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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3화 6장. 난세가 영웅을 부른다(3)
촤하학!
담호의 머리 위로 차가운 물이 쏟아졌다. 우물에서 바로 길은 물이었다.
담호는 두레박을 내려 다시 한 번 물을 퍼 올렸다. 그는 두레박 가득 찰랑이는 물을 머리 위로 쏟아부었다.
그렇게 수십 차례나 물을 부은 후에야 몸에 배인 지독한 혈향과 시취가 사라졌다. 그제야 담호는 방으로 돌아왔다.
방 안 침상 위에는 곱게 접힌 검은 무복이 놓여 있었다. 우조양이 미리 준비해 둔 옷이었다.
검은 무복은 미리 치수를 잰 것처럼 꼭 맞았다. 그리고 편했다. 손발을 이리저리 움직였지만, 거치적거리는 것이 하나 없었다. 우조양이 얼마나 신경을 썼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때 밖에서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저 남우생입니다. 잠시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음!”
담호의 허락이 떨어지자 문이 열리고 남우생과 우조양이 안으로 들어왔다. 남우생 역시 수욕을 한 듯 한결 깨끗한 모습이었다.
들어오자마자 남우생이 정중하게 포권을 취했다.
“덕분에 무사히 이곳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담 대협의 도움에 감사의 말씀드립니다.”
우조양까지 포권을 취하며 고개를 숙였다.
“인사받고자 한 일이 아니야.”
“압니다. 그래도 저희 입장에선 감사할 뿐입니다. 덕분에 시신들을 무사히 수습할 수 있었고, 이곳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담호가 함께해 줬기에 표물을 무사히 이곳까지 운송해 올 수 있었다. 그는 이곳 균현 지부에서 인원을 보충해 소림사까지 표물을 운송할 생각이었다. 다행히도 우조양이 직접 균현의 표사들을 이끌고 동행하기로 했다.
우조양이 말했다.
“대협 덕분에 창천표국의 명성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혹시 원하는 게 있다면 언제든 말씀해 주십시오. 창천표국의 모든 것을 걸고 반드시 도움을 드리겠습니다.”
그의 목소리와 눈빛엔 진심이 가득했다.
남우생에게서 그간의 사정을 모두 들었다. 담호가 아니었으면 전멸했을 거란 이야기도.
표사들의 시신을 수습하면서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는지 몰랐다. 처참하게 일그러진 표정이 그들이 죽기 직전 얼마나 큰 고통을 당했는지 말해 주고 있었다.
그들의 시신은 모두 화장한 후 유골을 수습해 유가족들에게 보내 줄 예정이었다. 그나마 시신을 모두 수습할 수 있었던 것도 담호 덕분이었다.
“저희 창천표국은 어떠한 경우에도 담 대협을 도울 것을 약속드립니다.”
“그렇습니다. 저희와 국주님의 명예를 걸고 약속드리겠습니다.”
두 사람의 진심 어린 목소리가 방 안에 울려 퍼졌다.
***
창천표국의 균현 지부 담장은 높고도 높았다. 평범한 사람은 감히 넘을 엄두를 낼 수조차 없을 만큼 높은 담장은 거대한 성을 연상케 했다. 하지만 그렇게 높은 담장으로도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퍼져 가는 소문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었다.
“권마가 균현으로 들어왔다.”
“창천표국 균현 지부에 권마가 있다.”
누구의 입에서 시작된 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소문은 알음알음 퍼져 나갔고, 무당파의 귀에도 들어갔다.
맨 처음 그 소식을 들은 이는 무당파의 지낭이라 불리는 청무 진인이었다.
“권마가 균현에 들어왔다?”
“확실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확인할 가치는 있습니다.”
“으음!”
제자 현궁의 대답에 청무 진인이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평소라면 균현에 누가 왔든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마교의 침공이 현실로 다가온 시점이었다. 호북성의 모든 무인들이 균현에 집결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권마 담호의 등장은 그에게 골치 아픈 문제를 던져 주고 있었다.
호북성의 맹주는 누가 뭐라 해도 무당파였다.
무당파를 중심으로 모든 무인들이 단결하고 있는 상황에서 담호라는 거물의 등장은 어떤 변수를 발생시킬지 알 수 없었다.
권마 담호는 시대를 움직이는 거물이 된 지 오래였다. 그의 존재감은 무당파만큼이나 크고 거대했다.
그런 거물의 등장은 무당파를 중심으로 결집하던 무인들의 마음에 동요를 일으킬 확률이 컸다.
하나로 단합해도 모자랄 판국에 무인들이 둘로 나뉜다면 무당파가 입을 타격이 무척이나 컸다. 청무 진인으로서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일단 정말 그가 권마인지 확인하는 것이 급선무겠구나. 누굴 보내는 것이 좋을까?”
“청허 사숙은 어떨까요?”
“청허 사형은 그리 좋은 선택이 아니야.”
“어째서 그렇습니까?”
“요즘 청허 사형이 집중하지 못하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있나? 권마를 만나면 개인적인 감정에 휘둘릴 공산이 커.”
“으음!”
“그럼 누구를?”
“청진 사형을 보내는 게 제일 나을 것 같군.”
“청진 사숙을 말씀입니까?”
현궁이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왠지 탐탁지 않은 표정이었다.
“왜 그러냐?”
“청진 사숙께서는 성정이 급하셔서…….”
“그래도 무당파에 그만큼 단호한 성격을 가진 사람은 드물지. 나도 마음이 썩 놓이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현재 시간이 나는 사람은 청진 사형밖에 없구나.”
청무 진인의 대답에도 현궁은 그리 납득하는 표정이 아니었다. 하지만 하늘같은 사부의 결정에 더 이상 토를 달 수는 없었기에 입을 꾹 다물었다.
그에 청무 진인이 다 이해한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
“네가 무슨 걱정을 하는지 알고 있다. 하지만 너도 알다시피 지금 본파는 가용 인력이 부족하다. 청진 사형을 보내는 것도 무당파로서는 무리를 하는 셈이다.”
“하오나…….”
“소문이 진짜일 수도 있지만, 거짓일 수도 있지 않느냐?”
“알……겠습니다.”
현궁이 수긍을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청무 진인의 뜻처럼 청진 진인이 소문의 진위를 파악하기 위해 무당산을 내려갔다.
청진 진인이 무당산을 내려가던 모습을 지켜보던 현궁이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청진 진인만 보내기엔 못내 마음이 불안했다.
그 순간 누군가 떠올랐다.
“사저라면…….”
***
균현에 있는 객잔들은 수많은 무인들이 몰려오면서 때아닌 호황을 맞이하고 있었다. 객잔마다 사람들이 넘쳐났고, 주인들은 빈방이 없어 비명을 질러야 했다.
무림인들의 결집은 그렇게 균현에 최대의 호황기를 가져왔고, 수많은 상인들이 무인들의 주머니를 털기 위해 균현으로 들어왔다.
상인들이 움직이니, 자연스럽게 표국 역시 그 뒤를 따랐다. 덕분에 표국들 역시 때아닌 성수기를 누리고 있었다.
창천표국 역시 마찬가지였다. 더군다나 창천표국은 균현에 지부를 별도로 두고 있었다. 때문에 많은 상단들이 창천표국을 이용했다.
“구황상단에서 들어온 물건은 이쪽 창고로 옮겨. 다른 물건들과 섞이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해.”
“섬서성으로 보내는 물건은 이쪽으로 가져와.”
곳곳에서 표사들이 일꾼과 쟁자수 들을 부려 짐을 옮기고 있었다. 덕분에 지부 내는 마치 시장통처럼 시끄럽기 그지없었다.
균현 지부장 우조양과 대표두 남우생은 커다란 마당 한쪽에서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일꾼을 더 늘려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지 않아도 인력을 확충하기 위해 공고를 냈습니다. 아마 오후쯤에는 부족한 인력이 보충될 겁니다.”
“역시 자네다운 꼼꼼한 일처리군. 내가 괜한 말을 했어.”
“아닙니다.”
남우생의 칭찬에 우조양이 고개를 저었다.
창천표국 초창기부터 함께해 온 두 사람이었다. 때문에 누구보다 서로를 잘 알았다.
“참, 소림사로는 언제 출발하실 생각이십니까?”
“준비가 끝나는 대로 출발해야지.”
“아마 하루 정도는 시간이 더 소요될 겁니다.”
“최대한 서둘러 주게나. 소림사와 무림맹으로 가는 물건이야. 시간을 지체할수록 부담감만 커질 뿐이야.”
“알겠습니다.”
“미안하네. 괜히 자네에게 폐나 끼치고.”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형님과 저 사이에. 그리고 다 같은 창천표국의 식구 아닙니까?”
우조양이 자못 섭섭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에 남우생이 미소를 지었다.
지금이야 거대 표국이 된 창천표국이지만, 처음엔 무척이나 영세했었다. 그래서 표두, 표사, 쟁자수 구별할 것 없이 일선에 나서 짐을 옮기고, 지키곤 했다. 그 덕에 초창기에 함께했던 사람들 간에는 끈끈한 유대감이 생겼다.
두 사람 역시 그런 사이였다.
그렇게 두 사람이 담소를 나눌 때였다.
“지부장님.”
정문 쪽에서 하인 한 명이 우조양을 부르며 부리나케 달려왔다.
“무슨 일인가?”
“무당, 무당산에서 도사님이 찾아오셨습니다.”
“무당파에서?”
우조양의 미간을 한껏 찌푸리며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담장 너머 거대한 무당산이 또렷하게 보였다.
균현에 적을 두고 살아가는 사람치고 무당파를 무시할 수 있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것은 표국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서 안으로 모시거라.”
“알겠습니다.”
하인이 다시 정문으로 뛰어갔고, 잠시 후 늙은 도사 한 명과 함께 다시 나타났다.
기골이 장대한 노도사였다. 외모만 놓고 봤을 때는 도사라기보다는 갑주를 입은 장수가 더 어울려 보였다.
우조양과 남우생이 동시에 예를 차렸다.
“어서 오십시오, 진인. 저는 창천표국의 균현 지부장인 우조양이라고 합니다.”
“창천표국의 대표두 남우생입니다. 어서 오십시오, 진인.”
“반갑네! 나는 무당파의 청진이라고 하는 늙은 도사일세.”
청진 진인의 소개에 우조양과 남우생이 놀랐다. 청진 진인이라면 무당파에서도 매우 유명한 장로였다.
무당파의 장로답게 무공이 고강하지만, 도사답지 않게 성격이 급하기로 유명한. 그래서 별호조차 열화진인(熱火眞人)이었다
“청진 진인께서 여기는 어쩐 일로?”
“내 돌려 말하지 않겠네. 여기에 권마가 머물고 있다고 들었네. 사실인가?”
청진 진인의 말에 우조양과 남우생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담호는 번거로운 것을 싫어했다. 그래서 별채에만 머물면서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입조심을 시켰건만 결국 새어 나갔나?’
남우생이 입술을 질겅 깨물 때였다.
“내가 묻지 않았는가? 권마가 있지 않냐고. 자네들이 나를 우습게 보는 건가? 무당파의 장로를.”
“아, 아닙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왜 대답을 하지 않는가?”
청진 진인의 목소리가 균현 지부 내에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일을 하던 사람들이 모두 움직임을 멈추고 그를 바라봤다.
청진 진인의 얼굴은 어느새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의 두 눈엔 은은한 노기가 담겨 있었다.
열화진인이라는 별호처럼 폭급한 모습이었다.
“분명 담 대협은 저희 균현 지부에 손님으로 머물고 있습니다.”
“그럼 사실이란 말인가?”
“그렇습니다.”
“그런데 왜 나오지 않는단 말인가? 그는 무당파를 우습게 보는 것인가?”
우웅!
내공이 실린 목소리가 경내에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무당파의 장로가 마음먹고 내공을 실은 사자후였다. 표사들은 그런대로 버틸 만했지만, 쟁자수나 일꾼 들은 고막을 막고 바닥에 엎드려서 벌벌 떨었다.
청진 진인의 사자후가 조금만 더 강했으면 그들의 고막이 터지면서 뇌에 직접적인 타격을 입었을 것이다.
“고정하십시오, 진인.”
“청진 진인.”
남우생과 우조양이 급히 청진 진인을 만류했다. 하지만 청진 진인의 얼굴에 떠오른 노기는 쉽게 가실 줄 몰랐다.
‘권마가 들어와 있으니 나보고 확인하라고?’
권마가 균현에 들어와 있다는 사실 때문에 화가 난 것이 아니다. 자신을 너무 쉽게 부리는 막내 사제 때문에 화가 난 것이다.
막내 사제인 청무 진인의 능력은 인정하고 있었다. 그의 두뇌는 분명 뛰어났으니까. 그 덕분에 일찍이 두각을 드러내어 무당파의 지낭으로 키워졌다.
반면 청진 진인은 급한 성격 때문에 중한 일은 맡지 못하고 이런 하잘것없는 일만 도맡았다. 그 역시 무당파의 장로가 분명한데도 말이다.
그래서 화가 났다.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그가 다시 한 번 사자후를 토해 냈다.
“권마! 균현에 들어왔으면 비겁하게 숨지 말고 나오거라.”
우웅!
지부 내의 경물이 다 울렸고, 일꾼들의 표정이 더욱 핼쑥하게 변했다.
“크으!”
“제발!”
그들은 양손으로 귀를 막고 애원했다. 하지만 청진 진인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다시 사자후를 터트렸다.
“권…….”
“시끄러워!”
“……마! 크윽!”
그 순간 갑작스럽게 들려온 차가운 목소리가 맥을 끊고 청진 진인의 가슴을 진탕시켰다.
청진 진인의 눈에 마당으로 걸어 나오는 남자가 보였다.
마치 어둠처럼 시커먼 옷을 입고, 한쪽 발을 살짝 저는 남자는 바로 담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