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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권마-349화 (349/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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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9화 8장. 휘둘리며 살아갈 만큼 약하지 않다(3)

태극검은 단순했다.

허공에 커다란 태극 문양을 그리는 것이 초식의 전부였으니까. 하지만 그 안에 무당파 모든 검공의 묘리가 담겨 있었다.

면면부단(綿綿不斷), 끊임없이 이어지고…….

동심종신(動心從身), 마음이 움직이면, 몸이 따르니…….

즉천하수중(卽天下手中), 곧 손바닥 안에 천하를 둔다.

슈우우!

무당산 전체를 짓누를 듯한 엄청난 기운이 담호를 향해 밀려왔다.

“오오!”

“저, 저런 검공이…….”

천지를 압도하는 검공의 위용에 무당파 도사들이 환호를 보내고, 군웅들은 넋이 빠진 채 바라봤다.

청월 진인이 펼친 태극검은 그야말로 완벽했다.

최소한 군웅들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하지만 담호에겐 아니었다.

청월 진인의 태극검은 분명 압도적인 위용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초식은 마치 무공 교두가 펼치는 것처럼 올곧고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었다. 연무장이나 수련실에서 좋은 스승의 지도 아래 제대로 익힌 무공일 뿐, 그 안엔 그 어떤 치열함이나 고민의 흔적은 존재하지 않았다.

담호가 태극의 중심에 있는 청월 진인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 순간 태극 한가운데서 거대한 유형의 검이 불쑥 일어났다. 청월 진인의 공력이 집약된 검강이었다.

거대한 검강은 천신의 검처럼 그대로 담호를 찍어 내려왔다.

우웅!

그 순간 담호의 몸이 미세하게 떨렸다.

독행류 독문 방호기공인 방패(防牌)였다.

방패에 풍뎅이의 둥근 몸체를 본떠 만든 금구자(金龟子)의 묘리까지 더해졌다.

직후 검강과 담호의 몸이 격돌했다.

츠캉!

사람들은 담호의 몸이 세로로 두 동강이 나는 것을 보았다. 거대한 검강은 담호의 몸을 두 동강 낼 기세로 대지를 내리찍었다.

콰르릉!

청석을 깐 연무장 바닥에 거대한 균열이 생기며 일대가 마치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흔들렸다. 그야말로 가공할 위력이었다.

하지만 검강을 펼쳐 낸 청월 진인의 표정은 그리 좋지 않았다. 다른 이들의 눈에는 어떻게 비쳤는지 몰라도, 검을 펼친 당사자인 그는 알고 있었다.

자신이 펼친 회심의 검격이 빗나갔음을.

그는 분명 정석적으로 검공을 펼쳤다. 하지만 담호의 몸에 격중 하는 순간 미세한 떨림과 곡선으로 인해 타점(打點)이 미묘하게 흐트러졌다. 그 결과 그의 검강은 담호를 사선으로 비껴 나가 대지에 직격하고 말았다.

‘검강을 비껴 내다니? 이런 기사가…….’

청월 진인의 수염이 푸들거리고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는 급히 검을 휘수하며 태극검의 방어식을 펼치려 했다.

태극은 태극검의 시작이자 끝. 방어식 역시 태극 문양을 그리는 것에서 시작했다.

청월 진인의 몸이 유려하게 회전하며 태극 문양을 만들어 냈다.

쩌어엉!

“큭!”

그러나 채 반도 태극 문양을 만들어 내기 전에 담호의 일격이 그의 검에 작렬했다.

단양타의 일격이었다.

단양타는 파성추나 단공벽처럼 강렬한 위력을 갖지는 않았다. 하지만 채찍처럼 뻗어 나가는 주먹질은 불가사의한 각도로 휘어져 예측 불가의 궤도를 만들어 냈다.

쉬쉬쉭!

담호는 연신 단양타를 날렸다.

청월 진인의 팔이 어지럽게 움직였다. 그는 위력이 큰 초식을 쓰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임기응변으로 대응했다. 그 때문에 움직임이 크게 흔들리고 말았다.

결국 청월 진인은 견디지 못하고 뒤로 물러났다. 일단 후퇴한 뒤 호흡을 가다듬으며 다시 기회를 노리려는 것이다.

하지만 그가 물러난 만큼 담호가 다가왔다.

단양타를 펼치기 위해 가볍게 쥐었던 주먹이 어느새 돌덩이를 움켜잡은 것처럼 변했다.

삼격포영권(三擊砲砲影拳), 천금마옥에 갇혔을 때 얻은 마교의 절학이었다.

콰콰쾅!

마치 화포를 쏘는 것처럼 강렬한 주먹질이 연이어 세 번이나 펼쳐졌다.

“크흡!”

청월 진인의 몸이 크게 흔들렸다.

강렬한 충격은 그의 내부를 뒤흔들어 놓았다. 내장이 진탕되는 충격에 그는 하마터면 검을 놓칠 뻔했다.

‘이럴 수가!’

청월 진인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담호가 펼치는 무공들은 모두 독행류의 기본이 되는 것들뿐이었다. 진짜 큰 위력을 가진 초식들은 펼치지도 않은 것이다. 그런데도 청월 진인을 서서히 무력화시키고 있었다.

마치 고양이가 쥐를 가지고 놀듯 그렇게 말이다.

청월 진인으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치욕스러운 일이었다.

무당파의 수장이자 지존인 자신이 이렇게 무기력하게 당할 줄은 정말 몰랐다.

청월 진인에겐 악몽 같은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의 악몽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쾅!

담호의 발이 그의 옆구리를 강타했다.

독행류 각법의 정점에 서 있는 충각(衝脚)이었다.

급히 호신강기를 펼쳐 방호했지만, 그 충격은 옆구리를 통해 전신을 관통했다.

“커헉!”

청월 진인이 피를 토하며 삼 장이나 물러났다. 그런 그의 안색은 핼쑥하게 질려 있었다.

그의 흔들리는 눈동자에 검은 머리칼을 흩날리며 쇄도하는 담호의 모습이 맺혔다.

거대한 짐승이 커다란 어금니를 드러낸 채 덤벼드는 것 같았다.

모골이 송연해지며 겁이 왈칵 났다.

그는 단 한 번도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없었다.

그를 대신해 싸워 줄 검(劍)은 많고 많았다.

가까이에는 호북제일검인 청허 진인이, 멀리는 무당파의 속가제자들까지. 그가 실질적으로 검을 들고 싸울 일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무당파의 장문인 정도 되는 자가 검을 들고 직접 싸우는 일이 온다면, 그것은 무당파가 완전히 몰락했거나 궁지에 몰렸을 때뿐이다.

그리고 지금 청월 진인은 극도의 궁지에 몰렸다.

콰아아!

순간 공기가 변했다.

공기 전체가 바늘이 되어 피부를 쿡쿡 찌르는 듯한 느낌, 마치 온 세상이 그에게 적개심을 보이는 듯했다.

‘온다.’

온몸에 소름이 일어났다.

청월 진인은 입술을 질겅 깨물며 태극검의 최고 초식인 태극만우주(太極滿宇宙)를 풀어내려 했다. 하지만 그의 검은 초반부터 담호의 주먹에 막혔다.

쿠콰콰콰!

그리고 폭풍이 몰아쳤다.

육합혈산하(六合血山河), 단 한 호흡 사이에 이십사 연격을 날리는 독행류의 최종장이 펼쳐진 것이다.

일격, 일격이 쌓여 갔다. 그리고 청월 진인의 몸이 무너져 내렸다.

쩌엉!

다섯 번째 주먹이 작렬했을 때 들고 있던 검이 유리처럼 산산이 부서져 사방으로 비산했다.

쾅!

여섯 번째 주먹질에 관자놀이를 얻어맞고 청월 진인의 머리가 튕겨 나갔다. 눈에 검은자가 사라지고 흰자만 남았다. 강렬한 충격에 정신이 날아간 것이다.

그의 몸이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었다.

이쯤에서 멈출 만도 하건만 담호는 그렇게 쉽게 청월 진인이 쓰러지게 내버려 두지 않았다. 그의 일곱 번째 연격이 청월 진인의 숨통을 끊기 위해 날아왔다.

“장문인!”

“멈춰라! 이 악마야.”

보다 못한 무당파의 장로들이 몸을 날렸다.

어떻게 해서든 정정당당하게 싸우려던 장문인의 의지야 어떻든 간에 일단 살려 놓고 봐야 했다.

슈슈슉!

무당파의 장로 다섯 명이 펼친 검공이 일제히 담호를 향해 쏟아졌다. 그 순간 담호의 몸 주위로 사나운 기류가 일어나 휘돌았다.

폭마경을 펼친 것이다.

쿠콰콰콰!

사나운 폭강이 일대를 휘감고 터져 나갔다.

“크아악!”

“으헉!”

비명과 함께 담호를 공격했던 장로들이 튕겨 나왔다. 피투성이가 된 채 바닥에 꿈틀거리는 장로들의 모습은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장로님!”

“멈추지 못하겠느냐?”

“놈을 죽여랏!”

장문인에 이어 장로들까지 당하는 모습을 본 무당파의 제자들 눈이 뒤집혔다. 그들은 이제까지의 두려움도 잊고 일제히 담호를 향해 덤벼들었다.

그런 무당파 제자들의 모습에 군웅들이 망연자실한 표정이 되었다.

불과 반나절 전까지만 하더라도 강호의 정의를 지키겠다는 기치 아래 질서 정연하게 회동했었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힘을 모으면 마교를 몰아낼 수 있다는 희망에 차있었다.

하지만 담호 단 일인에 의해 장내는 아수라장으로 변해 있었다. 이곳 어디에서도 희망과 질서 따윈 찾아볼 수 없었다.

담호 단 일인이 만들어 낸 참극이었다.

그들의 마음속에 절망과 분노가 동시에 떠올랐다. 오기가 마음속에서 씨앗을 싹 틔우는 순간이었다.

“놈을 죽이자.”

“권마! 이 미치광이야.”

수많은 군웅들이 무당파의 행사에 동조했다.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수의 무인들이 해일처럼 밀려왔다. 담호는 우두커니 서서 그 모습을 바라봤다.

수많은 이들의 적의와 절박함, 분노가 공기를 타고 피부로 생생하게 전해졌다.

장내는 이미 혼돈의 도가니로 돌변해 있었다.

순간 담호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인간적인 감정을 거의 드러내지 않는 담호였기에 그의 웃음은 더욱 섬뜩하게 느껴졌다.

그가 그토록 원하던 광경이었다.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드러낸 날것 그대로의 강호.

여기엔 그 어떤 계산도, 몸 사림도 존재하지 않았다.

검 한 자루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분노에 이성을 불태우는 강호인들의 모습은 장엄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봐줄 생각 따윈 전혀 없었다.

쿠콰콰!

다시금 그의 주위로 폭강이 휘돌았다. 그 상태 그대로 담호는 무당파의 도사들과 군웅들을 향해 몸을 날리려 했다.

그때였다.

“모두 멈추게.”

츄화학!

무당산을 쩌렁쩌렁 울리는 외침과 함께 엄청난 검기가 담호와 군웅들 사이로 가로질렀다.

“크흡!”

“음!”

담호를 향해 해일처럼 밀려들던 군웅들의 움직임이 딱 멎었다. 그들과 담호 사이를 갈라놓은 선(線)때문이었다.

연무장을 가로지르는 기다란 선. 마치 대지의 상흔처럼 이어진 선은 무당파 도사들과 군웅들의 뜨겁게 달궈졌던 마음을 차갑게 식히기 충분했다.

“모두 진정하게나.”

그때 신선의 풍모를 갖춘 노도사가 그들 사이로 떨어져 내렸다.

“사, 사숙?”

“청허…… 진인이시다.”

사람들이 그를 알아보고 웅성거렸다.

그들의 말처럼 노도사는 바로 호북제일검이라 불리는 청허 진인이었다.

그는 군웅들과 담호 사이를 막아선 채 씁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담호의 발치에 쓰러져 있는 장문인과 장로들의 모습이 보였다. 비록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래도 그와 수십 년을 동고동락한 사형제들이었다.

그런 이들이 담호에게 당해 쓰러져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는 이 자리에 있는 누구보다 냉정했다.

사태를 명확히 파악할 줄 알았고, 냉철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이성이 있었다.

그가 담호에게 말했다.

“그쯤 하시게나.”

“…….”

“염치없지만…… 부탁일세. 이쯤에서 멈춰 주시게나.”

청허 진인의 목소리가 절로 떨려 나오고 있었다.

그는 알고 있었다.

담호의 투지는 아직 사그라들지 않았다는 것을.

새까만 머리에 새까만 장포를 입고 있는 저 권마는 끊임없이 투쟁을 원하는 괴물이었다.

싸우고, 또 싸우고…….

오직 투쟁으로만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할 수 있는 괴물.

같은 편일 땐 누구보다 믿음직하지만, 적일 때는 재앙이 될 수밖에 없는 그런 존재였다.

청허 진인은 그런 사실을 삼 년 전에 깨달았고, 이제까지 무당파에 계속해서 경고했었다. 하지만 청월 진인을 비롯한 무당파의 수뇌부들은 그의 경고를 무시했고, 그 결과 이렇게 어마어마한 대가를 치르게 되었다.

청허 진인이 주춤거리고 있는 무당파 제자들에게 외쳤다.

“무얼 하고 있느냐? 어서 장문인과 장로님들을 모시지 않고. 요상단을 복용시켜라.”

“예? 예!”

청허 진인의 호통에 정신이 번쩍 든 무당파의 도사들이 급히 청월 진인 등을 부축했다. 방금 전까지 그들을 지배하고 있던 투지와 광기는 이미 사라지고 존재하지 않았다.

담호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결론적으로 청허 진인의 등장으로 무당파와 군웅들의 피해는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담호가 원하던 상황과는 거리가 있었다. 그래서 불만일 수밖에 없었지만, 담호의 흥도 사라졌다.

“나와 함께 가세나. 자네에게 꼭 보여 주고 싶은 분들이 있다네.”

청허 진인이 그런 담호에게 손을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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