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4
354화 2장. 작은 돌멩이 하나가 연못 전체에 파문을 일으킨다(1)
운남성은 중원 서남부 고원 지대에 위치하고 있었다. 중원과 오랜 세월 단절되어 왔기 때문에 이곳 역시 사천성과 마찬가지로 독자적인 생활양식을 구축했다.
운남성엔 특히 소수의 부족들이 많이 살았는데, 이들은 각자의 영역을 확고히 구축하고 있었다. 수많은 부족들이 하나 되어 살아가는 곳이 바로 운남성이었다.
운남성은 패자는 그 유명한 점창파였다. 점창파는 구대문파의 일원일 만큼 뛰어난 무공과 세력을 자랑했는데, 운남성에서는 그들을 감히 당할 자가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제아무리 점창파라고 하더라도 운남성 모두를 뜻대로 지배할 수는 없었다.
그 때문에 점창파는 운남성을 대표하면서도 지배하지는 않는 특이한 형태가 되었다. 그리고 점창파 역시 운남성의 정신적인 지주 역할에 충분히 만족하고 있었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운남성엔 점창파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곳이 수두룩했다. 그중에는 애뇌산도 있었다.
봉우리는 하늘을 찌를 듯이 높고, 계곡은 지옥의 무저갱처럼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었다. 사시사철 밤낮의 구별 없이 구름과 안개가 덮여 있는 봉우리는 모두에게 위압감을 안겨 주었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운남성에 사는 사람들은 애뇌산을 신성한 산이라 부르며 접근을 꺼렸다.
오늘도 애뇌산 정상에는 운무가 자욱이 끼어 있어 더욱 신령스럽게 보였다. 그런 애뇌산을 바라보는 남자가 있었다.
마치 거대한 철탑이 우뚝 서 있는 듯한 강렬한 기세를 피워 올리는 남자는 바로 검율천이었다.
그는 팔짱을 낀 채 저 멀리 서 있는 애뇌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그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깊이 가라앉아 있었다.
검율천은 마치 석상이라도 된 것처럼 미동도 없이 우뚝 서 있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만 갔다.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 검율천의 뒤쪽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제야 검율천이 뒤돌아봤다. 그러자 하얀 면사로 얼굴을 반쯤 가리고 있는 여인이 보였다.
“유경.”
검율천의 입가에 한 줄기 미소가 피어났다.
여인은 바로 음유경이었다.
그녀의 등장은 석상처럼 무뚝뚝하기만 하던 검율천의 얼굴에 미소를 피워 내기 충분했다.
음유경도 미소를 지은 채 검율천을 향해 다가왔다.
“다녀왔어요.”
“수고했어.”
“수고는요. 당연히 해야 할 일인데요.”
음유경이 고개를 저었다. 검율천을 올려다보는 그녀의 눈에는 신뢰와 굳은 믿음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어떻게 되었지?”
“예상대로예요. 점창파는 이곳의 상황을 전혀 알지 못해요.”
“정말인가?”
“몇 번이나 확인했어요.”
음유경이 확고한 대답에 검율천이 고개를 끄덕이며 애뇌산을 바라봤다.
“그럼 움직여야겠군.”
“예!”
두 사람이 애뇌산을 향해 움직였다.
그들이 애뇌산을 향하는 것은 단 한 가지 이유였다. 바로 공작귀검 신무월이 남긴 표식이 애뇌산으로 이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신무월은 사천성에서부터 마모 단운향을 은밀히 추적했다. 그는 곳곳에 표식을 남겼고, 두 사람은 그 표식을 쫓아 이곳까지 온 것이다.
두 사람은 은밀히 애뇌산을 향해 움직였다.
신무월이 남긴 표식이 사실이라면 저곳에 마모가 있을 확률이 컸다. 그 말은 곧 마교의 분원이 애뇌산에 존재한다는 뜻이었다.
마교가 악양에 자리를 잡은 지금 분원은 큰 의미가 없어 보였다. 하지만 검율천에겐 반드시 확인해야 할 것이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분원의 존재 여부를 반드시 알아내야 했다.
애뇌산으로 가는 길은 무척이나 험했다. 울창한 수림 때문에 방향을 가늠하기 힘들었고, 곳곳에 깊은 계곡과 늪이 존재했기에 속도가 더딜 수밖에 없었다.
만일 두 사람이 무공을 익히지 않았다면 애뇌산까지 가는 데 수 일이 걸렸을 것이다. 그들은 경공을 펼쳐 장애물을 뛰어넘으며 전진했다. 그렇게 반나절을 움직이자 애뇌산 근처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들은 신무월의 표식을 쫓아 애뇌산을 샅샅이 뒤졌다. 그러다가 이름 모를 계곡에 감춰진 은밀한 건물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밖에서 봐서는 절대로 알 수 없는 그런 위치에 건물은 존재하고 있었다. 그리고 신무월의 표식 역시 이어져 있었다.
“여긴가 보군. 신교의 운남 분원이.”
“그런 것 같네요.”
음유경이 고개를 끄덕여 동의했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엔 의혹의 빛이 떠올라 있었다. 이상하리만큼 분원이 조용했기 때문이다.
“너무 조용해요.”
“인기척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군.”
“모두 떠난 걸까요?”
“그럴지도.”
검율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가능성도 없지 않았다. 마교는 이제까지 어느 한곳에 오래 정착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직접 확인해야 했다.
그들은 건물의 벽을 뛰어넘었다.
예상했던 것처럼 건물 안은 텅 비어 있었다. 곳곳에 버려진 집기만 존재할 뿐 사람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다.
“급히 떠난 듯해요.”
“그런 것 같군.”
검율천이 음유경의 의견에 동의했다.
아직 바닥에 먼지가 쌓여 있지 않았다. 그것은 그들이 떠난 지 오래되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무월 사제가 들킨 걸까요?”
“글쎄!”
검율천이 말끝을 흐렸다.
더 이상 어디서도 신무월이 남긴 표식은 보이지 않았다. 표식을 남길 만큼 여유가 없었거나, 곤경에 처했다는 뜻이었다.
검율천은 전자라고 생각했다. 신무월을 향한 굳건한 믿음 때문이었다.
그들은 건물을 철저히 뒤졌다. 하지만 어디서도 마교의 무인들이 어디로 이동했는지 흔적이 남아 있지 않았다. 그야말로 철저히 꼬리를 지운 것이다.
“단서가 끊겼군.”
“어떻게 하죠?”
“우선 역문(易門)으로 돌아가자. 지금쯤이면 명천과 야노도 도착했을 테니까. 그곳에서 무월의 연락을 기다린다.”
“알았어요.”
음유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로서는 그 방법이 가장 나을 듯했다.
‘명천의 뛰어난 두뇌라면 단서를 찾아낼 수 있을 거야.’
삼 년 전 천형에서 벗어난 명천은 그야말로 재능을 활짝 만개했다. 검율천과 음유경 등이 소수의 인원으로도 천사교를 추적할 수 있었던 것은 명천의 능력 덕분이었다.
사천성을 빠져나온 이후 검율천은 명천에게 서신을 보내 역문에서 합류하기로 했다. 직접 만나 담호에게서 얻은 천사교의 정보도 전해 주고 마교의 동향도 분석하기 위함이었다.
명천의 뛰어난 두뇌라면 분명 무언가 확실한 결론을 내놓을 것이다. 검율천은 그렇게 믿었다.
두 사람은 애뇌산을 내려온 후 경공을 펼쳐 역문으로 향했다.
역문으로 향하는 길은 정돈되어 있지 않아 무척이나 험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모두 무공의 고수였다. 경공을 펼치는 그들에게 험난한 길 따윈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들은 채 반나절이 되기 전에 역문 근처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아!”
음유경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떠오르는 그 순간이었다. 반대로 검율천의 얼굴은 철갑처럼 딱딱하게 굳었다.
그가 경공을 멈추고 제자리에 멈춰 섰다.
“율천?”
음유경이 그런 검율천의 모습을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하지만 검율천의 표정이 워낙 심상치 않아 덩달아 입을 굳게 다물었다.
검율천이 서서히 뒤를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나와!”
“…….”
“스스로 나오지 않겠다면 나오게 해 주지.”
검율천이 갑자기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 허공을 향해 일권을 내질렀다.
콰르르!
대낮에 천둥소리가 울려 퍼지며 검율천 앞의 공기가 터져 나갔다. 뒤이어 누군가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허! 들킨 건가? 젊은 친구가 대단하군.”
아무것도 없는 허공이 갑자기 물결치는 듯 일렁이더니 누군가 걸어 나왔다.
평범한 얼굴에 평범한 체구를 가진 중년인이었다. 너무 평범해서 길거리에 나가면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를 보는 순간 검율천은 물론이고 음유경까지 섬뜩함을 느꼈다.
마치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허공을 바라보는 듯한 위화감이 그들의 경각심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검율천이 차가운 시선으로 중년인을 바라봤다.
“애뇌산에서부터 따라온 것인가?”
“이목이 제법 대단하군. 딴에는 신중을 기한다고 했는데 말이야. 나도 늙은 모양이군.”
중년인이 탄식을 터트렸다. 반대로 음유경의 얼굴엔 경악의 빛이 떠올랐다.
‘애뇌산에서부터 따라왔는데도 내가 몰랐다고?’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아니,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음유경의 무공 수준은 이미 강호 최정상에 위치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당연히 이목의 밝음과 신경의 예리함 또한 대단했다.
그런 그녀가 애뇌산에서부터 누군가 따라오는데도 감지하지 못했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였다. 만일 그가 암살을 시도했다면 꼼짝도 하지 못하고 당할 수도 있었다.
“당신은 누구죠?”
“글쎄……누굴까?”
중년인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에 음유경의 표정이 더욱 딱딱하게 굳었다.
검율천이 중년인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그도 중년인이 애뇌산에서부터 따라온 것이라고는 확신하지 못했다.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찔러 본 것뿐이었다.
그가 중년인의 존재를 눈치챈 것은 애뇌산과 역문의 중간지점에서였다. 그때 희미한 존재감을 느꼈고, 중년인의 존재를 확신한 것은 역문에 거의 도착해서였다.
검율천의 감각마저 속일 정도로 중년인의 추적술과 은신술은 대단했다. 검율천은 현 강호에 이런 은신술의 소유자가 있다는 소리를 들어 본 적이 없었다.
중년인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니 더욱 위화감이 느껴졌다. 생긴 것은 중년인의 그것인데, 그의 눈빛은 무척이나 노회해 보였다. 그제야 검율천은 중년인이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나이가 많이 들었음을 알아차렸다.
“천사교인가?”
“흠!”
“맞나 보군.”
“역시 똑똑하군. 오랫동안 우리를 추적해 왔다더니.”
중년인은 순순히 인정했다. 그런 그의 얼굴에 어린 미소는 더욱 짙어져 있었다. 반대로 검율천의 눈빛은 더욱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가 중년인이 천사교의 무인일지도 모른다고 추측한 것은 바로 노회한 눈빛 때문이었다.
연륜이 가득한 눈빛은 중년의 나이에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강호의 온갖 풍상을 경험한 노무인들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이었다.
그가 알고 있는 천사교는 일차 정마대전 당시 결사대에 참가했던 노무인들이 주축이 되어 만든 곳. 그래서 혹시 그들일지도 모른다고 짐작했던 것이다.
“당신도 결사대의 일원이었소?”
“흠! 거기까지 알아냈는가? 대단하군. 맞네! 나 역시 결사대의 일원이었다네.”
중년인은 순순히 대답했다.
검율천이 다시 물었다.
“선배의 존함은 어찌 되시오?”
“선배라. 마교의 무인에게 그런 소리를 들으니 기분이 이상하군. 뭐, 그래도 물으니 대답해 주겠네. 내 이름은 관무외라고 하네. 들어 봤는지 모르겠군.”
“관무외…… 설마 공령객이라 불렸던 관무외 선배 맞소?”
“허허! 아직까지 그 별호를 기억해 주는 이가 남아 있을 줄은 몰랐군. 맞네! 내가 공령객 관무외일세.”
순간 검율천과 음유경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공령객(空靈客) 관무외.
지금은 기억하는 이조차 거의 없는 이름이었지만, 예전에는 달랐다. 삼십 년 전에는 그 이름과 별호를 모르는 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적어도 강호를 살아가는 무인이라면 말이다.
당시 강호에는 오대무객(五大武客)이 존재했다.
사신제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각자의 영역에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단 다섯 명의 무인들. 그들은 모두 강호 최절정의 고수로 인정을 받았고, 수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았다.
관무외 역시 그중 한 명이었다. 그는 특이하게도 자객 출신으로 암살과 은신술에 능했다. 그는 수많은 마교의 고수들을 암살하면서 명성을 날렸다.
‘맙소사! 관무외라니. 도대체 천사교에는 얼마나 많은 전대의 고수들이 소속되어 있단 말인가?’
음유경은 전율했다.
조금씩 드러나는 천사교의 실체에 온몸에 오한이 느껴졌다. 이제까지 추적해 온 천사교의 저력은 실로 가공해서 또 어떤 고수가 소속되어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대체 무엇 때문에 선배 같은 자가 천사교에 들어간 것이오?”
“내가 그 이유를 자네에게 굳이 설명해 줄 이유는 없을 듯싶네만.”
“그럼 다른 것을 묻겠소. 왜 우리를 추적해 온 것이오?”
“그러면 자네들은 왜 천사교를 추적했는가?”
“…….”
“똑같은 이유일세. 앞길에 걸림돌이 되니까 제거하려는 것이지. 사실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이지만, 그간 자네들 때문에 본교가 많은 손해를 봤다네.”
“그래서 제거하겠다?”
“당연한 일 아니던가? 문제가 될 만한 것은 발본색원(拔本塞源) 해야 하는 법이지. 그게 강호의 생리가 아니겠는가?”
관무외가 말하는 바는 명확했다.
자신들을 추적하는 자들을 모조리 인멸(湮滅)하는 것.
관무외의 시선이 역관을 향했다.
“자네가 만나고자 하는 이들이 저곳에 있겠군.”
“당신?”
관무외가 미소를 지으며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사사삭!
그 순간 근처에서 무언가 움직이는 듯한 소리가 미세하게 들려왔다.
검율천의 안색이 변했다. 미세한 소성을 듣는 순간 한 가지 사실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공령살객(空靈殺客).
관무외를 따르는 일곱 명의 자객들. 관무외를 대신해 살행을 하는 수하들의 존재를 떠올린 것이다.
검율천이 급히 음유경에게 말했다.
“가서 명천을 보호하라.”
“알았어요.”
음유경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움직였다. 공령살객들이 향한 곳, 역관으로.
관무외는 그런 음유경을 막지 않았다. 대신 그의 시선은 검율천을 향해 있었다.
“요즘 후배들이 무섭다는데 사실인가 모르겠군.”
그가 검을 꺼내 들었다.
“최소한 정체를 감추고 음험한 계획을 세우는 노괴들보단 낫겠지.”
검율천의 눈빛이 더욱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 순간 관무외가 소리도 없이 움직였다. 그에 맞서 검율천이 뇌격술을 펼쳤다.
콰쾅!