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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권마-347화 (347/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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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7화 8장. 휘둘리며 살아갈 만큼 약하지 않다(1)

위잉!

갑자기 이명이 찾아왔다.

귀에서 울리는 소리의 근원지는 바로 청월 진인이었다. 그는 여전히 미소 짓는 얼굴로 담호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담호가 그의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무당의 검이 되어라?”

“그렇게 오해할 수도 있겠군. 정정하지. 무림의 검이 되게.”

“무슨 차이지?”

“말 그대로일세. 대의를 위해 앞장서 달라는 거지. 그러면 무당파가 자네의 힘이 되어 주겠다는 걸세. 자네가 원한다면 무림맹의 맹주도 될 수 있을 걸세.”

“…….”

담호는 말없이 청월 진인을 바라봤다. 그런 담호의 태도가 긍정의 신호라고 생각했는지 청월 진인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그리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네. 어렵게 생각할 것도 없네. 자네가 협조적으로 나온다면 우리도 협조하겠다는 것일세. 누구에게도 나쁠 것도 없고, 오히려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그런 관계가 되는 거지. 아울러 화산파와의 관계도 더욱 돈독해질 걸세. 우리 무당파는 화산파에 큰 지원을 할 마음이 있다네.”

삼 년 전 화산파는 봉문을 하면서 세상과의 교류를 끊었다. 때문에 많은 이들이 화산파가 회생 불가의 타격을 입었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무당파 역시 마찬가지였다.

무당파와 화산파 사이의 거리는 수천 리. 화산파가 봉문한 이상 그 속사정을 알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화산파가 모든 힘을 잃고 치욕스러운 봉문을 이어 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청월 진인이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은 채 담호의 입이 열리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담호의 입이 열렸다.

“그때도 그랬나?”

“뭐가 말인가?”

“일차 정마대전 때 말이야.”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겠군.”

“당시 전면에 나섰던 문파들은 모두 괴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었지. 화산파를 비롯해 많은 문파들이…….”

순간 청월 진인의 입가에 어려 있던 미소가 서서히 사라져 갔다. 담호는 그런 청월 진인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나는 궁금했어.”

“…….”

“당시 화산파는 중요 인사들을 모두 잃고 최악의 암흑기를 보냈는데, 무당파는 왜 그렇게 건재했는지 말이야.”

담호의 말이 이어지는 동안 청월 진인의 눈에서부터 붉은 기운이 서서히 번져 갔다.

“그런데 이제 알겠군.”

“…….”

“그때도 그렇겠지. 무당을 대신할 누군가를 내세웠을 거야. 무당을 대신해서 피를 흘려 줄…….”

“무당을 모욕하는 말은 그쯤에서 끝내게. 자네는 지금 천년 무당을 모욕하고 있네.”

“그렇게 보존한 전력으로 오늘날의 성세를 이뤘나? 자랑스럽겠군.”

“분명 경고했네. 자네는 넘어선 안 되는 선을 한참 넘고 있네.”

청월 진인의 눈에서 시작한 붉은 기운은 얼굴 전체로 번져 갔다. 인자하기만 하던 표정에 금이 갔다.

이제껏 그 누구도 감히 이렇게 제멋대로 말한 적이 없었다. 알아서 처신했고, 조심했다.

그는 항상 존중받았고, 경외의 시선만 받았다.

이렇게 공개적인 장소에서, 그것도 무당파의 영역에서 이렇게 누군가 그를 향해 날을 세우는 경험은 처음이었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표정에 분노가 담겼다.

“무당은 자네에게 모욕을 받아도 좋을 정도로 마음이 좋은 곳이 아니네. 그래도 계속하겠다면 자네의 사문인 화산에 그 죄를 묻을 것이네.”

“너희들은 화산의 문턱도 넘지도 못할 거야.”

“뭐라?”

“웬 줄 알아?”

“…….”

“오늘 무당산을 벗어나지도 못할 테니까.”

“갈(喝)!”

순간 청월 진인의 노성이 무당산에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그의 노성에 연무장에 모여 있던 무인들이 충격을 받고 안색이 변했다.

이제껏 청월 진인을 지켜 주던 가면이 깨져 나가는 순간이었다. 인자하면서도 부드러운 미소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무당파의 수장이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그의 얼굴은 험악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담호가 말했다.

“그래! 그게 진짜 당신 모습이야. 무당이란 벽 안에서 안주하는 옹졸한 늙은이.”

“감히 무당을 모욕하다니.”

쿠우우!

청월 진인의 전신에서 가공할 기세가 터져 나왔다.

순양무극공(純陽無極功)을 통해 쌓은 가공할 내공이 외부로 발산된 것이다.

“장문인.”

“으음!”

무당파의 장로들마저 기파에 휩쓸려 비틀거렸다. 하지만 정면으로 기파를 맞이하는 담호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

그렇게 가공할 기파도 담호에겐 하등의 영향을 끼치지 못하고 소멸됐다. 그에 청월 진인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자신의 생각보다 더 담호의 내공이 심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호지세(騎虎之勢)였다.

호랑이 등에 올라탄 이상 끝까지 가야했다.

노한 모습을 군웅에게 보였는데, 이제 와서 꼬리를 마는 모습 따윈 죽어도 보일 수 없었다.

그가 큰 소리로 외쳤다.

“진무칠자는 내 명을 받아라.”

그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연무장에 울려 퍼졌다.

“진무칠자, 장문인의 명을 받자옵니다.”

순간 무당파 도사들 속에서 일곱 명의 도사들이 튀어나왔다. 한 명, 한 명이 마치 잘 벼려진 명검처럼 날카로운 기세를 발휘하는 자들. 그들은 무당파의 수많은 도사들 중에서도 단연 발군의 존재감을 자랑했다.

진무칠자(眞武七者).

화산에 매화검수가 있다면 무당파엔 진무칠자가 있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무당파의 무력을 대표하는 자들이었다.

무당파에서 전략적으로 키운 무인들이었다. 특히 일곱 명이 펼치는 진무칠절진(眞武七絶陳)은 대일인 절진으로는 강호 최고의 위력을 자랑한다고 했다.

“진무칠자는 권마를 제압해 무당파의 위엄을 강호에 널리 알리거라.”

“장문인의 명을 이행합니다.”

진무칠자의 우두머리인 무궁이 힘차게 대답했다.

무궁은 청월 진인이 직접 가르친 제자였다. 비록 구무룡 중 한 명인 진무영에 밀려 강호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의 재능 또한 하늘을 찌를 정도로 출중했다.

무궁의 지휘 아래 진무칠자가 담호를 포위했다. 그들은 칠성좌(七星座) 형태로 담호를 에워싸고 있었지만, 정작 담호는 그들에겐 시선도 주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여전히 노기로 푸들거리는 청월을 향해 있었다.

“괜찮겠어? 이들이 모조리 죽어도.”

“네놈이 끝까지 혀만 살아 나불거리는구나. 뭐하느냐? 진무칠자는 어서 저 방자한 놈의 무릎을 꿇리지 않고.”

“존명!”

순간 진무칠자가 움직였다.

후웅!

그들이 담호를 중심으로 휘돌았다.

진무칠절진은 북극성을 중심으로 휘도는 일곱별의 움직임을 본떠 만든 절진이었다. 때문에 진무칠자의 움직임 역시 북두칠성을 빼닮아 있었다.

쿠우우!

담호에게 엄청난 압력이 가중되면서 검은 장포가 펄럭였다. 하지만 담호는 석상이 된 것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여전히 무당파의 장문인인 청월 진인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그 모습이 청월 진인을 꺼림칙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미 던져진 주사위였다. 되돌릴 수는 없었다.

애당초 그가 굳이 무리해서 담호를 무당파로 데려온 것 역시 담호를 응징해 무당파의 위상을 드높이려던 것이었다.

천하의 권마를 굴복시킨다면 무당파의 위상은 그만큼 높아질 것이고, 호북성의 맹주로서 위상이 더욱 굳건하게 될 것이다.

그때 무궁이 힘차게 외쳤다.

“개진(開陣). 칠성무적(七星無敵).”

촤하학!

그의 외침에 진무칠자가 검을 빼 들어 담호를 공격했다. 순간 별무리 같은 눈부신 빛이 그들의 검에서 터져 나왔다.

“우와아!”

“역시 진무칠자구나. 저런 검기라니.”

그 모습을 본 무인들이 감탄사를 터트렸다.

그렇지 않아도 엄청난 위력을 지닌 검기가 진무칠절진에 의해 배가되었다.

넉 자 가까이 늘어난 검기가 담호의 요혈을 공격해 왔다.

콰콰콰!

그들의 공세는 마치 톱니바퀴 돌아가듯 한 치의 빈틈도 없이 맞물려 들어왔다. 보통의 무인들이라면 그들의 공세에 기가 질려 머릿속이 새하얘졌을 것이다.

하지만 상대는 담호였다.

당금 무림에서 그보다 많은 피를 흘리고, 싸운 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진무칠자 딴에는 완벽하다고 생각하겠지만, 담호의 눈에는 허점이 서너 군데는 보였다. 실전을 경험해 보지 않았기에 쓸데없이 동작이 너무 컸다.

진무칠자는 타인들이 보기에 가장 화려한 초식과 진의 운용으로 담호를 제압하려 하고 있었다.

‘권마를 제압하고 무당파의 위상을 드높인다.’

‘이제 천하는 무당파가 얼마나 큰 힘을 가지고 있는지 알게 될 것이다.’

담호를 공격하는 진무칠자의 눈에 희열의 빛이 떠올랐다.

그들의 눈에는 담호가 피를 뿌리며 무릎을 꿇는 모습이 환히 보이는 듯했다.

그들이 그렇게 달콤한 환상에 젖어 있는 순간 담호가 움직였다.

쾅!

무당산에 뇌음이 울려 퍼졌다.

“커억!”

뒤이어 진무칠자 중 한 명인 설궁의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의 손에서 찬란한 검기를 발산하던 검은 마치 유리처럼 산산이 부서져 있었고, 가슴은 움푹 함몰되어 있었다.

충보에 이은 파성추.

단 일격에 진무칠자의 막내인 설궁이 중상을 입은 것이다.

“막내야.”

“설궁!”

뒤늦게 다른 진무칠자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중 몇 명이 설궁에게 손을 뻗었다. 일단 부축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그로 인해 진이 살짝 흐트러졌다.

그들은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담호와 같은 절대고수에겐 영원 같은 시간이었다.

담호가 폭강을 온몸에 두른 채 그들 사이로 뛰어들었다.

콰아아!

폭풍이 휘몰아쳤다.

진무칠절진으로 만들어 낸 폭풍이 순식간에 담호가 만들어 낸 폭풍에 잡아먹혔다. 그 충격에 진무칠자가 일제히 비틀거렸다.

진무칠자의 우두머리 무궁이 급히 소리쳤다.

“정신차려! 칠성회절(七星回節)을 펼친다.”

턱!

그 순간 담호의 두 손이 그의 멱살을 움켜잡았다.

“컥!”

담호의 손길이 어찌나 강렬한지 순간적으로 무궁의 숨이 턱 막혀 왔다. 하지만 무궁은 진무칠자였다. 놀랐을망정 당황하지는 않았다. 그는 면장을 펼쳐 담호의 손을 떨쳐 내려 했다.

콰득!

그러나 그가 펼친 면장은 폭강에 흔적도 없이 소멸되고 오히려 무궁의 손목이 탈골되었다. 그리고 두 다리가 무처럼 대지에서 뽑혀져 올라갔다.

담호가 지천격을 펼친 것이다.

“안 돼!”

“사형!”

진무칠자가 급히 무궁의 손발을 잡았다. 일단 지천격이 펼쳐지면 목숨을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을 그들도 알고 있는 것이다.

쿠우우!

“크윽!”

“아, 안 돼!”

하지만 그들이 모두 붙잡고 늘어졌음에도 무궁이 담호에게 딸려 가는 것은 막지 못했다. 오히려 그들까지 한꺼번에 딸려 갔다.

패애앵!

담호의 허리가 팽이처럼 돌아갔다. 무궁을 필두로 나머지 진무칠자까지 딸려 왔다. 그제야 진무칠자가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끼고 손을 놓으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담호의 몸에서 형성된 기이한 접인력(椄引力)이 그들을 놓아주지 않은 것이다.

진무칠자, 일곱 명이 머리부터 바닥에 처박혔다. 지천격이 작렬한 것이다.

콰아아앙!

굉음과 함께 일곱 명이 바닥에 처박혀 나뒹굴었다.

머리가 깨지고, 팔다리가 기형적으로 꺾인 채 그들의 몸이 한데 뒤엉켰다. 몇몇은 입을 벌린 채 침을 흘리고, 몇몇은 눈을 까뒤집고 정신을 잃었다.

무당파의 미래라 불리는 진무칠자의 치욕스러운 모습에 군웅들이 숨을 죽였다.

진무칠절진이 펼쳐지고, 파훼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그야말로 순식간에 불과했다. 군웅들이 보기엔 그저 눈 한 번 깜빡거렸을 뿐인데 진무칠자가 전멸한 형국이었다.

“으으!”

“말도 안 돼. 진무칠자가 저렇게 허무하게…….”

그들의 얼굴엔 믿을 수 없다는 빛이 역력했다. 하지만 그들의 놀람이 아무리 대단해도 무당파의 도사들에 비할 수는 없었다.

특히 청월 진인의 얼굴은 그야말로 썩은 내가 가득 풍겼고, 눈동자는 폭풍이라도 만난 것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진무……칠자가…….”

그가 무당파의 미래라고 자신했던 진무칠자가 처참한 모습으로 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모습은 그에게 엄청난 충격과 공포를 안겨 주었다.

그때였다.

쿵!

담호가 청월 진인을 향해 오른발을 내디뎠다.

스르륵!

뒤이어 왼쪽 다리가 바닥을 끄는 소리가 연무장에 울려 퍼졌다.

꿀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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