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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4화 7장. 무당의 하늘이 강호의 하늘은 아니다(1)
청진 진인의 얼굴이 보기 싫게 일그러졌다.
비록 청무 진인의 심부름이나 다니는 처지였지만, 그래도 강호 구대문파 중 하나인 무당파의 장로였다.
무당파의 전제자와 균현, 더 나아가 호북성의 모든 무인들이 그를 우러러봤다. 그를 바라보는 시선엔 극진한 공경과 예의가 담겨 있었다. 하지만 담호의 눈빛은 달랐다.
과연 인간의 눈빛이 맞는지 의심이 갈 정도로 감정이라곤 전혀 담겨 있지 않았다.
유리알처럼 무감각한 눈빛은 무당에서 오랜 세월 고련을 한 노도사의 가슴마저 섬뜩하게 만들었다.
문득 두려움이 왈칵 밀려왔다. 낯선 감정의 물결에 청진 진인은 당혹스러움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그는 무당파의 장로답게 이내 정신을 수습하며 큰 소리로 외쳤다.
“네놈이 권마 본인이 맞느냐?”
“그렇다면?”
“나와 함께 무당산으로 올라가자.”
“내가 왜?”
“왜라니? 균현에 왔으면 당연히 무당파를 찾는 것이 예의 아닌가? 네놈은 무당파를 뭐라고 생각하는 거냐?”
두려움이란 감정을 숨기려 하다 보니 자연 목소리가 커지고, 분위기는 더욱 험악해졌다.
담호의 눈매가 좁아졌다.
“알 게 뭐야?”
“뭐라?”
“내가 굳이 무당파에 대해 알아야 하나?”
“감히!”
“그 입 조심해. 말 한마디 잘못해서 죽는 곳이 강호니까.”
순간 장내의 분위기가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남우생은 물론이고 우조양까지 눈을 부릅뜬 채 담호를 바라봤다.
담호가 광오한 것은 알고 있었지만, 설마 무당파의 장로에게까지 저리 함부로 말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다른 곳도 아닌 무당파의 장로였다. 무당파가 갖는 이름의 무게는 여타 문파와 궤를 달리했다. 더구나 이곳은 무당파의 안마당이라 할 수 있는 균현이었다.
무당파의 안마당에서 무당파의 장로에게 저런 독설을 내뱉을 수 있는 사람은 천하에서 오직 담호 한 명뿐일 것이다.
담호의 독설에 청진 진인이 잠시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내 엄청난 노기가 그의 뇌리를 잠식해 분노하게 만들었다.
“감히! 감히 무당파를 모욕하다니.”
그의 도포 자락이 맞바람을 맞기라도 한듯 미친 듯이 흩날렸다. 보기만 해도 위압감이 느껴지는 모습이었지만, 담호는 그저 물끄러미 바라볼 뿐 그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 모습이 청진 진인을 더욱 화나게 만들었다.
“이놈! 오만하기가 하늘을 찌르는구나. 내 무당의 이름으로 네놈의 오만함을 응징하리라.”
슈우우!
순간 어떠한 조짐도 없이 음유한 기운이 담호에게 들이닥쳤다.
면장(綿掌), 속칭 무당면장이라 불리는 무당파의 절학이었다.
명문정파인 무당파의 절학이라곤 믿기 힘들 정도로 음유한 공력이 담긴 면장은 막기가 무척이나 까다로웠다.
청진 진인은 면장으로 담호에게 큰 타격을 줄 수 있다고 믿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정도 타격을 주는 것만으로 경고는 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쾅!
하지만 면장이 담호의 면전에서 짧은 소성과 함께 소멸되는 순간 그는 자신이 얼마나 안일하게 생각했는지 뼛속 깊이 깨닫게 되었다.
콰아아!
마치 해일이 밀려오듯 가공할 압력이 그에게 집중됐다. 그것이 담호가 움직이면서 일어난 현상이라는 것을 깨닫는 덴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왜냐하면 바로 담호가 그의 지척까지 도달해 있었기 때문이다.
거칠게 흩날리는 검은 머리카락, 그 아래 사납게 번뜩이는 흉포한 눈동자. 그리고 꽉 쥔 주먹.
“헛!”
청진 진인은 기겁하며 뒤로 물러나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강력한 접인지기(椄引之氣)가 일어나 그의 몸을 끌어당겼다.
“무슨?”
쾅!
그 순간 파성추가 터졌다.
강렬한 충격과 함께 청진 진인의 정신이 아득해졌다.
마치 산 정상에서 굴러온 거대한 바위와 충돌한 것처럼 그의 몸이 짓이겨진 채 뒤로 튕겨 나갔다.
본능적으로 교차해 담호의 주먹을 막은 양쪽 팔뚝은 뚝 부러진 채 덜렁거리고 있었고, 가슴 섶은 피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그나마 무당파의 호체기공(護體氣功)인 무극구공(無極球功)이 절로 일어나 전신을 보호해 줬기에 이 정도에 그친 것이지, 그러지 않았다면 일격에 즉사했을 것이다.
하지만 담호의 공격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파성추는 겨우 서막에 불과했다.
담호의 눈이 사납게 번뜩였다. 아득해지는 정신 속에서도 그 눈빛을 본 청진 진인이 기겁을 했을 정도였다.
담호가 청진 진인의 멱살을 향해 양팔을 뻗어 왔다. 지천격을 펼치려는 것이다.
일단 지천격이 펼쳐지면 끝이었다. 대지를 무기로 삼는 이 흉포한 공격은 엄청난 살상률을 자랑했다. 일단 멱살이 잡히는 순간 벗어날 방법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양팔이 부러진 청진 진인에겐 담호의 지천격을 막을 어떤 방도도 없었다. 암담한 절망감에 그가 눈을 질끈 감는 그 순간이었다.
“손속에 사정을 둬 줘요.”
슈슈슉!
청아한 음성과 함께 날카로운 검기가 담호와 청진 진인 사이를 갈랐다.
청진 진인은 그 찰나의 순간을 놓치지 않고 뒤로 물러날 수 있었다. 담호는 제자리에 멈춰 서서 검기의 주인을 바라봤다.
옷자락을 나풀거리며 청진 진인과 담호 사이에 내려앉는 묘령의 여인을 보는 순간 담호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오랜만이에요. 담소…… 아니, 담 대협!”
담호를 보며 씁쓸한 미소를 짓는 여인의 얼굴이 낯익었다.
가냘픈 몸매에 우수 어린 얼굴, 그리고 특유의 신비로운 분위기를 가진 여인.
“연……소하.”
그녀는 바로 청허 진인의 제자인 연소하였다. 방금 전 검기는 바로 그녀가 날린 거였다.
“이렇게 뵙게 되는군요. 죄송해요.”
“방해할 건가?”
“그래도 본파의 장로님이에요.”
연소하의 목소리가 착 가라앉았다.
사부인 청허 진인을 따라 외부 활동을 자제하고 있던 연소하였다. 만일 사제인 현궁이 찾아와 부탁하지 않았다면 그녀는 절대로 외부로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담호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엔 착잡한 감정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었다.
담호와는 이상하게 악연으로 엮이고 있었다.
십삼 년 전 천금마옥에 그를 두고 나오기로 결정한 것도 무당파였고, 삼 년 전 무림맹에서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담호를 핍박하려 했던 것도 무당파였다.
강호의 명문이자, 양대 거두로 자부하는 무당파로서는 씻을 수 없는 과오였고, 돌이킬 수 없는 흑역사였다. 그리고 지금 어두운 역사가 다시금 반복되려 하고 있었다.
연소하로서는 어떻게든 막아야 했다. 이 이상 담호와 대립해 봤자 무당파의 명예만 바닥에 떨어질 뿐이었다.
담호는 말없이 연소하를 바라봤다. 연소하는 고개를 숙여 담호의 눈빛을 피했다. 그녀는 피가 날 정도로 입술을 지그시 깨물고 있었다.
그렇게 연소하가 담호를 막아선 사이 청진 진인은 체면도 바닥에 내던지고 도주했다.
담호는 그런 청진 진인을 잡지 않았다. 마음만 먹는다면 연소하를 쓰러트리고 얼마든지 따라 잡을 수 있었는데도 말이다.
담호의 눈매가 좁아졌다.
“이후부터 벌어질 사태를 감당할 자신은 있나?”
“…….”
“거기까진 생각은 하지 않은 건가?”
연소하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가 없었다.
청진 진인의 목숨을 구해야 한다고만 생각했지, 그 후에 벌어질 일까지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청진 진인은 무당파의 장로였다. 장로가 외인에게 두 팔이 부러지고 돌아왔는데, 가만히 있을 곳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지금 균현에는 수많은 무인들이 들어와 있었다. 방관했다가는 그들에게 얕잡아 보일 수도 있었다.
분명 무당파는 전력을 끌고 올 것이다.
“아!”
그제야 그녀는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문제가 무엇이었든 간에 이곳에서 해결해야 했다. 청진 진인을 그렇게 무당파로 도주하게 내버려 두는 것이 아니었다.
‘또다시…….’
연소하가 피가 날 정도로 입술을 힘껏 깨물었다. 실제로 피가 흘러내렸지만, 그녀는 고통조차 느끼지 못했다.
그녀의 눈앞에 있는 남자는 너무나 과격했다. 말보다 행동이 먼저였고, 그래서 숱한 피를 봤다.
그 때문에 모두가 담호를 무공만 강한 무뢰한이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연소하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담호와 대화를 한 순간 그것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편견이었는지 연소하는 깨달을 수 있었다.
담호는 단순히 강한 무력만 내세워 행동하는 자가 아니었다. 적어도 인과관계를 명확히 파악하고 있었고, 힘을 내세워 문제를 해결할 자신이 있었기에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다. 그런데 자신이 개입함으로써 사태를 오히려 확대시켜 버리고 말았다.
“죄……송해요. 번번이…….”
그녀의 목소리가 기어 들어갔다.
담호는 그런 연소하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의 눈에는 원망의 빛이나, 질책의 기색 따윈 담겨 있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바라볼 뿐이었다. 그 모습이 연소하에겐 오히려 더 부담스러울 뿐이었다.
부담을 견디다 못한 연소하가 말문을 열었다.
“그냥…… 차라리 담 대협께서 이곳을 떠나면 안 될까요? 담 대협만 떠나면 아무런 문제도 생기지 않을 거예요. 시간이 지나면 오해도 풀릴 거고요. 아니, 제가 반드시 풀도록 할 테니 그렇게 해 주세요.”
“…….”
“부탁이에요. 제발!”
연소하가 간절함이 가득 담긴 눈빛으로 담호를 바라봤다. 눈물이 그렁한 것이 금방이라도 울 것 같았다.
보통의 남자들이었다면 그런 연소하의 눈빛에 분명 마음이 흔들렸을 것이다. 하지만 담호의 눈빛을 보는 순간 연소하는 자신이 얼마나 잘못 생각하고 있는 건지 다시 한 번 깨달았다.
담호의 눈빛엔 일점의 흔들림도 존재하지 않았다.
새까만 그 눈동자엔 그 어떤 감정의 빛도 떠올라 있지 않았다.
그가 입을 열었다.
“당신은 완전한 무인이 아니군.”
“그게 무슨?”
“진정한 무인이었다면 절대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없었을 테니까. 무인의 자존심을 우습게 보지 마. 때론 사소한 자존심 하나만으로도 목숨을 걸어야 하는 것이 무인의 숙명이야.”
“나도 그걸 모르는 게 아니에요. 하지만 때로는 융통성도 필요한 법이잖아요.”
“물러서는 것이 습관이 되면 전진하는 법을 잊어버리게 돼.”
때로는 불리한 것을 알면서도 자신의 모든 것을 태워 버릴 용기도 있어야 한다. 그 끝에 결국은 재밖에 남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말이다.
담호는 이제까지 그렇게 살아왔다.
불리하다고 회피하고, 아프다고 쉬고, 위험하니까 몸을 피하는 것은 담호가 아니다.
전진하고, 또 전진하고.
그 과정에서 피투성이가 되고, 커다란 상처를 입어도 그는 전진했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그렇게 보보(步步)가 쌓여 오늘날의 그가 되었다.
때론 물러서는 것이 편하다는 것을 몰라서 물러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천금마옥에서 형성된 가치관이, 전장에서 굳어진 사고관이 그럴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아!”
연소하의 입술을 비집고 나직한 침음성이 흘러나왔다.
담호의 말은 그녀에게 많은 것을 깨닫게 했다. 그녀가 이제까지 잃어버리고 있던 것을 다시 떠올리게 만들었다.
무인의 의지.
그 어떤 고난과 위협에도 절대 굴하지 않는 불굴의 의지를.
연소하의 얼굴이 부끄러움으로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제야 그녀는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상기할 수 있었다.
자신은 담호의 말처럼 완벽한 무인이 아니었다. 무당파라는 명문가의 보호를 받으며 강호의 경계선에 발을 걸친 주변인이었을 뿐이다.
“미안해요.”
“…….”
“모든 것이 다…….”
사과를 하는 연소하의 표정이 바뀌었다.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얼굴, 눈빛이었다. 그녀의 마음속에서 무언가 바뀐 것이다.
그 모습을 보며 우조광과 남우생 등이 대화를 나누었다.
“저래도 되는 겁니까?”
“뭐가?”
“그래도 무당파인데…….”
우조양이 말끝을 흐렸다. 그에 남우생이 대답했다.
“그는 권마니까.”
“대표두.”
“주먹 하나로 모든 고난을 헤쳐 온 남자니까 그럴 자격이 있네.”
“허나 상대는 무당파입니다.”
“나는 말일세.”
남우생이 잠시 말을 끊고 우조양을 바라봤다.
우조양의 얼굴에는 불안한 기색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그것이 정상이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런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남우생처럼 담호를 직접 경험한 사람이라면 반응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나는 무당파가 권마보다 위라고 생각하지 않네.”
“그런…….”
“무당파가 권마만큼 혈로를 걸었는가? 그들이 담 대협만큼 피를 흘리며 싸워 본 적이 있는가? 그가 걸은 고난의 길은 그를 더욱 단단하고 무섭게 만들었네. 무당파가 그런 그보다 위라고? 나는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네.”
남우생이 코웃음을 쳤다.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보았기에 확신할 수 있었다.
담호란 남자는 진짜였다.
“그의 말처럼 물러서는 것이 습관이 된 자는 전진하는 법을 잊어버리지. 어쩌면 무당파란 문파는 전진하는 법을 잊어버린 거인이 아닐까?”
그의 목소리가 창천에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