

부르르!

아직도 온몸에 올라온 소름이 가시지 않고 있었다. 그만큼 몸이 먼저 위협을 느끼고 반응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제야 조관은 깨달았다. 서통가에 들어서기 전에 맡은 혈향이 죽은 부하들에게서 풍긴 것이 아니라 바로 저 남자에게서 흘러나오는 것이라는 사실을.

보통 사람이라면 이 정도에서 물러갔을 것이다. 하지만 조관은 귀주성의 제패를 노리는 야심가였다. 수많은 부하들이 지켜보고 있는데 이대로 꼬리를 말고 도주할 수는 없었다.

그는 두려움을 억누르며 소리쳤다.

“네놈은 누구냐?”

그 순간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객잔 밖으로 걸어 나왔다.

순간 묘한 소성이 거리에 울려 퍼졌다.

스르륵! 쿵! 스르륵! 쿵!

심장을 자극하는 불길한 발소리였다.

그제야 조관을 비롯한 흑무방의 무인들이 남자의 발을 바라봤다.

오른발로 대지를 찍고, 왼발을 살짝 끄는 독특한 발걸음과 울림은 그들의 뇌리에 한 남자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권마?”

“화산권마?”

조관과 흑무방 무인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천하에 수많은 무인들이 존재하지만 이렇게 극명한 특징과 강렬한 인상을 가진 남자는 단 한 명밖에 없었다.

“정말 권마인가?”

“설마?”

흑무방 무인들 사이에서 동요가 일어났다. 일부에서 시작한 웅성임은 전체로 번져 갔고, 곧 거리 전체에 영향을 끼쳤다. 서통가 전체가 술렁였다.

그만큼 담호의 존재감은 강렬했다.

담호가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그 순간부터 거리에 있는 그 누구도 그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으으!”

“큽!”

흑무방 무인들의 입에서 자신도 모르게 신음이 터져 나왔다.

담호를 보는 것만으로도 눈알이 빠지는 것 같고, 심장이 거세게 고동쳐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 그런데도 담호에게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담호가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담호에게서 시선을 돌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들의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담호가 발산하는 기세에 압도당한 것이다.

그 순간 조관이 앞으로 나섰다.

“이놈!”

그나마 흑상심공이 심령을 보호해 줬기에 그는 수하들보다 영향을 덜 받았다. 그래서 앞으로 나설 수 있는 것이다.

담호의 시선이 조관을 향했다. 그러자 기세 좋게 나섰던 조관이 움찔했다. 하지만 그는 흑무방의 방주였다. 비록 기세에서 밀렸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대로 맥없이 물러날 생각 따윈 전혀 없었다.

“정말 권마가 맞는가?”

“…….”

“정말 권마라면 화산에서나 죽치고 앉아 있을 것이지, 왜 이곳 귀주성에서 난동을 피우는 것이냐? 무슨 억하심정이 있다고 본방의 제자들을 학살하는 것이냐? 네놈이 그러고도 명문 화산파의 제자라고 할 수 있느냐?”

그의 노성이 거리를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그제야 흑무방의 무인들도 조금은 안정을 찾았다.

그들이 눈빛을 교환했다.

담호가 아무리 강하더라도 그는 혼자였다. 그리고 자신들은 수백 명이 넘었다.

절대적인 수의 우위가 그들의 심경에 안정을 가져왔다.

그 순간에도 조관의 목소리는 이어지고 있었다.

“내 이 일은 정식으로 화산에 항의를 할 것이다. 아니, 무림맹에 항의를 할 것이다. 하지만 이쯤에서 물러난다면 없었던 일로 하겠다. 그러니 아량을 베풀 때 스스로 물러가도록 하라. 시류가 아님을 인정하고 물러나는 것도 장부의 용기다.”

“다 떠들었나?”

그 순간 처음으로 담호가 입을 열었다.

인간의 감정이라곤 하나도 담겨 있지 않은 스산한 목소리를 듣는 순간 조관의 온몸의 솜털이 쭈뼛 곤두서는 것을 느꼈다.

조관은 그 어떤 적의도 담겨 있지 않은 무감각한 목소리가 이렇게 무서울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담호가 그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수적인 우위를 바탕으로 한 일장 연설도 그의 걸음을 멈추게 할 수는 없었다.

그 어떤 협상도, 위협도 눈앞의 남자에겐 통하지 않았다.

남은 방법은 오직 하나뿐.

조관이 소리쳤다.

“모두 공격하라. 놈도 피륙으로 이뤄진 사람이다. 칼을 맞으면 뒈진다.”

악에 받친 그의 목소리가 수하들의 용기를 북돋았다.

“우와아!”

“죽엿!”

흑무방의 무인들이 일제히 담호를 향해 달려들었다.

새까만 무복을 입은 흑무방 무인들이 마치 검은 해일처럼 밀려들었다.

그 순간 담호가 대지를 박찼다.

콰아앙!

검은 해일이 부서지고 갈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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