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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권마-345화 (34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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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5화 7장. 무당의 하늘이 강호의 하늘은 아니다(2)

연소하는 무당산을 올랐다.

수없이 오르내린 무당산이었다. 오르는 계단도, 길가에 서 있는 커다란 나무도 달라진 것 없이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데, 오늘은 왠지 모르게 달라 보였다.

연소하는 순식간에 거친 무당산을 올라 무당파에 도착했다. 그녀가 연무장에 도착해서 제일 처음 본 광경은 바로 연무장을 가득 채운 무인들이었다.

비단 무당파의 도사들뿐만이 아니었다. 마교와 싸우기 위해 무당파에 찾아온 수많은 무인들까지 한데 모여 있었다. 그런데 그들이 술렁이고 있었다.

“정말인가? 권마를 친다고?”

“청진 진인의 두 팔이 부러졌다고 하지 않은가? 권마가 미친 게지. 감히 무당파 장로의 팔을 부러트리다니.”

“그렇게 안 봤는데 권마도 안 되겠군. 마교와 싸우기 위해 힘을 모아도 모자랄 판국에 같은 정파인 무당파를 공격하다니. 괜히 별호에 마(魔)가 붙은 것이 아니었어.”

대부분의 무인들이 담호를 성토하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엔 분노의 빛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그들은 무당파의 장로가 담호에게 당한 것을 마치 자신들이 모욕당한 것처럼 받아들이고 있었다.

특히나 호북성에 적을 둔 무인들에게 있어 무당파는 신성불가침의 영역이었다. 때문에 무당파의 일을 자신의 일로 받아들이고, 분전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휴!”

연소하가 그런 사람들을 보며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냥 가만히 서 있는 것만으로 집단의 광기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예전이었다면 그냥 아무렇지 않게 넘길 수 있었겠지만, 지금은 이 자리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숨이 턱턱 막혀 왔다.

연소하는 고개를 흔들며 그들을 지나쳐 자소궁으로 향했다.

그녀의 예상처럼 자소궁 안에는 무당파의 수뇌부들이 한데 모여 있었다.

장문인인 청월 진인, 지낭인 청무 진인, 그리고 많은 장로들과 제자들이 빈자리 없이 빼곡히 채우고 있었다.

그 한가운데 청진 진인이 있었다. 그가 양팔에 부목을 댄 채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그놈은 대화도 통하지 않는 불한당입니다. 이 팔을 보십시오. 대화를 하고자 한 나에게 어떻게 했는지. 다짜고짜 공격해서 양팔을 부러트렸습니다. 이게 말이 되는 일입니까? 내가 설령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어떻게 명문정파 무당파 장로의 팔을 이렇게 부러트릴 수 있단 말입니까? 그는 구제하지 못할 마인입니다. 이대로 그를 용납한다면 강호의 수많은 동도들이 무당파를 우습게 볼 것이 분명합니다.”

“으음!”

청진 진인의 열변에 청월 진인과 청무 진인은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특히 청월 진인은 미간을 한껏 찌푸린 채 청진 진인을 노려보고 있었다.

‘결국 청진이 사고를 쳤구나.’

미우나 고우나 수십 년을 함께해 온 사이였다. 때문에 청진 진인의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안다고 자신했다.

청진 진인은 항상 자신에게 불리한 일이 있을 때만 얼굴이 벌게져 열변을 토했다.

지금 그의 얼굴은 화로처럼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 말은 결국 청진 진인이 담호에게 먼저 시비를 걸었다는 뜻이었다.

청월 진인이 청무 진인을 바라봤다.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든데 청무 진인의 책임이 있다는 뜻이다. 그러자 청무 진인이 고개를 숙여 그의 눈빛을 피했다.

청무 진인도 청진 진인이 양팔이 부러져 돌아올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그가 수습할 수 있는 선을 한참 넘어간 초대형 사건이었다.

‘골치 아프구나. 어찌 되었건 간에 청진 사형의 양팔이 부러졌다. 이 일을 그냥 넘기면 무당파의 위신이 땅에 떨어질 터.’

무당파와 같은 거대 문파에겐 대외적인 체면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체면이 떨어진다는 것은 곧 문파의 약점을 드러내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강호의 무인들은 약점을 드러낸 자를 존중해 주지 않는다. 오히려 더욱 치열하게 물어뜯기 마련이다.

별거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방죽이 터지는 것도 조그만 구멍 하나에서 시작된다. 때문에 무당파와 같은 거대 문파들은 약점이 대외적으로 드러나지 않도록 더욱 가혹하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그랬다.

청진 진인은 단순히 자신의 양팔이 부러졌음을 호소하고 있을 뿐이지만, 무당파는 체면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담호를 응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장기로 치면 외통수에 걸린 셈이다.

그 사실도 인지하지 못하고 저렇게 떠드는 청진 진인이 얄미웠지만, 지금은 그를 제지할 어떤 방법도 없었다.

“권마를 응징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강호의 동도들이 무당파를 우습게 알 겁니다.”

청진 진인이 그렇게 말을 끝맺음할 때였다.

“사숙!”

갑자기 청아한 음성이 장내에 울려 퍼졌다.

모두의 시선이 목소리의 주인을 향했다. 목소리의 주인은 바로 연소하였다.

“사숙께서는 권마를 응징해야 한다고 하지만 전 반대예요.”

“무슨 헛소리냐? 여긴 네가 나설 자리가 아니다.”

청진 진인이 놀라 호통을 쳤다. 그의 얼굴엔 노기가 가득했다. 평소라면 감히 마주보지도 못할 만큼 엄한 사숙이었다. 하지만 그를 바라보는 연소하의 눈동자엔 일말의 흔들림도 존재하지 않았다.

“사숙!”

“너?”

“사숙이 먼저 공격하셨습니다.”

“무슨 헛소리냐?”

“그가 비록 본파와 좋지 않은 사이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함부로 대해도 좋을 만큼 험한 사이는 아니에요. 마음이 맞지 않아 함께하지 못한다고 해도 예의를 다했어야 했어요.”

“네가 감히 사숙을 모욕하는 것이냐?”

“사숙을 모욕하고자하는 것이 아니에요. 사실을 말씀드리는 것이에요.”

“닥쳐랏! 예쁘다고 오냐오냐 해 줬더니 네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기어오르는구나. 그게 사문의 존장에게 할 말이더냐?”

“사숙!”

“뭐하느냐? 제자들은 어서 저년을 끌어내지 않고.”

청진 진인이 다른 제자들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에 제자들이 서로의 눈치를 봤다.

그 순간 청월 진인이 몸을 일으켰다.

“그만하게, 사제.”

“장문인!”

“내가 그만하라고 하지 않았나? 그만하게.”

“예!”

청월 진인의 목소리가 살짝 올라가자 청진 진인이 급히 고개를 숙였다. 그런 그의 얼굴은 사색이 되어 있었다.

겉으로는 부드럽고 유순하게 보이는 청월 진인이었다. 하지만 그가 얼마나 강단 있고, 단호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 줄은 그가 제일 잘 알았다.

청월 진인에게 밉보였다가는 한직으로 밀려나가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있어도 없는 사람 취급당하는 것은 약과이고, 최악의 경우에는 아예 장로직에서 밀려나 폐관 수련을 명받을 수도 있었다.

말이 좋아 폐관 수련이지, 유배나 다름없었다. 청월 진인이 불러 주기 전까지는 절대 나올 수 없는.

청월 진인의 눈에 벗어나 그렇게 폐관을 하고 있는 무인들이 적잖았다. 청진 진인은 결코 그렇게 되고 싶지 않았다.

“소하, 너도 그만하거라.”

“하지만…….”

“소하야. 나도 알고 있다.”

“예?”

“청진이 얼마나 성급한지. 또 얼마나 권위적인지. 하지만 권마는 권위가 통하지 않는 자. 이제까지 그의 행보가 그 사실을 증명하지. 그러니까 충돌했을 거야. 결코 물러서지 않는 자들이 만났으니까 당연한 일이지.”

“…….”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야. 하지만 그렇다 해도 결코 그냥 넘어갈 수는 없어.”

“장문인.”

“우리는 무당파다.”

단순한 한마디였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무게감과 의미가 달랐다.

무당파(武當派)라는 그 단어 안에 모든 것이 담겨 있었다.

수백 년의 역사, 자부심, 위상, 그리고 반드시 지켜야 할 가치가 담겨 있었다.

무당파의 장문인이란 자리는 그 모든 것을 지키는 자리였다.

때로는 옳지 않은 결정을 내려야 했고, 지금 이 순간이 그랬다.

그에게 무엇보다 우선하는 가치는 바로 ‘무당파’라는 이름 석 자였다.

“청무.”

“예! 장문인.”

“권마를 이리 모셔 오게. 아주 정중히.”

“알겠습니다.”

“자네가 직접 움직이게.”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번엔 실수하지 말게. 절대!”

“예!”

청무 진인이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그런 그의 등줄기를 타고 식은 땀이 흘러내렸다.

청월 진인의 시선이 연소하를 향했다.

“너는 쉬거라.”

“장문인!”

“명령이야.”

그 말이 끝이었다.

무당파의 장문인은 절대 말을 번복하는 법이 없었다.

연소하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녀가 다시 무어라 말하려는 찰라 일대 자 네 명이 연소하를 에워쌌다. 아예 발언할 여지를 원천적으로 차단한 것이다.

연소하는 눈을 감았다.

‘결국…….’

그 어떤 말도 통하지 않을 거라 생각은 했었지만 막상 현실로 다가오자 그저 암담하기만 할뿐이었다.

***

균현 외곽에 사람이 잘 찾지 않는 공터가 있었다.

오랫동안 사람이 찾지 않은 공터에는 창천표국의 표사들이 모여 있었다. 공터 한가운데는 나뭇가지를 높이 쌓은 단이 수십여 개가 있었다.

단 위에는 이번 표행에서 죽은 표사들의 시신이 한 명씩 놓여 있었다. 이곳에서 화장을 하려는 것이다.

“후우!”

남우생이 그 모습을 보며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지난 시간 동안 슬픔이 충분히 가셨다고 생각했는데 다시금 마음이 아파 왔다.

이미 부패해서 얼굴조차 알아볼 수 없게 된 시신들이었다. 더 상하기 전에 화장해서 가족들 품에 돌려보낼 예정이었다.

균현 지부를 지킬 소수의 표사들만 남기고 전원이 이곳으로 왔다.

“시작하게!”

남우생의 명령이 떨어지자 표사들이 나뭇가지를 쌓아 만든 단에 불을 붙였다.

화르륵!

순식간에 엄청난 화염이 피어올라 시신을 집어삼켰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표사들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들 역시 칼 밥을 먹고 사는 강호인들이었다. 언제든 목숨을 버릴 각오를 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시신으로 돌아온 동료들을 화장시키는 모습을 보는 것은 그들의 가슴에 묘한 여운을 던져 주었다.

그때 공터에 검은 인영이 나타났다. 담호였다.

그가 나타난 순간 모두의 시선이 집중됐다.

“담 대협!”

“대협!”

표사들이 포권을 취하며 분분히 비켜섰다.

순식간에 길이 만들어졌다.

담호의 위압감 때문에 비키는 것이 아니었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존경심 때문에 알아서 길을 열어 주는 것이다.

담호를 바라보는 그들의 눈빛엔 경외심이 가득했다.

이렇게 화장을 치를 수 있었던 것도 담호가 개입했기 때문이다. 그가 없었다면 동료들의 시신을 수습해 화장을 치를 수 있는 기회조차 얻지 못했을 것이다.

담호는 표사들을 지나 불이 타오르는 단을 향했다. 단 가까이 다가가자 엄청난 열기가 느껴졌다. 머리카락과 눈썹이 탈 지경이었지만 담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담호는 한줌의 재가 되어 가는 표사들의 시신을 말없이 바라봤다. 자신을 기억해 달라고 말했던 젊은 표사의 시신을 바라보았다.

‘조수광.’

담호는 그 이름을 되뇌었다.

잊지 않을 것이다.

그와의 약속을 결코 잊어버리지 않을 것이다.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이 자리에 왔다.

표사들은 그런 담호의 모습에 감격했다. 일개 표사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권마와 같은 거물이 이곳을 찾아올 줄 몰랐기 때문이다.

‘우리 같은 하찮은 표사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오다니.’

‘저분은 정말…….’

그들은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무언가 울컥 치솟아 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때였다.

“무량수불!”

갑자기 나직한 음성이 공터에 울려 퍼졌다.

이어 수많은 도사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바로 무당파의 도사들이었다. 그들의 선두에 청무 진인이 있었다.

청무 진인이 담호에게 걸어오며 말했다.

“무량수불! 본도는 청무라고 하오. 권마 담 대협 맞소이까?”

담호가 말없이 청무 진인을 바라봤다. 그러자 청무 진인이 미소를 지었다.

“제 사형이 결례를 저질렀다고 들었습니다. 사죄도 할 겸 무당파에서 대접을 하고 싶은데 담 대협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

“정중히 초대하는 겁니다. 무당파로.”

“엄숙한 자리야. 입 다물어.”

“무슨?”

“그도 아니면 저들을 위해 진언을 외우든가.”

순간 무당파 도사들이 귀를 의심했다. 그리고 분노했다.

“감히!”

그들이 담호를 에워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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