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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권마-342화 (34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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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2화 6장. 난세가 영웅을 부른다(2)

무당산(武當山)은 호북성 북단에 위치해 있었다. 서쪽으로는 섬서성과 맞닿아 있었고, 북으로는 하남성과 맞닿아 있을 정도로 거대한 규모를 자랑했다.

일흔두 개의 봉우리와 서른여섯 개의 절벽, 스물네 개의 계곡, 그 외에도 수많은 아름다운 풍경이 숨어 있었다. 하지만 그 모든 풍경보다 무당산을 유명하게 한 것은 바로 무당파(武當派)라는 무림 문파였다.

구대문파 중 하나이자, 소림사와 더불어 천하무림의 양대 거두라는 무당파는 무당산의 주인으로 굳건히 자리하고 있었다.

평소에도 많은 이들이 무당산을 찾았지만, 마교가 본격적으로 활동한 시점부터는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무당산을 찾는 이들 대부분은 호북성에 적을 둔 문파의 무인들이거나, 무당파의 속가 문파들이었다.

호남성의 무림맹이 무너진 이후 호북성의 무인들이 느끼는 위기감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동정호를 사이에 두고 남쪽에 있는 것이 호남성이었고, 북쪽에 있는 것이 바로 호북성이었다.

졸지에 동정호라는 거대한 호수를 사이에 두고 마교와 대치하게 된 모양새였다. 마교가 움직인다면 가장 먼저 맞설 수밖에 없는 최전선이 된 것이다.

그 때문에 호북성에 적을 둔 무인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연일 무당산을 찾아오고 있었다. 무당파는 호북성 무인들의 마지막 믿을 구석이었다.

낮에 무당파에 오른 무인들은 밤이 되어도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무당파는 그들을 수용하기 위해 모든 전각을 열고 등불을 밝혀야 했다. 그 덕분에 무당파는 불야성을 이루고 있었다.

“휴!”

노도사가 불야성을 이룬 무당파를 보며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불야성을 이룬 무당파를 바라보는 노도사의 얼굴엔 수심이 가득했다.

그때 노도사에게 다가오는 묘령의 여인이 있었다. 단아한 이목구비에 그윽한 눈동자가 인상적인 여인. 그녀가 조심스럽게 노도사에게 말을 걸었다.

“사부님.”

“음! 소하구나.”

노도사가 여인을 바라봤다.

여인의 이름은 연소하, 바로 노도사의 제자였다.

노도사의 도명은 청허. 무당파의 장로 중 한 명이었고, 호북제일검(湖北第一劍)이라는 무명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청허 진인을 바라보는 연소하의 눈에는 안쓰러움이 가득했다. 삼 년 전 무림맹에서 돌아온 이후 청허 진인의 얼굴엔 늘 그늘이 내려앉아 있었다.

무당파의 장로라는 신분도, 호북제일검이라는 명성도 그의 가슴에 내린 그늘을 지울 수는 없었다.

청허 진인이 고졸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무슨 일이냐?”

“장……문인께서 부르십니다.”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되었느냐?”

“예!”

“그럼 가야지.”

청허 진인이 무릎을 양손으로 짚으며 몸을 일으켰다. 그런 청허 진인의 모습은 유독 초라해 보였다. 하지만 막상 허리를 펴자 호북제일검다운 기상이 물씬 풍겨 나오기 시작했다.

그가 향한 곳은 바로 자소궁(紫霄宮)이었다. 자소궁은 무당파에서도 가장 규모가 큰 대전 중 하나로 중요한 대소사가 결정되는 곳이었다.

자소궁 안으로 들어가자 수많은 이들의 시선이 그에게 집중됐다.

무당파의 장문인인 청월 진인을 비롯해 수많은 장로들과 호북성의 수많은 무인들이 그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어서 오시게, 청허.”

청월 진인이 인자한 미소로 청허 진인을 맞이했다.

“제가 조금 늦었습니다, 장문인.”

“아닐세! 딱 적당한 시기에 왔어. 자리에 앉게.”

청허 진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빈자리에 앉았다. 장문인 바로 옆자리였다. 무당파 내에서 청허 진인의 위치를 말해 주는 장면이었다.

청허 진인이 자리에 앉자 청월 진인이 자소궁에 모인 군웅들을 바라봤다.

“청허 사제까지 왔으니 이제 회의를 시작하지. 청무 사제.”

“예! 장문인.”

청무라고 불린 노도사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무당파의 장로 중 한 명으로 청월 진인의 막내 사제가 되었다.

청무 진인이 모두를 둘러보며 말했다.

“모두 알다시피 우리는 누란의 위기에 처했습니다. 저 간악한 마교가 무림맹의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천하를 노리고 있습니다. 저들이 움직이면 제일 목표가 호북성이 되리란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 이제는 그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야 할 때입니다.”

모두가 숨을 죽인 채 청무 진인을 바라봤다.

청무 진인은 무당파의 지낭(智囊)이었다. 그의 생각이 곧 무당파의 생각이었고, 그가 말하는 바가 곧 무당파의 결정이나 마찬가지였다.

“무림맹이 유명무실해진 지금 우리의 안위는 우리 스스로 챙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에 저희 무당파는…….”

청무 진인의 말이 이어졌지만, 청허 진인은 귀담아 듣지 않았다. 어차피 청무 진인이 하는 말은 한결같았다.

무당파를 중심으로 똘똘 뭉쳐야 한다는.

애초부터 무당파는 소림사에 피신한 무림맹을 지원할 생각이 없었다. 소림사로 지원을 보내기엔 전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무당파는 소림사로 지원을 보내는 대신 무당파를 중심으로 강력한 방어선을 구축하는 방법을 택했다.

청무 진인은 그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군웅들에게 설명하고 있었다. 하지만 청허 진인은 그 이야기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삼 년 전부터 그는 무당파의 대소사에 흥미를 잃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제자인 무쌍검 진무영이 초연운에게 공개적인 망신을 당하고, 장문인의 명으로 담호를 겁박했던 그 일 이후 무인으로서 자신의 삶에 회의를 느꼈다.

무당파의 명예를 위해 담호에게 무림맹을 떠나라 했던 그 사건 이후 청허 진인의 웅지는 날개 잃은 새처럼 처참하게 꺾였다. 단지 여러 사람들 앞에서는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을 뿐이다.

자소궁의 회의는 밤늦은 시간 끝이 났다.

모든 사람이 나간 후 청허 진인 역시 마지막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 그를 청월 진인이 불렀다.

“사제!”

“예! 장문인.”

“아직도 번민에 시달리는가?”

“아닙니다.”

뜻밖의 물음에 청허 진인이 급히 고개를 저었다. 그에 청월 진인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내 어찌 사제의 마음을 모르겠는가? 허나 그때의 결정은 나도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네.”

“알고 있습니다, 장문인.”

“미안하네, 사제. 사제에게 그와 같은 일을 하게 해서. 허나 위명이 땅에 떨어진 문파는 타인의 존중을 더 이상 받기 힘든 것이 현실이네. 마찬가지로 무당파의 미래인 무쌍검이 그렇게 망신을 당하고 사람들에게 우습게 보이면 누구도 그를 존중하지 않을 걸세. 그렇게 되면 무당파의 미래 또한 어두울 것이 분명하네. 그래서 내린 결정이었네. 모든 것은 이 사형의 결정이었으니, 자네는 그만 마음의 짐을 내려놓게나.”

“예!”

청허 진인이 간단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그의 대답에 진심이 담기지 않았다는 것은 청월 진인도 알고 있었고, 청허 진인도 알고 있었다.

“휴! 무영은 어떻게 하고 있는가?”

결국 청월 진인이 한숨과 함께 말을 돌렸다.

“이제 폐관이 끝날 때가 되었습니다.”

“그런가? 성취는 어떠한가?”

“자세한 것은 모르지만 큰 깨달음이 있었던 듯합니다.”

“다행이군. 오히려 취운룡에게 좌절을 당한 것이 전화위복이 되었어.”

청월 진인이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비록 초연운에게 패해 명성이 바랬지만, 그래도 진무영은 무당파의 미래였다.

그가 마교와의 대전에서 큰 공을 세운다면 예전의 실수는 모두 잊어버리고 오히려 찬양할 것이다. 강호란 그런 곳이었으니까.

“자네도 무영처럼 마음을 다잡고 무당파의 일에 매진하게나. 호북제일검이 넋을 잃고 있어서야 어디 무당파의 체신이 서겠는가?”

“알……겠습니다.”

청허 진인이 힘겹게 대답 후 밖으로 나갔다. 홀로 남은 청월 진인이 혀를 찼다.

“쯧! 명색이 호북제일검인데…….”

예전에는 누구보다 든든하기만 하던 사제가 이제는 못미더운 청월 진인이었다. 그렇다고 대놓고 청허 진인을 타박할 수도 없었다. 속사정이야 어쨌거나 청허 진인은 무당파의 상징이나 마찬가지였다.

한참을 고민하던 청월 진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숙들에게 가 봐야겠군.”

세상사와 담을 쌓은 지 오래되었지만, 무당파에도 전대의 인물들은 존재했다. 청월 진인의 사숙뻘 되는 인물들이.

수십 년 전 일차 정마대전 때 화산파가 전대의 무인이 거의 죽어 쇠락기에 접어들었던 데 반해 무당파는 많은 전력을 아꼈다. 그때의 인물들이 아직까지 건재하게 살아서 무당파의 큰 힘이 되어 주고 있었다.

그들이 바로 청월 진인이 믿는 바였다.

“자신이 가진 모든 패를 내보이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긴 하나 상황이 급박하니 어쩔 수 없구나.”

청월 진인이 혀를 차며 무당산 정상에 올랐다.

***

그들은 무척이나 초라한 행색이었다.

오랜 여정에 지쳐 있었고, 많은 동료들을 잃은 슬픔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다. 그들의 어깨에 내려앉아 있는 짙은 먼지가 그들이 얼마나 먼 길을 왔는지 말해 주고 있었다.

그들의 선두에 있는 마차의 지붕 위에는 창천표국이라는 네 글자가 선명하게 적혀 있었다. 그들은 바로 창천표국의 표사들이었다.

말을 탄 채 선두에 서 있던 중년의 대표두, 남우생이 뒤로 처졌다. 그렇게 그가 향한 곳은 제일 후미에 있는 커다란 수레였다.

수레를 끄는 것은 잡털 하나 섞이지 않은 검은 말이었다. 놀라울 정도로 근육이 발달되어 있는 검은 말은 바로 흑귀였다. 그리고 흑귀가 끄는 수레 위엔 담호가 앉아 있었다.

남우생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무당산이 있는 균현(均縣)입니다.”

그제야 담호가 몸을 일으켰다.

저 멀리 하늘 높이 우뚝 솟은 거대한 산이 보였다. 무당산이었다.

담호는 눈을 살짝 찌푸린 채 무당산을 바라봤다.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그 영기가 느껴질 정도로 무당산의 기운은 강렬했다. 화산이 하늘을 찌르는 날카로운 검이라면 무당산은 마치 광활한 바다를 보는 것처럼 드넓은 포용력이 느껴졌다.

담호는 한참이나 무당산을 바라봤다. 무당산을 바라보는 그의 눈은 너무나 깊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남우생이 그런 담호를 보며 말을 이었다.

“담 대협의 도움에 감사합니다. 덕분에 무사히 이곳까지 올수 있었습니다.”

남우생이 고개를 숙여 감사했다. 담호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엔 경외감이 가득했다.

담호가 앉아 있는 수레 뒤쪽에는 일전의 싸움에서 죽은 표사들의 시신이 쌓여 있었다. 비록 방수포를 덮어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고 하지만, 시신이 썩는 냄새까지 숨길 수는 없었다.

보통 사람은 잠시 맡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혼미해질 그런 악취 때문에 다른 표사들은 감히 접근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하지만 담호는 싫은 표정 하나 없이 귀주성에서 이곳까지 시신이 실린 수레를 끌고 왔다.

균현에는 창천표국의 지부가 있었다. 남우생은 지부에 들러 표사들의 시신을 넘겨줄 생각이었다. 그것이 죽은 자들을 위해서 남우생이 해 줄 수 있는 최선이었다.

창천표국 행렬이 균현에 들어서자 많은 이들의 시신이 집중됐다. 표국 행렬 때문이 아니라 수레에서 흘러나오는 지독한 시취 때문이었다.

“무슨?”

“우욱!”

냄새를 맡은 사람들이 구역질을 해 댔다.

그들도 무인으로 많은 경험을 했다고 자부했지만, 이 정도의 역한 냄새를 맡은 경험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저 깃발은 창천표국이 분명한데…… 무슨 큰일을 당했나 보군.”

“그러게 말일세. 많은 이가 죽은 게 분명해.”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목소리가 남우생과 표사들의 귀에 들렸다.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은 창천표국 행렬의 가장 뒤쪽에 있는 수레를 바라보았다. 수레가 바로 시취의 근원지였기 때문이다.

너무나 강렬한 시취 때문에 수레를 몰고 있는 담호를 주목하는 이는 거의 없었다. 사람들은 역한 냄새에 코를 막고 분분히 고개를 돌렸다.

그 덕에 담호는 누구의 주목도 받지 않고 창천표국의 지부에 들어갈 수 있었다.

“아니,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지부에 들어가자마자 삼십 대 후반의 남자가 뛰어나왔다. 그가 바로 창천표국의 균현 지부장인 우조양이었다.

“우 지부장.”

남우생이 급히 말에서 내렸다.

“대표두님! 이게 대체…….”

우조양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창천표국이라는 거대 표국의 지부장으로 잔뼈가 굵은 우조양이었다. 남우생을 비롯한 표사들의 몰골과 방수포가 덮인 커다란 수레를 본 것만으로도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났음을 직감했다.

“자세한 이야기는 안에 들어가서 하고 일단 시신부터 수습하세.”

“시신입니까?”

“그렇다네.”

남우생이 수레를 덮고 있는 방수포를 걷어 냈다. 그러자 켜켜이 쌓인 표사들의 시신이 보였다.

“맙소사!”

“이럴 수가!”

우조양과 균현지부의 표사들이 놀라 비명 같은 소리를 질렀다.

심하게 부패해서 원래의 얼굴을 알아보기조차 힘들었지만, 그들은 수레에 실린 시신이 자신들과 같은 창천표국 소속의 표사들임을 알아봤다.

“다 같은 우리 식구들일세. 최대한 예의를 갖춰서 시신들을 수습해야 하네.”

“물론입니다.”

우조양은 휘하의 표사들에게 명령을 내려 시신을 수습케 했다. 균현 지부의 표사들은 조심스럽게 시신을 수습했다.

표사들이 시신들을 수습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우조양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검은 옷을 입은 무인을 향했다.

“그런데 이분은?”

“권마 담호 대협일세.”

“…….”

우조양의 눈이 크게 떠졌다.

강호의 살아 있는 전설이 그의 눈앞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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