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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3화 3장. 공포를 지배하는 공포(2)
흑무방의 외당주 혁무의는 평소 외공에 자신이 있었다.
그가 익힌 철골금강공(鐵骨金剛功)은 뼈를 강철보다 단단하게 만들고, 근육을 고래 힘줄보다 탄력 있게 만들었다. 어지간한 도검에는 상처조차 입지 않기에 이제까지 여러 번 그의 목숨을 구했다.
혁무의는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자신했다. 하지만 담호와 격돌하는 순간 그는 자신이 얼마나 오만했었는지 깨달았다.
쾅!
담호와 격돌하는 순간 강철 같던 그의 몸뚱이가 순간적으로 우그러들었다. 온몸의 뼈가 부서지고, 가공할 압력에 혈관이 터져 나갔다.
“크악!”
혁무의는 칠공으로 피를 토하며 뒤로 나가떨어졌다. 단 한 번의 격돌에 그는 항거불능의 상태가 되어 숨이 끊어졌다.
담호의 충보는 이제 단순한 보법 수준이 아니었다. 수많은 결전을 통해 담호의 충보는 가일층 진보했다.
더 파괴적이고 포악해졌다.
거기에 폭마경까지 두른다면 재앙이 따로 없었다.
쿠콰콰!
담호의 몸 주위로 폭강이 휘몰아쳤다.
순식간에 수십 명의 흑무방 무인들이 폭강에 휩쓸렸다. 그리고 튕겨 나갔다.
바닥에 떨어졌을 때는 이미 그들의 숨이 끊어진 후였다.
“이럴 수가!”
그 광경을 본 조관의 몸이 푸들푸들 떨렸다.
그가 심혈을 기울여 키운 흑무방이 무너지고 있었다. 담호 단 일인에 의해서 말이다.
담호는 양 떼 속에 뛰어든 흉포한 호랑이였다. 양들이 아무리 많이 있어도 호랑이를 당할 수 없는 것처럼 흑무방의 무인들이 속수무책으로 죽어 나갔다.
부하들이 죽어 나가는 모습을 본 조관의 눈이 뒤집어졌다.
“이놈!”
그가 혼신의 내공을 끌어 올리며 담호에게 덤벼들었다.
쉬악!
그의 허리에 걸린 도가 무지갯빛 도기를 폭출 했다. 거대한 도기는 그대로 담호에 직격했다.
쿠와앙!
“크윽!”
굉음과 함께 튕겨져 나온 이는 바로 조관이었다. 공격을 한 이가 오히려 타격을 입고 튕겨 나온 것이다.
도를 쥐고 있는 손바닥이 송두리째 으스러진 것처럼 아파 왔다. 마치 맨손으로 두꺼운 철판을 후려친 듯한 통증에 절로 얼굴이 일그러졌다.
도기에 격중 된 순간 폭강이 터져 오히려 타격을 입힌 것이다.
조관이 주춤주춤 뒤로 물러날 때였다.
슈우우!
폭발을 뚫고 담호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가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쇄도했다. 순식간에 그의 몸이 확대됐다. 충보를 펼쳐 다가온 것이다.
“흐아압!”
조관이 기합과 함께 다시 한 번 도를 휘둘렀다. 그러자 한층 강화된 도기가 형성됐다.
쩌어엉!
그러나 무지갯빛 도기는 채 휘둘러지기도 전에 담호의 주먹 한 방에 사그라들었다.
평범한 일격이 아니었다.
파성추였다.
“크업!”
조관이 답답한 신음성과 함께 들고 있던 도가 산산이 부서졌다. 유리처럼 부서지는 도의 편린 사이로 놀란 조관의 얼굴이 보였다.
터억!
담호가 그런 조관의 멱살을 잡았다. 그리고 조관이 채 반응하기도 전에 지천격을 펼쳤다.
두 다리가 무처럼 대지에서 뽑혀 나가고 조관의 몸이 허공에서 뒤집혔다. 그리고 바닥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크윽!”
뒤늦게 조관이 담호의 손에서 빠져나오려고 발버둥 쳤다. 하지만 담호의 손은 족쇄처럼 그를 꽉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권마!”
“작작 날뛰거라.”
그 순간 이제까지 방관하던 붉은 피풍의의 남자들이 조관을 구하기 위해 움직였다.
퍼버버벅!
대여섯 줄기의 장력이 담호의 동체에 작렬했다. 순간적으로 폭강이 일어나 장력을 상쇄시켰지만, 그 영향으로 담호의 움직임이 잠시 주춤했다.
붉은 피풍의의 남자들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담호에게서 조관을 탈취했다.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붉은 피풍의의 남자들은 조관을 보호한 채 뒤로 물러나려 했다. 하지만 담호가 그렇게 내버려 두지 않았다.
슈우우!
담호의 주먹이 채찍처럼 뻗어 나갔다.
단양타의 일격이었다.
콰직!
선두에 있던 남자가 어깨에 일격을 허용했다. 짧고 강렬한 일격에 그의 어깨가 주저앉았다.
“크윽!”
남자의 얼굴이 절로 일그러졌다.
그는 그나마 멀쩡한 반대쪽 팔로 구명절초를 펼치려고 했다. 하지만 그 순간 그가 볼 수 있었던 것은 담호의 차가운 두 눈뿐이었다. 어느새 담호의 몸통이 그의 가슴팍까지 파고든 것이다.
콰앙!
뇌음과 함께 남자의 몸이 뒤로 튕겨 나갔다. 그런 그의 안면과 가슴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짓이겨져 있었다.
“금원.”
“이놈!”
순식간에 동료를 잃은 붉은 피풍의 남자들이 분노했다. 하지만 그들이 분노를 채 발산하기도 전에 담호가 그들 사이로 뛰어들었다.
담호라는 이름의 폭풍은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그리고 파괴했다.
“크어억!”
“케엑!”
순식간에 곡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럴 수가!”
붉은 피풍의 무인들의 우두머리인 남주경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그는 마교에서 파견 나온 무인이었다.
흑무방을 지원하여 귀주를 손에 넣는 것이 바로 그에게 주어진 임무였다.
그는 마교 내에서도 상위에 속하는 무인이었고, 스스로의 무공에 대단한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적어도 귀주성 내에서는 자신을 당할 자가 거의 없을 거라 자부했다.
실제로도 귀주성에 그와 필적할 만한 무인은 존재하지 않았다. 금사문과 백화방을 공격할 때도 그와 마교의 무인들은 조관을 도왔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그래서 그의 오만함은 하늘을 찔렀었다.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말이다.
쾅!
“크아악!”
다시 한 번 굉음이 울려 퍼지고 그의 수하가 주검이 되어 날아갔다.
순식간에 그가 데려온 병력 절반이 담호에게 죽임을 당했다. 그야말로 믿을 수 없는 파괴력이었다.
‘칠대마인 절반이 그의 손에 죽었다더니 정말이구나.’
남주경이 입술을 질겅 깨물었다.
정면 대결로는 승산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칠대마인도 당해 내지 못한 상대를 자신이 어찌할 수 없었다.
‘흑무방을 버린다.’
마교가 흑무방을 지원한 것은 귀주성이 혼란에 빠지길 바라서이지, 특별한 관계가 있기 때문은 아니었다.
어차피 필요에 의해 서로를 이용하는 것뿐, 그들 사이엔 지켜야 할 의리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남주경은 조관의 목숨을 한 번 구해 준 것으로 할 도리는 다했다고 생각했다.
‘빠져나간다.’
그가 그렇게 결심을 굳혔을 때였다.
쿠와아아!
엄청난 압력이 그를 덮쳐 왔다. 담호였다.
남주경은 담호를 향해 장력을 연거푸 열두 번이나 날렸다. 그리고 결과도 확인하지 않고 몸을 돌려 도주했다.
덜컥!
하지만 채 서너 걸음을 옮기기도 전에 그의 몸이 멈춰 섰다. 인지하지도 못한 사이에 담호의 손이 그의 목덜미를 붙들고 있는 것이다.
“크윽!”
신음성을 내뱉으면서도 남주경은 담호의 가슴을 향해 벼락처럼 장력을 발산했다.
콰드득!
“크엑!”
하지만 장력이 채 반도 뻗어 나가기 전에 담호가 그의 손목을 비틀었다. 뼈가 수수깡처럼 부러지며 살갗을 뚫고 나왔다.
“으아아! 권마!”
퍼석!
그 순간 남주경의 머리가 날아갔다. 담호의 주먹이 작렬한 것이다.
머리를 잃은 몸통은 잠시 허우적거리다가 통나무처럼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으으!”
순식간에 마교에서 지원 나온 무인들이 몰살을 당하자 조관은 얼빠진 표정이 되었다.
담호가 그를 향해 걸어왔다.
전신에 피를 뒤집어쓴 채 다가오는 그의 모습은 도저히 인간 같아 보이지 않았다.
그의 눈에 비친 담호는 마신(魔神), 그 자체였다.
“으으! 다가오지 마라.”
하지만 담호는 아랑곳하지 않고 걸음을 옮겼다. 아직 살아 있는 흑무방의 무인들이 쫙 갈라져 길을 만들었다.
그들은 이미 전의를 상실한 지 오래였다. 담호와 대적하는 것은 감히 꿈도 꾸지 못하고 이 악몽 같은 순간이 어서 지나가기만을 기다릴 뿐이었다.
악에 받친 조관이 목에 핏대를 세우며 소리쳤다.
“나하고 무슨 억하심정이 있다고 이 지랄인 것이냐?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든 어차피 네놈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지 않느냐? 그런데 섬서성도 아닌 이곳 귀주성까지 와서 혈란을 일으키느냔 말이다. 하늘이 네놈을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하늘이라.”
“그렇다! 하늘에 부끄럽지도 않느냐? 네놈이 명문정파인 화산파의 제자라는 사실이.”
순간 담호의 눈동자가 더욱 차갑게 빛났다. 조관의 말이 전혀 먹혀들어 가지 않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조관이 방향을 바꿨다.
“아니, 내가 말을 잘못했다. 잊어다오. 대신 돈을 주겠다. 얼마면 되겠느냐? 금사문과 백화방에서 거둬들인 재물이 수만금이다. 그것을 몽땅 주겠다.”
“재물?”
“그래! 수만금이라면 너와 화산파가 평생 아무 일 하지 않고도 편하게 지낼 수 있는 어마어마한 액수다. 원하는 계집도 마음대로 품을 수 있고, 세상의 온갖 영화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어떠냐?”
담호는 단 한마디 했을 뿐이다. 그런데 그 모습을 조관은 긍정의 뜻으로 받아들이고 더욱 용기를 얻었다.
“차라리 나와 손을 잡는 게 어떻겠느냐? 나와 함께라면 귀주성, 아니 인근의 두세 개 성을 더 정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정도라면 대대손손 영화를 누릴 수 있다. 당신이 직접 움직일 필요도 없다. 더러운 일은 내가 도맡아 하겠다. 당신은 그저 영화만 누리며 된다.”
조관의 목소리가 점점 커져 갔다.
처음엔 어떻게든 담호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서 아무렇게나 내뱉은 말이었는데, 계속하다 보니 스스로가 설득이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권마라는 별호로 천하에서 배척을 받는 담호였다. 조금만 더 솔깃한 제안을 하면 넘어올 것 같았다.
담호와 손을 잡는다면 두려울 것이 없었다. 천하의 마교도 담호만큼은 꺼려하고 두려워하지 않던가? 그를 배후에 둔다면 귀주성을 중심으로 인근의 성 몇 개는 손쉽게 장악할 수 있을 것이다.
조관은 스스로의 논리에 도취되었다. 그가 담호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무공을 익힌 이유가 무엇인가? 부귀영화를 누리기 위함이 아니던가? 나와 손을 잡자. 우리는 동등한…… 아니, 내가 충성을 다 바치겠다. 우리 흑무방은 당신에게 견마지로를 다하겠습니다.”
말투가 대번에 바뀌었다.
쿵!
그리고 무릎을 꿇었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다.
그런 조관의 모습에 아직 살아남은 흑무방의 무인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었다.
“견마지로를 다하겠습니다.”
“저희들을 이끌어 주십시오.”
이백 명이나 되는 인원들이 약속이나 한 듯이 한목소리로 외쳤다. 그들의 목소리가 서통가 전체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넘어와라. 아니, 반드시 넘어올 것이다.’
조관이 고개를 조아린 채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의 모든 것을 건 승부수였다. 위험부담이 큰 만큼 그 대가 또한 달콤할 것이 분명했다.
조관이 마지막으로 목청을 돋우었다.
“흑무방을 담 대협께 바치겠습니다. 부디 저희를 이끌어 주십시오.”
“이끌어 주십시오.”
그들의 목소리가 다시 한 번 서통가를 울렸다. 하지만 그들이 원하는 담호의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기다리다 못한 조관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자신을 내려다보는 담호의 얼굴이 보였다.
탐욕에 물들어 있을 거라는 조관의 기대와 달리 담호의 얼굴엔 어떤 감정도 떠올라 있지 않았다.
불길한 예감에 조관이 급히 입을 열려고 했다.
“대, 대협! 내 말을…….”
쿠아앙!
그 순간 뇌음이 서통가에 울려 퍼졌다.
벼락이 내리꽂히는 줄 알고 사람들이 몸을 떨었다. 하지만 뇌음은 하늘에서 울린 것이 아니었다.
담호의 주먹이 조관의 몸에 내리꽂히면서 난 소리였다.
조관의 가슴을 뚫고 담호의 주먹이 나와 있었다.
그가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가슴과 담호를 번갈아 바라봤다. 그는 숨이 끊어지는 그 순간까지 담호를 이해할 수 없었다.
“끄으으! 왜, 왜?”
“내게 이 두 주먹 외에 다른 게 필요한 거 같아?”
“그런…….”
담호의 대답을 들은 조관이 몸을 부들부들 떨다가 그대로 절명했다.
담호가 조관의 가슴에서 주먹을 빼며 흑무방의 무인들을 바라봤다.
“으아아!”
“살려 줘!”
그 순간 엎드려 있던 흑무방의 무인들이 메뚜기처럼 사방으로 도주했다.
담호의 눈빛이 서늘해졌다.
똥은 치우는 것이지, 손잡는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