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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권마-348화 (348/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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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8화 8장. 휘둘리며 살아갈 만큼 약하지 않다(2)

청월 진인은 도무지 담호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연무장에 모인 군웅들의 수만 무려 천 명이었다. 본산 곳곳에 흩어져 있는 무당파의 제자들까지 더한다면 수천 명이나 무당산에 있었다.

개인 간의 무력 차이는 존재했지만, 그들은 모두 무공을 익힌 무인이었다. 지금 담호의 행동은 그 모든 무인들을 적으로 돌리는 행위였다.

“왜?”

그는 이해할 수 없었다.

조금만 더 융통성을 발휘하면 이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으며 강호의 영웅이 될 수도 있었다.

자신과 손을 잡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이던가?

눈만 딱 한 번 감으면 되는 일이다.

자존심 상할 일도 없고, 누군가 손해 보는 일도 없다.

서로가 좋고, 나쁜 일은 없는 그런 일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격렬하게 대립각을 세우다니.

그 순간에도 담호는 자신을 향해 똑바로 걸어오고 있었다.

천하의 무당파 장문인을 향해서.

다리를 절지언정 그는 단 한 번도 멈추지 않았다.

청월 진인이 자신도 모르게 물었다.

“왜 그렇게까지 하는 건가? 왜 우리의 제안을 거절하는 건가?”

“그게 옳으니까.”

담호는 한순간도 망설이지 않고 그렇게 대답했다.

겉으로는 그리 표 나지 않았지만 그는 지금 무척이나 화가 난 상태였다.

무림맹이 마교에 넘어간 후, 곳곳에서 마도가 창궐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고초를 겪는 것은 힘없는 백성들뿐이었다. 하지만 정도를 지향하는 문파들이 그에 대한 해결 의지를 보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최소한 그가 귀주성에서 이곳 호북성까지 오는 동안 본 광경은 늘 똑같았다.

그 사실이 그를 화나게 만들었다.

담호는 알고 있었다.

스스로가 정의로운 사람이 아니란 것을. 그리고 정의로운 사람이 될 생각도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강호가 제멋대로 흘러가는 것을 두고 볼 생각도 없었다.

강호는 너무나 오랫동안 정체되어 있었다.

마치 고여서 흐르지 않는 연못처럼 모든 것이 움직이지 않는다.

기존의 질서를 장악한 자들은 가진 것을 지키기에만 급급할 뿐이다. 그들은 살찐 물고기가 되었다.

너무 커져서 다른 물고기들이 비집고 들어올 만한 공간조차 없게 만들었다.

구대문파와 오대세가가 바로 그 물고기들이다. 그리고 청월 진인은 비좁은 우물을 차지하고 앉아 있는 살찐 물고기들의 수장이었다.

자신이 지배하고 있는 우물이 최고인 줄 아는 자.

외부로 통하는 수로를 꽉 막고 앉아 모든 것을 통제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자유로워야 할 강호는 생명력을 잃고 정체되어 있었다.

그래서는 싸울 수 없었다.

마교는 물론이고, 천사교와도.

강호는 더 강해져야 했다.

연못 안의 살찐 물고기들 따윈 필요 없었다. 그래서 담호는 결심했다.

살찐 물고기가 주인인 연못에 파문을 일으키기로.

포악한 물고기가 들어가면 연못의 물고기들은 살기 위해 발버둥 칠 것이다.

살찐 물고기의 수장, 청월 진인의 흔들리는 눈동자가 보였다.

무당파의 제자들은 물론이고, 장로들에게도 단 한 번도 보이지 않던 모습이었다.

담호는 청월 진인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는 겨우 포악한 물고기 정도가 아니었다.

그는 거대한 악어(鰐魚)였다.

쿠우우!

담호가 움직이자 무당파라는 연못에 거대한 파문이 생겨났다. 그 울림은 무당산을 송두리째 뒤흔들고 있었다.

군웅들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그것은 무당파의 도사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이제까지 단 한 번도 없던 거대한 도전과 폭풍에 직면해 있었다.

담호가 몰고 온 폭풍과 살의가 그들을 향하고 있었다.

“담 대협!”

가공할 살의를 정면에서 맞는 무당파 제자들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 있었고, 장로들마저 턱수염만 부들부들 떨 뿐 함부로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은 설마 담호가 이렇게 대놓고 적의를 드러내 놓을 줄 몰랐다. 이대로 담호와 충돌했다가는 득보다 실이 월등히 많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래서 쉽게 움직이지 못했다.

보다 못한 무당파의 속가제자인 질풍무영검(疾風無影劍) 이산하가 앞으로 나섰다.

“이쯤에서 그만하시지요. 담 대협! 이 이상 서로 간에 감정이 상해 봐야 좋을 게 뭐가 있겠습니까?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이쯤에서 화해하시지요.”

딴에는 중재하겠다고 큰 용기를 내서 꺼낸 말이다. 하지만 돌아온 담호의 대답은 그의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었다.

“비켜!”

“무, 무슨…….”

“죽기 싫으면.”

“다, 담 대협?”

이산하의 목소리가 절로 떨려나오고, 안색이 새하얗게 질렸다.

“상관없는 자는 나서지 않는 게 좋아. 죽기 싫으면.”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크악!”

쾅!

순간 이산하가 외마디 비명과 함께 뒤로 튕겨 나갔다. 마치 투석기에서 쏘아진 돌덩이처럼 튕겨 나간 이산하는 연무장의 벽에 부딪친 후 그대로 엎어졌다.

정신을 잃은 채 간헐적으로 푸들거리다가 숨이 끊어지는 이산하를 본 군웅들은 충격에 빠졌다. 개중에 몇 명은 분노해 앞으로 뛰어나왔다.

“권마!”

“감히 무당산에서 살상을 하다니.”

그들은 분노를 참지 못하고 담호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검이 채 반도 휘두르기 전에 뇌음이 울려 퍼졌다.

콰쾅!

기세 좋게 달려들던 무인들이 피를 뿌리며 뒤로 날아갔다. 이번엔 그 흔한 비명도 없었다.

그들은 군웅들 사이에 처박혀 미동도 없었다. 즉사한 것이다.

“이노옴!”

“감히!”

또다시 몇 명의 무인들이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들 역시 먼젓번 무인들과 마찬가지로 검을 휘두르기도 전에 당하고 말았다.

그 누구도 담호의 걸음을 멈추게 하지 못했다.

“덤비면 죽을 거야. 무당파와 상관없는 자들은 모두 빠져.”

담호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연무장에 울려 퍼졌다.

그 광오한 말에도 군웅들은 할 말을 잃었다.

무공의 고하 문제가 아니었다.

담호가 발산하는 포악한 기세에 수많은 군웅들이 압도당한 것이다.

군웅들이 서로의 눈치를 봤다.

강호를 지키기 위해 모였다고 하지만, 이들 중에 진정으로 목숨을 걸고 싸울 용기를 가진 자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의기를 갖고 있는 자들 중에도 헛되이 목숨을 버리고 싶은 자들 또한 극히 드물었다.

담호와 싸우다가 죽는 것은 개죽음이었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그야말로 헛된 죽음.

그래서 그들은 나서는 것을 망설이고 서로의 눈치를 봤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제일 난감해진 이는 바로 무당파의 도사들이었다.

군웅들과 달리 무당파는 그들의 집이나 다름없었다.

담호가 무섭다고 집을 두고 도망갈 수도 없었고, 맞서 싸워도 큰 피해 없이 이길 수 있다는 보장이 없었다.

쿵! 스르륵!

담호의 불길한 발걸음이 그들의 심령을 거칠게 뒤흔들고 있었다.

현문정종의 내공을 익힌 그들이었다. 때문에 평소 쉽게 흔들리지 않는 마음의 공부가 되어 있다고 자부했었다.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오만한 생각이었는지 담호와 맞닥트리는 순간 알게 되었다.

담호와 같은 절대 강자의 무서움은 직접 부딪쳐 보기 전에는 알 수 없다. 그와 같은 강자의 기세 속에서도 평정심을 유지해야만 제대로 현문정종의 내공을 익혔다고 할 수 있었다.

압박감을 견디다 못한 청월 진인이 외쳤다.

“권……마! 정녕 끝까지 가 보겠다는 건가? 후회하지 않겠느냐?”

“나는 후회 따윈 안 해. 설령 여기서 죽어도…….”

“…….”

“눈앞에 싸워야 할 적이 있어. 거기에 무슨 계산이 필요하지?”

무당파를 적으로 규정하는 담호의 말에 청월 진인은 할 말을 잃었다.

‘미쳐도 정말 단단히 미친놈이구나. 이렇게 죽자 살자 덤벼들다니.’

미친놈이 천하를 아우르는 무력까지 가지고 있으니 이보다 큰 재앙이 없었다.

적어도 청월 진인이 아는 한도 내에서는 저런 자가 없었다.

청월 진인의 알고 있는 규칙에서 벗어난 자.

그가 물었다.

“당신 무인 아니야?”

너무나 단순한 물음이었다.

콰쾅!

그 순간 청월 진인의 머릿속에 벼락이 쳤다. 그의 눈가가 파르르 결련을 일으켰다.

청월 진인은 그제야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무당은 오랫동안 강호의 정상에서 군림해 왔다. 그 결과 자신들만의 규율과 법칙을 만들어 냈다.

무당파를 비롯해 군림하는 자들에게 유리한 법칙을.

그 법칙 안에서 청월과 장로들은 성장했다.

즉 자신들에게 유리한 법칙 안에서 싸움을 해 온 것이다.

반면 담호는 밑바닥에서부터 기어올랐다. 그는 기존의 규칙에서 벗어난 자.

규칙 밖에 있는 자였다.

그를 상대하려면 이쪽 역시 이제까지 누려 왔던 모든 기득권과 규칙의 보호를 벗어던져야 했다.

즉 악밖에 남지 않은 개싸움을 해야 한단 말이다.

격조 높은 무당파의 도사들이 진흙탕을 굴러야 하는 것이다.

자신이 담호를 불러들인 것인 줄 알았는데, 사실은 담호가 만든 판이었다. 이제야 그 사실을 깨닫게 된 청월 진인이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허허허!”

담호는 진흙탕 싸움을 원하고 있었다.

이제까지 누려 왔던 모든 것을 벗어던지고, 아무런 규칙도 없는 원초적인 싸움을 하자고 무언의 강요를 하고 있었다.

문제는 담호의 강요를 거절할 명분이 없다는 것이다. 아니, 거절하고 싶지 않았다.

쿵쾅! 쿵쾅!

심장이 거세게 뛰었다.

육십 년이 넘게 살면서 단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한 심장의 격렬한 고동이 느껴졌다.

“좋다. 모든 것을 버리겠다. 무당파의 장문인이란 신분도, 늙은 말코의 고집도. 나 역시 무인이니까.”

청월 진인이 앞으로 나섰다.

“장문인!”

“그러실 것 없습니다, 장문인.”

장로들이 그의 팔을 잡으며 만류했다.

“그렇습니다, 장문인. 저런 마인의 괴변에 휩쓸려 나설 것 없습니다.”

“저희 장로들만 나서도 되는 싸움입니다.”

청월 진인이 고개를 흔들며 머리에 쓰고 있던 도관을 벗었다.

“장문인.”

“무슨?”

뒤이어 화려한 도복을 벗어던졌다.

그에게 남은 것은 안에 받쳐 입었던 새하얀 옷과 검 한 자루뿐. 그 외 무당파의 장문인을 상징하던 모든 것을 버렸다.

스릉!

검을 뽑고, 검집은 바닥에 버렸다.

검집을 버린다는 것은 즉 목숨을 버릴 각오를 했다는 뜻.

청월 진인이 담호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몸에 걸쳤던 무거운 것을 벗어 던지니 걸음이 가벼웠다.

구름이 흐르는 듯한 경신법, 유운신법(流雲身法)이었다.

유운신법을 펼친 청월 진인은 순식간에 담호 지척에 다다랐다.

그가 검을 휘둘렀다.

화려한 초식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휘두르는 검의 원래 용도에 충실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공기가 잘려 나갔다.

쉬아앙!

대기가 비명을 지르며 요동쳤다.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검기가 담호를 덮쳐 왔다.

담호가 충보에 이어 파성추를 펼쳤다.

쩌어엉!

검기와 주먹의 격돌에 그렇지 않아도 불길하게 요동치던 대기가 터져 나갔다.

씨이잉!

청월 진인이 연신 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무형의 검기가 점차 형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검기가 쌓이고 쌓여 태극문양을 허공에 만들어 냈다.

“헛! 태극검(太極劍)이다.”

“오오!”

그 광경을 본 무당파 무인들 입에서 대번에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모두가 알다시피 무당파 최고의 검공은 태극혜검(太極慧劍)이었다. 하지만 태극혜검의 원류를 파헤쳐 보면 태극검이 있었다.

태극검은 무당파가 무당산에 둥지를 튼 초창기부터 존재해 왔던 검공이었다. 무당파의 가장 기초가 되는 검공 중 하나, 때문에 모두가 더 상위의 검공을 익히기 위한 계단이나 디딤돌 정도로 생각하지 깊게 파고들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청월 진인은 달랐다.

그는 수많은 무당파의 검공 중에서도 유독 태극검에 집착하고, 몰두했다. 그리고 평생을 태극검 하나만을 붙들고 익혔다.

‘혼돈(混沌)은 음양(陰陽)을 낳고, 음양은 사상(四相)으로 분화한다. 사상은 오행(五行)을 태동시키고, 오행은 육합(六合)으로 퍼져 나가나 곧 하나로 귀일하니, 그것이 곧 태극(太極)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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