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1
351화 1장. 세월이 모두를 현명하게 만들지는 않는다(1)
담호의 시선이 그들을 훑었다.
그 어떤 감정도 내비치지 않는 무감각한 눈동자에 그들의 모습이 하나하나 맺혔다.
부르르!
그의 시선이 몸에 닿는 순간 전대의 장로들이 하나같이 몸을 떨었다.
거의 백여 년을 살아온 도사들이었다. 명문 무당파의 무공을 극에 달하도록 익히고, 천수를 누려 온 그들은 겨우 눈빛 하나에 위축될 만큼 내공이 약하지 않았다.
하지만 담호의 눈빛은 달랐다.
수없이 죽음의 경계를 오간 끝에 얻은 그의 눈빛에는 그동안 감당해야 했던 삶의 무게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무당파라는 높은 담장 아래에서 안온한 삶을 살아온 노도사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얻을 수 없는 힘이 담겨 있었다.
평상시는 파도 한 점 없는 바다처럼 잠잠하지만, 담호가 기세를 피워 올리는 그 순간 잔잔한 바다에 폭풍우가 몰아쳤다.
지금 노도사들이 보는 담호의 눈빛이 그랬다.
광포한 살의가 범벅이 돼 소용돌이치는 눈빛은 그야말로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그들은 이제까지 단 한 번도 이런 시선을 경험한 적이 없었다.
‘무량수불! 어떻게 화산파에서 이런 악룡(惡龍)이 나타났단 말인가?’
그들이 느끼는 위기감은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노도사들 중에서 가장 성질이 급해 보이는 이가 앞으로 나섰다. 백발이 성성한 머리카락과 눈썹이 그가 얼마나 오랜 세월을 살아왔는지 말해 주고 있었다.
노도사의 도호는 무광.
청허 진인의 사숙이었고, 이곳에 모여 있는 전대 장로 중에서 가장 다혈질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무당파의 도사들은 무광(懋曠)이라는 원래의 도명 대신 무광(武狂)이라고 불렀다. 그만큼 무공에 미쳐 있었고, 수십 년의 세월 동안 한시도 수련을 게을리한 적이 없었다.
무당파 제일의 검객이라는 청허 진인조차 소싯적 무공이 막힐 때면 그에게 가르침을 청했을 정도였다.
세월은 대부분의 사람들을 유순하고 현명하게 만들었지만, 무광에게는 해당이 되지 않는 이야기였다. 백여 살에 가까워진 지금도 그는 젊었을 적과 다름없는 급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담호의 눈빛에 순간적으로 위축되었다는 사실에 분노하고 있었다.
무광이 노성을 토해 냈다.
“입을 부수겠다고? 어린놈이 못 하는 말이 없구나. 내 네놈의 방자함을 응징해 화산에 경고를 하겠다.”
슈우우!
그 순간 담호가 대지를 박찼다.
거칠게 흩날리는 흑발과 그 사이로 섬뜩하게 빛나는 눈동자가 순식간에 확대되어 보였다.
예고도 없이 들이닥친 담호의 공격에 무광이 기함하며 양손을 활짝 펼쳤다. 그러자 ‘콰르르’ 하는 뇌성이 장내에 울려 퍼졌다.
무당의 절학 중 하나인 사상풍뢰장(四象風雷掌)이 펼쳐진 것이다.
사상풍뢰장은 부드러움을 중시하는 무당파의 무공답지 않게 강맹한 위력을 갖고 있었다. 사상풍뢰장을 대성하면 뇌성이 울려 퍼진다고 했는데 지금 무광의 모습이 그랬다.
쾅!
담호의 주먹과 사상풍뢰장이 격돌하면서 굉음이 터져 나왔다.
“으음!”
신음을 흘린 이는 바로 무광이었다. 사상풍뢰장을 펼쳤던 그의 양손이 퉁퉁 부어올랐다. 누가 봐도 명백한 무광의 손해였다.
“이익!”
무광의 얼굴에 수치와 분노의 빛이 떠올랐다.
거의 평생을 단련해 온 사상풍뢰장을 펼치고도 손해를 보았단 사실이 그를 분노하게 만든 것이다.
“놈! 용서하지 않겠다.”
무광은 전력을 다해 사상풍뢰장의 절초인 뇌신만격(雷神萬格)을 펼쳤다. 마치 뇌신이 현신한 것처럼 뇌전을 동반한 장력이 담호를 향해 날아갔다.
빠지지직!
공기가 뇌전에 터져 나가며 일대에 밝은 빛이 명멸했다. 그야말로 가공할 위력이었다.
“사제!”
“으음!”
그 모습을 본 노도사들이 경호성을 터트렸지만, 누구도 말리지는 않았다. 무광의 마음이 곧 그들의 마음이었다.
그들은 무광을 통해 담호의 역량을 가늠해 보고자 했다. 그래서 그들은 방관했다.
일대에 빛이 터져 나가고 있었지만, 담호의 눈빛은 더욱 어둡게 물들고 있었다.
무당파의 전대 장로라는 신분이 부끄럽지 않은 신위였다. 어지간한 문파의 장문인들은 감히 대항할 엄두를 내지도 못할 만큼 강력한 위력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도 잘도 숨어 있었군.”
마교의 침공으로 수많은 이들이 죽어 나가던 시기, 화산파가 앞서 싸워 큰 피해를 입었던 그 시기에도 무광을 비롯한 무당파의 전대 장로들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화산파가 궤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어 봉문을 할 때도 무당파가 입은 피해는 그야말로 미미했다. 그 덕에 무당파는 소림사와 함께 무림의 양대 거두 자리를 놓치지 않을 수 있었고, 현재의 엄청난 성세를 누릴 수 있었다.
그 중심에 무당파의 전대 장로들이 있었고, 무광 역시 그중의 하나였다.
천하를 위한 헌신보다 자파의 안위를 택한 자들.
담호의 눈빛이 섬뜩하게 빛나더니 사납고 거친 기류가 그의 몸을 휘돌았다. 폭마경을 펼친 것이다.
콰콰쾅!
폭강과 뇌신만격이 격돌하며 뇌전이 사방으로 뻗쳐 나와 대지를 검게 태웠다.
“으음!”
“이런!”
청허 진인과 무당파의 전대 장로들이 급히 뒤로 물러났다. 그들이 서 있던 곳에까지 여파가 미쳤기 때문이다.
전대 장로들의 얼굴엔 당혹스러운 감정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그들은 모두 무당파의 무공을 하나씩은 완성한 무인들이었다.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지, 그들의 무공 성취는 천하를 아우르는 고수들과 대등하거나 오히려 강했다.
콰쾅!
하지만 그런 그들의 눈으로도 명멸하는 뇌전의 바다 안에서 벌어지는 광경을 전혀 꿰뚫어 볼 수 없었다.
전대 장로들 중 가장 연장자인 요광이 중얼거렸다.
“그래도 사제가 이기겠지?”
“뇌전이 이리도 성하는 것을 보면 뻔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운광이 그에 동조했다.
그 모습을 보며 청허 진인이 탄식을 내뱉었다.
“하! 사백, 사숙.”
“왜 그러느냐? 청허.”
“그렇게 보고도 모르겠습니까? 저게 어찌 사숙이 이기는 것으로 보인단 말입니까?”
“그게 무슨 말이냐? 저리도 사제의 기운이 성하거늘.”
“그게 어찌…….”
청허 진인이 말끝을 흐렸다.
마치 거대한 철벽이 눈앞에 쳐져 있는 것 같았다. 넘을 수도 없고, 무너트릴 수도 없는 벽이.
분명 전대 장로들의 무공은 하늘을 찌를 정도로 강했다. 하지만 그들은 실전 경험이 너무 없었다.
서로가 서로를 상대로 대련한 것이 전부일 뿐이다.
담호처럼 생사대적을 상대로 목숨을 걸고 싸운 적도 없고, 찰나의 순간에 모든 것을 건 적도 없었다.
도사의 순수함을 간직하고 있을지언정 무인의 치열함은 소유하지 못했다. 그래서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을 보고도 명확히 판단하지 못했다.
‘모든 것이 나의 잘못이다.’
청허 진인이 절망감에 고개를 저었다.
그는 벽을 깨고 싶었다.
담호와 전대 장로들을 만나게 함으로써 교류의 틀을 넓히고, 현재의 난국을 타개할 방도를 찾고 싶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의 선택은 너무 성급했다.
그의 사백, 사숙들은 아직도 자신들만이 최고라는 선입견에 갇혀 있었다. 그들은 외부의 존재와 격의 없는 대화를 할 수 있을 만큼 마음이 열려 있지 않았다.
무당파라는 이름이, 무당파의 전대 장로라는 자부심이 그들의 마음에 커다란 벽을 둘러친 것이다. 북방의 장성만큼이나 높고, 태산만큼 두꺼운…….
그때였다.
쩌엉!
“큭!”
“무슨?”
갑자기 한 줄기 충격파가 일대를 휩쓸고 지나갔다. 그리고 일대에 쏟아지던 뇌전이 눈 씻은 듯이 싹 사라졌다.
순간 청허 진인을 비롯해 무당파 전대 장로들의 눈이 찢어질 듯 부릅떠졌다.
“저, 저?”
“이럴…… 수가!”
그들의 눈동자가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걷잡을 수 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만큼 드러난 광경은 충격적이었다.
“끄으으!”
무광이 담호의 손에 멱살이 잡힌 채 갈대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오른쪽 팔은 아예 어깨에서부터 부러진 듯 힘없이 덜렁이고 있었고, 양다리도 기괴한 방향으로 꺾여 있었다.
“무광?”
“사……형!”
그 순간 무광이 겨우 고개를 돌려 그들을 바라봤다. 그런 그의 얼굴엔 공포심이 가득했다.
무당파의 전대 장로로서 항상 타인의 머리 위에서만 군림하던 그였다. 그런 그가 담호에게 멱살이 잡힌 채 흔들리고 있었다.
그는 정말 최선을 다했다. 스승에게 배운 바대로 사상풍뢰장을 펼쳤다. 한 치의 어긋남도 없고, 부족함도 없이 있는 그대로의 사상풍뢰장을.
스승이 환생해 돌아와도 그보다 완벽하게 펼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담호는…… 지금 그의 눈을 들여다보고 있는 이 새까만 악마는 그야말로 잘근잘근 사상풍뢰장을 박살 냈다.
마치 무광이 살아온 삶을 부정이라도 하듯이 그가 무당파에서 쌓아 온 공부를 전부 무너트린 것이다.
생전 처음 경험하는 공포에 그는 미칠 지경이었다. 그래서 사형, 사제들을 간절한 염원을 담아 바라봤다. 이 미친놈의 손에서 구해 달라고.
그 순간 담호가 주먹을 치켜들었다. 그에 요광이 다급히 소리쳤다.
“멈춰라! 이 무슨 패악무도한 짓이냐?”
콰직!
그 순간 담호의 주먹이 무광의 안면에 작렬했다. 정확히는 바로 무광의 입이었다.
무광의 이빨이 부서져 나가고, 혀가 짓이겨졌다. 피가 사방으로 튀고 무광의 몸이 낚싯줄에 걸린 물고기처럼 퍼득거렸다.
“우워어!”
짓뭉개진 입술 사이로 고통의 신음성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무광은 고통스럽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공포로 이미 신경이 마비되었기 때문이다.
그제야 담호가 무광의 멱살을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무광은 바닥에 널브러진 채 움직이지 못했다.
담호는 그런 무광을 말없이 내려다보았다. 아무런 말도 없는 그 모습이 더 공포스러웠다.
“노옴!”
“감히 무당파의 장로를 상하게 하다니?”
그제야 제정신을 차린 전대 장로들이 살기를 피워 올렸다.
담호의 시선이 그들을 향했다.
“또 누구 입을 부숴 줄까?”
“…….”
순간 약속이라도 한 듯이 장로들이 입술을 조개처럼 굳게 다물었다.
마음이야 분노로 가득 차 있었고, 생각 같아서는 담호를 단박에 쳐 죽이고 싶었다. 하지만 생각처럼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움직일 수 없었다.
무광이 누구던가? 비록 전대 장로들 중에 막내라고 하지만 그 무위는 요광이나 운광에 비해 그렇게 크게 뒤치지 않았다. 오히려 강력한 내공은 그들 중 제일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런 무광이 담호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그들이 나선다고 해서 단번에 상황을 반전시키는 것은 불가능했다.
전대 장로들은 단 한 번도 담호와 같은 인간을 경험해 보지 못했다. 앞뒤 가리지 않고 미친개처럼 물어뜯는 담호란 존재는 보는 것만으로도 심적 부담을 안겨 주었다.
일대를 지배하고 있는 담호의 끈적한 살기는 아직도 가라앉지 않고 있었다. 그 섬뜩한 감각에 요광을 비롯한 장로들이 진저리를 쳤다. 하지만 이대로 맥없이 물러날 수는 없었다.
그들이 이대로 물러나면 무당파의 체면이 바닥에 떨어지게 된다. 반대로 담호에게 덤빈다고 해도 이긴다는 보장이 없었다.
그야말로 진퇴양난의 상황이었다.
그때 청허 진인이 나섰다.
“사백, 사숙! 제발 이 청허의 말을 듣고 노여움을 거둬 주십시오. 이 청허가 목숨을 걸고 간청합니다.”
그의 목에는 시퍼렇게 벼려진 검이 닿아 있었다. 다른 누구의 검도 아닌 청허 진인의 검이었다. 스스로 목에 검을 겨눈 것이다.
“청허!”
“사백! 대화가 끝난 후에도 노여움이 풀리지 않는다면 이 청허가 스스로 목숨을 끊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제 이야기를 단 한 번만 들어 주십시오.”
“크음!”
자신의 목숨을 걸고 나선 청허 진인의 기백에 전대 장로들이 잠시 헛기침을 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오히려 잘됐다는 생각을 했다.
퇴로가 보이지 않던 상황에서 청허 진인이 출구를 열어 주었기 때문이다.
청허 진인의 시선이 담호를 향했다.
“내 목숨을 걸고 부탁하겠네. 부디 이번 한 번만 노여움을 거둬 주시게. 아무리 무당파가 모자라도 정파의 한 축이 분명하네. 다 같이 힘을 모아 이 고난과 역경을 헤쳐 나가야 하네. 그러니 제발…….”
그의 간절한 눈빛과 마음이 그대로 전해져 왔다.
지금 이 순간 청허 진인은 모든 것을 놓았다.
무당파의 장로라는 직위도, 호북제일검이라는 명성도. 그리고 무인의 자존심마저도.
그 간절함이 담호를 움직였다.
담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네! 정말 고맙네!”
청허 진인의 목소리가 공터에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