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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권마-352화 (35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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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2화 1장. 세월이 모두를 현명하게 만들지는 않는다(2)

“또 사고 치지 않았나 몰라.”

“무슨 말이냐?”

초연운이 뚱한 표정을 지으며 묻자 방진보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냥 혼잣말을 한 것뿐인데 초연운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

“진짜예요.”

“누가 뭐라냐?”

초연운이 피식 웃었다. 그에 방진보가 구시렁거리면서 주도를 움직였다.

현재 그들이 있는 곳은 하남성의 한 야산이었다.

해가 넘어갈 때가 되었기에 노숙을 택했고, 당연하게도 방진보가 음식을 만들었다.

방진보 앞에서 모닥불이 일렁이고 있었다.

한참 재료를 다듬던 방진보가 갑자기 모닥불에 손을 뻗었다. 시뻘건 불길이 순식간에 그의 손을 휘감았다.

놀랄 만도 하건만 초연운은 별다른 감흥 없이 그 모습을 바라봤다. 이곳까지 오면서 매일같이 경험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불은 이 정도면 충분하고…….”

방진보가 미소를 지으며 과자를 불 위에 올려놨다.

과자 안에는 버섯과 말린 두부가 들어 있었다. 버섯과 향신료로 쓰이는 채소들은 이곳에 오는 동안 야산에서 채취한 것들이었다. 말린 두부는 방진보가 화산을 내려오기 전에 미리 만들어 둔 것으로 이렇게 급하게 요리할 때 요긴하게 쓰였다.

방진보가 만드는 음식은 바로 마파두부(麻婆豆腐)였다. 비록 고기가 빠져 있었지만 방진보에겐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았다.

방진보가 부지런히 손을 움직였다. 그러자 과자가 요동치면서 안에 담긴 재료들이 춤을 추었다.

“흥흥!”

방진보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과자를 들고 있지 않은 손으로 기묘한 움직임을 보였다. 그러자 모닥불이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그의 손짓에 따라 움직였다.

그에 초연운이 고개를 내저었다.

“허! 저 자식, 도대체 화산에서 뭘 배운 거야?”

몰라서 하는 말이 아니었다. 어이가 없어서 하는 말이었다.

불길을 제멋대로 조종하는 것은 바로 오행군자공의 능력이었다. 오행군자공이 경지에 이르면서 방진보는 불길을 자신의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게 되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불길에 손을 집어넣는 것만으로 엄청난 화상을 입었을 테지만, 방진보의 손은 그을린 곳 하나 없이 멀쩡했다.

다른 사람들이 봤으면 경악할 일을 방진보는 아무렇지 않게 해내고 있었다. 그만큼 엄청난 성취였지만, 방진보는 자랑스러워하기보다 요리에 마음껏 활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더욱 즐거워했다.

치이익!

한껏 달아오른 과자 안에서 마파두부가 익어 가며 향긋한 냄새가 일대에 퍼져 나갔다.

초연운은 입안에 절로 침이 고이는 것을 느꼈다. 이곳으로 오는 동안 매일같이 맛보는 음식이었지만, 도무지 질리지가 않았다. 오히려 매일매일이 새로웠다.

방진보와 동행하면서 초연운은 예전의 유쾌함을 어느 정도 되찾았다. 비록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은 분노가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지만, 그래도 이젠 사람들을 보며 웃을 수 있을 정도는 되었다.

전적으로 방진보 덕이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그와의 동행이 큰 영향을 끼친 것만은 분명했다.

그때 방진보가 불길 속에서 과자를 꺼내며 말했다.

“자, 다 됐습니다.”

“오! 냄새가 끝내주는데.”

“몰랐어요? 내가 만든 것은 항상 끝내주는데.”

“좀 겸손해 봐라.”

“안 먹을 거예요?”

“아니! 내 입이 가끔 의지를 무시할 때가 있으니 너도 무시하거라.”

“그릇 내미세요.”

“응!”

초연운이 앞에 놓여 있던 그릇을 내밀었다. 그릇 안에는 방진보가 미리 준비해 둔 밥이 담겨 있었다.

방진보가 갑자기 미간을 찌푸렸다. 그에 초연운이 불안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왜?”

“그 손.”

“젠장!”

그제야 초연운이 한 손으로 그릇을 들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두 손으로 공손하게 들었다. 그제야 방진보가 ‘풋’ 웃으며 그릇 가득 마파두부를 부었다.

“젠장! 이렇게 먹고살기가 힘들어서야.”

“헤헤!”

“이 원수는 꼭 갚으마.”

초연운이 투덜거리며 마파두부를 한 입 가득 떠먹었다. 하지만 잔뜩 찡그렸던 표정은 입안에 마파두부가 들어가는 순간 언제 그랬냐는 듯이 활짝 펴졌다.

입안에서 시작된 온기가 전신으로 번져 갔다. 혀뿐만 아니라 정신마저 행복해지는 느낌에 초연운은 미소를 지었다. 그 모습에 방진보도 웃을 수 있었다.

별것도 아닌 일로 위세를 피우고, 투닥거리는 모든 행동은 초연운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방진보만의 방법이었다.

방진보는 초연운의 곁에 털썩 주저앉으며 물었다.

“맛있어요?”

“시끄럿!”

“헤헤! 맛있죠?”

“분하지만…… 맛있네. 젠장!”

“헤헤!”

그제야 방진보도 수저를 들어 마파두부를 맛봤다. 자신이 만든 것이지만 무척이나 맛있었다.

두 사람이 그렇게 나란히 앉아 마파두부를 먹고 있을 때였다.

“저기, 불빛이다.”

“어디? 진짜네.”

갑자기 어둠 속에서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초연운과 방진보가 동시에 그릇을 내려놓으며 고개를 들어 어둠을 바라봤다.

순간적으로 두 사람의 안광이 빛났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그들의 눈동자가 원래의 빛을 되찾았다.

그때 수풀을 헤치며 이 남 일 녀가 나타났다.

세 명 모두 앳된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이 겨우 십 대 중후반 정도로 보였다. 세 명 모두 허리에 검과 도 같은 무기를 차고 있는 것이 무가의 자손이나 제자들로 보였다.

“응?”

생각보다 어려 보이는 이들의 등장에 초연운이 잠시 코끝을 찡그렸다.

“너희들은 누구냐?”

“저는 대별산장(大別山莊)에서 나온 서우종이라고 합니다. 이들은 제 동료인 주진광 소협, 그리고 경하진 소저라고 합니다.

서우종이라고 이름을 밝힌 소년이 곁에 있는 두 사람을 초연운에게 소개했다.

“음!”

초연운이 그들을 빤히 바라봤다.

어깨에 자욱이 쌓인 먼지, 그리고 여기저기 나뭇가지에 긁힌 듯한 흔적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들이 꽤나 오랫동안 산길을 헤매고 다녔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었다.

“대별산장이라고?”

“예! 그렇습니다.”

“대별산장이라면 이곳에서 수백여 리 떨어진 곳에 있을 텐데, 이곳엔 웬일이지?”

“저희는 소림사로 가는 길입니다.”

서우종이 큰 목소리로 대답했다.

“소림사?”

“그렇습니다. 무림의 정의를 지키기 위해 미약한 힘이나마 보태려고 이렇게 동료들과 함께 나섰습니다.”

“하!”

초연운이 크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숙였다.

역시 예상했던 것처럼 아직 철모르는 애송이들이 섣부른 의협심으로 제멋대로 길을 나선 것이다.

“너희들…….”

“예?”

“내가 마교의 무인이면 어쩌려고 그렇게 거침없이 정체를 밝히는 것이냐?”

“마교의 무……인입니까?”

갑자기 서우종이 긴장을 하며 허리에 찬 검을 잡아 갔다. 그것은 뒤에 있는 주진광과 경하진도 마찬가지였다.

그 모습에 초연운이 양손으로 관자놀이를 지그시 눌렀다.

“아니니까 그 검 집어넣어.”

“예?”

“내가 마교의 무인이었으면 너희들이 아직까지 살아 있을 것 같아? 얼른 검 집어넣지 못해.”

“아, 알겠습니다.”

그제야 서우종 등이 검을 집어넣었다.

초연운이 한숨을 내쉬며 방진보를 바라봤다. 방진보도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한눈에 견적이 나왔다.

강호 경험이 전혀 없는 애송이 무인들이 호기만으로 나선 것이 분명했다.

실제로도 그랬다. 서우종은 대별산장에서도 두각을 나타내는 후기지수였고, 뒤에 서 있는 주진광은 남양(南陽)에서 위세를 떨치는 무가의 자손이었다.

그들과 함께 있는 경하진은 무강(舞鋼)의 명문인 대정무관(大正武館)의 관주 경호천의 무남독녀였다.

비록 구대문파나 오대세가 같은 강호 최정상의 명문가에 비하면 손색은 있었지만, 그래도 하남성에서는 알아주는 명문 소속이었다. 때문에 그들은 무척이나 자부심이 강했다.

천하 전체가 마교의 침공으로 혼란에 빠졌건만 그들은 오히려 명성을 날릴 좋은 기회라고 판단했다. 사문의 허락 없이 소림사로 향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여기서 두각을 나타내면 분명 강호에서 손꼽히는 후기지수가 될 수 있을 거야. 우리라고 구무룡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잖아.’

그것이 사문을 나올 때 서우종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생각처럼 그렇게 녹록하지 않았다.

같은 하남성 내이기에 소림사로 가는 길이 수월할 줄 알았지만 그것이 얼마나 큰 오산인지 깨닫는 데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제대로 된 길잡이가 없어 초장부터 길을 헤맸고, 그 결과 여러 날을 노숙해야 했다. 제대로 된 준비하나 없이 노숙을 하는 것은 그들에게 끔찍한 악몽을 선사했다.

변변한 식사를 하지 못해 배는 등가죽에 붙었고, 험지에서 자다 보니 온몸이 돌로 얻어맞은 것처럼 쑤셨다. 한평생 고생이라곤 해 본 적이 없는 그들이 감당하기엔 너무나 가혹한 일이었다.

꼬르륵!

초연운 등이 먹던 그릇을 보는 순간 그들은 격한 허기를 느꼈다. 여자인 경하진은 얼굴을 붉혔지만, 서우종과 주진광은 뚫어져라 마파두부가 담긴 그릇을 바라봤다.

“거참!”

그들의 눈빛이 얼마나 강렬했는지 초연운이 고개를 젓고 말았다.

그때 방진보가 말했다.

“아직 밥이 많이 남았는데 드릴까요?”

“크흠!”

“굳이 주겠다면야…….”

그래도 체면은 있는지 서우종과 주진광이 마지못한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방진보가 미소를 지으며 그릇 가득 밥과 마파두부를 떠서 그들에게 건네주었다.

“흠흠! 냄새가 좋군.”

“주는 것이니 잘 먹지.”

두 사람은 허름한 방진보의 옷차림만 보고 말을 놨다. 방진보와 비슷한 또래였지만, 그래도 명문가의 자제라는 자존심 때문에 방진보를 내려다보는 것이다.

“고마워요.”

오직 경하진만이 감사의 인사를 했지만, 그마저도 다분히 형식적인 것에 불과했다.

“쯧!”

그런 세 사람의 모습에 초연운이 혀를 찼다. 하지만 세 사람이 워낙 허겁지겁 음식을 먹기에 더 이상 말하지는 않았다.

“맛……있어!”

마파두부를 입안에 넣자마자 경하진이 탄성을 내뱉었다. 처음엔 단순히 오랫동안 굶주려서 맛있게 느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음식을 씹으면 씹을수록 황홀한 맛이 느껴졌다.

단순히 맛있다는 말로는 부족했다. 온몸 가득 퍼져 나가는 온기와 기묘한 활력이 그녀를 기쁘게 만들었다.

경하진이 눈을 동그랗게 뜬채 서우종과 주진광을 바라봤다. 하지만 두 사람은 허겁지겁 음식을 먹을 뿐 경하진처럼 예민하게 반응하진 않았다.

경하진의 시선이 방진보를 향했다.

초연운과 방진보 중에서 음식을 만들 만한 이는 방진보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 음식…… 소협이 만들었나요?”

“왜 맛없나요?”

“아니, 너무 맛있어서…….”

“다행이네요.”

방진보가 멋쩍은 듯이 머리를 긁적였다.

경하진은 누가 봐도 미인이었다. 또렷한 이목구비와 차가운 분위기를 가진 독특한 미인. 약간은 치켜 올라간 눈초리마저 그녀의 독특한 분위기와 겹쳐져 매력적으로 보였다. 그런 미인이 칭찬을 해 주니 기분이 좋지 않을 리 없었다.

“고마워요, 잘 먹을게요.”

감사의 인사를 한 경하진이 다시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방진보가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자신이 만든 음식을 다른 누가 맛있게 먹어준다는 사실이 그를 기쁘게 만든 것이다.

“헤헤!”

방진보가 특유의 웃음을 흘리자, 곁에 있던 초연운이 머리를 쥐어박았다.

“좋냐?”

“뭐가요?”

“꼴에 사내라고.”

“네?”

“휴! 아니다. 내가 무슨 말을 하겠냐?”

초연운이 한숨을 내쉬었다. 방진보는 영문을 몰라 큰 눈을 끔뻑일 뿐이었다. 그에 초연운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 순진한 동생은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지 자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방진보가 뚝딱 만들어 낸 음식이 얼마나 큰 가치를 지니는지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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