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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6화 7장. 무당의 하늘이 강호의 하늘은 아니다(3)
무당파 도사들이 검을 빼 들어 담호를 겨눴다.
“감히 무당을 능멸하다니.”
“간덩이가 부었구나, 권마.”
그들은 금방이라도 담호에게 검을 휘두를 기세였다.
그때 누군가 담호의 앞을 막아섰다.
“나부터 베십시오.”
아직 애티가 채 가시지 않은 젊은 표사였다. 그가 벌겋게 상기된 얼굴로 양팔을 벌린 채 담호의 앞을 막아선 것이다.
“나도 베고 지나가시오.”
그러자 이번엔 중년의 표사가 담호의 앞을 막아섰다.
“나도…….”
“에라 모르겠다. 그분을 데려가려면 나도 죽이시오.”
창천표국의 표사들이 분분히 담호의 앞을 막아섰다. 그에 무당파의 도사들이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설마 무당파의 안마당에서 영업하는 표사들이 이렇게 대놓고 자신들의 행사를 막아설 줄 몰랐기 때문이다.
순식간에 담호의 앞에 인의 장벽에 생겨나 무당파 도사들과 맞섰다. 그들 중에는 남우생과 우조양도 있었다.
이래서는 안 된다는 것은 그들도 알고 있었다. 이곳에서 무당파와 맞섰다가는 두 번 다시 균현에서 영업을 할 수 없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서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들의 가슴이 그렇게 시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담호는 그들이 어려움을 겪을 때 그 어떤 계산도 없이 나서 줬다. 이번엔 그들이 나설 차례였다.
“이거야…….”
청무 진인이 그 광경을 보고 머리를 긁적였다.
쉽지 않은 일이 될 거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설마 창천표국의 표사들 전부가 앞을 막아설 줄은 몰랐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이들의 마음을 얻었단 말인가?’
청무 진인은 담호에 대한 평가를 수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전까지 담호에 대한 그의 평가는 독불장군 그 자체였다. 무력만 강하지 세상 넓은 줄 모르고 혼자 날뛰는 선불 맞은 멧돼지 같았다.
선불 맞은 멧돼지는 공포의 대상이지, 타협의 대상이나 손잡을 존재가 아니었다. 그래서 누구와도 함께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눈앞의 광경을 보니 생각이 절로 바뀌는 것이다.
“이자들이 감히 균현에서…….”
“창천표국이 무당파를 우습게 보는 건가?”
무당파 도사들에게서 흉흉한 기세가 피어올랐다.
그들은 분노하고 있었다.
무당파의 영역에서 무당파의 배려로 영업하는 표국이 감히 자신들의 뜻에 반하는 행동을 하는 것 자체가 그들을 분노케 하는 것이다.
그렇게 무당파 도사들이 분노를 발산할 때였다.
“어디 오랜만에 하는 거라 잘할지 모르겠구나.”
청무 진인이 미소를 지으며 앞으로 나섰다. 그는 활활 타오르는 단 앞에 앉아 진언을 외우기 시작했다.
죽은 자들의 명복을 빌어 주는 것이다.
갑작스러운 그의 행동에 무당파의 도사들은 물론이고, 창천표국의 표사들까지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바라봤다. 하지만 청무 진인은 아랑곳하지 않고 진언을 끝까지 외웠다.
그에 흉흉했던 분위기가 조금은 가라앉았다.
담호는 말없이 그 광경을 바라봤다.
그래도 무당파의 장로가 명복을 빌어 주고 있었다. 죽은 자들에겐 아무런 의미가 없을지 모르지만 살아 있는 표사들에겐 큰 위안이 될 것이다.
실제로 담호의 앞을 막아선 표사들의 굳은 표정이 조금은 풀렸다.
“부디 좋은 곳으로 가시기를.”
그 말을 마지막으로 청무 진인이 뒤돌아섰다. 그런 그의 얼굴에는 옅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미흡하지만 최선을 다했습니다. 저분들이 부디 좋은 곳으로 가길 바랍니다.”
자신은 할 일을 다했다는 표정이었다.
굴욕스러울 수도 있지만, 그는 여전히 미소를 지우지 않고 있었다. 그의 눈은 자신이 담호의 말을 들었으니, 이제는 담호가 들을 차례라고 말하고 있었다.
담호가 잠시 그의 눈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가지.”
“감사합니다. 저희를 따라오십시오.”
청무 진인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더욱 짙은 미소를 지었다.
“담 대협!”
남우생이 담호를 우려 섞인 눈빛으로 바라봤다. 하지만 담호는 말없이 그를 지나쳐 갔다. 하지만 남우생은 섭섭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담호가 무사히 귀환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청무 진인을 필두로 무당파의 도사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그 한가운데 담호가 있었다.
정중히 초대받아서 가는 거지만, 포위당한 모양새였다.
“이렇게 보내도 되는 겁니까?”
“저희가 따라가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 광경을 본 젊은 표사들이 한마디씩 했다. 그러자 남우생이 고개를 저었다.
“그를 걱정하는 것이냐? 나는 차라리 무당파가 더 걱정이다.”
***
무당파로 올라가는 길은 잘 닦여 있었다.
깎아지른 듯한 낭떠러지의 연속인 화산파와는 자못 대비되는 풍경이었다. 무당파의 위세가 어느 정도인지는 산을 오르는 길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무당파는 예로부터 조정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 왔다. 무당에서 배출한 무인들 중 많은 이가 조정에 투신했고, 그들은 음으로 양으로 무당파를 후원했다.
그렇게 무당파는 조정의 비호 아래 세력을 키워 왔고, 그 덕에 같은 구대문파 내에서도 가장 화려한 전각 군과 성세를 자랑했다.
무당산을 오르는 길이 잘 정비된 것도 그와 같은 이유였다. 화려한 전각을 짓기 위해선 자재를 날라야 할 도로가 필요했고, 이 또한 조정에서 만들어 주었다.
지금 담호가 걷고 있는 바로 그 길이었다.
담호의 시선이 위로 향했다. 그러자 화려한 도관들이 보였다. 화산파의 전각들이 화산 곳곳에 흩어져 있는 것과 달리 무당파의 전각들은 한곳에 모여 있었다. 그래서 더욱 위엄 있어 보이는 것도 사실이었다.
무당파의 산문에는 그 유명한 해검지(解劍池)가 있었다.
무당파의 조사인 장삼봉을 존경하는 의미에서 갖고 있던 병장기를 풀어서 맡겨 놓는 곳이 바로 해검지다. 만일 해검지에 무기를 풀어 놓지 않으면 무당파는 적으로 간주한다.
해검지는 무당파의 자존심이자 적아(敵我)를 가리는 상징적인 곳이었다. 이곳에서 무당파에 대한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판별이 된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말이다.
하지만 담호는 특수한 경우였다.
그는 무기를 사용하지 않았다. 때문에 해검지에 풀어 놓을 무기도 없었다. 그래서 해검지를 지키는 무당파의 무인들은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마침내 무당파에 들어서자 연무장에 도열해 있는 수많은 무인들이 보였다. 언뜻 봐도 족히 천여 명은 넘어 보였다.
그들의 시선이 일제히 담호에게 꽂혔다.
무려 천 명이 넘는 이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 그것도 일반인이 아니라 무공을 익혀 눈빛이 형형한 자들의 시선이었다. 그 어떤 사람이라도 그들의 눈빛을 받으면 심신이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그들은 그런 의도로 담호를 노려보고 있었다.
‘네가 잘 났으면 얼마나 잘 났냐?’라는 마음가짐이 그들의 눈빛에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그때 담호가 고개를 들어 그들을 바라봤다. 일일이 눈을 마주친 것이 아닌 단순히 훑어보았을 뿐이다.
사아악!
순간 일대의 공기가 싸늘하게 식는 느낌에 무인들이 진저리를 쳤다.
‘짐승!’
담호의 눈빛을 본 순간 그들의 뇌리에 공통적으로 떠오른 생각이었다.
검은 장포를 펄럭이며 담호가 한 걸음, 또 한 걸음 옮겼다.
쿵! 스르륵! 쿵! 스르륵!
청석으로 깔린 연무장 바닥인지라 유독 발소리가 생생하게 울려 퍼졌다.
담호 특유의 엇박자 발소리를 듣는 순간 연무장에 모여 있던 무인들의 심장이 크게 요동쳤다.
마치 바늘로 심장을 쿡쿡 찌르는 것 같았다. 입술이 바싹바싹 마르고, 두 눈의 혈관이 터져 붉게 충혈됐다.
눈이 금방이라도 터질 듯 아파 왔다. 그래서 시선을 떼고 싶었다. 그런데 그럴 수가 없었다.
마치 아교로 눈꺼풀을 고정시켜 놓은 것처럼 눈조차 깜빡이지 못하고 담호를 바라봐야 했다. 연무장에 있는 무인들에겐 고문보다 잔혹한 순간이었다.
“무량수불!”
때마침 강력한 내공이 실린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면 그들은 언제까지고 담호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을 것이다.
“휴!”
“으음!”
그제야 사람들의 입에서 안도의 한숨이 터져 나왔다.
그들은 겨우 숨을 돌리며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바라봤다. 그곳에 범상치 않은 기세를 풍기는 노도사들이 있었다.
청월 진인을 비롯한 무당파의 장로들이었다.
방금 전 목소리는 바로 청월 진인이 내뱉은 것이었다. 무당파의 장문인으로서 부끄럽지 않은 내공이었다.
한편으로는 담호의 위세를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했다.
무당파의 장문인이 친히 마중을 나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있다고 해도 같은 구대문파의 장문인 정도가 와야만 한다.
무림맹이 창설될 때 직접 움직이는 대신 청허 진인만 보낸 것도 그와 같은 이유였다.
청월 진인이 직접 마중 나온 것은 그만큼 담호를 높이 평가한다는 반증이었다. 적어도 자신과 같은 급이라고 선포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청월 진인이 담호를 보며 빙긋 미소를 지었다.
“어서 오십시오, 담 대협. 이렇게 뒤늦게 무당에 모시게 되어 유감입니다. 균현에 오신 것을 진즉에 알았다면 조금 더 일찍 모셨을 텐데요.”
청월 진인의 음성은 매우 정중하면서 격식이 있었다.
그의 말을 듣는 무인들은 역시 무당파의 장문인다운 배포와 예의 있는 태도라고 했다. 거대 문파인 무당파의 장문인이 이렇게 낮은 태도로 누군가를 맞이한다는 것은 보통의 일이 아니었다.
청월 진인은 자신을 낮춤으로써 오히려 스스로의 격을 높였다. 보통 노회한 처세술이 아니었다.
담호는 말없이 청월 진인을 바라봤다.
보통의 무인이라면 발끈했을 광경이었다. 강호의 선배를 대하는 예의도 아니었고.
하지만 담호이기에, 권마이기에 모두가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가 상대를 높이는 이는 스승인 현소 진인 한 명뿐이었다. 그 외의 어떤 이에게도 그는 존경의 뜻을 표하지 않았다. 상대가 청월 진인이라고 해서 달라질 리가 없다는 것이 대부분의 사람들 생각이었다.
“왜 불렀지?”
그리고 사람들의 예상처럼 담호는 인사조차 하지 않고 본론을 꺼냈다.
“감히!”
“예의를 차려라.”
그에 무당파의 도사들이 발끈했다. 하지만 청월 진인이 손을 들어 그들의 행동을 자제시켰다.
“허허! 듣던 대로 성질이 급하기 짝이 없구려. 역시 담 대협답소이다. 담 대협과 강호의 현안을 의논하고 싶어서 그럽니다.”
“현안?”
“마교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긴밀한 협조가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아무래도 혼자 행동하는 것보다 여럿이 힘을 모으는 게 더 효율적이겠죠. 담 대협만 약속한다면 우리 무당파는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하겠습니다.”
“어떤 약속을 말하는 거지?”
“절대 무당파와 척을 지지 않겠다는 약속, 그리고 무림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약속입니다.”
청월 진인의 마지막 말은 내공을 실었기에 연무장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들었다.
그는 웃고 있었다.
가식이 아닌 진심을 담아 웃고 있었다.
무당산 전체에 거대한 올가미가 쳐진 것 같았다. 그 올가미는 담호를 중심으로 놓고 언제든 조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청월 진인은 무당파의 장문인으로서의 배포와 아량, 그리고 낮은 자세를 만인 앞에 보여 주었다.
담호가 어떤 대답을 하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청월 진인이 어떤 모습을 보여 주었는지가 더욱 중요했다. 결국 사람들은 청월 진인을 기억할 것이기에.
담호는 그런 청월 진인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무당파의 수장은 덕으로 뭇 사람들을 아우르는 덕장이 아니었다. 그리고 앞에 서서 싸우는 맹장도 아니었다.
“무당파의 수장은 그저 조금 머리 빠르게 돌아가는 여우에 불과했군.”
“…….”
순간 청월 진인의 얼굴이 돌덩이처럼 딱딱하게 굳었다.
그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설마 자신의 면전에서 이런 폭언을 들을 줄 몰랐기 때문이다.
“지금 뭐라 하였소?”
“여우라 했어.”
“허허! 여우라…….”
청월 진인의 목소리가 점차 차가워졌다. 그런 그의 눈동자에 한기가 스쳐 지나갔다.
“왜 그렇게 생각하시오?”
“그렇게 보이니까.”
“허허! 역시 이야기가 통하지 않는다고 하더니 진정 그렇구려. 이렇게 앞뒤가 꽉꽉 막혀 있을 줄이야. 화산파의 장문인도 참 힘들겠소. 통제되지 않는 무기는 오히려 주인을 상하게 하는 법인데.”
“무당은 그런 모양이지. 자파의 제자를 무기로 생각하고, 통제하려 하고.”
“입조심하시게나.”
순간 청월 진인의 목소리와 말투가 바뀌었다. 웃는 낯이 사라지고, 칼날처럼 날카로운 눈매와 입매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그가 다른 사람은 들을 수 없는 나직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강호는 자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우스운 곳이 아니야. 우리가 어떻게 지킨 강호인데. 이 강호를 지키기 위해 우리 무당이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렸는지 아는가? 무당이 아니었으면 지금의 강호도 존재하지 않았어. 자네는 우리에게 감사해야 해. 이제까지 강호를 지켜 온 우리에게 경외감을 표해야 한다네.”
“…….”
“그러니 마지막으로 권하겠네. 강호 정의를 지키기 위해 우리의 검이 되어 주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