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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권마-340화 (34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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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0화 5장. 마음이 극에 달하면 하늘이 움직인다(3)

담호가 허리를 펴며 고개를 들었을 땐 이미 진궁자가 사라지고 난 후였다. 그가 떠난 자리엔 주인을 잃은 검과, 검의 손잡이를 꽉 움켜쥐고 있는 누군가의 팔이 보였다. 팔뚝 어림에서 잘려 나간 팔에서는 아직도 선혈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팔의 주인이 진궁자라는 사실은 세 살 먹은 아이라도 알 수 있었다. 담호는 무심히 진궁자의 팔을 바라봤다.

진궁자를 물리치고 팔을 잘랐지만 담호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진궁자는 화산파 전대의 고수였다. 담호 자신이야 그를 크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사부인 현소 진인은 달랐다.

진궁자는 현소 진인에게 사숙이 되었다. 둘이 대면하게 되었을 때 현소 진인이 어떤 심적 고통을 겪게 될지 눈에 뻔했다.

담호는 그런 상황이 오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래서 진궁자를 지금 죽이지 못한 사실이 못내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담호는 살짝 고개를 저으며 뒤돌아봤다. 그러자 겨우 살아남은 창천표국의 표사들이 보였다. 원래 있던 인원의 절반도 살아남지 못했다. 살아남은 자들 역시 하나같이 크고 작은 상처를 입고 있었다.

“크흑!”

진궁자에게 당해 쓰러져 있던 남우생이 애써 몸을 일으켰다.

중상을 입어 숨을 쉬는 것 자체가 고통일 텐데도 그는 억지로 몸을 일으켜 담호에게 걸어왔다.

“허억, 허억! 고맙습니다, 담 대협.”

“…….”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렸는지 남우생의 얼굴은 창백하게 질려 있었고, 두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다.

자신의 상처 때문에 우는 것이 아니었다. 오늘 덧없이 죽어 간 표국의 식구들 때문에 우는 것이었다.

자신의 상처보다 그들의 죽음이 그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그래도 그는 아픔을 애써 참았다.

그는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 창천표국의 대표두였다. 사태를 수습해야 할 책임이 있었고, 어떠한 경우에도 대의를 먼저 생각해야 했다.

담호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는 것이 첫 번째였고, 그다음이 현장을 수습하는 것이었다.

남우생은 담호에게 감사의 인사를 한 후에야 생존한 표사들에게 다가갔다.

“크흑! 대표두님.”

“흐어엉!”

살아남은 자들이 남우생의 얼굴을 보자마자 울음부터 터트렸다.

생존했다는 기쁨보다 이제까지 동고동락했던 동료들을 잃었다는 슬픔이 그들을 울게 만들었다.

남우생은 그들을 다독였다.

“괜찮다. 괜찮아.”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의 눈에서도 뜨거운 눈물이 끊임없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한참을 눈물 흘리던 남우생이 손등으로 눈가를 훔치며 말했다.

“이제 시신을 수습하자. 갈 길이 멀다.”

“대……표두님!”

“하지만 어떻게?”

표두와 표사들이 원망 섞인 시선으로 그를 바라봤다. 슬픔이 가시기도 전에 표물을 운송해야 한다고 말하는 남우생이 원망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남우생은 단호했다.

“이리될지 몰랐느냐? 우리는 표물 운송에 목숨을 건 무인들이다. 동료가 죽어도 고객이 원하는 곳에 표물을 운송해야 할 책임이 있다. 하물며 우리가 운송하는 표물은 소림사와 무림맹으로 들어가는 소중한 물건이다. 우는 것은…… 운송이 끝나고 난 후에 해도 늦지 않다.”

“크흐흑!”

“대표두님!”

표사들이 이를 악물고 눈물을 참았다.

남우생이라고 왜 슬프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는 알고 있었다. 표물을 무사히 운송하는 것만이 동료들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움직이자.”

남우생의 말에 표사들이 동료들의 시신과 표물 들을 수습하기 시작했다.

“크헝!”

“흐윽! 미안하다.”

죽은 동료의 얼굴을 보자 눈물이 왈칵 터져 나왔다. 어느새 그들의 얼굴은 눈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그들은 눈물을 흘리며 동료들의 시신을 한데 모아 커다란 수레에 실었다. 짐짝처럼 수레에 실린 동료들의 모습에 또다시 눈물이 흘러내렸다.

몇몇 표사들은 흩어진 표물을 모았다. 일부는 강 속으로 사라졌지만, 그래도 상당한 양의 표물이 갑판에 나뒹굴고 있었다.

그들은 표물을 멀쩡한 수레에 옮겨 실었다.

담호는 그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았다. 그들의 슬픔이 공기를 타고 전해지고 있었다.

문득 담호의 시선이 반대편으로 향했다. 아직 수습하지 못한 시신들이 있는 곳이다. 그곳에 그가 있었다.

‘조수광.’

자신을 기억해 달라고 했던 젊은 표사. 그가 아직도 수습되지 못한 채 바닥에 누워 있었다.

담호는 조수광을 안아 들었다.

무거웠다.

그는 매우 조심스럽게 조수광을 수레에 옮겨 실었다. 그런 담호의 행동에 표사들이 눈시울을 붉혔다.

그들도 알고 있었다. 조수광이 얼마나 담호를 존경했는지.

“그래도 네놈은 행복한 거야. 그렇게 존경한 분이 마지막을 함께해 주니까.”

“잘 가거라, 수광아.”

생전에 조수광과 친분이 있던 표사들이 한마디씩 했다. 담호는 조수광이 가는 길이 외롭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마침내 모든 시신과 표물이 수습됐다. 하지만 말이 턱없이 부족했다. 적들의 습격 때 상당수가 물에 떠내려가거나 죽었기 때문이다.

특히 시신을 실은 짐수레를 끌 마차가 없었다. 워낙 수레가 커서 말 한두 마리로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표사들이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 담호가 흑귀를 끌고 왔다. 담호는 다른 말들을 모조리 떼어놓고, 그 자리를 흑귀가 대신하게 했다.

“부탁하마.”

담호의 말에 흑귀가 콧김을 내뿜으며 힘을 주었다. 그러자 꿈쩍도 하지 않던 커다란 수레가 가뿐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담호는 흑귀 곁에서 묵묵히 걸음을 옮겼다.

***

“가장 큰 문제는 자금이 부족하다는 겁니다.”

“으음!”

“너무 많은 이들이 한꺼번에 수용되다 보니 많은 문제가 터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큰 문제는 인원에 비해 너무 많은 자금이 소요된다는 겁니다.”

열변을 토하고 있는 중년의 승려는 소림사의 재정을 총괄하는 재화당주인 광인이었다.

광인이 열변을 토하고 있는 커다란 대전에는 소림사의 수뇌부와 무림맹의 수뇌부들이 한데 모여 있었다.

장내의 분위기는 무척이나 무거웠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무림맹의 무인들이 소림사에 합류한 이후 예상치 못했던 문제점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선 너무 많은 이들이 갑작스럽게 합류하면서 숙소 문제가 터져 나왔다. 한방에 열 명, 스무 명씩 몰아넣다 보니 무인들이 불만의 소리를 쏟아 냈다.

모두가 공평하게 방을 배정받았으면 상관없는데 하위급 무인들에게만 그렇게 방이 배정되었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식사 문제였다.

소림사는 기본적으로 육식을 금하는 사찰이었다. 소림사의 승려들이야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이 익숙하다하지만 일반 무인들은 달랐다.

일반적인 무인들은 채색만 하는 금욕적인 삶에 익숙지 못했다. 그들은 몰래 고기를 반입해서 요리해 먹었다. 하지만 육식을 금하는 소림사의 승려들 입장에서는 용서할 수 없는 일이었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일반 무인들과 소림사 승려들 간에 문제가 터져 나왔다. 미처 예상치 못했던 문제에 소림사의 수뇌부들과 무림맹의 수뇌부가 회동을 했다.

육식은 소림사 밖에 마련한 간이식당에서만 하는 걸로 겨우 합의를 해 문제를 일단락시켰다. 하지만 문제는 비단 육식뿐만이 아니었다.

생활환경이 워낙 다른 두 집단이 아무런 준비도 없이 함께하다 보니 수많은 문제가 터져 나왔고, 그런 문제들을 해결하려니 막대한 재화가 소요됐다. 그 때문에 탄탄한 재정을 자랑하던 소림사의 곳간이 텅텅 빌 지경이 됐다.

무림맹도 급히 퇴각하느라 가지고 나온 재물이 얼마 되지 않았다. 그야말로 무림맹이라는 거대한 집단이 소림사에 얹혀사는 모양새였다.

필요한 것은 많은데 돈이 부족했다. 무기를 살 돈도, 곳간을 채울 곡식도 부족했다. 소림사의 속가 문파에서 지원을 보내오고 있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단순히 허리띠를 조르고, 십시일반 도움을 받아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그 때문에 소림사의 승려들 사이에서도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소림사의 거대한 곳간을 관리하던 광인이었기에 그가 느끼는 위기감은 그 누구보다 클 수밖에 없었다.

남천산과 남궁창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무림맹의 맹주와 군사라는 직위를 가지고 있었지만, 이럴 때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무림맹이 건재할 때는 이런 문제를 가지고 고민하게 될 거라고 상상조차 못 해 봤다. 무림맹의 창고에는 항상 재화와 곡식이 가득했으니까. 하지만 몰락한 지금은 그들의 수중에 존재하는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소림사의 방장인 광천이 말했다.

“아미타불! 이대로 가다가는 마교에 대항하기는커녕 우리끼리 지리멸렬하고 말 겁니다. 어서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이대로 시간이 흐를수록 불리한 것은 우리들입니다.”

소림사의 승려들이 열변을 토해 냈다.

그들을 보는 남천산의 표정이 절로 어두워졌다. 그가 슬쩍 남궁창을 바라봤다.

개인적으로는 남궁창과 대립하는 남천산이었지만, 그 능력만큼은 인정하고 있었다. 그나마 남궁창이 있었기에 무림맹이 세를 불릴 수 있었다.

그는 이번에도 남궁창이 해답을 내놓기를 기대했다. 그리고 남궁창은 그의 기대를 배반하지 않았다.

“소림사는 강호 최후의 보루입니다. 이곳이 무너지면 강호는 회복 불가의 타격을 받게 됩니다. 그 어떤 문파도, 그 어떤 세가도 단독으로는 마교에 대항할 수 없습니다.”

“그거야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 아니오? 말을 돌리지 말고 본론을 말하시오, 군사.”

소림사의 승려 한 명이 불만 섞인 표정으로 말했다.

기분이 나쁠 만도 하건만 남궁창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그래서 말인데 각 문파에서 전력과 자금을 더 지원받을 생각입니다.”

“그들이 과연 동의할 것 같소?

“말씀드렸다시피 그들에게도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이미 무림맹이 무너졌습니다. 이 상황에서 소림사와 그나마 남은 무림맹의 전력까지 무너지면 더 이상 그들을 지켜 줄 방벽 따윈 존재하지 않습니다.”

“허나 모두가 무림맹의 행사에 우호적인 것은 아니오.”

“알고 있습니다. 허나 그들로서도 선택의 여지가 없을 겁니다.”

“으음!”

“특히 규모가 큰 문파일수록 지킬 것이 많은 법, 그들은 스스로 피를 흘리는 것보다 무림맹이 대신 피를 흘려 주는 것을 원할 겁니다.”

“아미타불!”

남궁창의 직설적인 말에 소림사 승려들이 눈을 지그시 감고 불호만 외웠다.

아무리 같은 생각을 갖고 있다지만 저렇게 여과 없이 내뱉는 것을 듣는 것은 괴로운 일이었다.

소림사 역시 직접 나서는 것을 꺼려해 무림맹에 지원을 한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광천이 말했다.

“아미타불! 무당파나 공동파, 청성파나 아미파 같은 경우에는 남궁 군사의 말씀처럼 지원을 받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오. 비록 거리 차이가 있다지만 그들 역시 오래전부터 우리와 뜻을 함께했었을 테니까. 문제는 화산파입니다.”

순간 남궁창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었다.

화산파는 그의 역린이나 마찬가지였다.

그가 개인적인 감정 때문에 삼 년 전 큰 피해를 입은 화산파를 지원하지 않았다는 것은 강호 사정에 조금이라도 능통한 자들이라면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특히 화산권마 담호와는 씻을 수 없는 원한을 가지고 있었다. 담호에 의해서 남궁세가가 입은 피해는 실로 엄청났다. 그 때문에 남궁세가의 원기가 크게 꺾였을 정도니까.

“아미타불! 지금은 한 명이라도 더 고수가 필요한 때입니다. 이런 때 권마가 합류해 준다면 실로 든든하다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렇습니다. 비록 그가 성격이 포악하다 하지만, 그래도 강호에서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고수. 그를 합류시킬 수만 있다면 분명 큰 도움이 될 겁니다.”

“마교도 두려워하는 무인이 바로 그입니다. 사천성에서 당문과 마교의 음모를 분쇄시키지 않았습니까? 설득할 수만 있다면 엄청난 힘이 될 겁니다.”

소림사의 승려들이 웅성거렸다. 그에 남궁창을 비롯한 무림맹 인사들의 표정이 눈에 띄게 경직됐다.

광천의 시선이 남궁창을 향했다.

“군사!”

“말씀하십시오, 방장님.”

“우리의 의견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지극히 당연하신 말씀입니다. 저도 당연히 그렇게 생각합니다.”

“화산파와 권마를 합류시켜야한단 말씀이시지요?”

“그렇습니다. 어떠한 수를 써서라도 그들을 끌어들이겠습니다.”

“가능하겠소이까? 군사와 권마는 큰 원한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강호에 영원한 은원 따윈 존재하지 않습니다.”

남궁창이 애써 담담히 대답했다. 하지만 그의 눈가까지 파르르 떨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손톱이 살을 파고들 정도로 그는 주먹을 꽉 쥐고 있었다.

‘권마!’

그 지긋지긋한 이름이 소림에서도 그를 괴롭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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